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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좌파 - 김규항 칼럼집
김규항 지음 / 야간비행 / 2001년 7월
평점 :
내가 김규항이라는 이름과 그의 글을 처음 만난것은 1997년인가 98년인가 하는 그 어름 시기이다.(박노해가 준법서약서를 쓰고 석방되었던 시기였으니 1998년이 유력하다.)
김규항은 강준만의 <인물과 사상>에 박노해를 비판하는 글을 기고 하였고 그 다음호에는 거기에 대한 강준만의 반론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당시 강준만에 사상적으로 다소 경도되어 있었던 나는 강준만의 주장에 대체로 동의하면서, 김규항의 박노해에 대한 비판이 다분히 철지난 운동권의 감상주의적, 이상주의적인 견해라고 판단하였던것 같다.
그 이후 김규항을 다시 만난것은 1999년이다. 그 해 가을에 일군의 논쟁적 지식인들이 의기투합하여 <아웃사이더>라는 격월간지를 창간한다는 신문 기사가 있었고, 김규항은 그 잡지의 편집위원 중 한명으로 내정되어 있었다. 홍세화, 진중권, 김정란. 김규항을 제외한 다른 편집진들의 면면을 보고 나는 왠지 김규항이 그냥 덤으로 끼어들어 있는것이 아닌가..라는 섣부른 생각을 했었다.
가을이 기울어가던 시기에 "아웃사이더 창간준비호"라는 명목으로 편집진들의 글을 모은 <아웃사이더를 위하여>라는 책이 나왔고, 그 책의 앞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던 글들을 통해 나는 김규항의 글을 다시 보게되었다. 그리고, 그에 대한 그간의 나의 부당한 평가를 거둘 수 있었다.
씨네21에 김규항이 인기리에 연재하던 <유토피아 디스토피아>라는 컬럼에 실렸던 글들 중 몇편을 추려서 올린 그의 글들은 현란한 이념적 논리를 앞세우지도, 사회에 대한 명쾌한 해석과 입바른 주장을 담지도 않았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각과 천민 자본주의에 얼룩진 대한민국에 대한 서슬푸른 비판이 공존하고 있었다. 그 책에 실렸던 그의 글 중 <조개구이>를 읽다가 지하철에서 눈물이 날뻔 했던 나는 그가 일전에 했던 박노해에 대한 비판을 다소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그 이후 나는 인터넷에서 김규항의 컬럼들을 찾아서 읽기 시작했다. 한겨레21에 연재했던 김어준 딴지 총수와 함께 진행하는 대담 코너 <쾌도난담>도 매주 열심히 보았다. 그리고 <B급 좌파>라는 책이 나오자 마자 거의 대부분 이미 읽었던 글들의 모음이었지만, 주저없이 구입했다. 그리고 아직도 생각 날 때마다 책꽂이에서 빼내 한 두편씩 읽곤 한다.
김규항은 그와 비슷한 시기에 이름을 알린 많은 '스타급' 비판적 지식인 중에서도 독특한 존재이다. 그는 특별히 내세울 만한 학벌도 아니고, 운동의 경력이 출중하거나, 지식계에 논쟁을 불러 일으킬만한 글을 쓴것도 아니고, 그의 입을 빌면 '특별한 직업도 없는 반백수'에 불과하다. 주간 영화 잡지에 썼던 고정 컬럼 만으로 그는 '스타급' 논객이 되었다. 그런만큼 그의 글에는 엘리트 의식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또 한 거침없는 비평으로도 유명하다. 분리주의 페미니즘에 대한 직설적인 비판 등으로 진보 진영 내부에서조차 격렬한 페미니즘 논쟁을 불러 일으키기도 했다.
가장 간결하고 매끄러운 문장을 조탁하는 문장가 고종석과 더불어 김규항의 절절한 문장을 나는 좋아한다. 그의 글이 사람의 누선을 자극하는 지극히 감정적인 글일지라도 그의 글 속에 담긴 그의 진정성을 알 수 있기 때문에. 지나친 감상주의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차가운 머리를 가져야 하는 좌파임에도 대중의 뜨거운 가슴에 호소하는 그의 열렬한 글들이 나는 좋다.
읽은지 오랜 시일이 지났지만, 그의 책에 꼭 한번 리뷰를 쓰고 싶었다. 아웃사이더 편집위원도 그만두고 글 쓰는게 뜸해진 요즘 그는 출판 사업에 매진하고 있는 듯 한동안 맥이 끊겨있는 아동 교양 월간지를 발행하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그의 의미있는 또 다른 행보가 잘 되어지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