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겐 나르시시즘이 있다. 이 나르시시즘이 과하면 주위 사람에게 건방지단 소릴 듣는다. 혹 부족하면 자신감 없단 소릴 듣는다. 나르시시즘이 과한 인간은 잘못의 원인을 외부로 돌리는 경우가 많다.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는 순간 나르시시즘이 상처 받기 때문이다. 나르시시즘이 부족한 인간은 잘못을 할 경우 자신을 책망하는 경우가 많다. 나르시시즘의 결핍을 자신을 책망하며 얻는 쾌감으로 벌충하기 때문이다.

 나는 여태껏 위와 같이 생각해 왔다. 386 세대가 현 20대를 꾸짖으며 나라꼴을 한심이 여기는 것은 과한 나르시시즘이란 방어기제의 결과로 여겼다. 자신은 열심히 살아왔는데 20대가 잘못해서 그렇다는 시각 말이다. 20대가 인생이 팍팍한 이유로 윗세대들이 행한 세대 착취를 손꼽는 것 또한 또 다른 방어기제의 소산이라 여겼다. 반면 자신이 386 세대에 비해 치열하게 살지 못했다며 스스로를 탓하는 20대는 나르시시즘이 부족하다 보았다. 헌데 이것은 단순한 나르시시즘의 문제가 아니었다. 현실에 대한 인식의 차이와 거대한 사회 흐름을 인지하지 못하는 무지가 답인 하다.

 386들은 자신들이 일궈 논 민주화의 과실을 따먹는 20대의 사회의식이 빈약하단 말을 한다. 주위를 보면 그 말은 어느 정도 타당한 듯하다. 다들 현실에 분개하고 푸념을 늘어놓을 준 안다. 다만 왜 그런지에 대해서 물어보면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한다. 소피스트들이 즐겨했다는 산파법을 본격적으로 쓰기도 전에 그들은 ‘지지’를 선언한다. 삶에 대한 고민은 많으나 사회 구조에 대한 고민은 부족하고 국가에 대한 불만은 많으나 선거는 귀찮아한다. 왜 그러냐 물으면 치열한 경쟁 때문이란다. 그렇다. 어릴 때부터 내재화된 치열한 경쟁은 이들을 무지한 20대로 만들었다. 아닌 이들도 많지만 사회적 이슈에 대한 이야기를 탁상공론으로 여기는 이가 대다수다.

 그렇다면 민주화의 과실만 따 먹고선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땀을 흘리지 않는 20대는 파렴치한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우선 386이 물러 준 과실이란 게 물질적 풍요라면 이것은 6,70년 대 노동자들의 몫이 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87년의 개헌을 통한 대통령제가 실재하는 과실인가? 단순히 그렇다 할 수 없지만 10대들이 선호하는 객관식 문제로 만들자면 이것이 답일 듯하다. 후에 전개된 인권 향상을 위한 움직임이나 군사 독재의 잔재를 없애기 위한 노력도 386의 노력으로 볼 수 있다. 자신감을 가질만 하다. 만약 IMF가 오지 않고 종신고용제가 유지 되었다면 386은 지금 20대를 준엄히 꾸짖을 수 있을 테다. 사회를 이루는 하부구조인 경제적 토대가 비슷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허나 386은 그 윗세대가 이뤄놓은 경제 성장의 과실을 정규직이란 형태로 대부분 향유했다. 지금의 20대보다 더 좋은 자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IT붐이 일어났을 때에도 386은 수혜자였다. 말콤 글래드웰이 ‘아웃라이어’에서 이야기 했듯 빌게이츠가 50년 대 에 태어나지 않았다면 세계 최고의 거부가 되기 힘들었다. 마찬가지로 IT 붐이 일어났을 때 386은 수혜자가 되기에 적당한 세대였다. 현재 NHN이나 다음의 경영진이 386 세대라는 건 IMF 이후의 마지막 성공 기회마저 386의 차지였다는 방증이다.

 386은 민주화를 위해 애썼으니 이 정도 수혜는 당연하단 생각을 할 지 모른다. 하지만 이들이 주장하는 민주화 성취가 역사를 뒤집어 놓을 일을 해낸 것만큼 찬양받을 일은 아니다. 세계적으로 GDP가 올라가면 시민 혁명을 통한 민주주의가 도래하는 게 일반적이다. 스페인이 그랬고 중국은 현재 이러한 반동이 일어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역사의 큰 흐름에 비추어 봤을 때 어느 정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거다.

 하지만 과도한 입시열기와 일자리 나누기로 표출된 20대 임금 깎기를 통한 세대 착취는 한국적 현상이다. 김영하가 소설 ‘퀴즈쇼’에서 이야기 했듯, 대부분이 영어에 능숙하고 해외 여행이나 봉사활동의 경험이 있으며 컴퓨터 조작에 능숙하고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아는 세대가 이리도 팍팍하게 사는 일은 비상식적이다. 386을 비롯한 윗세대들의 민주화 너머의 세상을 향한 밑그림이 부족했던 탓일 것이다. 프랑스는 달랐다. 68혁명을 통해 프랑스의 20대는 드골을 몰아내고 민주적 성취를 이뤘다. 당시 10대들 또한 시위에 나서 파리의 대학을 끌랑제꼴이란 형태로 통합되게 한다. 즉 프랑스의 민주화는 후세대를 배려하는 양태를 띄었다. 하지만 87년 민주화 운동 이후에 우리나라의 입시 경쟁은 오히려 더 치열해졌다. 학벌사회는 강화됐다. 386이 도덕적 우위를 가지고 20대 앞에 교조적으로 서기엔 뒷세대를 배려하는 마음이 부족했다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20대는 민주화의 과실을 투표권 외에 느끼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를 낳은 것 중 IMF 사태는 결정적이었다. 90년 대 후반 학번은 갑작스런 취업 한파에 입사 서류를 들고 동동거렸다. 비정규직이 확대되고 빈약한 복지제도를 대신하던 종신 고용은 무너졌다. 이러한 급속한 전환은 나라가 망한다는 묵시록적 공포 속에 국민의 자발적 참여로 이뤄졌다. 나라를 살리기 위해 밑에서 죽어나간 자들의 곡소리는 전체주의 국가 속 하층민의 소리마냥 묵살되었다. 386은 무얼 했나? 신자유주의 도입을 통한 경제 체질 개혁을 재벌 타파라 찬성했고 주주자본주의가 실현된다고 반겼다. 기업을 개인 재산으로 여기는 재벌 일가의 권한이 약화 된다고 좋아했다. 허나 장하준 교수가 ‘개혁의 덫’이란 책에서 주장했듯 이런 변화는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꼴만 낳게 된다. 또한 이러한 주주자본주의는 현재의 고성장 저고용의 원인이기도 하다.

 잠시 왜 주주자본주의가 문제인지 살펴보자. 주주자본주의가 강화되면 주식회사들은 주식을 통해서 자금을 조달하던 고전적 상황에서 탈피해, 이익금으로 자신의 주식을 매입하거나 소각하는 행위를 하게 된다. 주주들이 보유한 주식의 가치를 극대화하라고 이사회에서 경영방침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1980년대 미국에서 그랬고, 1990년대 유럽에서도 이런 일이 벌어졌다. IMF 사태 이후 우리나라 회사들도 돈을 벌면 신규 투자를 하기 보다는 자사의 주식을 매입해서 주식 당 평가액을 높이는 일을 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사회에도 불리하고 조식구성원에게도 불리한 반면, 대규모 주식 보유자들에게 더 유리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다. NHN만 보더라도 작년에 2400억의 흑자를 냈다. 경영주는 전체 주의 5%정도 주식을 갖고 있었다. 48% 정도의 지분은 외국인들의 것이었다. 결국 경영권 방어를 위한 자사주 매입으로 2400억을 썼다. 매출액은 투자로 이어지지 않았고 결국 고용 창출은 없었다. 외국인 투자자들을 위한 우호적 환경만 조성되었다. 물론 IMF 당시 외화 도입을 통해 외환위기를 극복할 필요는 있었다. 하지만 금융 위기 극복 이후 외국 투자가들이 벌어들인 무수한 이익은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온 돈이었다. 또한 장기적 성장보단 단기 이익 창출에 집중하는 주주자본주의의 태생적 한계는 기업의 투자를 위축시켰다. 현 세대의 취업이 어려운 데는 이러한 경제 구조의 변화에도 원인이 있다.

 그렇다면 왜 20대 들은 우석훈이 말하는 것처럼 짱돌을 들고 밖으로 나서지 않을까? 이들은 ‘나누어 통치하라’는 방식을 쓴 정부의 시책에 휘둘려서인지 군집의 힘이 약하다. 10대에는 내신과 수능으로 20대에는 스펙 높이기에 바빠 한 목소리를 낸 적이 없다. 이것은 20대 만의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냉전’이란 말을 처음 사용했던 미국의 저널리스트 윌터 리프만은 민주주의의 한계를 인정하고 유권자는 그들 자신의 일에 너무 바빠 투표 따위엔 관심도 없다는 것을 깨달을 것을 촉구했다. 리프만이 이 말을 했을 때 보다 50여 년이 지난 지금은 말할 나위가 없다. 대중의 정치 무관심은 생존의 발로이고 경영학에서 자주 말하는 선택 집중의 결과라고 볼 수 있다.

 결국 20대가 386의 도덕적 우월의식에 대해 거부감을 갖듯 386이 20대의 무관심을 타박하는 건 이해가 부족한 탓이다. 386이 성취해 온 민주주의란 자산을 부정할 수 없듯 20대가 직면한 과잉 경쟁의 사회 또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무엇보다 경제구조가 많이 달라졌다. 결국 마치 절연된 세대 인 것 마냥 20대를 비난하는 386은, 타인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는 제 무감각을 탓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경쟁 과잉의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를 했다는 데서 죄책감을 느껴야 한다. 20대에 대한 꾸짖음 보단 그들을 껴안고 다독여야 한다. 386이 20대 시절에 가장 중요했던 문제가 민주주의라면 지금의 20대에게 가장 중요한 문제는 생존이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현 10대나 20대 들의 음악을 감각적이고 깊이가 없다고 비난하는 386들은 제발 취향적 우월주의를 버렸으면 한다. 10대 들 중 김광석 좋아하는 사람은 여전히 많다. 빅뱅이나 소녀시대의 음악은 10대에게는 또 다른 감성으로 다가가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이런 음악 시장을 주도하는 이수만은 386세대이고 박진영이나 양현석은 바로 그 밑 세대 아닌가. MTV와 마이클 잭슨의 등장 이후로 음악의 판도가 바뀌어 점점 율동과 비쥬얼이 음악 소비자들에게 중요한 요소다. 천박한 음악성을 논하기 전에 시대적 맥락을 좀 더 고려하고 그 음악을 양산해내는 같은 세대를 향한 비판이 선행됐으면 한다. 알아듣지도 못할 현대음악이나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에서도 말했던 그들만의 고급문화를 향유하는 세대는 특히 유념했으면 한다.  

      


댓글(2) 먼댓글(1)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1. 20대를 위한 변명, 그리고 기득권과 연대에 대한 잡생각
    from 木筆 2009-09-14 14:39 
    [이야기] 쳐다보는 것과 만든다는 것의 차이.-동심원이 퍼진다는 것. 동심원이 울려나오는 것을 지켜보고 맞는 것도 괜찮겠지만, 흘러가는 것보다 동심원을 만들어내는 것이 더욱 편하고 즐거울 수 있다. 물론 부담도 되는 일이지만 말이다. 이기적 출발이 아니라면 마음에 맞는 일들을 뭉쳐 물방울 한점 톡! 던져보는 것이 반향이나 파고, 저 맑은 물가의 되돌이킴이 보일지도 모르니 마음과 일들을 버무려 맑은 엑기스 토옥 던져보는 일도 괜찮을 것 같다. 늘 시즌처럼
 
 
비로그인 2009-09-10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 "피카소의 달콤한 복수" 는 에프라임 키숀의 책인지요? 읽을 당시 꽤 신선함을 주었습니다. 권위로 무장하고 점점 현란한 언어로 그들만의 리그가 되어버리는 현대 미술품, 미술시장에 대한 비판의 시각의 글들로 기억하는데요.
또한 뭔가 제대로 알고 비판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비판과 찬양의 대상앞에서 나는 얼마나 명확한 기준을 갖고 있는가. 하는 반성을 해보았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

(이후 이어지는 댓글은 너무 길어질 것 같아 생략해야 겠네요^^)


바밤바 2009-09-11 18:55   좋아요 0 | URL
그런 듯 하네요. ^^ㅋ 지식이 넘쳐나는 시대다 보니 인정투쟁이 나날이 심해지는 듯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ㅎ
 

 

 영국에서 유학 중인 친구가 잠시 귀국했다. 그는 영국에선 자신이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했더랬다. 하지만 한국에 오니 너무 나태한 삶을 살았다며 반성하게 되었단다. 한국사회가 움직이는 속도가 숨 막히도록 빠르단다. 영국 사람들은 그리도 여유로운데 한국은 너무 허덕이며 산단다. 빠른 경제 성장 때문에 지불해야 했던 비용 때문일 테다. 지연, 학연이 만연하는 데다 열심히 살아온 사람을 패배자로 만드는 한국 사회를 그는 버거워 했다.

 2PM의 리더 재범이 화마에 휩싸였다. 데뷔전 블로그에 올린 글 때문이라 한다. 그는 한국 사회가 싫다고 했다. 미국에서 자랐다 보니 한국 사회가 싫었을 수도 있다. 낯선 사회에 대한 이질감이나 불쾌감은 당연한 거다. 헌데 네티즌이나 여론은 반드시 그를 단죄해야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한국이 싫다면 미국으로 돌아가란다. 제 2의 스티븐 유라며 비난 강도도 거세다. 한국이 싫다는 말이 그리도 잘못된 말일까?

 대부분 좌파 지식인들은 한국을 싫어한다. 한국의 천민자본주의가 싫고, 권위주의 문화가 싫으며, 일상에 내재한 군사 독재의 잔재를 싫어한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나선 이민 가고 싶다는 사람도 는다. 왜? 한국이 싫으니까. 미래가 암울하니까.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사회가 이렇게 된 데 일정정도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다. 최소한 그들은 경제 성장의 혜택을 누렸고 사회적 변혁의 중심에 있었으며 고결한 도덕의식을 자랑으로 내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재범은 다르다. 그는 윗세대와는 다른 환경에서 자랐고 ‘국민교육헌장’ 따위는 모르고 컸다. 팍팍해진 한국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한 바가 거의 없다. 오히려 ‘88만원 세대’의 밑둥을 형성하며 개미지옥에서 빠져나오려고 허덕일 뿐이다. 물론 그는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과거 이민 행태가 척박한 삶의 탈출구로서 작용한 걸 안다면 이러한 재외동포는 더욱 보살펴야 할 존재다. 과도한 국가주의에서 자유로운 한 젊은이의 불평일 뿐이다.

 무엇보다 국가라는 신성불가침 영역만 나오면 게거품을 무는 네티즌들은 조금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인터넷 여론은 좌편향 적이다. 그들이 조중동을 비난할 때 쓰는 거센 언어들은 스스로를 좌파로 자리매김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독 개인의 사생활이나 국가에 관련된 사안에서는 파시스트와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손태영과 권상우의 결혼은 개인적인 일이지만 그들은 불쾌함을 감추지 않은 채 윤리적 비판을 가한다. 김치를 기무치라고 한 정우성이나 ‘저희나라’라는 말을 쓴 권상우에게도 마찬가지다. 내 안의 파시즘에 대한 고찰은 보이지 않는 채 하이에나 마냥 물어뜯기 바쁘다. 집단을 개인보다 중요시하는 쪽을 우파라 하고 그 반대를 좌파라 할 때 네티즌들의 행태는 쉬이 이해하기 힘들다. 혹여나 이게 중도실용주의라 말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헌데 대부분 사람은 나라 욕을 한 번씩 해 본 경험이 있을 테다. 특히 남자들은 군대 가기 전 ‘나라가 내게 해준 게 뭐가 있냐’ 며 국가에 대한 불경죄를 일삼는다. 세금이 많이 나오거나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살 집을 구하지 못해도 마찬가지다. 국가가 내게 해준 것보다 내게서 앗아가는 게 많다고 느끼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국적은 바꿀 수 없으니 무던히 넘기려는 사람이 많다. 내가 다니는 회사를 싫어하지만 어쩔 수 없이 애정을 가져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헌데 이러한 불만이 공적인 자리에서 표출되면 문제가 된다. 특히 연예인이 하면 언론은 물실호기의 기회를 잡은 것 마냥 특정 연예인 죽이기에 나선다.     

 하지만 재범은 비공식 자리에서, 특히 연습생 시절에 이런 말을 했다. 다들 하는 푸념 정도다. 특별히 국가의 명예를 훼손하려 했거나 진정으로 한국이 싫어서 한 말이 아니다. 재범을 비난하는 데 쏟는 에너지는 좀 더 살만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건설적 토론으로 바뀌어야 한다. 재범이 한 비판을 공감하는 사람도 꽤나 있을 테니 말이다. 또한 지나친 내셔널리즘을 버릴 필요가 있다. 유승준이 지나치게 비판을 받을 때도 인신공격보다는 징병제의 합리성에 대한 논쟁이 더 치열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하지만 유승준은 다른 연예인의 반면교사가 되었고 징병제에 대한 건설적 논쟁은 요원해져 버렸다.

 친구는 2년 뒤 영구 귀국하게 되면 한국에서 잘 살 수 있을 지 걱정이라 했다. 유학파에 부잣집 아들인 친구도 그런 걱정으로 새치가 하나씩 돋아나는 데, 구접스레 살고 있는 많은 청춘은 어찌하란 말인가. 우리나라는 참 살기 힘들고 짜증나는 나라다. 이 글 또한 누군가의 공격을 받아 여론 재판의 도마에 오를지 모른다. 다만 한국이 짜증난다는 말 정도는 눈치 보지 않고 할 수 있어야 여론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라 할 수 있겠다. 모국을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고루 존재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사회다. 싫어하는 자를 배격하고 물어뜯는 것은 나치즘 시대의 독일이나, 파시스트 정당이 한창이던 이탈리아에서나 하는 짓이다. 이런 잗다란 불만과 불평이 하나씩 해소돼가는 과정이 경제 성장률을 높이는 것 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재범에 대한 과한 비판을 거두어야 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2009-09-12 03: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9-09-12 17: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어제 결혼식 사회를 봤다. 동작이 굼뜨고 제 앞가림 못하게 생기다 보니 여기저기서 걱정이 많았다. 네가 잘 할 수 있겠냐는 등의 염려였다. 기실 나는 알심 있는 사내다. 보기보다 여물다. 주위에서 조금만 추어올리면 우쭐해지는 그런 타입도 아니다. 고로 난 잘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기실 결혼식 사회라는 게 별건가. 그저 적힌 글 몇 개 읽고 분위기 봐서 박수 유도하는 일이 다 인데. 

 막상 단상에 서니 긴장은커녕 덤덤했다. 다만 식장이 더워 목이 말랐다. 곧 이어 예식이 시작됐다. 배에 힘을 주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소리에 울림이 크단 말을 듣는 터였다. 그런 울림이 사회를 볼 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주례의 눈치를 엿살피며 무난히 식을 진행했다. 엄전히 서서 객쩍은 미소나 지으며 식을 마무리 했다. 축하의 박수도 가장 열심히 쳤다. 선소리는 하지 않은 채 또박또박 적혀진 것을 읽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왠지 뿌듯했다.

 친구 어머니는 며느리가 성에 차지 않는 지 시쁜 웃음만 띄었다. 금지옥엽 키운 외아들이니 그런 어머님 마음도 이해가 갔다. 단체 사진을 찍을 땐 친소대로 패를 지어 단상에 다들 섰다. 허나 나를 비롯한 고등학교 친구들은 자리가 없었다. 우리는 차후 따로 사진을 찍었다. 고릿적 친구들도 몇몇 보이고 버성기게 된 친우들도 눈에 띄었지만 마음만은 푼푼했다. 

 우리의 봄날은 다 지나간 듯하다. 이제 여름의 드센 열기가 겉을 태우고 속을 메울 듯하다. 바진런히 살다보면 소슬한 가을이 찾아올 테다. 그때도 다들 어금지금하게 살 테다. 허나 뙤약볕에 마음이 옹글게 남아 있을지는 미지수다. 다만 서로 척지고 살지는 말았으면 한다. 세월이 더께로 쌓여 서로가 데면데면 해지더라도 조붓한 인생길 서로 부둥켜 안으며 나아갔으면 한다. 생채기를 서로 핥아주는 동물의 혓바닥처럼, 여름 볕에 그을린 우리내 검은 살갗에 조금씩 쉬어갔으면 한다. 봄의 새싹도 채 피지 않은 듯한데 어느덧 여름이 한창이다. 봄날은 갔다. 다만 손차양만으로도 쉬이 뜨거움을 피할 수 있는 초여름이다. 비발디 사계의 '여름'1악장이 야무지게 연주되려 한다. 다시 한번 친구의 결혼을 축하한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비로그인 2009-09-06 20: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처음 결혼식에 초대받았을 때 참 마음이 이상했는데, 지금은 그냥 조금 사람 많은 곳 다녀오는 정도로 무감각해졌네요. 마치 하나의 작은 이벤트 마냥, 어딜 가나 똑같은 아파트 마냥 찍어내듯 같은 형식의 식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이제 슬슬 결혼시즌이고, 내년엔 더 많은 지인들이 결혼할 것 같은데요. 부디 조금 오래 걸려도 좋으니, 그 깊은 의미를 함께 하고 축하해 줄 수 있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바밤바 2009-09-07 22:08   좋아요 0 | URL
ㅎ 저도 언젠간 결혼식 초대에도 마음이 무뎌지겠죠.
무뎌지는게 좋은 것만은 아니지만 또 그만큼 마음이 옹골지게 됐다고도 볼 수 있으니 좋게 받아들일렵니다.
써클님 감기 조심하세요^^
 

 요즘 걸 그룹들이 대세다. 오늘 뮤직뱅크를 보았는데 절반 이상이 걸 그룹이었다. 그나마 티비를 많이 보는 편이라 누가 누군지 구별은 됐다. 티아라, 2NE1, 브아걸, 애프터 스쿨, 카라, LPG 등이 꽤 활약을 하는데 기존의 강자였던 소녀시대나 원더 걸스는 불안하겠더라.  

 얼마전 까지만 해도 남성 그룹이 대세였다. 2PM, 2AM, Shinee, BIg-bang, FT Island 등등. 동방신기는 말할 것도 없겠다. 왜 갑자기 소녀 그룹이 대세가 되었나. 난 그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해 PD를 지망하는 주변 지인을 비롯해 문화계에 관심이 많은 몇몇 인사에게 자문했다. 그들의 답은 제각각이었다.  

 우선 여성은 군대를 가지 않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장기간 활동을 할 수 있다는 이유가 꼽혔다. 군대 문제에서 자유롭기 때문에 장기간 투자를 할 유인동기가 발생한다는 거였다. 다른 이유로는 원더 걸스와 소녀시대의 활발한 활동으로 인해 시장의 가능성을 알아 본 다른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지금의 걸 그룹 난립현상이 발생했다는 분석이 있다. 가장 그럴 듯하다. 그 외의 잗다란 주장들은 별로 매력적이지 못했다. 그래서 언급하지 않겠다. 

 어차피 이들 중 몇명만 살아남아 인기를 구가할 것이다. 연예 시장은 한정돼 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한류와 같은 문화 상품도 시장 개척을 위한 발악이다. 다만 걸 그룹들이 성공했단 말은 들어보지 못했기 때문에 이 또한 어둡다 하겠다. 슬픈 현실이다. 

 낼은 친구 결혼식 사회를 봐야 할 거 같다. 걸그룹의 흥망성쇠가 부질없듯 삶의 흐름도 쉬이 흘러가는 듯하다. 처음 본 자리에서 폭탄주를 말아서 돌린 친구의 부인 될 사람은 내일 어떤 얼굴을 할 지 궁금하다. 내일은 간만에 정장을 입어야 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드라마 친구가 끝났다. 올해 처음으로 '본방사수'를 한 드라마 였다. 영화 '친구'를 본건 대학교 1학년 때였다. 고등학교 단짝 준이와 보았다. 그는 며칠 뒤에 결혼한다. 세월이 참 많이 흘렀다. 빛이 바랜 추억도 희붐히 다가오는 추억도 이젠 다 세월이다. 조금 있으면 동수만큼 나이를 먹을 테다.

  영화는 묘하게 마음에 남았더랬다. 대사가 입에 감겼다. 장동건의 낮은 음성도 좋았다. 양아치스러운 말투와 목소리가 잘 어울린다 생각했다. 나도 장동건처럼 일부러 쉰 목소리를 내며 말을 하고 다닌적이 있었더랬다. 지금도 가끔 그런다. 왠지 숨겨진 마초스러움이 드러나는 거 같아 기분을 좋게 한다. 특히 영화 대사를 많이 따라했다. 제일 많이 한게 "아버지 뭐하씨노!"였다. 아비가 홀로 저 멀리 간 이후론 이 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워낙 이 말을 많이 하고 돌아다녀 지금도 친구들은 영화 친구 대사 중 이 영화를 제일 많이 기억난다 한다. 아버진 뭐하실까나.. 

 드라마가 끝나니 너무 섭섭했다. 그래서 오늘 늦잠을 잤다. 상실감이 강하게 들 땐 늦잠을 자곤 한다. 드라마가 끝났는데 추억이 하나 끝난 듯하다. 드라마를 보며 그때가 생각나고 그때가 그리웠나 보다. 이제 고작 가을인데 겨울이 되면 주린 마음을 누구에게 의탁해야 하나. 이 글을 쓰고 나면 마음엔 또 다른 태양이 뜰 테다. 무람없이 이야기를 나눌 사람을 불러야겠다. 아직은 여름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