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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크푸르트 출신의 젊은 미망인 마리에 베르나는 1880년 초에 아놀트 뵈클린에게 '꿈 꿀 수 있는 그림'을 주문했다. 뵈클린은 그 주문을 받아들였고, 그녀를 위해서 [죽음의 섬]이라는 소재를 창조했다.
그러나 화가는 첫 번째 작품에 만족하지 않았다. 그는 그것을 미완성으로 남겨둔 채, 두 번째 작품을 그리기 시작했고 그것을 마리에 베르나에게 주었다. 이 그림은 오늘날 뉴욕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에 전시돼 있다.
 〔죽음의 섬〕1880 / 바젤 미술관 첫 번 째 버전
 〔죽음의 섬〕1880 /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두 번 째 버전으로 마리에 베르나에게 주었던 작품
 〔죽음의 섬〕1883 / 베를린 미술관 세 번 째 버전으로 베를린의 미술 중개상인 프리츠 구를리트의 독촉으로 생겨난다. 이 그림은 미술품 거래를 통해 1993년 아돌프 히틀러의 소유가 된다.
1884년의 네 번째 버전은 제 2차 세계대전 말기에 불탔다.
 〔죽음의 섬〕1886 / 라이프치히 조형 미술관 다섯 번째 버전으로 라이프치히 조형 미술관의 주문으로 그려져 지금도 그곳에 전시돼 있다.
불가사의하게 달빛이 비추는 바위섬 하나가 밤의 어둠이 깔린 고요한 바다 위에 우뚝 솟아 있다. 그 섬은 대칭을 이루며 그림의 중앙에 위치해 있다. 검은 실측백나무들은 수평선에 대해 수직적인 강조를 이루고 있다. 성직자 같은 형상의 뒷모습과 노를 저어 배를 후미 안으로 몰고 있는 사공이 보인다.
 〔바이올린을 켜는 죽음과 함께 있는 자화상〕1872 / 베를린 국립 미술관
죽음은 인간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뵈클린은 작업을 중단하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그의 영감은 여기에서 시작된다....,
 〔성스러운 숲〕1882
오랫동안 인정받지 못했던 뵈클린은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에 그 시대의 가장 위대한 화가로 인정을 받게 되고, 1901년에 피렌체 근처의 산도메니코에서 생을 마쳤다.
"자신의 그림으로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가?"라는 질문에, 뵈클린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지금 당신이 보고 있는 것이지요. 나는 단지 그림으로 그리는 것뿐입니다. 그림 수수께끼를 그리는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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