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 첼로와 피아노를 위한 작품 전곡 - Philips Duo
베토벤 (Ludwig Van Beethoven) 작곡, 로스트로포비치 (Mstislav R / 유니버설(Universal) / 199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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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스트로포비치가 연주하는 첼로의 음색은 남성성으로 충만하다. 리흐테르의 피아노 연주는 서정적이면서도 강하며 무채색의 느낌이 나기도 하지만 무지개만큼 다양한 스펙트럼을 띈다.

 두 거성의 협연이다. 카라얀의 지휘 아래 오이스트라흐, 리흐테르, 로스트로포비치가 뭉친 베토벤 삼중 협주곡 연주에서 이 두 거성은 서로 어울리지 않았다. 오이스트라흐는 리흐테르와 손을 잡았고 로스트로포비치는 카라얀과 손을 잡았다. 음악계의 독재자로 불리는 카라얀과 강한 보잉을 들려주는 로스트로포비치는 나머지 둘의 압도하지 못한채 평행선을 달리며 음악을 완성해 나갔다. 지나치게 빛나는 네 개의 별이 만들어 낸 베토벤 삼중 협주곡은 너무 눈이 부셔서인지 진실로 아름답게 느껴지진 않았다.

 하지만 이 음반에선 두 명인의 주고 받는 대화가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룬다. 로스트로포비치의 보잉은 매끈하며 깊다. 어울리기 힘든 두 개의 다른 힘이 공존하는 아름다움이다. 리흐테르의 반주는 첼로를 빛내주는 것에서 그치는게 아니라 스스로도 빛난다. 눈이 시리다. 한 곡 한 곡의 연주가 끝나갈 때마다 못내 아쉽다.  

 개인적으로 로스트로포비치를 그다지 좋아하진 않는다. 잿빛 바이올린 음색으로 유명한 코간과의 일화 때문이다. 둘이 서방에서 공연을 할 때 소련 정부는 코간에게 로스트로포비치를 염탐하라고 한다. 가느다란 바이올린 현 처럼 심약한 코간은 그 제의를 받아 들인다. 하지만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된 로스트로포비치는 분개하고 코간과 절연한다. 당황한 코간은 어찌할바 모르며 잘못을 읍소 하지만 자의식이 강한 로스트로포비치에겐 다 '개소리' 일 뿐이다. 코간은 죽는 날 까지 이러한 로스트로포비치의 냉담함 때문에 괴로워 했다고 한다. 파블로 카잘스는 코르토가 조국을 배신 하였지만 그를 이해하려고 하였다. 로스트로 포비치 또한 그러한 인자함을 갖췄으면 좋았을련만.

  과도한 수사학으로 점철된 음반 평이다. 조금 더 쉽게 쓰고 싶지만 글에 대한 과잉의 탐미주의는 언제나 비슷한 결과를 낳는다. 병이다. 베토벤의 귀족적인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다면 이 앨범을 권한다. 가끔씩 울리는 바이올린 보다 매끄러운 보잉에 미끄러질 염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리흐테르의 빛나는 반주가 무한의 평온으로 첼로를 감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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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푸치니 : 오페라 컬렉션
푸치니 (Giacomo Puccini) 작곡 / Decca / 200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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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원래 오페라를 잘 듣지 않는다. 가사를 못알아 듣기 때문이다. 하지만 푸치니의 오페라는 선율만으로 많은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이 앨범은 가격이 저렴하다. 품질은 훌륭하다. 자주 가는 클래식 동호회 사이트에선 이 음반에 대한 감탄이 가득하다. 때마침 세일 기간이다. 우선 사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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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8-09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구성을 살펴보면 여러 음반가이드의 평가를 기준으로 했을 때 충분히 가격만큼의 메리트는 있는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가격이 워낙 저렴하니 약간 지명도가 떨어지는 음반은 용서해야겠지요? ㅎㅎ

올해가 푸치니 탄생 150주년이라 곧 EMI 에서도 박스가 나오지 않을까 하는데요.. 그렇다면 분명 칼라스가 함께한 음반들을 모았을텐데, 그 박스와 함께 보유한다면 서로 단점을 상쇄하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 생각이 드네요~

바밤바 2008-08-10 20:54   좋아요 0 | URL
EMI 에서도 박스 나온다 해요. ㅎ 칼라스가 녹음한거는 따로 나오는거 같던데 고클 동호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기대해 마지 않더군요. 오페라 듣기는 시간이 많이 걸려서 요 음반만 사려고 합니다. ㅋ
 

  재익이가 간만에 네이트에서 말을 건다. 서태지  앨범 나왔다고 난리다. 간만에 애가 흥분한 것 같다.  27살에는 설렘도 사치일 때가 많기에 그러한 두근거림이 신기하기도 반갑기도 하다. 싱글 앨범이라서 정규 앨범 나오면 살거란다. 지금은 벅스에서 음악을 듣는다나. 대중 친화적인 음악 이라며 좋다고 난리다.

 서태지 덕분에 절친 한명이 어린 아이 마냥 좋아하게 되어 나도 좋다. 나 또한 서태지를 좋아 한다. 예전 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의 음악을 좋아한다. 서태지의 음악에 절대성을 부여하지는 않지만 시대의 아이콘으로서 그의 음악은 귓가에 울리는 소리보다 더 큰 잔향을 풍긴다.

 하지만 약간의 거부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만원이 넘는 싱글 앨범 가격이 우선 마음에 안든다. 싱글이라면 모름지기 조금 저렴하게 나와야 하거늘 이 가격은 웬만한 가수의 정규앨범 한장 가격이다. 서태지 찬양가를 부르는 사람들도 못마땅 하다. 서태지의 음악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다수 군중을 꾸짖는 그들의 선민의식이 마음에 안든다. 음악은 취향이고 서태지의 진보성은 묘하게 대중의 정서와 궤를 같이 한다. 그렇기에 태지의 음악을 맘에 안들어 하는 사람들을 음맹으로 매도하고 상대적 문화적 우월감을 지니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 서태지의 음악을 무조건적으로 찬양하는 그들의 태도는 그러려니 하기에는 조금 지나치다.

 개콘에서 왕비호가 서태지를 깐(?)적이 있다. 대통령도 뭐라 못한다는 서태지의 절대성에 딴지를 건 그의 행동이 신선했다. 서태지의 음악적 성취나 사회적 영향력을 감안 한다면 공중파에서 대놓고 그를 비방하기는 쉽지 않다. 아니, 거의 불가능하다. 또한 아이돌 그룹의 상품성을 비난 타겟으로 삼던 왕비호에게 서태지라는 존재는 만만치 않은 공격 대상이다. 하지만 그러한 절대 권력에게 한마디 한 것 만으로도 왕비호의 B급 정서는 빛났다. 주류의 근엄함을 조롱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B급 정서의 아름다움이 왕비호의 언어를 빛나게 한다. 

 서태지는 완벽한 주류다. 비주류처럼 행동하기에 주류로서의 생명력은 더더욱 빛난다. 말을 아끼고 음악으로 이야기 하기에 그의 절대성은 더더욱 공고해진다. 말의 무게와 사용빈도는 반비례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문화계의 절대자인 서태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완벽주의적 성향은 드럼 소리 하나도 신경써서 듣게 만든다. 대중 보다 딱 한발 정도 나아간 서태지의 음악은 주류 문화를 자신의 스타일로 대체시킨다. 재미있는 부분은 이러한 문화적 전복이 거부감은 커녕 대중의 자발적 동조를 통해 성취 된다는 것이다. 혁명적 이미지와 천재라는 대중의 인식은 자본주의에 대한 경각심 마저 무너뜨리며 그의 음악을 음악 그 이상의 존재로 만든다.

 서태지와 동시대에 활동했으며 그나마 그의 위치에 근접이나마 할 수 있는 뮤지션으로 사람들은 신해철을 꼽는다. 비평가들은 서태지를 모차르트에 신해철을 베토벤에 종종 비유하곤 했다. 머리에 모든 곡이 완성 되어 있던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서태지에게서 발견한 것이다. 사회적인 발언을 종종하고 대마초 등으로 음악적 고난이 많았던 신해철에겐 베토벤의 이미지가 슬쩍 오버랩 된다. 무엇보다도 직관적 영감의 서태지와 노력의 신해철이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비유로 형상화 되었다. 하지만 신해철은 한 인터뷰에서 이와는 반대되는 견해를 펼친다.

 서태지의 완벽 주의성은 모차르트 보다 베토벤에 가까운 노력의 결과라고. 오히려 신해철이 직관에 의존하거나 순간적인 착상으로 음악을 더 만드는 편이라고. 서태지와 관련된 천재성에는 대중의 바람이 만든 이러한 편견이 조금은 개입돼 있다. 뭐 딱히 나쁘지는 않다. 어릴때 부터 우리는 천재를 희구하고 열망하는 교육을 받아오지 않았는가. 천재에 대한 환상이 어느 나라보다 많은 편인 우리나라에서 서태지의 상품 가치는 그래서 더욱 빛난다.

 이 추세라면 서태지는 한국 대중 음악의 확고부동한 전설이 될 것이다. 영.미 권에서 비틀즈가 누리는 지위를 한국에선 서태지가 누릴 것이다. 존레논은 비틀즈 전성 시기에 '비틀즈는 예수보다 위대하다'라는 생뚱맞은 발언을 해서 많은 파문을 일으켰다. 지금의 서태지는 예수보다 위대한지는 모르겠지만 이 나라의 그 누구보다도 위대하다. 사실 나는 지금도 노래방에 가면 서태지의 '교실 이데아'를 즐겨 부른다. 아직도 그의 노래를 부르면 몸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울트라 맨이야'나 '필승' 등의 노래를 부를 때면 아드레날린이 온 몸을 덮는 느낌이다. 그렇다. 나는 아직도 서태지를 무지무지 좋아한다.

 그렇지만 이 글을 쓴 것은 너무 편향적인 서태지 찬가에 대한 나름의 반골 의식이 발동했기 때문이리라. 사실 서태지를 칭찬 하는 글이나 비판 하는 목소리는 적당히 균형을 이루며 그의 신화를 확대 재생산하는데 큰 몫을 했다. 미필적 고의든 치밀한 계산하에 벌인 고도의 서태지 찬양론이든 간에 서태지에 대한 이야기는 서태지의 입지를 강화 시킨다. 내 글도 결과적으로 그렇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내 마음속에 각인된 서태지의 위상이 새벽에 쓴 이 글로 인해 더욱 튼실해질 터이다.

 생각이 많은 밤이다. 서태지 정규 8집이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문화의 독점적 공급자의 위치에 있는 전설이 조금 더 탈 자본주의화 되길 바라며. 사람들 가슴에 더 많은 예쁜 꽃을 심어주길 바라며. 과거에 매몰되어 앞으로 한걸음 내딛기도 버거운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기를 바라며. 삶의 무게에 짓눌려 숨쉬기도 버거운 많은 영혼들의 마음이나마 가볍게 해주길 바라며. 무엇보다도 아직 세상은 살 만 하다는 희망의 바이러스를 퍼뜨려 주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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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에 겨울을 연상시키는 연주자가 있다. 마우리치오 폴리니. 냉정한 타건은 얼음보다 시리다. 기계적인 연주라는 세간의 평에 아랑곳 하지 않고 미스터치 하나 없는 냉정함으로 귓가를 때린다.

겨울에 여름을 연상시키는 연주자가 있다. 마르타 아르헤리치. 열정적인 타건은 불꽃보다 뜨겁다. 자의적인 해석이라는 세간의 평에 아랑곳 하지 않고 감정의 과잉으로 귓가를 불태워 버린다.

 동시대의 최고 피아니스트 둘을 꼽으라면 대부분 이 둘을 꼽을테다. 둘 사이에 열정과 냉정 사이란 없다. 극단의 열정과 극단의 냉정. 중용이란 가치는 설자리를 잃고 냉철한 머리와 뜨거운 가슴만이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한다.

 둘은 공통점이 있다. 둘 다 쇼팽 콩쿠르 우승자 출신이다. 폴리니는 1960년 아르헤르치는 1965년.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아르투로 베네디티 미켈란젤리를 사사한 점. 하지만 둘의 평은 그들의 연주 스타일만큼 다르다.

 "나는 미켈란젤리에게 피아노의 모든 것을 배웠다." 폴리니의 말이다.

 "나는 미켈란젤리에게 아무것도 배운 것이 없다." 아르헤르치의 말이다. 같은 스승에게 사사한 두명의 극단적인 평가는 후에 보여주는 해석의 차이를 수긍하게끔 한다. 이 둘이 주는 다른 느낌을 한폭의 캔버스에 그려 보면 어떨까. 우선, 피아니스트를 대표하는 두 얼굴이 하나로 오버랩 된다. 쇼팽 콩쿠르 우승과 미켈란젤리의 제자라는 공통점이 얼굴의 윤곽을 이루고, 다른 연주행태가 얼굴에 살을 붙인다. 묘하게 데칼코마니를 이루는 이 그림은 완전 대칭을 선호하던 근대적 미학보다 더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촛불로 뜨겁고 불신으로 냉정한 한국의 모습 또한 살포시 떠오른다. 현재 한국을 움직이는 두가지 기제는 공포와 욕망이다. 빼앗기지 않으려는 공포, 실업자가 되길 두려워 하는 공포. 더 가지려는 욕망, 남들 위에 서고싶은 욕망.

 공포와 욕망의 두가지 테마는 한국의 얼굴을 형성한다. 민족주의라는 뼈대위에 세워진 서로 다른 모습의 한국인. 공포에 그늘지고 욕망에 화색이 도는 모습은, 딱히 어울리진 않지만 묘한 끌림을 준다. 아마 그 끌림의 기원은 동질성이 것이다. 모두가 욕망과 공포를 쉬이 인정하려 하지 않지만 자신의 얼굴을 자세히 보면 두 가지 기제를 다 읽을 수 있을테다. 

 '노다메 칸타빌레'를 보면 치아키와 노다메가 모차르트의 '두대의 피아노를 위한 소나타'를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욕망과 공포의 이중주에 일그러져 가는 한국인에게도 이런 아름다운 연주가 절실하다. 폴리니와 아르헤르치의 연주라면 더욱 좋을테다. 서로 다른 색깔의 피아노가 충돌하지 않고 화합하는 모습은 포근한 안식을 선사할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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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 쇼팽 : 녹턴 전곡 [2CD]
쇼팽 (Frederic Chopin) 작곡, 모라베츠 (Ivan Moravec) 연주 / NONESUCH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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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쇼팽의 작품 중 녹턴 음반은 꽤나 많다. 그 중 사람들이 자주 언급하는 명반은 루빈스타인, 프랑소와, 피레스 등이 되겠다. 루빈스타인은 20세기의 쇼팽이라 불리어질 정도로 쇼팽 스페셜리스트 였기에 두말할 나위가 없다. 프랑소와의 연주는 쇼팽의 퇴폐적인 아름다움을 극대화 시킨 녹음으로 유명하다. 피레스의 경우는 CD가이드 선정 20세기 명반에서 녹턴 부분 1위를 기록하여 인지도가 높아졌다. 피레스의 유명 녹음들이 모차르트 피아노 소나타 관련 부분이 많다는 것을 감안하면 약간 의외라고도 할 수 있다. 이외에 쇼팽 콩쿠르 우승자 출신인 폴리니와 하라세비치의 녹음이 유명하며, 만화영화 '피아노의 숲'의 삽입곡을 연주했다고 알려진 시대의 거장 블라드미르 아쉬케나지도 빼 놓을 수 없다.

 위에 언급한 음반들은 내 책장에 다 꽂혀 있다. 지금 이야기 하려 하는 모라벡의 음반은 예전에 들어 본 적이 있다. 음색의 청명함은 피레스의 녹음을 넘어서고 로맨틱한 분위기는 아쉬케나지를 뛰어 넘는다. 쇼팽의 귀족스런 기품은 루빈스타인과 견줄만 하고 귓가를 끝까지 잡아끄는 매력은 프랑소와에 뒤지지 않는다. 많은 장점이 고루 들어가 있지만 인지도는 그리 높지 않는 앨범. 클래식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절대 명반으로 소문이 자자한 앨범. 이 앨범을 사면 녹턴 관련 앨범만 10장이 될 터이다. 그래도 탐나는 음반. 밤에도 밤을 생각나게 해줄 앨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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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8-07-30 15: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모라벡의 터치에 대해 어떤 분이 적어놓으신 글을 봤는데요. 참 궁금하기만 합니다.
아쉽게도 미루고 미루다 보니 그를 접할 기회를 놓쳤습니다.

다음에 입고가 이뤄지면 꼭 그를 만나 봐야겠습니다. 그나저나 피레스의 쇼팽이 녹턴 1위라니 약간 고개가 갸우뚱해지기도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