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산책
돈 슈나이더 지음, 김정우 옮김 / 사람과책 / 199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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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몇년 전 IMF로 많은 사람들이 직업을 잃었다. 다행스럽게도 나의 아버지는 실직하지 않으셨지만, 그것을 계기로 그 이후 종종 아버지가 직업을 잃는다면 아버지는 어떻게 살아가실지, 나는 어떻게 살아야할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다. 텔레비젼을 틀면 끊임없이 나왔던 많은 실직자들의 비참한 생활상을 보며, 저렇게만은 되지 말아야지 했던 기억이 난다. 아버지는 아직도 직장엘 다니시고 나는 아직 공부를 하고 있지만, 지금도 가끔 두렵다. 매달 일정액의 돈이 통장으로 들어오지 않는다면, 어떻게 먹고 살 것인가.

이 책의 저자이자 주인공인 돈 슈나이더는 영문학과 교수였다. 더 나은 보수를 위해 대학을 계속 옮기지 않았더라면 정년에 달할때까지 안정적인 교수직을 보장받았을 텐데, 더 나은 조건을 위해 자꾸 자리를 바꾼 것이 문제였다. 그리고 본문에서 직접적으로 말하고 있지는 않지만, 저자는 자신이 너무 열심히 강의를 하고 너무 학생들에게 인기가 좋아서, 다른 교수들이 위협을 느끼고 자신을 몰아낸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도 하다.

그리고 다른 교수들의 십몇년동안 변하지 않는 기말고사 문제, 일주일에 9시간(그것도 몹시 불성실하게) 일하면서 80시간 일하는 간호사들이 자신들보다 많은 보수를 받는다고 불평하는 교수들을 이야기한다. 어쨌거나 갑작스레 직장을 잃어버린 그는, 계속해서 다른 대학에 지원서를 보내보지만, 계속해서 채용거절통지를 받게 된다. 아이가 넷이나 딸린 가족의 가장으로서 머물 곳, 먹을 것, 입을 것을 마련해야 하는데 말이다.

한동안 잘못된 사회를 탓하고, 타인을 비난하며 좌절과 실의에 빠져있다가, 결국 그가 얻은 직업은 골프장 직원. 이후 페인트공과 목수의 일을 하게 된다. 그것이 전직 대학교수인 그가 찾은 새로운 직업이다. 프리랜서 목수와 페인트공.

그는 새로 찾은 그 직업에서 보람을 느끼고 그 직업에 만족하는 것 같다. 눈높이를 낮추면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자꾸만 그가 진실로 진실로 새 직업에 만족하는지가 의심스럽다. 뿌듯한 듯 희망적 어조로 적어놓은 마무리에도 불구하고, 만약 좋은 대학에서 정년을 보장하며 자리를 제공한다면 그는 어떻게 할까. 결국 실직자의 한 사람으로서 그는 어떻게든 새로운 직업을 찾았고 그것으로 가족을 부양하면서 살아가고는 있지만, 글쎄, 나는 혼란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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