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익이가 간만에 네이트에서 말을 건다. 서태지  앨범 나왔다고 난리다. 간만에 애가 흥분한 것 같다.  27살에는 설렘도 사치일 때가 많기에 그러한 두근거림이 신기하기도 반갑기도 하다. 싱글 앨범이라서 정규 앨범 나오면 살거란다. 지금은 벅스에서 음악을 듣는다나. 대중 친화적인 음악 이라며 좋다고 난리다.

 서태지 덕분에 절친 한명이 어린 아이 마냥 좋아하게 되어 나도 좋다. 나 또한 서태지를 좋아 한다. 예전 만큼은 아니지만 지금도 여전히 그의 음악을 좋아한다. 서태지의 음악에 절대성을 부여하지는 않지만 시대의 아이콘으로서 그의 음악은 귓가에 울리는 소리보다 더 큰 잔향을 풍긴다.

 하지만 약간의 거부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만원이 넘는 싱글 앨범 가격이 우선 마음에 안든다. 싱글이라면 모름지기 조금 저렴하게 나와야 하거늘 이 가격은 웬만한 가수의 정규앨범 한장 가격이다. 서태지 찬양가를 부르는 사람들도 못마땅 하다. 서태지의 음악 세계를 이해하지 못하는 다수 군중을 꾸짖는 그들의 선민의식이 마음에 안든다. 음악은 취향이고 서태지의 진보성은 묘하게 대중의 정서와 궤를 같이 한다. 그렇기에 태지의 음악을 맘에 안들어 하는 사람들을 음맹으로 매도하고 상대적 문화적 우월감을 지니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다. 서태지의 음악을 무조건적으로 찬양하는 그들의 태도는 그러려니 하기에는 조금 지나치다.

 개콘에서 왕비호가 서태지를 깐(?)적이 있다. 대통령도 뭐라 못한다는 서태지의 절대성에 딴지를 건 그의 행동이 신선했다. 서태지의 음악적 성취나 사회적 영향력을 감안 한다면 공중파에서 대놓고 그를 비방하기는 쉽지 않다. 아니, 거의 불가능하다. 또한 아이돌 그룹의 상품성을 비난 타겟으로 삼던 왕비호에게 서태지라는 존재는 만만치 않은 공격 대상이다. 하지만 그러한 절대 권력에게 한마디 한 것 만으로도 왕비호의 B급 정서는 빛났다. 주류의 근엄함을 조롱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B급 정서의 아름다움이 왕비호의 언어를 빛나게 한다. 

 서태지는 완벽한 주류다. 비주류처럼 행동하기에 주류로서의 생명력은 더더욱 빛난다. 말을 아끼고 음악으로 이야기 하기에 그의 절대성은 더더욱 공고해진다. 말의 무게와 사용빈도는 반비례 관계에 있다는 사실을 문화계의 절대자인 서태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완벽주의적 성향은 드럼 소리 하나도 신경써서 듣게 만든다. 대중 보다 딱 한발 정도 나아간 서태지의 음악은 주류 문화를 자신의 스타일로 대체시킨다. 재미있는 부분은 이러한 문화적 전복이 거부감은 커녕 대중의 자발적 동조를 통해 성취 된다는 것이다. 혁명적 이미지와 천재라는 대중의 인식은 자본주의에 대한 경각심 마저 무너뜨리며 그의 음악을 음악 그 이상의 존재로 만든다.

 서태지와 동시대에 활동했으며 그나마 그의 위치에 근접이나마 할 수 있는 뮤지션으로 사람들은 신해철을 꼽는다. 비평가들은 서태지를 모차르트에 신해철을 베토벤에 종종 비유하곤 했다. 머리에 모든 곡이 완성 되어 있던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서태지에게서 발견한 것이다. 사회적인 발언을 종종하고 대마초 등으로 음악적 고난이 많았던 신해철에겐 베토벤의 이미지가 슬쩍 오버랩 된다. 무엇보다도 직관적 영감의 서태지와 노력의 신해철이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비유로 형상화 되었다. 하지만 신해철은 한 인터뷰에서 이와는 반대되는 견해를 펼친다.

 서태지의 완벽 주의성은 모차르트 보다 베토벤에 가까운 노력의 결과라고. 오히려 신해철이 직관에 의존하거나 순간적인 착상으로 음악을 더 만드는 편이라고. 서태지와 관련된 천재성에는 대중의 바람이 만든 이러한 편견이 조금은 개입돼 있다. 뭐 딱히 나쁘지는 않다. 어릴때 부터 우리는 천재를 희구하고 열망하는 교육을 받아오지 않았는가. 천재에 대한 환상이 어느 나라보다 많은 편인 우리나라에서 서태지의 상품 가치는 그래서 더욱 빛난다.

 이 추세라면 서태지는 한국 대중 음악의 확고부동한 전설이 될 것이다. 영.미 권에서 비틀즈가 누리는 지위를 한국에선 서태지가 누릴 것이다. 존레논은 비틀즈 전성 시기에 '비틀즈는 예수보다 위대하다'라는 생뚱맞은 발언을 해서 많은 파문을 일으켰다. 지금의 서태지는 예수보다 위대한지는 모르겠지만 이 나라의 그 누구보다도 위대하다. 사실 나는 지금도 노래방에 가면 서태지의 '교실 이데아'를 즐겨 부른다. 아직도 그의 노래를 부르면 몸이 정화되는 느낌을 받는다. '울트라 맨이야'나 '필승' 등의 노래를 부를 때면 아드레날린이 온 몸을 덮는 느낌이다. 그렇다. 나는 아직도 서태지를 무지무지 좋아한다.

 그렇지만 이 글을 쓴 것은 너무 편향적인 서태지 찬가에 대한 나름의 반골 의식이 발동했기 때문이리라. 사실 서태지를 칭찬 하는 글이나 비판 하는 목소리는 적당히 균형을 이루며 그의 신화를 확대 재생산하는데 큰 몫을 했다. 미필적 고의든 치밀한 계산하에 벌인 고도의 서태지 찬양론이든 간에 서태지에 대한 이야기는 서태지의 입지를 강화 시킨다. 내 글도 결과적으로 그렇게 될 것이다. 무엇보다도 내 마음속에 각인된 서태지의 위상이 새벽에 쓴 이 글로 인해 더욱 튼실해질 터이다.

 생각이 많은 밤이다. 서태지 정규 8집이 빨리 나왔으면 좋겠다. 문화의 독점적 공급자의 위치에 있는 전설이 조금 더 탈 자본주의화 되길 바라며. 사람들 가슴에 더 많은 예쁜 꽃을 심어주길 바라며. 과거에 매몰되어 앞으로 한걸음 내딛기도 버거운 사람들에게 용기를 북돋워 주기를 바라며. 삶의 무게에 짓눌려 숨쉬기도 버거운 많은 영혼들의 마음이나마 가볍게 해주길 바라며. 무엇보다도 아직 세상은 살 만 하다는 희망의 바이러스를 퍼뜨려 주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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