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 그건 혐오야! - 혐오와 마주한 10대에게 한울림어린이 인문교양
사메이아 지메네즈 외 지음, 줄리아나 뉴펠드 그림, 라미파 옮김 / 한울림어린이(한울림) / 2025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혐오(嫌惡):싫어하고 미워함.

혐오가 가진 사전적인 의미이다. 그런데,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과 혐오는 어감부터 다른 이유는 뭘까? 단순히 싫어하고 미워하는 것을 떠나서 누군가를 극도로 또는 의도적으로 배척하는 의지와 군중심리가 같이 작용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요즘의 세상을 보면 혐오하는 것들이 참 많아진 느낌이 든다. 언론에서 조장하기도 하고, 이유없이 문화처럼 혐오하기도 하는 느낌이랄까?

누군가를 싫어하고 미워하는 데는 주관적인 이유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이유를 듣고 나면 미워하는 마음과 싫어하는 마음은 희석되기도 하는데, 주관적이지 않고 마치 유행처럼 다른 사람이 하기 때문에 나도 하게 되는 혐오는 어디서 어떻게 해결해야 그 의미가 희석될 수 있을까?

혐오라는 뜻은 어렴풋이 알지만,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이 혐오라는 사실을 모르는 시대에 사는 사람들이 많다. 이 책은 바로 그 부분에서부터 시작한다.

네가 지금 하고 있는 바로 그것이 혐오라고 짚어주는 것부터 알려준다.

혐오가 어떻게 시작되는지, 어떤 모습인지 모르고 있다면 어떻게 보이고 들리고 느껴지는지 그리고 우리는 왜 그런 혐오에 맞서야 하는지. 

이 책이 나온 이유가 명백히 보인다. 시대가 만든 혐오 속에서 선악의 판단 시비의 판단이 희미한 체 물들어 가고 있는 우리 10대들에게 혐오의 정의에서부터 무작정 혐오가 나쁘니까 하지 말자는 것보다 혐오가 팽배한 이 시대를 우리가 어떻게 맞서서 방향을 바꿔나가야 할지를 이야기할 수 있도록 길을 잡아준다.


정말 필요한 교육 중의 하나가 이런 사회정서개념이라고 생각한다. 옛날에는 집에 큰 어른들이 있어서, 막연하게 나마 윤리가 무엇이고 도덕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배웠는데, 요즘은 그것이 매우 희박하다. 집에서 가르쳐줄 수 없기에 책에서라도 아니면 이 책을 교재로 학교에서라도 아이들이 사회적으로 팽배한 혐오라는 정서의 현재를 마주하고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따라만 했던 과거와 다른 MZ세대의 특징을 살려서 스스로 판단하고 생각할 수 있는 장도 곳곳에 마련해두었다. 


"멀리 가려면 함께 가야 한다." 

우리 세대가 가야 할 먼 길을 가시밭길과 편견으로 사로잡혀 벗어날 수 없는 척박한 땅이 아닌 아름다운 꽃길로 만들 수 있는 힘은 혼자서는 절대 불가능하다. 멀리 가려면 우리는 함께 가야 한다. 잘못된 것이 있다면 함께 바꿔나가야 하지 않을까? 연대하며 함께 바로잡아가면서 말이다. 


딱딱한 주제같지만, 두께도 글씨도 부담스럽지 않다. 하지만, 그 속은 매우 무겁고, 튼실하다.


- 출판사에 책을 지원받아 서평을 남깁니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스토너
존 윌리엄스 지음, 김승욱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5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어릴 적 너무 좋아하던 TV를 커서는 잘 보지 않는다. 억지로 지어낸 행복과 불행, 슬픔, 웃음 등이 불편해서이다. 생각없이 사는 것처럼 컨셉을 정했지만, 누구보다 강하게 잘 살아내고 있는 홍진경의 집에 어느 날 김영철이 와서 바닥에 쌓여있는 책 한 권을 꺼내들며.

"어?"

"이거 내가 제일 좋아하는 책이야!" 라며 호들갑을 아주 잠깐 떨었던 적이 있다.

바보라는 컨셉까지 들고 있는 홍여사가 ?? 강하게 궁금증이 들어서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는데.. 어느 날부터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걸 보고, PPL이었나?라는 배신감도 들고... 

양가감정 속에서 드디어 접해볼 수 있게 되었다. 


책의 내용은 가난한 시골 마을의 농부의 아들인 스토너가 군청에서 다녀간 사람의 권유로 컬럼비아의 새로운 대학교 농과대학을 보내기로 결정한 아버지말씀에 남의 집에서 살며 농장일 해주는 조건으로 4년간 떠나있게 된다.

그러나 일과 공부를 병행하기는 참 힘든 일이다. 스토너는 그 힘든 일을 해낸다. 묵묵히 해내는 그는 2학년이 되었을때는 캠퍼스에서 친숙한 인물이 되어 있다. 계절과 상관없이 언제나 똑같은 차림때문? 때는 우리나라의 일제 강점기 시절이니... 상사이 되려나? 건조한 목소리와 굽은 등의 아론 슬론 교수의 수업을 들으며 오묘한 감정을 느끼며, 성취감과 함께 그는 농과대학이 아닌 다른 문학사로 전공을 바꾸게 된다. 

4년이 지나 졸업을 하게 되면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 사실을 알게 되고 조금의 미안함을 느끼지만 그는 그렇게 그 대학에서 석사학위,박사학위등을 따내며 교수의 자리를 얻게 된다. 시대의 격동기인지라 함께 공부하던 두 친구는 참전을 결정하지만, 그들과는 다르게 대학에 남는 선택을 하게 된다. 

전쟁이 끝나면서 한 친구는 돌아오고, 한 친구는 세상을 떠나게 된다.

어느날 초대된 파티에서 한 여자의 모습에 사랑을 느끼고, 결혼을 결심하게 되고 그 과정이 조금은 이상한 듯 하지만, 언제나처럼 인내하며 결혼이라는 세계에 입문하게 된다. 그런데.. 그가 선택한 이디스 또한 인내하는 삶이 편하고 표현하는 삶이 어려웠다. 그렇게 아닌듯 하면서도 아슬아슬하게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어느날 아이를 갖고 싶다는 이디스의 말에 그레이스를 낳게 되지만, 그 이후의 책임은 스토너가 도맡듯이 한다. 교수의 힘든 삶을 살면서, 육아까지 해내는 그의 모습에서 존경스럽기도 하고.. 이디스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그렇게 잘 살아내고 있다가 이디스가 엄마의 자리로 돌아오면서 스토너의 자리를 자꾸 밀쳐내지만, 그는 그 또한 반항하지 않고 받아들인다. 섬세하기 그지없는 그레이스가 깨어지고 있는 것도 그렇게 바라보며...대학생활에서도 부딪히는 찰스 워커와의 만남 또한 답답하고 화가 났다. 그러던 그에게도 캐서린이라는 참 사랑이 찾아오지만, 그가 잘하는 그 방향으로 끝맺음을 하게 된다. 무언가 잘못된 게 있고 불편하면 그걸 해소하고 다시 반복되지 않도록 하고 억울한 게 있으면 말이라도 하고 싶은게 나인데.... 스토너도 그랬으면 참 좋았을 껀데.. 해낼 수 있는데도 왜 -_-

 열심히 사는 이에게는 반드시 보람이 있고, 아름다운 길이 열린다고 믿고 살고 있는 나인데, 스토너를 보면서 답답하고 화나고 슬펐다. 악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이들은 저렇게 잘 살아내는데 매번 참기만 하고 극적으로 이겨내지 못하고 악에게 잠식당하는 스토너의 삶. 그리고 허망한 마지막..은 쓸쓸했다. 그런 스토너와 함께하면서도 행복해질 방법을 찾지 않은 아니 못찾은 이디스도, 그리고 그 이디스의 감정을 받아내고 틀어져버린 그레이스도...


조금만 생채기나면 참지 못하고 악다구니를 써대는 세상 속에서 100년전에 가까운 스토너의 삶을 보고 있자니 너무 답답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렇게 인내하고 버텨내며 묵묵히 삶을 살아내주고 있는 이들이 지키고 있는 이 삶이 부모님들과도 오버랩되어... 스토너를 덮는 순간까지 "Less is more:라는 말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와 ...이렇게 적게 바라고도 마음의 행복이 이정도밖에 못 가진다고? 하는 분함과 짠함이 교차하게 되었다. 이 책은 나에게 무엇을 주고 싶었을까?


옮긴이의 말과 '슬픔과 고독을 견디며 오늘도 자신만의 길을 걷는 당신을 위한 이야기. 사는 모습은 달라도, 우리는 누구나 스토너다.'라는 뒷날개의 홍보글을 읽으며 같은 마음을 느꼈다는 것이 반갑고 그래도 잘 읽어낸 것 같긴했다. 아.. 나는 이 삶에서 무엇을 기대하며 살고 있을까? 잘 살고 있는 걸까?


홍진경과 김영철이 추천했던 것이 PPL이 아닌 진짜 나와 같은 느낌으로 소장하고 있는 것 같다. 오래된 책인데, 갑자기 다시 들추어 내어 베스트셀러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이유가...

그는 대학공부도 농장 일을 도울 때처럼 즐거움도 괴로움도 없이 철저하게, 양심적으로 했다. - P16

그와 그의 부모는 벌써 낯선 타인들처럼 변해가고 있었다. 그는 이런 상실감 때문에 사랑이 더 커졌음을 느꼈다. - P39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이 보게 마련인 가능성들을 보았다. - P40

스토너는 대학을 커다란 저수지처럼 생각하고 있을 걸.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드련서 자신을 완성해줄 물건들을 고를 수 있는 곳, 모두가 같은 벌집의 작은 일벌들처럼 힘을 합쳐 일하는 곳. - P43

그에게는 지금까지 내면을 성찰하는 버릇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의 의도와 동기를 찾아 헤매는 일이 힘들 뿐만 아니라 살짝 싫다는 생각도 들었다. - P55

두 사람의 공동생활을 가능하게 해주는 섬세한 균형이 깨어질까 두렵기 때문이었다. - P169

가끔은 자신이 식물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는 자신을 찔러 활기를 되찾아줄 뭔가를 갈망했다. 고통이라도 좋았다. - P251

자신에 대해 더 많은 것을 알기 위해서는 사랑에 빠져보아야 해요. - P276

옛날에 데이브 매스터스가 말하기를, 자네는 개자식이 덜돼서 진짜로 출세하기 힘들 거라고 했지. - P293

그의 마음 속 깊은 곳, 기억 밑에 고생과 굶주림과 인내와 고통에 대한 지식이 있었다. - P309

아이가 워낙 섬세한 도덕적 본성을 타고났기 때문에 계속 그 본성을 보살피고 키워주어야 하는 드물고 사랑스러운 인간에 속한다는 것을 그는 알고 있었다. - P332

그레이스가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사실이 고마웠다. - P351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소년이 온다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한강 지음 / 창비 / 2014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바로 전에 어떻게 찾은 우리나라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던 [작은 땅의 야수들] 책을 읽고 나서 바로 읽는 '소년이 온다'는 더 아팠다.

여러 번 [소년이 온다]를 읽으려고 시도했었다. 급류를 타지 못해서 포기하기를 여러번, 맥락을 이해하기 힘들어서 덮기를 여러 번... 그런데, 이번에는 그 급류와 맥락을 모두 잡아서 한숨에 읽어낼 수 있었다. 순간 순간 책을 덮고 한숨을 쉬기도 여러번 이었다.

그렇게 안읽혀지던 책이 어제 딱 읽게 된 것은 여실히도 그 소년이 왔던 길을 알아야 할 때라 그런가?라고 멋을 부려본다. 오늘부터 다시 잘 굴러갈 한국을 기대하며.


나는 광주에 산다. 5.18이 있던 바로 그 해에 태어났다. 내가 아는 518 내가 겪은 518은

광주시외로 나갔던 아빠가 광주로 들어오지 못해서 다행이다, 들어왔으면 우리 집도 518희생자 가족이 되었을꺼다 라는 말과 이제 막 낳은 갓난 쟁이를 보호하기 위해 아직 몸이 되돌아오지 않은 새댁이 무거운 솜이불을 들어 문을 막았었던 엄마의 이야기가 고작이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중흥동에 같이 살았던 기억이 겹칠뿐인데, 한강 작가는 확실히 남달랐다.

마치 그 시대에 살았던 것처럼 동호를 기억하는 그 옆집 친구처럼 누나처럼 

덤덤한 듯 너무 사실적으로 잘 그려냈다.

내가 알고 있던 518이 얼마나 피상적이었는지 내가 알고 싶은 만큼만 남들이 떠드는 정도만 그저그정도였구나. 진심으로 그들을 이해해본 적이 없구나란 걸 알게 되었다.

어떻게 시민한테 총을 쏠 수가 있지? 그들이 살아서 다행이다. 라는 정도였는데...

어떤 마음으로 살아갔을지... 사람이 사람한테 그렇게 잔인할 수 있었던 근본은 무엇인지..

아프고 무겁지만, 더 잘 알고 있어야 할 광주사람으로서, 민주주의가 더없이 중요하고 518 그때가 생각날 수 밖에 없는 현실 한국인으로서, 소년이 온다는 정말 주옥같이 고마운 책인 것 같다.

아직도 북한이 쳐들어왔었다는 등 말도 안되는 말들을 뱉어내는 이들과 그들을 옹호하는 이들이 있는 것을 보니, 동호의 이야기를 더이상 모독할 수 없도록 잘 써준 한강작가가 고맙다.

정말 우연처럼 이어져있지만, 필연인 인연도 참 고맙다. 어떻게 동호의 집과 작가님이 그렇게 이어지는지... 그냥 이런 사진이... 라고 넘어갔을 도청앞에 줄지어 총맞아 쓰러진 고등학생들의 사진과 리어카에 실린 주검들 사진에서 그러한 서사를 현장감있게 잘 풀어내줬는지..

자꾸 글을 써봐야겠다. 머릿속에 휘감아 드는 말들과 풀어내고 있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말들의 끝자락밖에 표현을 못하는 초라함이 느껴져 이만 줄여야겠다.

이제 막 1인칭, 2인칭, 3인칭, 전지적 작가시점을 배우고 있어 서술자의 위치에서 헤매 한 챕터를 못넘기고 있는 아들이 포기하지 않고 급류를 타 읽어내 같이 이야기해보고 싶다. ㅎㅎ

군중의 도덕성을 좌우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무엇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흥미로운 사실은, 군중을 이루는 개개인의 도덕적 수준과 별개로 특정한 윤리적 파동이 현장에서 발생된다는 것이다. - P95

양심.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게 그겁니다. - P114

자신이 완전하게 깨끗하고 선한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이 얼마나 강렬한 것인지. 양심이라는 눈부시게 깨끗한 보석이 내 이마에 들어와 박힌 것 같은 순간의 광휘를. - P116

그건 그들만의 죽음이 아니라, 누군가의 죽음들을 대신한 거였다고. 수천곱절의 죽음, 수천곱절의 피였다고. - P118

그들이 하고 싶었던 말이 무엇이었는지. 너희들이 태극기를 흔들고 애국가를 부른 게 얼마나 웃기는 일이었는지, 우리가 깨닫게 해주겠다. - P119

생각하고 또 생각했습니다. 이해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든 내가 겪은 일들을 이해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 P120

죽음은 새 수의같이 서늘한 것일지도 모른다고 그때 생각했습니다. 지나간 여름이 삶이었다면, 피고름과 땀으로 얼룩진 몸뚱이가 삶이었다면, 아무리 신음해도 흐르지 않던 일초들이, 치욕적인 허기 속에서 쉰 콩나물을 씹던 순간들이 삶이었다면, 죽음은 그 모든 걸 한번에 지우는 깨끗한 붓질 같은 것이리라고. - P122

아무리 애써도 이해할 수 없는 수수께끼가 그 안에 담겨 있는 듯 캄캄한 선지국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주섬주섬 그간의 안부를 묻는 동안, 우리의 눈길은 투명한 촉수처럼 조용히 서로에게 뻗어나가 얼굴 안쪽의 그늘을, 대화와 헛웃음으로 덮이지 않는 고통의 흔적을 어루만져 확인했습니다. - P125

우리는 총을 들었지, 그렇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지도, 그에게 대꾸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레 우릴 지켜줄 줄 알았지. - P127

그러니까 우린, 부서지면서 우리가 영혼을 갖고 있었단 걸 보여준 거지. 진짜 유리로 만들어진 인간이었단 걸 증명한 거야. - P130

무슨 권리로 그걸 나에게 요구합니까. - P132

제주도에서, 관동과 난징에서, 보스니아에서, 모든 신대륙에서 그렇게 했던 것처럼, 유전자에 새겨진 듯 동일한 잔인성으로. - P135

지금이라면 당신은 어떻게 대답할까. 태극기로, 고작 그걸로 감싸보려던 거야. 우린 도륙된 고깃덩어리들이 아니어야 하니까, 필사적으로 묵념을 하고 애국가를 부른 거야. - P173

초등학교 때 피구시합에서, 날쎄게 피하기만 하다 결국 혼자 남으면 맞서서 공을 받아야 하는 순간이 왔던 것처럼 - P175

얼굴 속에도 암것도 없고, 눈 속에도 암것도 없는 우리들이 내일 보자는 인사를 했다이. - P188

거기 있는지도 미처 모르고 있었던 내 안의 연한 부분이 소리 없이 깨어졌다. - P199

그들이 희생자라고 생각했던 것을 내 오해였다. 그들은 희생자가 되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기 남았다. 그 도시의 열흘을 생각하면, 죽음에 가까운 린치를 당하던 사람이 힘을 다해 눈을 뜨는 순간이 떠오른다.

이제 당신이 나를 이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나를 밝은 쪽으로, 빛이 비치는 쪽으로, 꽃이 핀 쪽으로 끌고 가기를 바랍니다. - P21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작은 땅의 야수들 - 2024 톨스토이 문학상 수상작
김주혜 지음, 박소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타고 얼마 안 있어서, 톨스토이 문학상을 수상한 김주혜 작가의 작은 땅의 야수들! 노벨 문학상이 너무 커다란 상이지만 워낙 이슈여서 묻혀버린 작가의 작품이다. 장편 대하소설의 폭넓은 서사와 호흡을 보여주는 톨스토이 작품상 또한 무척 큰 상이건만...

한강 작가를 응원하는 만큼 김주혜 작가도 응원하고 싶어서 장바구니에 슬며시 담아서 손에서 펼쳐 보게 되었다. 600페이지일만큼 어마어마한 양이지만, 훌쩍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 책에 대해 말해주는 게 아닐까 싶다.


거대한 호랑이의 골격이 드러나는 줄무늬가 책표지이다. 일단, 이 책은 일제 강점기에서 광복까지의 우리나라 역사를 담고 있다. 한국계 미국인이라는데, 어떻게 이리 한국의 역사와 인물을 잘 담아 버무렸는지 #파친코 의 이민진 작가 또한 재미 교포이건만 그런 글을 써냈는데, 역사를 수년 배우고 접한 우리는 편협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건만... 작가라는 이들의 역사적 세계관이 신기하고 존경스럽기 까지 하다. 


동트기 전 어둠의 산책처럼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주는 책이 되길... 김주혜 작가의 손글씨로 시작한 이야기는 추운 겨울 호랑이 사냥에 나간 야마다와 하야시 부대가 나온다. 눈밭에 쓰러져 있는 조선인을 돕게 되는 야마다 중위. 바로 그 조선인 덕에 호랑이로부터 목숨을 건지게 된다. 


기생이면서 독립운동을 돕고 있는 은실이에게는 월향이와 연화라는 두 딸이 있다. 생김새는 너무나 다르지만, 사랑하는 두 딸임은 변함이 없다. 가난으로부터 도망치다시피 은실이와의 삶을 선택한 옥희. 아빠가 남긴 은제 라이터와 어머니가 남긴 은가락지만 품고 올라왔다가 거지들과 함께 살게 된 정호. 처음 온 옥희에게 살갑게 하며 친한 친구가 되어 준 연화. 


하야시가 월향을 범하게 되어, 월향이는 임신을 하게 되고 은실이는 단이이모에게 월향이와 연화를 맡기게 된다. 더불어서 억지춘향으로 맡게 된 옥희. 고고하던 주연일 것 같은 월향과 조연이었던 옥희와 연화가 바뀌는 삶을 살게 된다. 

옥희와 연화는 기생에서 가수가 되고, 옥희보다 인물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노래에서 빛을 내보지 못하는 연화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둘을 집에 데려다 주던 잘생긴 인력거꾼 한철. 

기생의 첫 데뷔무대에서 옥희를 보고 반한 정호. 


단이 이모에게는 김성수라는 이와 이명보라는 두 명의 남자가 있다. 사랑하지만, 색이 다른 느낌? 옥희는 한철과 사랑에 빠진다. 모든 것을 내어주지만, 안동김씨였던 한철과 이루어질 수 없게 되고, 그 빈 자리를 정호가 친구의 이름으로 돌보아 준다.

보다 나은 남자가 되기 위해 이명보와 인연을 맺게 되고 또 다른 삶을 시작하는 정호.

옥희보다 나은 자신을 알아봐준 마사장과 인연을 맺어 떠나게 되는 연화.  

사랑을 찾았다고 떠났지만, 결국에는 사랑에 배신당하게 되는 옥희와 연화.


각자의 삶을 이야기하지만, 그 속에서 시대의 변화 사람의 변화를 오묘하게 잘 풀어낸다.


일본인 주인공으로는 야마다 중위와 이토 겐조가 등장한다. 둘다 잔인한 일본인이지만, 시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러한 삶을 살게 된 듯도 하다는 측은지심도 일기도 한다. 이토 겐조.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외로운 그와 실같이 이어지던 옥희의 인연은 일본이 항복하는 순간까지 이어지고, 그 오랜 삶을 함께 또 달리 해 온 그가 준 돈과 청자덕분에 잃었던 친구인 연화를 찾게 되고...

한철은 인력거꾼에서 자동차 제조공장 사장이 된다.


읽다 보면, 생각나는 역사적 인물들과 매치되는 부분이 있다.

이명보는 김구 선생같고, 남정호는 김구 선생을 따르다 공산당으로 몰려 죽음을 맡게 된 독립군들을 대변하는 것 같다. 남정호와 함께 독립운동을 하며 폭탄을 터뜨리고, 총격을 하던 이들 또한 독립운동가들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한철은 정주영 회장 같은 느낌이 들고... 


휘몰아치는 그 시대에 지금같은 편한 삶을 살아온 우리가 살아낸다면, 그들처럼 강하게 살아낼 수 있었을까? 일본에 저항하며, 그리 꼿꼿하게 우리나라를 위해 싸울 수 있었을까?

작은 땅의 야수들은 이 땅을 지켜내 준 바로 그들의 이야기를 주인공들에게 대입하여 잘 풀어내었다고 볼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이름을 날릴 수 있었던 것은 이다지도 작은 땅에 그렇게도 많았던 그이들. 야수라 불릴 일본인에게는 지긋지긋한 그들덕분이니라.. 


# 파친코   #언젠가 우리가 같은별을 바라본다면 #이름을 훔친 소년 과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한 대하 소설을 재미나게 잘 읽었다. 음... 너무 괜찮은 작품인데.. 글을 쓰기 전에는 참 거창하게 말할 것 같은데... 막상 쓰려고 보면 참 초라하네. 밑줄긋기나 열심히 해보고 나가야겠다.



자신보다 열등한 존재에게 무엇인가를 빚지는 것만큼 불명예스러운 일은 없을 겁니다. - P46

그러나 삶은 균형을 유지해야 했다.은실은 실제고 안타까운 희생처럼 느껴지는 무언가를 해야 했다. - P77

주변에 벽이 없다고 해서 대문이 제 역할을 못 하는 건 아니란다. 저게 없으면 다들 경성에 도착했다는 걸 어떻게 알겠니? 게다가 어두운 터널을 통과해 나오는 것보다 신나는 것도 없거든. 슬플 땐 그걸 기억하렴 - P102

우리는 일본인들이 우리 민족을 살해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똑같이 살해하자는 게 과연 올바른 답일까? 그 모든 게 너무 야만적이고, 그만큼 옳지도 않은 짓이야. 그래, 그런 무모한 폭력에는 이바지하지 않을 테다. - P141

그는 결코 자신의 상황을 탓하거나 과거를 후회하지 않았다. 마치 텅 빈 그릇 같았으나,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았다. - P162

이 세상 모든 존재는 죽음 앞에서 반드시 같은 행동을 보인다. 언제나 악착같은 미련을 보이며 매달리고, 언제나 죽음보다 고통을 선택한다. - P205

사랑이란 다른 이를 위해 자신이 어느 정도의 고통을 견딜 수 있느냐에 따라 정의된다. - P220

아버지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마치 국이 펄펄 끓고 있는 냄비 뚜겅을 여는 느낌이다. - P234

우리는 누구에게라도 마지막 남은 돈까지 쥐어짜 내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했다. 바로 그럴 때 진정한 반항심이 깃들기 마련이니, - P239

나는 난생처음으로 초조한 행복이란 걸 느끼고 있다. 평소의 나는 초조해하지도 행복해하지도 않는데, 그건 그 무엇도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간절히 원하는 게 생기고 보니, 갑자기 내가 내리는 모든 결정이 굉장히 중요하고 돌이킬 수 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 P249

나이를 조금 더 먹고 나니, 인생이란 무엇이 나를 지켜주느냐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지켜내느냐의 문제이며 그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겠다. - P250

시간은 모든 감정의 진폭을 납작하게 눌러버리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진짜로 존재하는 무엇인가를 지울 수는 없었다. - P359

마치 낮에 받은 햇빛을 저장하여 품고 있다가 밤이 되면 형광으로 빛나는 반딧불처럼, 소박하면서도 기적적인 생명체가 된 것만 같았다. - P363

아무도 믿지 말고, 불필요하게 고통받지도 마. 사람들이 하는 말 뒤에 숨겨진 진실을 꺠닫고, 언제나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 그게 널 위한 내 조언이야. - P512

일본에는 그처럼 사나운 맹수가 없거든. 영토로 따지면 우리가 훨씬 더 큰 나라인데도 말이야. 이 작은 땅에서 어떻게 그리도 거대한 야수들이 번성할 수 있었는지 신비로울 따름이야 - P513

하지만 그 후 한철이 깨달은바, 인생은 곧 바퀴였다. 영민한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주어진 그 바퀴를 잘 굴려 어디로든 갈 수 있다. 반면 어리석거나 운이 나쁜 사람은 그 바퀴에 깔려 무참히 짓밟힐 수도 있었다. - P544

노년이란, 인생의 모든 행복이 앞으로 다가올 날이 아닌 이미 지나간 날들에서만 발견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 P552

그때만 해도 제 말을 믿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요. 하지만 스스로 자기 자신을 믿으면, 결국 인생도 그 믿음을 따라 잘 풀려 나가더라고요. - P563

자신에 대한 진정한 믿음을 갖게 만드는 건 세상에 딱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본인에게 닥친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누군가에게서 깊은 사랑을 받는 것이죠. 운좋게도 이 두가지를 다 경험한다면, 그 사람은 자신에 대해 충분한 믿음을 지니고 남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 P564

삶은 견딜 만한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잊게 해 주기 때문에. 그래도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주기 때문에 - P603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우아한 거짓말 (양장)
김려령 지음 / 창비 / 2014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아하다 : 고상하고 기품이 있으며 아름답다. 

고상하다:품위나 몸가짐의 수준이 높고 훌륭하다.

거짓말: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 대어 말을 함.


우아한 거짓말 : 품위나 몸가짐의 수준이 높고 훌륭하며 아름답게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인 것처럼 꾸며 대어 말을 함.  


글을 쓰는 사람이 하는 한 마디 한 단어가 얼마나 많은 말을 담고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하다 보니, 제목에서 머무를 수 밖에 없다. 

나는 거짓말을 아주 싫어한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나는 거짓말을 아주 잘 하는 것도 같다. 

공동의 평화를 위해서, 그 사람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서.. 그러나 내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을 들키지 않고 나의 어설픔이 드러나 스스로를 낮추지 않도록 뻔뻔하게... 

아.. 그렇구나. 거짓말을 싫어하는 것은 그 자체로 아주 수준이 낮은 저급한 행동인데, 

내 자신이 그렇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들키지 않게 어쩌면 더욱 행동을 곧추세우고 바른 듯이 꾸며대고 있는 나 자신의 이율배반적인 행동 자체가 우아한 거짓말이구나.

 

드라마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좋아하지 않다기 보다는 나이가 들 수록 영상에 대한 집중력이 만힝 약화되어 회피중이다. 우아함의 대명사라고 느끼는 김희애 배우가 오버랩되는 제목인 우아한 거짓말에 손이 갔다. 영상은 좋아하지 않지만, 이야기는 좋아하니깐 좀 쉽게 읽을 책들을 찾다보니..


포크 레인이 사람을 치는 사고가 흔하지는 않는데... 그 불의의 사고로 남편을 잃고 천지와 만지 자매를 씩씩하게 키우는 엄마. 혼자서 아이들을 키우는 것이 얼마나 힘들지 이제는 상상이 되는데.. 삶을 살아 가다보면 삶의 이유는 아이들이 뒷전으로 물러날 때가 있다. 

세심하고 따뜻하고 어른스러운 천지. 무심하면서도 소탈한 첫째 만지.

천지가 죽을 이유는 없었다. 천지가 죽을 줄은 몰랐다. 왜??

다섯 개의 빨간 실 뭉치에 다잉 메시지? 유서를 남기고 천지가 죽었다

중1 아이의 자살로 시작하는 과히 충격적인 시작이 

그리고 그 이유가 무얼까? 하는 질문의 힘으로...

무엇이 그렇게 힘들었을까? 아이들에게는 세상인 친구. 

뒤틀린 우정 속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죽음 뿐이었을까? 그러나, 너무 착한 천지는 그 인연을 끊기보다는 이어가길 원한다. 

우아한 거짓말. 화연이와 천지의 관계에서 자주 하는 패턴이 바로 그것 일 듯하다.

그리고, 우아한 거짓말처럼 자신에게 잘못한 이들을 용서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용서하고 갈꺼면.. 가지 말지... ㅜㅜ 

천지가 간 빈자리에 자신을 반성하기보다는 놓아 버리려는 화연

천지의 자리를 메꾸지 않으면서 무너지지 않으려 서로기대며 버티는 씩씩한 듯 애처로운 모녀를 지켜보다 보니.. 

어느덧 네 개의 빨간 실 뭉치가 열리며 끝난다. 

엄마, 언니, 화연, 미라(유일하게 동조하지 않은 친구이지만, 차라리 무심했으면 하였던... ) 

빨간 실은 인연 이라는데... 인연을 이어가지.. 너무 일찍 져버린 천지가 아프게 그립겠다.


민지가 '왜?'라는 원인 규명성 의문을 품고 있다면, 화연은 '내가 뭘?'이라는 회피성 의문을 품고 있었다. 

사실이 거짓이 되고, 차라리 거짓을 진실이라고 믿게 대답해야 '그럼 그렇지.'하는 표정으로 '나가 봐."라고 했던 선생님들. 진실이 아니라 선생님 마음에 드는 말을 해야 빠져나갈 수 있는 게임이었다.

아이들은 2시와 3시의 진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 자신들이 책임지지 않아도 되는 영악한 놀이를 즐기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착한 애는 가만히 놔두면 되는데, 꼭 가지고 놀려는 것들이 생겨서 문제지. 자기 맘에 들면 착한 거고, 안 들면 멍청한 건가?

"사과하실 거면 하지 마세요. 말로 하는 사과는요, 용서가 가능할 때 하는 겁니다. 받을 수 없는 사과를 받으면 억장에 꽂힙니다. 더군다나 상대가 사과받을 생각이 전혀 없는데 일방적으로 하는 사과, 그거 저 숨을 구멍 슬쩍 파 놓고 장난치는 거예요. 나는 사과했어, 그 여자가 안 받았지, 너무 비열하지 않나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