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방의 영혼
마루야마 겐지 / 예문 / 1996년 7월
평점 :
품절


예전에 이 작가의 장편 소설 <천년 동안에>를 읽다 만 적이 있다. 그 땐 마루야마 겐지의 문체가 그다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최근 우연하게 내 손에 들어온 <좁은 방의 영혼>은 같은 작가의 작품인데도 문체가 마음에 쏙 들었던 것이다. 그동안 내가 바뀐 건지, 작가의 문체가 <좁은 방의 영혼>에서 <천년 동안에>에 이르는 동안 변한 건지 알 수 없지만(아직 <천년..>를 다시 읽어보지 않았다).

우선 마루야마 겐지의 첫 작품이자 그에게 최연소 아쿠타가와 상 수상자라는 표찰을 달게 해준 <여름의 흐름>이라는 단편은 사형수 감방(?)에 근무하는 간수의 이야기인데, 읽는 동안 내내 스티븐 킹의 <그린 마일>이 떠올랐다. 일본인 간수들의 이야기인데 그림은 서양인으로 그려지니 읽는 동안 미묘한 어긋남이 끊임없이 느껴져 이 작품만은 그리 좋은 그림이 보여지지 않았고, 글 자체도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다른 단편들을 읽으면서는 모두 아름다운 그림을 볼 수 있었다. <좁은 방의 영혼>에서 병실에서 나가지 못하는 소년이 자신이 연어가 되었다는 상상을 하는 장면에서는 정말 맑은 물의 흐름을 거슬러 헤엄치는 연어와 바닥의 깨끗한 모래알이 눈 앞에 떠오르는 듯 했다.

화려한 미사여구로 장식한 장황한 문체도 아닌데 세부사항까지 완벽하게 한 장의 그림을 그려낼 수 있다니 참 대단한 재주라고 생각한다. <소설가의 각오>라는 이 작가의 에세이를 읽고, 작가 자신에 대해서 그리 좋은 평가를 내릴 수 없었기에 '재주'라는 단어를 쓰게 되었지만, 어쨌든 소설 하나는 잘 쓴다. 글쓰는 것으로 먹고살겠다 다짐한 작가라 그런지 수록된 단편 모두가 그리 수준이 떨어지는 것이 없는 듯하다. 그런 단편집도 참 드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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