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 이것이 문제다] <5>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


미국 작가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의 ‘호밀밭의 파수꾼’은 출간된 지 5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청소년기의 고뇌를 그린 성장소설로 널리 읽히는 인기작이다.

샐린저는 작품을 출간한 후 독자들을 피해 은거해 버렸는데, 작가의 괴팍한 삶을 모델로 한 할리우드 영화도 만들어져 국내 상영까지 했다. 대중성이 있어서인지 현대작품치고는 우리말 번역도 일찌감치 1963년에 나왔다.

국내에서 ‘호밀밭의 파수꾼’ 번역본으로 확인된 것은 모두 30여 종이다. 이 중 내용이 같은 것을 빼면 검토 대상이 된 것은 17종. 그 가운데 8종은 표절본으로 기왕의 판본을 베끼거나 약간 윤문한 정도이다.

그런데 독자적 번역본 역시 작품의 대중성에도 불구하고 번역의 질이 그다지 높지 못했다. 비표절본 9종의 번역서 중에서 추천할 만한 번역서는 한 종도 없다. 추천할 정도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읽을 만한 번역은 이덕형, 윤용성, 김욱동ㆍ염경숙 공역본 등 3종이다.

 

 

 

 

 

이덕형. 문예출판사/   윤용성. 문학사상사/  김욱동. 현암사

이덕형(문예출판사)과 윤용성(문학사상사)의 번역본은 가독성을 높이려고 노력한 흔적이 돋보인다. 원문의 어감을 살리기 위해 문장을 자유롭게 변형하면서 자연스런 구어체 느낌을 살리려고 했다. 그러나 이 번역본들에서는 주인공의 내적 독백을 전하기 위해 작가가 의도적으로 선택한 긴 문단이나 문장을 편한 대로 나누어 처리한 대목이 많았다.

특히 원문에서 작가가 주인공의 의식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일부러 중복해 표현한 부분을 하나로 통합해 번역하였다. 문장은 매끈해졌지만 결과적으로 원문에 충실하지 못한 결과가 되었다.

‘호밀밭의 파수꾼’은 자신의 생각을 길게 연결하면서 서술해 주인공의 어투를 전달하는 것이 번역의 정확성만큼이나 중요하다. 단지 가독성만을 높이기 위해 작품의 고유한 어조나 서술방식을 무시한 것은 결코 사소한 문제라고 할 수 없다.

김욱동과 염경숙의 공역본(현암사)은 원작의 속어, 비어 등을 살리려고 노력한 점이 특징이다. 때로 지나친 부분도 있지만 원작의 어감을 자연스럽게 전하려고 고심한 것 자체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이 번역본의 문제는 주인공이 구사하는 비속어가 주인공의 경어체 말투와 잘 어울리지 않는다는 점이다. 원작에서 주인공이 전하는 독백투 이야기의 잠재적 청중은 어른이라기보다 동년배로 보는 게 무난하다. 따라서 어투도 경어체보다는 평어체로 처리하는 것이 무난하다.

세 번역본 모두 다른 번역본에서 잘못 옮긴 부분을 제대로 번역한 대목이 적지 않았다. 예를 들어 1장의 ‘The Cab I had was a real old one that smelled like someone'd just tossed his cookies in it’에서 ‘just tossed his cookies’는 ‘토한다’는 뜻이다. 이 속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잘못 옮긴 번역본들이 많다.

그러나 세 번역본들에서도 문맥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오역이 많이 발견된다. 10장의 나이트클럽 장면의 번역이 대표적인 경우다. ‘호밀밭의 파수꾼’ 번역을 보면서 좋은 번역은 단순히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는 것뿐 아니라 원작의 문체, 어조, 문맥을 전하는 데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영미문학연구회 번역평가사업단

출처: 한국일보 http://news.hankooki.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