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알고싶다 > 정서발달이 자유로운 어린이들의 체벌은 신중해야 한다.
성격이 변하는 건 어려운 일이다. 특히 나이를 먹을 수록 성격이 유연성을 잃고 고정되기가 쉽다. 그 정점은 개인차가 있겠지만 대체로 40살이다. 40살이 넘어서 성격이 변화하는 것은 매우 드문 예로서, 실제로 신경정신과의, 인격의 재구성, 변화를 유도하는 정신분석치료에서 40세 이상의 경우 분석에 적합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의 성격 변화는 매우 자유롭다. 우리 아이는 다른 아이보다 내성적인 경향이 있다는 둥, 외향적이라는 둥 하는 부모들이 있는데 실제로 소아-청소년기, 특히 어린이들의 경우에는 성격이 유연성이 많아서 나쁜 성격이라도 수정이 비교적 용이하고, 다양한 행동 모델로의 발달이 어렵지 않다. 또 표현이 솔직하고 구체적이며 단순해 소아의 정신적인 문제는 성인보다 오히려 치료하기가 쉬울 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양육하는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의 정서적 결함을 쉽게 규정짓고 꾸짖는 것은 아이의 정신적 성숙에 별로 도움이 안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아이들의 정신은 발달하는 나이가 정해져 있으므로 아이의 성격이 쉽게 발달하지 않는 것 같아도 꾸준히 관찰할 필요성이 있다는 생각이다.
대체적으로 두살 이전의 어린이는 의존적, 자기 중심적, 수동적인 것이 일반적이며, 두살에서 세살 사이에서 자율성이 형성된다. 여섯살까지 경쟁 욕구가 발달하는 경우가 많고, 또래 집단과 어울리는 것을 배우는 나이는 여섯 살에서 열두살 사이 정도이다. 인간의 주체성은 대부분 열 세살에서 열 아홉살 사이에 형성된다.
삐아제의 인지발달이론에 의하면 어린이들은 2세 정도가 되면 생각한 뒤 행동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도덕적 판단을 논리적으로 할 수 있는 나이는 훨씬 뒤에 나타난다. 일곱 살 이하의 어린이들은 직관적 사고를 한다. 논리적이고 연역적인 사고를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기 때문이다. 이 어린이들은 도덕적 판단을 질보다 양으로 하며, 인과 관계를 이해하지 못한다. 컵을 깨고도 자기 실수인지 모르는 것이다. 때문에 이런 어린이들을 혼내면 자신이 왜 혼나는지 모르기 때문에 교육적 효과가 별로 없다. 물론 일곱살 이전 아이들도 나쁜 행동을 하면 벌을 받는다는 건 안다. 하지만 이 꼬맹이들의 사고는 체계적이지 못할 뿐더러 비논리적이다. 어린이는 초등학교 초년생 정도는 되어야 구체적인 사물과 구체적인 행위에 대해서 체계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어린이들은 아까 말했다시피 성격 변화가 유연하기 때문에 환경이 성격 발달에 매우 중요한데, 부모의 지나친 체벌은 아이들의 성격 발달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자신감 결여, 우울, 또래 관계의 미숙 등을 초래할 수 있다. 돌봐줌이 부족한 부모 사이에서 심한 체벌을 경험한 어린이들이 커서 우울증 등을 겪을 확률이 큰 것은 우연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