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지 두달도 채 안된 오디오가 속을 썩여 새 오디오를 샀다. 싼 게 비지떡이란 말이 가슴에 사무친다. 저번 제품 보다 3만원 정도 더 비싸고 대기업 제품이니 좀 더 낫지 않을까 한다. 중소기업에 대한 구매자의 불신을 심화시키는 이런 악덕 기업은 시장에서 퇴출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깨진 유리창 이론에서 처럼 많은 중소기업들이 불신을 얻을 지 모른다.
그래서 이전과 달리 제품 리뷰도 꼼꼼히 보았다. 시디만 들을 것이니 라디오 수신이 안좋다는 몇몇 푸념은 눈에 밟히지 않았다. 그전 오디오 판매자에게 대거리라도 하고 싶은 심정이나 리뷰를 보니 다 부질없는 짓인 듯하다. 온라인 매장은 가격 경쟁을 심화시켜 소비자에게 이득인 듯 하지만 텍스트화된 항의가 대부분이다 보니 판매자의 전횡을 막기 힘들어 보인다. 이건 '온라인의 저주'다. 공부가 알차지 못하니 아무 개념이나 막 나온다. 이런 허랑한 말을 하는 이유엔 며칠간 음악감상을 하지 못하게 한 오디오가 큰 몫을 차지한다. 부실한 오디오 때문에 단속적으로 들려오던 음악이 성격을 성마르게 한 탓이다.
그래도 며칠 전 좋은 사람들을 연달아 만나 그리 나쁜 기분만은 아니다. 엊그제 본 부천판타스틱 영화제의 잔상은 아직도 머리에 맴돈다. 영화를 보여 준 분에게 밥이라도 사야 할 터인데 다음에 만났을 땐 왠지 데면데면할 듯하다. 마음 씀씀이가 슬거운 분이었으나 영양가 없는 소리만 계속 한 내 구접스러움을 탓해야 하지 않을까. 요즘은 여름 바람도 소슬하다다. 다 영화제에서 본 무서운 영상들 때문이다. 괜히 일상에도 공포가 산재할 지 모른다는 '생활의 발견'이 부지불식간에 시나브로 일어난다. 영상의 힘은 무섭다.
그제는 친구 집들이에 가서 아기를 들쳐 안고선 다습해지는 마음덕에 인심마저 푼푼해졌었다. 2달 전엔 완전 핏덩이 였는데 이젠 제법 살이 오른 것이 웃을 줄도 알더라. 삼촌들이 갑자기 들이 닥치자 조금은 긴장하는 듯한 묘한 눈빛이 그렇게 앙증스러울 수 없었다. 친구 부부는 아이가 채근댈 때마다 부산을 떨며 조금 버거운 듯했지만 얼굴만은 밝았다. 새벽까지 이야기를 하다 잠자리에 들 때였다. 친구와 단둘이 거실에 누워 귀신 이야기를 했다. 아기를 보다 보니 유년시절 마냥 기분이 달떠서 일테다. 하지만 영화제의 영상이 떠오르자 잗다란 두려움이 생겼다. 잔약한 심장을 벌떡이게 만들어서 인지 괜히 밤을 설치기도 했다.
그나저나 새로 오디오가 오면 참 좋을테다. 어제도 카라얀의 브루크너를 듣다 튀는 시디로 인해 성정만 더 핍진해 진 터라 늦잠을 자고 말았다. 희붐하게 밝아오는 아침 햇살을 보고 잔 것도 다 오디오 탓인 듯하다. 곱다시 뜬 눈으로 세운 어젯밤은 오늘을 바쁘게 살라며 나를 바지런 피우게 한다. 곡진히 나를 대접했던 친구 부부의 정성이 그나마 웃음을 짓게 한다. 우리 '성보'가 잘 커야 할 터인데. 성보를 보기 위해 친구 부부네 집에 자주 갈 듯하다. 언제나 그렇듯 케이크 하나를 들고 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