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결혼식 사회를 봤다. 동작이 굼뜨고 제 앞가림 못하게 생기다 보니 여기저기서 걱정이 많았다. 네가 잘 할 수 있겠냐는 등의 염려였다. 기실 나는 알심 있는 사내다. 보기보다 여물다. 주위에서 조금만 추어올리면 우쭐해지는 그런 타입도 아니다. 고로 난 잘 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기실 결혼식 사회라는 게 별건가. 그저 적힌 글 몇 개 읽고 분위기 봐서 박수 유도하는 일이 다 인데.
막상 단상에 서니 긴장은커녕 덤덤했다. 다만 식장이 더워 목이 말랐다. 곧 이어 예식이 시작됐다. 배에 힘을 주고 말을 하기 시작했다. 평소에도 소리에 울림이 크단 말을 듣는 터였다. 그런 울림이 사회를 볼 땐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 주례의 눈치를 엿살피며 무난히 식을 진행했다. 엄전히 서서 객쩍은 미소나 지으며 식을 마무리 했다. 축하의 박수도 가장 열심히 쳤다. 선소리는 하지 않은 채 또박또박 적혀진 것을 읽었을 뿐이었다. 그래도 왠지 뿌듯했다.
친구 어머니는 며느리가 성에 차지 않는 지 시쁜 웃음만 띄었다. 금지옥엽 키운 외아들이니 그런 어머님 마음도 이해가 갔다. 단체 사진을 찍을 땐 친소대로 패를 지어 단상에 다들 섰다. 허나 나를 비롯한 고등학교 친구들은 자리가 없었다. 우리는 차후 따로 사진을 찍었다. 고릿적 친구들도 몇몇 보이고 버성기게 된 친우들도 눈에 띄었지만 마음만은 푼푼했다.
우리의 봄날은 다 지나간 듯하다. 이제 여름의 드센 열기가 겉을 태우고 속을 메울 듯하다. 바진런히 살다보면 소슬한 가을이 찾아올 테다. 그때도 다들 어금지금하게 살 테다. 허나 뙤약볕에 마음이 옹글게 남아 있을지는 미지수다. 다만 서로 척지고 살지는 말았으면 한다. 세월이 더께로 쌓여 서로가 데면데면 해지더라도 조붓한 인생길 서로 부둥켜 안으며 나아갔으면 한다. 생채기를 서로 핥아주는 동물의 혓바닥처럼, 여름 볕에 그을린 우리내 검은 살갗에 조금씩 쉬어갔으면 한다. 봄의 새싹도 채 피지 않은 듯한데 어느덧 여름이 한창이다. 봄날은 갔다. 다만 손차양만으로도 쉬이 뜨거움을 피할 수 있는 초여름이다. 비발디 사계의 '여름'1악장이 야무지게 연주되려 한다. 다시 한번 친구의 결혼을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