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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착오 ㅣ 동서 미스터리 북스 102
앤소니 버클리 콕스 지음, 황종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7월
평점 :
최근 '추리소설 출판부흥 시대'를 맞이하여 읽어야 할 책들이 엄청나게 늘었다. <시행착오>는 사실 진작에 읽고 싶었던(출판 되자 마자) 책이지만, 이제야 읽게된 이유가 있다.(좀 구차하다) 작년 봄 부터 도서 정가제 시행으로 책이 출판되고 나서 1년이 넘어야 할인율이 높아지게 변경된것은 주지의 사실. 읽어야 할 책들이 드물었던 DMB 이전의 상황이라면, 할인율 10% 정도에 연연해 하지 않았겠지만 지금은 딱히 새로 나온 책들이 아니라도 밀려있는 읽어야 할 추리 소설이 많으니 출판일로부터 1년이 넘지 않은 책들은 내가 책을 구입하는 기준의 중요 요건에서 제외되는 것이다. 시사 문제 등 당대(當代)를 다루는 책이 아닌 이상 묵혀 두었다가 본다고 해서 큰 문제가 되지는 않으니까. 그래서 "지금 현재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문제의 책" 같은 것은 나와는 그닥 상관없는 책이 되기 십상이다. 그런데 7월이 됨으로써 1년이 경과하여 <가짜 경감 듀>, <시행 착오>등을 주문했더니, 책 받고 그 다음날 부터 DMB 30% 할인 이벤트를 하더라. 흑흑흑.
이러 저러한 좀스러운 이유로 뒤늦게 읽게 된 <시행착오>.
결론부터 말하면, 명불허전. 매우 만족이다. 앤소니 버클리 콕스의 소설은 이것으로 프랜시스 아일즈 명의로 발표한 <살의>를 포함하여 <독 초콜릿 사건>에 이어 세번째이지만 어느것 하나 빠질것이 없는 재미를 내게 선사하였다. 그 중에서도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 <시행착오>를 최고로 뽑기에 주저함이 없을 듯 하다.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는 남자(마이클 조던 처럼 생겼다)가 선글라스를 착용하고 있는 붉은 색 바탕의 현란한 표지, <시행착오>라는 왠지 모를 스피드한 인상을 주는 제목 등으로 인해 나는 이 작품을 아주 속도감 있고 서스펜스가 난무하는 그런 내용으로 오해하고 있었다. 버클리를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이런 터무니 없는 생각을 하다니. 어이 없는 오해는 첫장부터 풀렸고, 그 이후 버클리 특유의 섬세하고 치밀한 심리 묘사와 작품 전체를 흐르는 따뜻하고 잔잔한 분위기에 빠져들어 몰입할 수 있었다. 후반부의 긴장감도 대단하다.
시한부 인생을 의사로부터 통보받은 토드헌터씨가 남은 인생을 가장 보람있게 마무리 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살인. 그러나 사건은 토드헌터씨의 예상과는 다르게 진행되어 급기야는 자신의 범행을 법정에서 증명해야 하는 상황에 도달하게 되는데... 사실 추리 소설에 영악한 독자들이라면 충분히 간파할 수 있는 반전과 미스디렉션들이지만, 반전만이 추리 소설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해주는 훌륭한 구성을 갖춘 작품이다. 영국의 전통적인 본격 미스테리에 충실한 듯 하면서도 자신의 개성을 완벽하게 살린 작품들을 발표했던 버클리의 후기 걸작으로 황금기를 수놓은 대표작가의 원숙함을 만끽할 수 있다. <살의>나 <독 초콜릿 사건>을 재미있게 읽은 독자들이라면 필독. 이 소설은 그 두작품을 솜씨 좋게 버무린 훌륭한 퓨전요리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