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을 너무  읽고 싶었는데, 오랫동안 구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헌책방에서 이것을 발견하고 꿩 대신 닭이라도..하며 사 온 뒤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러다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이 다시 출간된 것을 보고 문득 이 책이 떠올라 읽어보았더니..

아니나 다를까 <존재의 세가지 거짓말1>이었다.

1권이 있으니 세 권을 다 사기도 망설여지고 그렇다고 2, 3권만 사자니 짝이 안맞고

1권의 다른 번역본도 읽어보고 싶고..

재출간 될 줄 알았더라면 그냥 기다릴 것을.. T^T

그런데 정말 명성에 걸맞게 재미있었다. 재미있으면서도 섬뜩했지만. 그리고 읽은 뒤 선과 악의 경계가 모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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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장부책 중

  작문이 '양'인지 '불가'인자를 판정하는 기준으로서, 우리에게는 극히 단순한 룰이 있다. 작문의 내용은 진실이어야만 한다는 룰이다. 우리가 기술하는 것은 있는 그대로의 사물, 우리가 본 것, 우리가 들은 것, 우리가 실행한 것이어햐만 한다.

  가령, '할머니는 마녀와 흡사하다'라고 쓰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그러나 '할머니'는 마녀라고 불리우고 있다' 라고 쓰는 것은 허용되고 있다.  

  '작은 도시'는 아름답다' 라고 쓰는 것은 금지되어 있다. 왜냐하면 작은 도시는 우리 눈에 아름답게 비치는 것이며, 그럼에도 다른 누군가의 눈에는 추하게 비칠지도 모르는 것이므로.

  마탄가지로 만일 우리가 '당번병은 친절하다' 라고 쓰면, 그것은 하나의 진실이 아니다. 그도 드럴 것이 어쩌면 당번병에게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심술궂은 면이 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순히, '당번병은 우리에게 담요를 주었다' 라고 쓴다.

  우리는, '우리는 호두를 믾이 먹는다' 라고는 쓰지만, '우리는 호두를 좋아한다' 라고는 쓰지 않는다. '좋아한다' 라는 단어는 정확함과 객관성이 결여되어 있어서, 명확한 말이 아니기 때문이다.

 '호두를 좋아한다' 라는 경우와, '어머니를 좋아한다' 라는 경우에 '좋아한다'의 의미는 다른 것이다. 전자가 입 안에 퍼지는 맛있음을  '좋아한다'라고 말하는 것에 비하여, 후자는 '좋아한다'는 하나의 감정을 가리키고 있다.

  감정을 정의하는 낱말은 매우 막연하다. 그러한 종류의 낱말의 사용은 피하고, 사물이나 인간이나 자기 자신의 묘사, 즉 사실의 충실한 묘사만에 그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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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이와 연필과 필기장을 사다 

할머니 집에는 종이도 없으며 연필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서적문구점>이라는 가게로 갔다. 방안지 한 묶음, 연필 두 자루, 두껍고 넓은 필기장 한 권을 골랐다. 우리는 그것들을 한데 모아 계산대 맞은 편에 의젓한 자세로 앉아 있는 주인 아저씨의 바로 앞에 올려놓고 말했다.

"우리는 이것들이 전부 필요합니다만, 돈이 없습니다."

주인이 말했다.

"뭐라고? 그렇다 하더라도......... 대금은 치뤄야지."

우리는 되풀이했다.

"우리는 돈이 없습니다. 하지만, 이것들이 전부 필요합니다."

"학교는 줄곧 닫혀 있잖아. 누구에게도 필기장과 연필 따위는 필요없지 않니?"

"우리는 집에서 학교 공부를 하고 있거든요. 둘이서 독학을 해요."

"그렇다면 아버지나 어머니에게서 돈을 받아 오도록 해야지."

"아버지는 전선에 가 계시고, 어머니는 큰 도시에 남아 계세요. 우리는 할머니 집에 살고 있는데, 할머니에게도 돈은 없어요."

주인이 말했다.

"어쨌든 돈을 가지고 오지 않으면, 아무것도 살 수 없어."

우리는 더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잠자코 주인을 응시했다. 주인도 우리를 응시했다. 그의 이마에 땀방울이 솟았다. 얼마 안 있어 그가 소리쳤다.

"그런 식으로 꼼짝않고 나를 쳐다보지 말고 나가!"

우리는 새삼스럽게 입을 열었다.

"우리는 아저씨를 위해 이들 상품값에 해당하는 무엇인가의 노동을 수행할 용의가 있습니다. 가령 아저씨의 정원에 물을 준다든가, 잡초를 뽑는다든가, 또는 짐을 나르는 등........ "

그는 또 소리쳤다.

"우리집에는 정원 따위가 없어! 나는 너희들에게 볼 일이 없단 말이야! 그런데 너희들 평범하게 말할 수 없겠니?"

"우리는 평범하게 말하고 있는 걸요."

"너희들 또래에서, '수행할 용의가 있다' 등의 말투를 사용하는 것이 평범한 말이냐?"

"우리는 정확히 말하고 있는 겁니다."

"정말 너무나 정확하구나! 너희들의 말투는 어쩐지 밉살스럽단 말이야! 그리도 너희들이 나를 쳐다보는 그 눈길도 싫어! 자아, 빨리 나가!"

우리는 물었다.

"그런데 주인 아저씨, 암탉은 소유하고 계십니까?"

주인은 창백해진 얼굴을 흰 손수건으로 가볍게 두드리다가 정색을 하고 말했다.

"암탉이라니? 암탉이 어쨌단 말이냐?"

".............그러니까 저희가 말씀드리는 것은,  아저씨께서 암탉을 소유하고 계시지 않은 경우, 우리는 일정한 숫자의 달걀을 준비하여, 우리에게 있어서 필요 불가결한 이들 상품과 교환하기 위해 그것을 당신에게 드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주인은 우리를 응시했다.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말을 계속했다.

"달걀 가격은 나날이 상승하고 있습니다. 그에 반하여, 종이와 연필의 가격은......."

그는 우리가 고른 종이와 연필 그리고 필기장을 가게 입구 쪽으로 내팽개치고 부르짖었다.

"나가 버려! 나는 너희들의 달걀 따위는 필요 없어! 거기에 있는 것은 몽땅 줄 테니까 두번 다시 오지 말란 말이야!"

우리는 내팽개쳐진 물건들을 소중하게 주워모은 후 말했다.

"한말씀 더 드리겠습니다만 우리가 종이를 다 썼을 때, 또는 연필이 다 닳아져 버렸을 때에는 이 가게을 다시 방문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되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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