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에 대한 찬가를 부르는 유명한 수필이 있다. 대부분 고등학교 문학 책에서 한번쯤은 봤을테다. 청춘의 활기와 열정을 찬양하는 내용. 젊음에 경탄하는 글귀는 청춘에 대한 동경과 시샘을 엿보게 한다. 청춘이란 중년층에겐 닿을 수 없는 노스탤지어이고 청년들에겐 생득적인 시간의 축복이다. 공교육 시스템에 억눌려 있는 10대 들의 마음도 이러한 청춘에 대한 찬가를 들은 후엔, 세상을 향한 열정으로 용솟음 칠 것이다. 열정을 표출하지 않고 마음에 담아 두기만 한다면 어느 순간 홧병이 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재의 10대에겐 이러한 홧병마저 사치다. 남은 열정마저 학력 증진에 쏟아야 하는 상황 때문이다.
지금의 10대들은 본인이 20대가 되면 억압 되었던 열정을 마음껏 표출하리라는 희망을 가지고 있을 테다. 10대들에겐 안된 일이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다. 지금의 20대는 열정을 표출하기는커녕 또 다른 미래를 위해 열정을 봉인하기 바쁘다. 대학에 들어서자마자 시작되는 취업에 대한 압박은 열정이라는 단어를 우선순위 뒤켠으로 영구히 이월 시킨다. 혹여나, 여분의 열정이 있다면 아직 철이 덜 들었다는 핀잔을 듣기 십상이다.
'약육강식'의 경쟁원리가 당연시 되는 요즘, 열정을 사치로 여기는 인식은 정당해 보이기도 하다. 내면의 음성에 귀 기울일 시간 없이 세상이 가리키는 대로 살 수밖에 없는 지금의 20대의 오갈데 없는 상황을 본다면 말이다. 지금의 20대는 결과적으로 ‘열정 상실의 시대’의 주체이며 객체이다. 세상이 가리키는 가치를 충실히 이행 할 수밖에 없는 약자이기에 20대는 객체다. 하지만 다른 길을 모색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열정을 봉인하는 안정지향의 모습을 보이기에 20대는 주체이기도 하다.
변변한 일자리 하나 얻기 힘든 20대 앞에서 열정을 운운하는 태도가 건방지다며 나무랄수도 있다. 하지만 모두가 맹목적으로 따라갈 수밖에 없는 세상의 흐름에 어느 정도 늘임표(페르마타)를 찍어 줄 필요가 있다는 데에는 동의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늘임표를 찍을 수 있을까.
우선, 학업에 인생을 저당 잡힌 10대가 그들의 과업에 대해 사보타주를 한다. 김영하의 소설 ‘퀴즈쇼’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현 젊은 세대는 이전 세대보다 책도 많이 읽고 외국어와 컴퓨터에도 능하다. 악기 하나쯤을 다룰 수 있을 정도로 예술적 소양이 높고 해외여행도 많이 다녀와 견식 또한 넓다. 하지만 어느 세대보다 취업문이 좁고 밥벌이하기 힘들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은 물질적 풍요라는 축복과 함께 찾아 온 경제 주체간의 심화된 경쟁 때문이다. 이 경쟁은 한정된 파이를 놓고 벌이는 제로섬(Zero-sum) 게임이라는 데에 문제가 있다. 학업 성취도가 높아졌다고 해서 명문대 입학 정원을 늘리지 않고 토익 점수의 평균이 높아 졌다고 취업문을 늘리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렇게 본다면 타인을 위하기보다는 자신을 위해서라도 사보타주를 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옳다. 이러한 생각이 20대에게 전파 된다면 프랑스의 ‘68 혁명’과 같은 거대한 물결이 과도한 경쟁의 흐름에 제동을 걸 수도 있다. 이때 필요한 것이 연대의식이다. 독서실 옆 칸의 친구를 경쟁자가 아닌 동지로 보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렇게 한다면 버거워만 보이던 사회의 흐름을 아름답게 바꿀 수 있을 것이다. 봉인된 열정을 표출한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닐 테다. 고등학교 문학책에서 청춘을 찬양했던 수필가도 찬탄해 마지않을 그 열정 말이다.
뜨거운 열정이 훌륭한 일꾼이 되는데에만 투입 되는 것은 자본가의 배만 불릴 뿐이다. 열정이 조금 더 다양하게 사용된다면 본인뿐만 아니라 주윗 사람들의 배와 정신 또한 살찌울 것이다. 조디 포스터가 주연한 영화 ‘콘택트’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우주라는 넓은 공간에 지구에만 생명체가 존재 하는 것은 공간의 낭비다’라고. 취업과 성공을 위해서만 표출되는 열정 또한 우주의 여백만큼 낭비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열정을 되찾기 위해 열정을 사용하는 일종의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청춘에 관한 수필을 읽고서도 뜨거운 혈기를 느끼지 못한다면 지금 하는 일을 잠시 접고 촛불 시위에라도 나가보자. 시간의 신인 크로노스 앞에서 모든 것이 무의미해지기 전에 청춘이 부여한 열정을 즐기자. 세월도 열정이 만들어 낸 추억만은 침범하지 못하기에 청춘의 신인 헤베에게 감사 드리는 마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