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가면 1 - 애장판
스즈에 미우치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2년 6월
평점 :
품절


난 유리가면을 죽기 전까지 세 번쯤 읽을 생각이다. 지금은 고등학교 때 이후 두 번째니까 한 번쯤 더.

어린 시절, 내가 아직 깨닫지 못하는 天才가 나에게 있었으면 하고 간절히 바랐었다. 어느 날 알고 보니 나는 부잣집 딸이었더라는 상상처럼, 간절히. 내일 모레 마흔인 나는 아직도 내 안에 숨겨진 어떤 가능성이, 마치 미켈란젤로를 아직 만나지 못한 대리석처럼 숨겨있으리란 기대를 버리지 않는다.

중2때부터 연극 공연장을 혼자 찾아 다니며 구석자리를 지키던 나에게 유리가면 속의 마야는 마치 내 모습 같이 보였다. 무대에만 오르면 신기가 내린 사람 같이 달라지는 마야. 내게도 그런 계기가, 내게도 그런 끼가, 내게도 그런 열정을 읽어줄 영원의 지지자가 있다면...

연극을 모르는 사람이라면 쓸수도 그릴 수도 없는 만화가 이 유리가면이다. 깊이 있게 들어가서 영혼으로 쓰고 그린 것들은 아름다울 수밖에 없지만 이 만화는 아마도, 배우가 되고 싶었던 작가의 소망이 담기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하게 만든다.

나는 마야가 폭풍의 언덕의 캐더린을 연기하는 장면에서 울었다. 폭풍의 언덕을 책으로 읽을 때는 히스클리프가 미친놈 이상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는데 캐더린의 유령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미친 듯 그녀의 이름을 부르는 대목에서 정말 이렇게 사랑할 수도 있겠구나 싶어서 그 새벽에 가슴을 저미며 울었다. 나이 서른 여덟에.

물론 다시 읽으니 전형적인 만화적 구도가 눈에 보이고 마야와 아유미의 대결구도도 정형화가 되어 읽히긴 한다. 일본만화에서 많이 등장하는 선과 악, 혹은 두 재인들 간의 치열한 경쟁, 겉으로 보기엔 좀더 화려하고 뛰어나 보이는 사람에게 세간의 이목이 집중되지만 사실은 미묘한 차이, 섬세한 천재성으로 인해 결국은 초라해 보이던 주인공에게 승리의 눈길이 돌아가는, 그런 구조 말이다.

어째 매번 마야의 소박하지만 생동감있는 타고난 끼를 누군가가 발견해주는가 말이다. 실제로 우리들은, 우리들의 선행과 뛰어남은 종종 아무의 눈에도 띄질 않아 그냥 그대로 묻혀버리곤 하지 않는가 말이다.

그러나, 마야와 아유미가 전혀 다른 양상으로 방향으로 자신들의 과제를 소화해 가는 모습은 정말 예측이 불가하다. 천재는 마야가 아니라 작가 바로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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