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거를 오랜만에 탔더니 우습게도 몸살이 났다. 온 몸이 욱신욱신 거리고 특히나 손목이 아파서 마우스를 쥘 수가 없었다. 누워 있다보니 오즈의 마법사, 양철 나무꾼이 생각났다.
기름칠, 기름칠이 필요해. 나는 자전거를 손목으로 타거든.
자전거를 처음 배운 건 스무 살 때였다. 그것도 배우려고 해서 그런 것도 아니고 정말로 어쩌다보니, 한 마디로 우연이었다.
한창 날씨 좋은 4월 말 즈음, 한 학번 높은 선배가 동아리 방으로 오더니 다짜고짜, 나랑 같이 여의도 갈 사람~! 하면서 선착순을 외쳤다. 여의도 무슨 회사에 서류를 내러 가는데 혼자 가면 심심하다나 어쨌다나 하면서. 같이 가주면 밥도 사주고 술도 사주고 어쩌고 하면서 꿀도 잔뜩 발랐는데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은 모두 수업이 있네 어쩌네 하면서 도망을 가버려 어쩔 수 없이 내가 낙찰되었다. 사실 별로 친하지 않은데다 동아리 방에도 자주 안오는 선배라
아, 오고가는 시간동안 쌓여 갈 어색함을 이내 몸이 어이할꼬, 하는 암담함을 가지고 나는 무거운 발걸음을 가벼운 척 옮겨야만 했다. 헌데 예상외로 그 선배는 말도 많고 재미도 있어서 나는 그냥 듣거나 웃거나만 하면 되었던, 별로 나쁘지 않은 왕복운행이었다.
여차저차해서 볼일이 끝난 그 선배. 이제 돌아가서 뭘 얻어 먹나, 만을 즐겁게 고민하던 내게 갑자기 물었다.
-날씨도 좋은데 이왕 여기 온 김에 자전거나 타다 갈래?
-우우, 저도 그러고 싶지만 저는 자전거 탈 줄 모르는데요.
-뭐야, 그 나이 되도록 자전거도 안 배웠어? 걱정마, 내가 가르쳐 줄게.
아아, 친하지도 않은 사람 앞에서 우스운 몸부림을 선보여가며, 몸치 운동치 인것까지 드러내가며 과연 자전거를 배워야 하나. 우물쭈물. 그런데 선배는 이미 자전거를 빌리고 있었다.
드라마에 숱하게 나오는 자전거 타기 가르치는 장면.
꼭 잡고 있어야 돼. -알았어.
절대로 놓으면 안돼. -아, 알았다니까. 걱정하지마.
정말이야. 손 놓으면 나 화 낼거야. -그래, 달려~
여자가 달리기 시작하면 죽어도 잡고 있겠노라 철썩같이 약속한 남자는 당연하다는 듯 슬금 손을 놓고, 여자는 혼자 어멋어멋 거리며 주욱 나가다가 결국 쿵 넘어지고
그에 남자는 놀라서 달려들고 울고 웃고 피나고 몰라몰라 어쩌고 저쩌고.
막상 자전거를 앞에 놓으니 나도 모르게 그런 장면이 막 상상이 되어 혼자서,
뭐야- 나 오늘 드라마 한 편 찍는거냐, 하며 피식 웃긴 했지만, 그 선배와 나 처럼 어색한 사이에서 그런 일이 생기리라고는 절대로, 기대 안한 것은 아니었다. (뭔 소리야)
-자, 봐라. 간단하다. 쓰러지지 않으려면 속도가 있어야 돼. 올라타면 무조건 빨리 페달을 밟아.
그리고 알지? 쓰러지는 쪽으로 핸들을 꺾어라. 그 두 가지만 알면 금방 배울거야.
-네... 저...
-걱정마. 내가 뒤에서 꽉 잡고 있을테니까, 내가 말한 대로만 해라.
머리 속으로 계속 되뇌었다. 흠, 속도와 핸들꺾기. 속도와 핸들꺾기.
나는 안장에 올라탔다. 그리고 발을 힘차게 구르기 시작했다. 절대로 놓으면 안돼욧! 이딴 말을 내뱉을 겨를도 없이 나는 앞으로 튀어나갔고 계속 속도, 속도, 하면서 발을 내두르고 손목이 끊어져라 핸들을 부여잡고는 왼쪽오른쪽 지르기에 바빴다. 어느새 바람이 시원하게 이마에 와 부딪기 시작했고 얼결에 좋아서 히죽 웃었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는 안 넘어지고 잘 달리고 있는거였다. 그제서야 뒤에 붙어 있을 선배가 생각나서 발을 내려 자전거를 멈추고 돌아보니,
선배는 내가 출발했던 그 자리 그대로 붙박이로 서서는 나를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야, 너 왜 거짓말 했어. 자전거 탈 줄 아는 녀석이.
-아, 아닌데요. 정말 오늘 처음 탄 건데요.
-너 진짜 웃긴다. 보기보다 운동신경이 좋은건가.
그 때부터 나는 자전거를 사랑하게 되었다. 누가 나를 보고 둔하다는 단어의 둔, 자만 꺼내도 나는 호기롭게, 이거 왜 이러셔- 이래뵈도 자전거를 하루 아니 10분만에 배운 몸이셔- 라고 외치면서 그들의 말을 일축하곤 했는데, 우스운 것은 역시나 내 미약한 운동신경을 증명이라도 하듯 내 실력은 항상 그대로, 처음 배운 그 날에서 조금도 늘지를 않는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내가 자전거 타는 모습을 보면 사람들은 모두 텔레토비처럼 입을 모아 똑같은 말을 한다.
-너 꼭 술 취한 사람이 타는 것 같아.
나는 나름대로 열심히 바르게 행진을 하는 것인데,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갈 지 자로만 간다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자전거를 한 대 장만한 후 그렇게 바퀴가 닳도록 연습을 해도 내 실력은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겁이 많다는 걸 깨달았을 뿐.
가까운 곳에 대학교가 있는 동네로 이사했을 때, 그 곳을 누비리라, 하며 장만했던 자전거는 넓은 그 캠퍼스 안에서는 정녕 빛을 발했고 얕은 경사의 길쭉한 내리막 길이 있는 그 학교는 내 얼굴에 바람과 낙엽을 선사하며 진정 내 보물덩어리로 급부상했지만, 그 학교로 오고가는 왕복 15분의 거리는 정말로 내게 지옥이었다. 보도블럭의 울퉁불퉁함이 나를 흔들고, 그 위를 걸어다니는 수많은 사람들이 나를 내리게 하고(나는 멈춘 자전거 위에 앉아서 중심잡기를 못한다), 그런게 싫어서 찻길로 내려가면 슝슝 옆을 스치는 자동차들의 압력에 휘청거리고... 나는 행복한 자전거 타기를 위해서 매번 '자전거 질질 끌고 왕복 15분'의 고통을 감내해야만 했다.
어쨌거나 나는 자전거를 사랑한다. 정말로 잘 타게 되어서 그걸 타고 어디든지 누빌 수 있게 되기를 계속 기대하고 있다. 자전거를 한 번 타면 비틀비틀 중심을 잡느라고 핸들이 부서져라 힘을 주는 덕분에 손목이 욱신거려서 다음 날 아무 것도 못하지만, 그래도 나는 자전거가 좋다.
정말로 잘 타게 되는 어느날, 멋지게 하이킹을 떠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면, 나는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헤벌쭉-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