-
-
희생 - [할인행사]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 수잔 플리트우드 외 출연 / 엔터원 / 2007년 11월
평점 :
품절
어느 날 세상은 화마에 휩싸인다. 북한이 쳐들어 온 것이다. 하늘은 저녁놀 마냥 붉디 붉다. 핏빛이라기엔 검붉은 색감이, 아마 포화가 남기고 간 그을음이 혼재되었기 때문이리라. 하늘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먹먹해진다. 화마가 휩쓸고 간 죽음의 색깔이 뭉크의 그림보다 더 심오한 절규를 쏟아낸다. ‘하늘만은 함께 있지 않았냐’ 는 시구도 이젠 적절치 못하다. 오히려 하늘이 나를 더욱 짓누르기에.
내 인생은 당신들 마냥 치열하지 않았다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전쟁으로 모든 꿈이 수포가 될 이시기에 나의 유유자적한 생애는 일말의 안식을 선사한다. 그렇게 느리게 살라고 역설했던 내 철학이 보상을 받는다. 이 아수라를 벗어나기 위한 정신의 도피가 이런 저열한 형태로 나타난다. 그러고는 웃는다. 저열하지만 꽤나 효과 있는 정신적 안정제다. 물론 비겁한 방어기제의 소산이다.
이런 몽롱한 위안으로 지탱하고 있는 내 눈에 군용차들이 보인다. 징집영장을 가져왔다며 아래층부터 젊은 것들은 몽땅 다 잡아간다. 순간 심장이 터질 듯하다. 국가라는 체제에 대한 불신 가득했던 생애가 다시금 국가의 훈육을 받아야 하다니. 내가 있는 곳으로 군인들이 올라온다. 하늘은 검붉다 못해 시커멓다. 하늘보다 내 가슴이 더 타들어 간다. 군사 문화를 경멸하며 집단의 폭력에 분노하던 연약한 지식인은 모든 게 다 꿈이 였으면 한다. 바닷가에서 생에 대한 의지 하나만으로 펄떡이던 횟감용 물고기 마냥 내 가슴은 비루한 뜀박질을 그치지 않는다.
그 뜀박질이 어느 정점에 이르렀나 보다. 스르르 눈이 뜨인다. 다행이다. 꿈이다. 하지만 여전히 심장은 헐떡인다. 꿈이라기엔 너무나 생생하였기에 아직도 핏발선 헌병의 고함소리가 후두부를 강타한다. 나도 모르게 이 모든 것이 꿈이길 바랬기 때문일까. 어쩌면 꿈속에서의 나의 간절한 소망에 하늘이 보답하사, 몽환에서 나를 해방시켜 줬으리라.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희생’이 생각난다. 나도 영화 속 주인공 마냥 간절히 원했기에 모든 것이 이전의 상태로 돌아왔을지 모른다. 세계 3차 대전을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주인공은 자신의 소중한 모든 것을 다 희생해서라도 이전 상태로 회귀할 수 있기를 하늘에 기도한다. 전쟁이 발생하기 전 날의 고요한 아침 햇살을 그리며. 그리고선 누군가의 계시에 이끌려 집안일을 돌보던 여자와 동침한다. 세상을 구원할 유일한 방안이라 믿으며.
그리고 다시 눈을 뜬다. 그는 이 모든 아수라장이 다시금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온 것을 목도한다. 이제 신에게 바치기로 했던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할 차례다. 우선 그는 집을 불태운다. 자신을 희생하지 않고서는 어떤 것도 얻을 수 없다는 자명한 명제가 불길로 시현된다. 그리고선 미친 듯이 뛰어 다닌다. 예수 마냥 자신을 바쳐 세상을 구원한 이 현자를 가족들은 미치광이 취급한다. 물질을 숭상하는 그들에게 재화를 이유 없이 소멸시키는 행위는 범죄일 따름이다.
이 때, 주인공의 아들은 눈을 뜬다. 아이는 사고로 눈을 잃었지만 아버지의 희생 덕분인지 시력을 찾았다. 그와 함께 죽은 나무에 꽃이 피기 시작한다. 죽은 나무에도 3년 동안 물을 주면 살아난다는 전설이 기적처럼 실현된다. 너무나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영화 초기의 나레이션이 명징한 형태로 현시된다.
어쩌면 나도 꿈속에서 이 모든 걸 다 돌릴 수 있다면 내 모든 것을 바치겠다는 서약을 했을지 모른다. 지극히 이기적인 나이지만 감당할 수 없는 공포와 두려움에 너무나 간절한 기도를 하늘에 드렸을지도. 영화를 봤을 땐 특유의 미장센과 롱테이크 촬영 기법이 지루했다. 하지만 그 여백 가득한 생각의 전달 과정이 꿈에 나타날 만큼 깊은 울림을 남겼나 보다. 장자가 이야기한 호접몽의 형태로. 칸 영화제에서 4개 부문을 수상했다는 명작의 깊이가 무의식 속에 아로새겨졌나 보다. 영화계의 시인으로 불리었던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이름이 딜레탕트를 꿈꾸던 청춘에게 명장으로 각인된다.
햇살 가득한 풍경이 이렇게 살가울지 몰랐다. 무엇을 희생하기는 커녕 나태한 삶을 긍정하는 천연덕스러운 방어기제와 작별해야겠다. 아직도 그 검붉은 하늘이 머릿속을 맴돈다. 두려웠고 무서웠기에 어떤 전쟁 속 참화의 고통보다 더 맨살에 와 닿았다. 꿈에서 나는 희생한 것도 없이 이 찬란한 햇살을 맞이할 수 있었다. 간절한 것도 없고 치열한 반성도 없는 한량의 맘에 숭고한 ‘희생’의 아름다움이 깊이 새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