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 - 시칠리아에서 온 편지
김영하 글 사진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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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싸이에 올라 온 여행사진을 보면 흐뭇해질 때가 있다. 사진 하나로 당시 느꼈던 바람의 시원함이나 사람 냄새가 다시금 몸을 훑고 지나가기 때문이다. 물론 타인의 싸이에선 그런 느낌을 받지 못한다. 오히려 심드렁하게 '뭐 이런 사진을..' 이라며 사진 밑에 쓰여진 글귀를 읽기도 귀찮아한다. 이러한 차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사진과 관련된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다. 요즘 같이 사진이 범람한 시기엔 타인의 사진에서 공감감적 느낌을 얻기는커녕 또 다른 시각매체가 주는 피곤함마저 느낄 때가 많다.  

 김영하가 책을 냈다. 이전 '여행자' 시리즈와 맥을 같이 하는 듯한 이 책을 보며 타인의 싸이를 봤을 때 가졌던 그런 심심함을 느꼈다. 자신이 공들여 찍은 사진을 보며 독자에게도 공감을 강요하는 선량한 오만함도 느껴졌다. 기실 이러한 사진을 볼냥이면 전문 작가의 사진 내지는 언제라도 수다를 떨 수 있는 지인의 홈피 사진을 보는게 나을 테다. 작가로서 보일 수 있는 통찰은 거의 보이지 않고 지식의 나열로 종이를 메운 느낌. 김연수의 '여행할 권리'라는 책이 줬던 묘한 정신적 쾌감이 없었다. 김영하는 자신이 잃어버린걸 찾아 떠난다 말했다. 하지만 자신이 가진 명성과 부를 더 증대시킬 신간은 가지고 있는 것을 더 풍족케 할 뿐이다. 역설이다.  

 독자들에겐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는 아포리즘을 던져주며 본인은 자신이 쌓아놓은 것들을 다시 우려 먹는 듯한 묘한 이중성. 사족이지만 김영하는 김훈의 글과 비교하면 문장 자체의 맛은 덜한 듯하다. 그의 소설은 잘 짜여진 서사 덕분에 쉬이 책장이 넘어갔지만 이 책에서 보이는 설명조 내지는 회상조의 문체는 덜 정제된 듯하여 몇몇이 눈에 거슬린다. 김영하가 초기작에서 보였던 재기발랄함이 그립다. 김영하가 낸 책을 거의 다 읽어 볼 만큼 애정이 있기에 더욱 그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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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2-24 10:2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김영하의 도쿄여행집을 읽고 같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소설가 김영하를 사랑하던 사람으로 그가 어서 소모된 자신을 추스리고 돌아오기를 기다려봅니다.

바밤바 2009-02-25 06:45   좋아요 0 | URL
충전한다고 떠났으니 시간이 걸리더라도 좀 벼리고 별러서 돌아왔으면 하네요.. 이번 책은 확실히 에러인듯 ㅎ
 

  

 미셸 공드리는 언제나 따뜻하다. 그의 영화 속 말 많은 주인공들은 미셸 공드리의 페르소나가 분명하다. 친절한 제목을 가진 이 영화는 몽상가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공드리의 감성을 잘 드러낸다. 특히 오만불손한 루저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잭블랙은 공드리의 친절한 자아가 현실에서 하지 못할 무례함을 대신 표출시켜주는 듯하다. 잭블랙의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과 사회부적응자로 보일 정도의 불손함은 공드리의 또다른 자아일지 모른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각기 다른 영화의 생산과정은 키치적이다. 그러기에 재미있다. 이 불량식품의 오묘한 맛에 중독된 사람들은 이 '스웨덴식 영화'에 몰린다. '영구와 땡칠이'의 남기남 감독이 연상되는 그들의 영화 찍기는 허술하지만 창의적이다. 결국, 디비디 시대에 아날로그적인 비디오 영화 찍기는 과거를 그리워하는 몽상가의 현실 도피로도 해석 가능하다. 

  다만 영화가 너무 착한것 같아 보기 안쓰럽다. 몽상가의 꿈이 착한 이상향에 안착할수록 그의 꿈에 박수를 쳐주기 힘들다. 차라리 장준환 감독처럼 모든걸 뒤섞어 버리는 초현실적 결말을 보여줬다면 관객은 공드리의 꿈에 동의해줬을지 모른다. 현실의 비루함을 잘 알기에 꿈으로 도피하려는 공드리의 추종자에게 이런 '나이브'한 결말은 현실도피의 쾌감을 역설적으로 깨뜨린다.

  꿈에서 깬 뒤 그건 다 꿈이었다고 하는게 그나마 아름답다. 꿈이 현실이 될 수도 있다고 하는건 얼마나 잔혹한가. '달콤한 인생'에서 김지운 감독은 이병헌의 입을 빌려 이런 말을 한다. '행복한 꿈을 꾸고 나서 슬픈 이유는 그것이 꿈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라고. 잡힐 듯 하지만 결코 잡을 수 없는 꿈은 마음을 병들게 한다. 그저 꿈은 꿈으로 현실은 현실로 두는 이분법적 세계야 말로 공드리를 추종하는 몽상가에겐 가장 적절한 안식처가 될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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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2-19 08: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영화소개프로에서 줄거리만 간략하게 봤었는데 나이브한 결말로 끝나는군요.
뉴스만 봐도 너무 엽기적이라서 전 요즘 환타지에 빠져 살아요.. 안그러다간 인간에 대한 믿음이 사라져버릴거 같아요.. 휴~

바밤바 2009-02-19 20:20   좋아요 0 | URL
저는 인간에 대한 믿음을 요즘 회복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보고싶은 현실만 보고 살다보면 삶 자체가 위태해지거나 너무 나이브해질거 같네요. ㅎㅎ
담 소개팅은 언제하세요?^^

무해한모리군 2009-02-23 11:52   좋아요 0 | URL
소개팅은 음..
주변에 누구 없나 그냥 함 찾아보려구요 ㅠ.ㅠ

바밤바 2009-02-23 22:26   좋아요 0 | URL
원래 주위에 좋은 사람들은 독신주의자거나 남이 다 챙겨 가는듯~ㅎㅎ
힘내세요~휘모리님! 우후훗!

Mephistopheles 2009-02-19 09: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물쩍 해피엔딩으로 영화는 끝나는 것 같지만 실상은 비디오가게가 입주한 그 오래된 건물은 철거의 수순을 밟겠지요. 아마도 추억이여 안녕, 현실은 현실..이라는 사실을 미셀 공드리는 영화에서 계속 보여주는 것 같더라구요.

바밤바 2009-02-19 20:17   좋아요 0 | URL
제가 '이터널 썬샤인'이란 영화를 되게 좋아하거든요. 아무래도 그런 환상성이 충족되지 않아서 조금은 뾰루퉁한 리뷰를 쓴거 같네요. 카우프만과 한번 더 작업하면 좋을것 같은데..^^
 
[수입] 쇼팽 : 피아노 협주곡 1,2번 [2CD]
쇼팽 (Frederic Chopin) 작곡, 크리스티안 짐머만 (Krystian Zimer / DG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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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머만의 쇼팽은 귀족적이고 감미롭다. 귀족적이란 말을 조금 더 이해하기 쉬운 말로 바꾸면 우아하며 당당하다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지휘와 연주를 병행한 이 앨범에서 그러한 친머만식 쇼팽이 극명히 드러난다. 우선 쇼팽의 피협 1번 1악장의 드센 시작 부분도 친머만의 손에선 우아하게 변주된다. 다소 거칠게 들릴 수 있는 부분이 듣는이의 가슴에 차분히 내려 앉는다. 하지만 난 야한 쇼팽을 좋아한다. 친머만의 우아한 쇼팽은 불경스런 마음이 들 찰나를 주지 않기에 다소 아쉽다. 

 쇼팽의 곡은 현대의 뉴에이지 음악과 비교해도 별 차이없는 서정성과 낭만을 가진다. 물론 그의 전주곡은 바흐의 평균율곡집을 모티브로한 엄밀성을 갖고 있지만 선율의 서정성은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특히 피아노 협주곡 1번 2악장을 들어보면 뉴에이지와 클래식의 모호한 경계를 음표가 말해준다. 그러기에 쇼팽은 역설적으로 지나치게 퇴폐적일 때가 있다. 감정을 마구 헤집어 놓는 날이 선 선율과 눈물이라도 쏟아야 온전한 감상을 한듯한 멜랑콜리한 감성이야 말로 쇼팽의 가장 큰 장기다. 이러한 연주의 대가로는 샹송 프랑소와를 들 수 있다. 프랑소와는 쇼팽의 곡을 비제의 카르멘 마냥 묘한 아름다움과 부도덕한 면을 극대화 시켜 들려준다. 옛 현인이 들었다면 흐르는 물에 귀를 씻을만큼 퇴폐적이다.   

 그렇기에 쇼팽은 매우 여성적이다. 아르헤르치와 아바도가 지휘하는 런던 심포니와의 쇼팽 피협 1번을 들어보면 아르헤르치의 열정이 아바도에게도 전염된듯 상당히 날카로운 느낌을 받는다. 아르헤르치는 차이코프스키의 피협 1번과 같은 웅장한 곡 뿐만 아니라 쇼팽과 같은 여성성 강한 작곡가에도 강한 면모를 띈다. 물론 그 곡을 여성적 세밀함보다는 남성적 열정으로 연주하지만. 명확한 타건에 도취한 듯한 아르헤르치의 얼굴이 오버랩 되면서 그 곡이 자뭇 내 손에서 연주되는 듯한 묘한 느낌을 받을 때도 있다. 클라이버의 베토벤 운명 연주에서 느꼈던 그런 손놀림의 동화가 아르헤르치와도 일어났던 것이다. 그만큼 아르헤르치의 연주도 매력적이다.

 글렌 굴드가 쇼팽을 연주했으면 어땠을까. 쇼팽은 마실나가는 기생의 옷자락처럼 야하다는 인상때문에 그리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을께 분명한 굴드다. 그래도 그가 연주했다면 카르미놀라의 사계처럼 극단의 형태를 띄지 않았을까. 포고렐리치 또한 전주곡 연주에서 서정성의 극단과 건조한 타건의 조화를 표현하였지만 굴드는 그 이상의 연주를 보이지 않았을까. 스비아토슬라브 리흐테르가 회고록에서 말했 듯 포고렐리치와 굴드는 격이 다른 연주자이기 때문에. 굴드가 쇼팽을 연주할 때 만큼은 특유의 콧노래를 자제하는게 좋을 듯하다. 이런 굴드의 흥얼거림이 쇼팽과는 왠지 맞지 않을 듯하다. 고요한 밤을 생각나게 하는 쇼팽에게 아무런 의미 없는 콧노래는 홀로 외로워 지고픈 청자의 감정적 몰입을 저어하게 하지 않을까. 

 친머만의 음반을 두고 다른 연주자에 대한 말이 많았다. 친머만이 몇달 뒤 한국에 온다 그런다. 친머만의 귀족적인 쇼팽은 귀를 간질이는 달콤한 중독성이 있다. 야한 쇼팽을 좋아하지만 친머만에게 끌리는 건 그러한 중독성 때문일 테다. 너무나 부드러운 쇼팽. 폴란드 출신의 이 연주자는 자신의 연주만으로 쇼팽의 격을 한단계 높이는데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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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 역사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남경태 지음 / 들녘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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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넘길 때마다 흥분과 기대가 뒤섞인다. 침이 고인다. 역사의 심층에 깔려 있는 흐름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보듬어 주고 싶은 책이다. 

 역사를 잘 안다고 생각했다. 역사를 통해 현재를 반추해 보는 걸 즐겼다. 하지만 공부가 점점 깊어질수록 체계적인 정리가 필요했다. 중앙일보에서 이책에 대한 리뷰를 읽었다. 이 책이면 되겠다 싶어 학교 도서관에 신청을 했다. 한달이 지나서야 입고가 되었다. 우리학교는 도서관에 투자를 참 안하는 것 같다. 그래도 나는 이 책을 2주간 독점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되었다. 남경태가 지은 개념어 사전과 스토리 철학을 읽어 보았기에 저자에 대한 신뢰는 충만했다. 쌔끈한 표지부터 이러한 신뢰에 대한 보상을 충분히 해준 듯하다. 이 책은 기존의 역사책과 조금 다르다. 용어를 설명하면서 역사의 흐름을 짚어준다. 무의식적으로 하나의 형태소로만 치부했던 죽은 언어들이 남경태의 손에서 살아있는 언어로 부활한다. 콘텍스트들을 해석하는게 쉬운 일이 아닐 터인데 줌인과 줌아웃을 잘 활용하여 쉽게 읽히게끔 한다. 다만 역사를 보는 시각이 지나치게 독특한 부분이 많았다. 평소 역사 관련 서적을 읽지 않은 사람에겐 위험할 수도 있을 만큼 급진적이거나 다름으로 '특별함'을 만들어 낸다. 일반론으로 받아들이기엔 무리한 주장이지만 참신함 만큼은 높이 사주고 싶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역사 여행의 향연. 책을 읽는데만 12시간이 넘게 걸렸다. 역사 여행은 미래와 과거를 더 깊게 생각하는 힘을 길러준다. 12시간의 여행은 그렇게 생각의 지평을 넓혀 주었다. 이제 남경태의 또 다른 저작인 철학을 읽을 시간이다. 이 책은 아마 9시간 정도 걸릴 것 같다. 지식을 탐하는데 그치지 않고 조금 더 따스한 사람이 조금 더 유쾌한 사람이 되길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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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09-02-10 2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글을 맛나게 쓰는 저자라고 생각해요.

바밤바 2009-02-11 03:27   좋아요 0 | URL
그쵸?ㅎ 쉬엄쉬엄 읽히면서도 쉽게 책장을 넘길 수 없게 하는 힘이 남경태씨의 책에는 있는거 같아요 ㅎ 가끔 중앙일보에 글도 쓰시던데 다른 필진들과는 다른 글을 보여주죠 ㅎ
 

 오늘도 날이 새버렸다. 어른이 되기로 결심한지도 한달이 지났다. 참 무던히도 빨리 지나간 한달이었다. 홀로 생각할 시간이 많았기에 위태로웠고 마음은 북쪽 지방의 툰드라 만큼 퍽퍽하였기에 심장의 고동마저 다 검붉은 색이 돼버렸더랬다. 오늘 새벽 지인과의 끝없는 고백 끝에 마음의 평화를 얻었다. 다리가 후들거려 고개 들어 하늘을 보지 못했던 옹졸한 자아와도 작별을 구할때다. 삶의 불확실성을 긍정하고 여태껏 지내 온 시간이 새로운 변주를 맞이한다 하여도 다 품위있는 마음의 양식으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고 보면 몇주간 참 심각했던 모양이다. 몸을 어디로든 제대로 굴린적이 없거늘 몸이 쑤시고 귓볼이 묵직하다. 밥벌이의 지겨움을 특유의 건조한 언어로 성토했던 소설가 김훈처럼 나 또한 무한긍정의 지겨움을 특유의 웃음 소리와 함께 다시금 되새길 때다. 

 제임스 레바인이 지휘하는 시카고 심포니 연주의 홀스트의 행성을 듣고 있는데 참으로 쉬운 소품이란 생각이 든다. 명쾌하게 작품 하나하나에 이름이 새겨져 있기에 작품 이름에 걸맞은 이미지만 떠올리면 전문가 못지 않게 음악을 즐길 수 있다. 개콘에 나오는 박지선 말 처럼 "참~ 쉽죠이~". 가끔 심장이 주인의 명령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뛰놀거나 이롭지 않은 고민이 흰자위의 핏줄을 돋게 할적에 들으면 좋을 듯하다. 단란한 음악적 소품. 다만 지휘자나 연주단체는 모른채 듣는것이 정신건강에 좋을 듯하다. 음악하나 듣는데 알아야할 요소가 많다는 건 그만큼 삶이 번잡하다는 방증. 마음을 비우러 듣는 음악에 작은 마음이나마 더하는 것은 바람직 하지 않을 듯하다. 그냥 이 트랙이 수성이고 이 트랙이 금성이고 정도만 알면 홀스트 따라잡기는 그럴듯한 모양새를 띌 테다. 아.. 잠온다. 

 내일은 아버지 제사다. 동수는 준석이 아버지 제사라며 하와이 가라고 꼬드기던 준석이를 살려 보냈다. 나도 내일 아버지 제사니까 누군가 내게 해꼬지할 것을 잠시 멈쳐주지 않을까 한다. 3번째 제사이기에 사람도 먹을 것도 그리 풍족친 않을 테다. 그래도 그리움이나 추억만큼은 여전히 풍성할 테다. 가슴 한켠에 피어나는 눈물샘을 자극하는 기억도 코끝을 감싸는 향내의 아련함도 조금 익숙해졌으면 한다. 그 쉬운 매너리즘은 아버지에 대한 추억을 반추할 때 만큼은 제 역할을 하지 않은 채 어디론가 숨어버리곤 한다. 아버지 제사도 매너리즘에 빠져 조금 덜 아픈 채 지났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아빠를 아버지라 부르게 한 이승과 저승의 거리가 1년 중 가장 짧아질 내일을 위해 나는 무엇을 해야 하나. 장을 보고 밤을 깎아야 할 것이다. 이것이 죽은자를 추모하고 산자를 살게하는 삶의 매너리즘이다. 삶은 비루하더라도 추억만큼은 비루하지 않기에 내일 자정은 다른 빛깔의 밤을 보여줄 터이다. 우히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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