性문제 등 미묘한 심리묘사…  불성실 번역에 통속극 전락


[번역, 이것이 문제다]

<2> 토머스 하디의 '테스'

어떤 학자는 고전(古典)을 “유명하지만 아무도 읽지 않는 책”이라고 정의했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일리 있는 지적이다. 토머스 하디의 ‘테스’는 고전 치고는 대중성이 높은 책이다. 문학에 관심 있는 사람이라면 소설의 내용을 대충은 알고 있을 것이다.

학창시절 읽고 감명 받은 독자가 상당할 것이고, 나스타샤 킨스키가 출연한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영화 ‘테스’를 떠올리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혹시 순정하고 가련한 처녀 테스가 돈 많은 악한 알렉에게 정조를 빼앗기고, 진정 사랑했던 클레어와 결혼한 첫날 밤 순진하게 과거를 고백한 탓에 결혼이 파탄에 이르고 마침내 살인을 저지르는 통속극 쯤으로 기억하고 있지는 않은지?

사실 이 작품에서 알렉의 성격은 상당히 복잡하고 테스와 알렉의 관계도 일방적인 정조유린으로 규정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또한 이 ‘순결한 처녀’는 성 문제에 상당히 솔직한 모습을 보인다. 작가는 당대의 보수적 분위기에 반해서 이런 미묘한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고심했고, 그 결과 이 작품은 여러 번 수정을 거쳐 지금의 형태로 출간됐다.

굳이 이 말을 하는 것은 ‘테스’의 번역이 만만치 않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까다로운 대목들의 의미를 놓치는 경우 뜻하지 않게 통속극이 돼버리기 쉽다.

‘테스’는 1956년 한국출판사에서 맹후빈 역으로 ‘테스(순결한 여인)’가 나온 이후 지난해 7월까지 140여 곳에서 번역 출간됐다. 역자 수는 69명이다. 이중에서 수집 가능한 53종을 입수해 일일이 대조한 결과 40% 정도가 표절본으로 판명됐다.

원작을 대폭 축소한 다이제스트판도 40% 가까이 된다. 독자번역으로 판단된 역본은 전체 번역의 20%가 조금 넘는 12종으로 집계됐다.

표절의 원본이 된 번역본이 오역의 비중이 적지 않은데다, 표절본은 이것을 약간 수정하면서 베낀 수준이고, 이 수정된 표절본을 다시 표절한 경우도 있었다. 그 결과 ‘테스’는 번역본이 난립하고, 질 낮은 표절본이 다수를 차지하는 국내 번역 현실을 보여주는 대표 사례가 됐다.

집중검토 대상이 된 12권 가운데 맹후빈 정병조 김보원 번역에 대해서만 언급하겠다. 맹후빈 역본은 초역임에도 불구하고 문장 구사가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어 읽기에 무리가 없다.

그러나 꼼꼼히 검토해 보면 세부 정확도가 떨어지는 오역이 제법 발견된다. 그리고 50년대 번역인 탓에 옛날식 어법이 지금 독자에게는 낯설어 보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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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조 역 ‘테스’는 여러 곳에서 출간됐다. 전반적으로 꼼꼼한 번역이라 당시 출간된 다른 번역본에 비해 상당히 안정감 있고 고른 수준을 보여준다. 줄거리를 이해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으나 상황을 심도 있게 전달해야 할 부분에서 오류가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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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최근에 출간된 김보원 역 ‘테스’(서울대출판부)는 기존 출간본을 꼼꼼히 참조해 잘못된 부분을 수정했다. 특히 정확하고 세련된 우리말 구사로 의미가 분명하고 문장이 감칠 맛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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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 평가를 하면서 좋은 번역은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노력과 실패를 자양분으로 삼는다는 점을 분명히 깨달았다.

/영미문학연구회 번역평가사업단

출처: 한국일보 http://news.hankook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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