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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땅의 야수들 - 2024 톨스토이 문학상 수상작
김주혜 지음, 박소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6월
평점 :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타고 얼마 안 있어서, 톨스토이 문학상을 수상한 김주혜 작가의 작은 땅의 야수들! 노벨 문학상이 너무 커다란 상이지만 워낙 이슈여서 묻혀버린 작가의 작품이다. 장편 대하소설의 폭넓은 서사와 호흡을 보여주는 톨스토이 작품상 또한 무척 큰 상이건만...
한강 작가를 응원하는 만큼 김주혜 작가도 응원하고 싶어서 장바구니에 슬며시 담아서 손에서 펼쳐 보게 되었다. 600페이지일만큼 어마어마한 양이지만, 훌쩍 읽어낼 수 있다는 것이 책에 대해 말해주는 게 아닐까 싶다.
거대한 호랑이의 골격이 드러나는 줄무늬가 책표지이다. 일단, 이 책은 일제 강점기에서 광복까지의 우리나라 역사를 담고 있다. 한국계 미국인이라는데, 어떻게 이리 한국의 역사와 인물을 잘 담아 버무렸는지 #파친코 의 이민진 작가 또한 재미 교포이건만 그런 글을 써냈는데, 역사를 수년 배우고 접한 우리는 편협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건만... 작가라는 이들의 역사적 세계관이 신기하고 존경스럽기 까지 하다.
동트기 전 어둠의 산책처럼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주는 책이 되길... 김주혜 작가의 손글씨로 시작한 이야기는 추운 겨울 호랑이 사냥에 나간 야마다와 하야시 부대가 나온다. 눈밭에 쓰러져 있는 조선인을 돕게 되는 야마다 중위. 바로 그 조선인 덕에 호랑이로부터 목숨을 건지게 된다.
기생이면서 독립운동을 돕고 있는 은실이에게는 월향이와 연화라는 두 딸이 있다. 생김새는 너무나 다르지만, 사랑하는 두 딸임은 변함이 없다. 가난으로부터 도망치다시피 은실이와의 삶을 선택한 옥희. 아빠가 남긴 은제 라이터와 어머니가 남긴 은가락지만 품고 올라왔다가 거지들과 함께 살게 된 정호. 처음 온 옥희에게 살갑게 하며 친한 친구가 되어 준 연화.
하야시가 월향을 범하게 되어, 월향이는 임신을 하게 되고 은실이는 단이이모에게 월향이와 연화를 맡기게 된다. 더불어서 억지춘향으로 맡게 된 옥희. 고고하던 주연일 것 같은 월향과 조연이었던 옥희와 연화가 바뀌는 삶을 살게 된다.
옥희와 연화는 기생에서 가수가 되고, 옥희보다 인물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노래에서 빛을 내보지 못하는 연화 사이에 금이 가기 시작한다. 둘을 집에 데려다 주던 잘생긴 인력거꾼 한철.
기생의 첫 데뷔무대에서 옥희를 보고 반한 정호.
단이 이모에게는 김성수라는 이와 이명보라는 두 명의 남자가 있다. 사랑하지만, 색이 다른 느낌? 옥희는 한철과 사랑에 빠진다. 모든 것을 내어주지만, 안동김씨였던 한철과 이루어질 수 없게 되고, 그 빈 자리를 정호가 친구의 이름으로 돌보아 준다.
보다 나은 남자가 되기 위해 이명보와 인연을 맺게 되고 또 다른 삶을 시작하는 정호.
옥희보다 나은 자신을 알아봐준 마사장과 인연을 맺어 떠나게 되는 연화.
사랑을 찾았다고 떠났지만, 결국에는 사랑에 배신당하게 되는 옥희와 연화.
각자의 삶을 이야기하지만, 그 속에서 시대의 변화 사람의 변화를 오묘하게 잘 풀어낸다.
일본인 주인공으로는 야마다 중위와 이토 겐조가 등장한다. 둘다 잔인한 일본인이지만, 시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러한 삶을 살게 된 듯도 하다는 측은지심도 일기도 한다. 이토 겐조. 모든 것을 다 가졌지만, 외로운 그와 실같이 이어지던 옥희의 인연은 일본이 항복하는 순간까지 이어지고, 그 오랜 삶을 함께 또 달리 해 온 그가 준 돈과 청자덕분에 잃었던 친구인 연화를 찾게 되고...
한철은 인력거꾼에서 자동차 제조공장 사장이 된다.
읽다 보면, 생각나는 역사적 인물들과 매치되는 부분이 있다.
이명보는 김구 선생같고, 남정호는 김구 선생을 따르다 공산당으로 몰려 죽음을 맡게 된 독립군들을 대변하는 것 같다. 남정호와 함께 독립운동을 하며 폭탄을 터뜨리고, 총격을 하던 이들 또한 독립운동가들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 한철은 정주영 회장 같은 느낌이 들고...
휘몰아치는 그 시대에 지금같은 편한 삶을 살아온 우리가 살아낸다면, 그들처럼 강하게 살아낼 수 있었을까? 일본에 저항하며, 그리 꼿꼿하게 우리나라를 위해 싸울 수 있었을까?
작은 땅의 야수들은 이 땅을 지켜내 준 바로 그들의 이야기를 주인공들에게 대입하여 잘 풀어내었다고 볼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세상에 이름을 날릴 수 있었던 것은 이다지도 작은 땅에 그렇게도 많았던 그이들. 야수라 불릴 일본인에게는 지긋지긋한 그들덕분이니라..
# 파친코 #언젠가 우리가 같은별을 바라본다면 #이름을 훔친 소년 과 같은 시대를 배경으로 한 대하 소설을 재미나게 잘 읽었다. 음... 너무 괜찮은 작품인데.. 글을 쓰기 전에는 참 거창하게 말할 것 같은데... 막상 쓰려고 보면 참 초라하네. 밑줄긋기나 열심히 해보고 나가야겠다.
자신보다 열등한 존재에게 무엇인가를 빚지는 것만큼 불명예스러운 일은 없을 겁니다. - P46
그러나 삶은 균형을 유지해야 했다.은실은 실제고 안타까운 희생처럼 느껴지는 무언가를 해야 했다. - P77
주변에 벽이 없다고 해서 대문이 제 역할을 못 하는 건 아니란다. 저게 없으면 다들 경성에 도착했다는 걸 어떻게 알겠니? 게다가 어두운 터널을 통과해 나오는 것보다 신나는 것도 없거든. 슬플 땐 그걸 기억하렴 - P102
우리는 일본인들이 우리 민족을 살해하고 있다고 말하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똑같이 살해하자는 게 과연 올바른 답일까? 그 모든 게 너무 야만적이고, 그만큼 옳지도 않은 짓이야. 그래, 그런 무모한 폭력에는 이바지하지 않을 테다. - P141
그는 결코 자신의 상황을 탓하거나 과거를 후회하지 않았다. 마치 텅 빈 그릇 같았으나,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았다. - P162
이 세상 모든 존재는 죽음 앞에서 반드시 같은 행동을 보인다. 언제나 악착같은 미련을 보이며 매달리고, 언제나 죽음보다 고통을 선택한다. - P205
사랑이란 다른 이를 위해 자신이 어느 정도의 고통을 견딜 수 있느냐에 따라 정의된다. - P220
아버지 이야기를 꺼낼 때마다 마치 국이 펄펄 끓고 있는 냄비 뚜겅을 여는 느낌이다. - P234
우리는 누구에게라도 마지막 남은 돈까지 쥐어짜 내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조심했다. 바로 그럴 때 진정한 반항심이 깃들기 마련이니, - P239
나는 난생처음으로 초조한 행복이란 걸 느끼고 있다. 평소의 나는 초조해하지도 행복해하지도 않는데, 그건 그 무엇도 기대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간절히 원하는 게 생기고 보니, 갑자기 내가 내리는 모든 결정이 굉장히 중요하고 돌이킬 수 없는 것처럼 여겨졌다. - P249
나이를 조금 더 먹고 나니, 인생이란 무엇이 나를 지켜주느냐가 아니라 내가 무엇을 지켜내느냐의 문제이며 그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임을 알겠다. - P250
시간은 모든 감정의 진폭을 납작하게 눌러버리기 마련이지만, 그럼에도 진짜로 존재하는 무엇인가를 지울 수는 없었다. - P359
마치 낮에 받은 햇빛을 저장하여 품고 있다가 밤이 되면 형광으로 빛나는 반딧불처럼, 소박하면서도 기적적인 생명체가 된 것만 같았다. - P363
아무도 믿지 말고, 불필요하게 고통받지도 마. 사람들이 하는 말 뒤에 숨겨진 진실을 꺠닫고, 언제나 살아남을 방법을 찾아. 그게 널 위한 내 조언이야. - P512
일본에는 그처럼 사나운 맹수가 없거든. 영토로 따지면 우리가 훨씬 더 큰 나라인데도 말이야. 이 작은 땅에서 어떻게 그리도 거대한 야수들이 번성할 수 있었는지 신비로울 따름이야 - P513
하지만 그 후 한철이 깨달은바, 인생은 곧 바퀴였다. 영민한 사람이라면 자신에게 주어진 그 바퀴를 잘 굴려 어디로든 갈 수 있다. 반면 어리석거나 운이 나쁜 사람은 그 바퀴에 깔려 무참히 짓밟힐 수도 있었다. - P544
노년이란, 인생의 모든 행복이 앞으로 다가올 날이 아닌 이미 지나간 날들에서만 발견된다는 것을 의미했다. - P552
그때만 해도 제 말을 믿어준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요. 하지만 스스로 자기 자신을 믿으면, 결국 인생도 그 믿음을 따라 잘 풀려 나가더라고요. - P563
자신에 대한 진정한 믿음을 갖게 만드는 건 세상에 딱 두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본인에게 닥친 어려움을 스스로 극복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누군가에게서 깊은 사랑을 받는 것이죠. 운좋게도 이 두가지를 다 경험한다면, 그 사람은 자신에 대해 충분한 믿음을 지니고 남은 삶을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 P564
삶은 견딜 만한 것이다. 시간이 모든 것을 잊게 해 주기 때문에. 그래도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다. 사랑이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해주기 때문에 - P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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