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다로운 '운문' 두루뭉술 옮겨


[번역, 이것이 문제다]

 <4>셰익스피어 '햄릿'
전공학자 번역본 비교적 충실


“죽느냐, 사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이 대사가 르네상스 시대 영국 최고 극작가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의 ‘햄릿’에 나온다는 건 웬만한 사람은 안다. 셰익스피어 ‘4대 비극’ 가운데 하나인 ‘햄릿’은 세계적인 비평의 대상이며 가장 자주 무대에 오르는 희곡이다. 그만큼 대중적 영향력이 큰 초특급 인기작이다.

‘햄릿’의 인기와 함께, 실제로 작품에 그렇게 그려졌는가 하는 문제와는 별도로 흔히 나약한 지식인을 가리키는 ‘햄릿형 인간’(이와 대비되는 유형이 ‘돈키호테형 인간’) 역시 친숙하다.

이 말은 숙부 클로디어스가 형을 독살하고 왕위를 찬탈한 뒤, 어머니 거르투르드와 결혼했다는 것을 알게 된 햄릿 왕자가 복수하고 죽는 과정에서 보여준 지적인 회의와 고뇌에 찬 모습을 각별히 부각한 것이다. 19세기 낭만주의 작품 해석에 힘입은 바 크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출간된 완역 단행본 ‘햄릿’은 1923년 현철의 ‘하믈레트’(박문서관 발행)이다. 해방 이후 설정식 최재서 역본을 비롯해 현재까지 59명이 160여 판본을 내놓았다. 이 중 101개 판본(번역자 35명)을 대상으로 중복출판, 번안소설의 경우를 뺀 나머지 31종을 검토한 결과 13종(42%)이 표절본으로 드러났다.

흥미로운 것은 최근 출간된 ‘대입 논술 대비용’ 역본이 거의 다 표절본이라는 점이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표절본을 제외한 18종 가운데 최재서 김재남 이경식 여석기 신정옥 최종철 김종환의 역본 등 추천할 만한 것이 10종으로 절반이 넘었다.

셰익스피어의 원문이 대부분 운문인데다 복잡미묘한 언어의 맛을 살려 자연스러운 우리말로 옮겨내기 어려워 전공 학자들이 아니라면 섣불리 번역을 시도할 수 없는 사정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추천할 만한 역본 중에서도 1954년에 출간된 최재서의 ‘햄릿’은 단연 돋보인다. (이미지 없음)

번역이 충실하고 읽기 좋을 뿐 아니라, 중의어 같이 거의 번역 불가능한 언어유희까지 특별한 방법으로 살려내려고 노력했다.

‘햄릿’을 우리말로 옮길 때 충실한 번역이 되기 위해서는 대강 뜻만 전달해서는 곤란하다. 가령 1막 2장에서 아버지의 죽음에 고통스러워 하는 햄릿에게 어머니 거르투르드가 인간사에 흔한 죽음이 “어째서 네게는 유별나게 보이느냐?”고 묻자, 햄릿은 그렇게 ‘보이는(seems)’ 것이 아니라 ‘사실이 그러하며(is)’ 자신은 보이는 체하는 것을 모른다고 대답하는 부분이 나온다.

‘seems’와 ‘is’가 대비되는 햄릿의 이 대사는 ‘외양’과 ‘실재’의 차이라는, 작품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중요한 주제이며 향후 햄릿의 행동방식과도 상관이 있는 의미심장한 대목이어서 특별히 세심한 번역이 필요하다.

하지만 여러 번역본들이 이런 대비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하고 두루뭉술하게 대강 뜻만 옮겨놓았다. “그렇게 보이든 안 보이든, 그건 제가 알 바 아닙니다”라는 식으로 오역해 햄릿의 생각을 정확하게 전달해주지도 못하고 있다.

독자들에게 셰익스피어 작품의 진면목을 드러내주려면 공연대본으로도 적절하고, 읽는 시로도 휼륭한 작품의 경지에 오를 수 있는 번역이 많이 나와야겠다.

/영미문학연구회 번역평가사업단

출처: 한국일보 http://news.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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