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에서 유학 중인 친구가 잠시 귀국했다. 그는 영국에선 자신이 열심히 살고 있다고 생각했더랬다. 하지만 한국에 오니 너무 나태한 삶을 살았다며 반성하게 되었단다. 한국사회가 움직이는 속도가 숨 막히도록 빠르단다. 영국 사람들은 그리도 여유로운데 한국은 너무 허덕이며 산단다. 빠른 경제 성장 때문에 지불해야 했던 비용 때문일 테다. 지연, 학연이 만연하는 데다 열심히 살아온 사람을 패배자로 만드는 한국 사회를 그는 버거워 했다.
2PM의 리더 재범이 화마에 휩싸였다. 데뷔전 블로그에 올린 글 때문이라 한다. 그는 한국 사회가 싫다고 했다. 미국에서 자랐다 보니 한국 사회가 싫었을 수도 있다. 낯선 사회에 대한 이질감이나 불쾌감은 당연한 거다. 헌데 네티즌이나 여론은 반드시 그를 단죄해야겠다는 의지가 보인다. 한국이 싫다면 미국으로 돌아가란다. 제 2의 스티븐 유라며 비난 강도도 거세다. 한국이 싫다는 말이 그리도 잘못된 말일까?
대부분 좌파 지식인들은 한국을 싫어한다. 한국의 천민자본주의가 싫고, 권위주의 문화가 싫으며, 일상에 내재한 군사 독재의 잔재를 싫어한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나선 이민 가고 싶다는 사람도 는다. 왜? 한국이 싫으니까. 미래가 암울하니까. 이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사회가 이렇게 된 데 일정정도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다. 최소한 그들은 경제 성장의 혜택을 누렸고 사회적 변혁의 중심에 있었으며 고결한 도덕의식을 자랑으로 내세울 수 있었다.
하지만 재범은 다르다. 그는 윗세대와는 다른 환경에서 자랐고 ‘국민교육헌장’ 따위는 모르고 컸다. 팍팍해진 한국 사회를 만드는 데 일조한 바가 거의 없다. 오히려 ‘88만원 세대’의 밑둥을 형성하며 개미지옥에서 빠져나오려고 허덕일 뿐이다. 물론 그는 미국 국적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달라질 건 없다. 과거 이민 행태가 척박한 삶의 탈출구로서 작용한 걸 안다면 이러한 재외동포는 더욱 보살펴야 할 존재다. 과도한 국가주의에서 자유로운 한 젊은이의 불평일 뿐이다.
무엇보다 국가라는 신성불가침 영역만 나오면 게거품을 무는 네티즌들은 조금 차분해질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인터넷 여론은 좌편향 적이다. 그들이 조중동을 비난할 때 쓰는 거센 언어들은 스스로를 좌파로 자리매김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보인다. 하지만 유독 개인의 사생활이나 국가에 관련된 사안에서는 파시스트와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 손태영과 권상우의 결혼은 개인적인 일이지만 그들은 불쾌함을 감추지 않은 채 윤리적 비판을 가한다. 김치를 기무치라고 한 정우성이나 ‘저희나라’라는 말을 쓴 권상우에게도 마찬가지다. 내 안의 파시즘에 대한 고찰은 보이지 않는 채 하이에나 마냥 물어뜯기 바쁘다. 집단을 개인보다 중요시하는 쪽을 우파라 하고 그 반대를 좌파라 할 때 네티즌들의 행태는 쉬이 이해하기 힘들다. 혹여나 이게 중도실용주의라 말한다면 딱히 할 말은 없다.
헌데 대부분 사람은 나라 욕을 한 번씩 해 본 경험이 있을 테다. 특히 남자들은 군대 가기 전 ‘나라가 내게 해준 게 뭐가 있냐’ 며 국가에 대한 불경죄를 일삼는다. 세금이 많이 나오거나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살 집을 구하지 못해도 마찬가지다. 국가가 내게 해준 것보다 내게서 앗아가는 게 많다고 느끼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그래도 국적은 바꿀 수 없으니 무던히 넘기려는 사람이 많다. 내가 다니는 회사를 싫어하지만 어쩔 수 없이 애정을 가져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헌데 이러한 불만이 공적인 자리에서 표출되면 문제가 된다. 특히 연예인이 하면 언론은 물실호기의 기회를 잡은 것 마냥 특정 연예인 죽이기에 나선다.
하지만 재범은 비공식 자리에서, 특히 연습생 시절에 이런 말을 했다. 다들 하는 푸념 정도다. 특별히 국가의 명예를 훼손하려 했거나 진정으로 한국이 싫어서 한 말이 아니다. 재범을 비난하는 데 쏟는 에너지는 좀 더 살만한 나라를 만들기 위한 건설적 토론으로 바뀌어야 한다. 재범이 한 비판을 공감하는 사람도 꽤나 있을 테니 말이다. 또한 지나친 내셔널리즘을 버릴 필요가 있다. 유승준이 지나치게 비판을 받을 때도 인신공격보다는 징병제의 합리성에 대한 논쟁이 더 치열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하지만 유승준은 다른 연예인의 반면교사가 되었고 징병제에 대한 건설적 논쟁은 요원해져 버렸다.
친구는 2년 뒤 영구 귀국하게 되면 한국에서 잘 살 수 있을 지 걱정이라 했다. 유학파에 부잣집 아들인 친구도 그런 걱정으로 새치가 하나씩 돋아나는 데, 구접스레 살고 있는 많은 청춘은 어찌하란 말인가. 우리나라는 참 살기 힘들고 짜증나는 나라다. 이 글 또한 누군가의 공격을 받아 여론 재판의 도마에 오를지 모른다. 다만 한국이 짜증난다는 말 정도는 눈치 보지 않고 할 수 있어야 여론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라 할 수 있겠다. 모국을 좋아하는 사람도 싫어하는 사람도 고루 존재하는 것이 진정한 민주사회다. 싫어하는 자를 배격하고 물어뜯는 것은 나치즘 시대의 독일이나, 파시스트 정당이 한창이던 이탈리아에서나 하는 짓이다. 이런 잗다란 불만과 불평이 하나씩 해소돼가는 과정이 경제 성장률을 높이는 것 보다 중요하다고 본다. 재범에 대한 과한 비판을 거두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