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les - View from the Wheat Fields, 1888, 파리, 로댕 미술관
에밀 베르나르에게 보낸 편지
그것은 언덕 위에서 내려다 본 끝없이 평평한 평지요. 포도원과 수확이 끝난 보리밭이 까무룩히 지평선 끝으로 사라지고 코로(쟝 밥티스트 까미유 코로Corot, 1796- 1875)의 언덕에 구분된 지평선까지 해면처럼 뻗어 있소. ............ 몸이 아주 작은 한 노동자와 보리밭을 횡단하는 열차와- 이 그림에서 볼 수 있는 살아있는 것은 이것뿐이오.
글쎄 생각해 보오. 내가 이곳에 도착한 지 며칠 되지 않은 어느날, 어떤 친한 화가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소.
"그러나 이건 그려도 화가 날 정도로 지리할 걸."
나는 거기에 대답하지 않았소. 이 풍경이 너무나 훌륭해서 조금도 그 바보 녀석을 야단칠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이오. 나는 몇 번씩 거기에 가서 그 곳의 소묘를 두 장 그렸소. - 거기에는 무엇이고 무한과 영혼 이외에 아무것도 없는 그 평평한 토지의 소묘를.
그런데 내가 그와 같이 그리고 있노라니까 한 사나이가 왔소. 화가가 아니라 병정이었소. 나는 그 사내에게 물었소.
"나는 이것을 마치 바다처럼 곱다고 생각하는데, 당신에게는 아주 이상해 보이죠?"
그런즉, 그 사나이는 바다를 잘 알고 있었소.
"아뇨. 당신이 마치 바다처럼 곱다고 생각한다 해서 조금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그렇기는커녕 나는 바다보다 훨씬 곱다고 생각합니다. 뭐니뭐니 해도 사람이 살고 있으니까."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 아니겠소.
이래가지고야 화가와 병정, 대체 어느 쪽이 더 예술을 아는 사람인지 모르겠소. 내 생각 같아서는 병정이 오히려 더 예술을 아는 것처럼 생각되오. 그렇지 않소?
홍순민 역 [고호의 편지] P. 217 - 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