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비를 기르다
윤대녕 지음 / 창비 / 200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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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으로도 윤대녕이 좋아졌다라고 말하긴 어렵다. 여자 작가들은 자기를 대신함에 틀림없는 소설속 '여자'한테 너무 함몰되고 남자 작가들에게는 너무나 대상화된다. 오직 사랑의 대상. 윤대녕을 좋아하지 않는 이유도 늘 그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여자들이 그럴 듯해 보이지만 사실은 화자의 성적 대상에 불과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 소설도 별다르지 않다.  다만 이 책에서 이전 소설들의 자의식의 늪에서 오만한 눈빛에서 조금은 빠져나오려 애쓴, 그래서 이전에 자신의 '근원'에 대해 고민했던 그가 이제 사람들의 근원에 대해 고민하게 된 듯한 느낌을 받았기에 말하자면 그도 늙어가는지 혹은 성숙하는지, 그런 인상이다.

하긴, 나에게, 나 자신도 설명할 수 없는 아득한 그림자를 발견하고 그리워하던 시절이 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나만 그런 줄 알았다가, 남들은 생각도 환상도 없이 생활만 있는 줄 알았다가 사실 인간은 누구나 다 그러한 아지 못할 그리움들이 있음을 나이들면서 알게 되었다. 그것은 이해이다. 공감이겠지.

윤대녕의 공감이 서늘하다. 영영 다시는 돌아나오지 않을 대숲(나에게는 비오는 바닷가이다), 뭔가를 찾아헤매다니는, 바다를 바라보는 여행, 먼 곳을 다녀온 흔적 또는 추억,  집...그 이유가 어머니 혹은 아버지 혹은 생살 베어내듯 헤어진 정인이든, 무엇이든 사람들은 아득한 그 무엇을 하나씩 가지고 그걸 찾으려 애쓰거나 집착하거나 아예 거기로 가서 묻혀버린다. 차라리 행복해 보인다, 차라리 행복해 보인다...

하긴, 내가 소설을 쓴대도 남자의 존재를 이해하긴 어려울 것 같다. 그로부터 받은 사랑, 받고 싶었던 사랑을 소설에 녹여내기만도 바쁘고 달콤하고, 그 이상 한계가 있을 것 같다. 이렇게 이해를 해놓고도 윤대녕이 이 부분을 조금 극복해 주면 나는 그를 더 좋아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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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학교 - 달콤한 육아, 편안한 교육, 행복한 삶을 배우는
서형숙 지음 / 큰솔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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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글쓴 이의 의도는 오히려 그와 정반대였겠지만 결국 '좋은 대학 가기'가 오늘날 교육의 궁극적 목표임을 이 책이 오히려 부추기지는 않는지?

지은이가 존경스러웠고 교육방식도 마음이 들었다.  아무리 어미로서의 자부심이 덧붙여진 것일지라도 그집 아이들, 한 번쯤 보고 싶을 만큼 괜찮은 아이들일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한 가지, 이 책이 출판이 될 수 있었고 뜰 수 있었던 결정타는 역시 그 아이들이 '좋은 대학'을 갔기 때문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자꾸 떨쳐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만약, 그렇게 잘 키워진 아이들,  대학을 가지 않았거나 소위 말하는 별볼일 없는 대학을 갔더라도 그 아이들의 품성이며 자질이 달라지진 않았을 것이다. 공부를 잘 한다는 것은 여러 갖춰야 할 바탕 중 일부이고 대학 입학에 자신의 실력만이 아닌 부수적인 것들이 작용한다 전제한다면 그집 아이들도 좋은 대학을 못 갔을 수도 있는데, 만약 그랬더라도 이 책이 이토록 칭송을 받았을까 하는 의심이 든다. 결국 오늘 날 대한민국에서 자녀 교육의 성공 여부는 좋은 대학을 갔나 못 갔나이고 이 책도 그런 열망에 사로잡힌 어미들 가슴에 호기심의 불을 지폈다고 본다.

둘째, 저자는 '사랑으로'라고 말하지만 과연 단지 '사랑만으로' 교육이 되는 것 맞는지.

서형숙 씨에 비하면 나는 참으로 작고 보잘 것 없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그 이의 정력, 열성, 인격 모두가 부럽다. 하지만 한 편, 나 역시 그이 못지않게 우리 아이들을 간절히 사랑하며 그이가 했던 방식들과 별 다를 바 없는 방식들로 교육을 해왔다. 교육이란 게 들이붓는 것(정성)과 반드시 상관관계가 있지만은 않음을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확인하고, 다만 기대의 눈높이를 너무 높이지 말라고, 또한 눈에 보이는 것이 다는 아니라고, 지금 힘겨워하고 빌빌거리는 저 아이들이 앞으로 10년, 20년 후에도 여전히 불행해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어보자고, 그런 마음으로 아이들을 다독인다.

내 아이들(집과 학교의)은 어쩌면 좋은 대학을 못 갈지도 모른다. 아주 평범한 아이로 살아가고 있다. 만약 그것이 '덜 성취한 것'이라 해도 그렇게 되게 된 데에 작용한 것들은 유전적인 것, 천성적인 것, 경제적인 것, 등등 많은 요인들이 있을 것이다. 물론 어미인 나의 부족함도 원인이 되었을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좋은 점들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사교육에 휘둘리는 불행한 아이를 만들고 싶지 않아서 억지 학원 보내기 따위는 하지 않았고 다만 기회를 많이 만나게 해주려 시간 날 때마다 연극을 보고 캠프를 보내고, 집 마루를 온통 어지럽히고 창문 가득 그림을 그리게 하며 아이들을 키웠다. 그런 내 아이들은 내세울 것도 무엇도 없고 학원도 학습지도 해 본 적이 없기에 공부도 잘 못한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서형숙씨가 자녀들을 학원으로 내몰지 않아서 공부를 잘 하게 된 것이 아닌 것처럼 내가 학원을 보내지 않아서 우리 아이들이 공부를 썩 잘하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니라 믿는다. 나는 본질에 있어서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하지만 세상 사람들은 그집 아이들과 우리집 아이들을 달리 볼 것이다. 왜? 공부를 잘 하는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니까. 좋은 대학을 간 아이들과 (어쩌면) 아닌 아이들이니까.

그래서 나는 이 책의 순수한 의도를 모르는 바가 아니면서도 이 책을 읽으며 조금은 슬펐다, 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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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평전
최하림 지음 / 실천문학사 / 200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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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영 시가 내 감성과 잘 맞지는 않는다. 그러나 조금 준엄하게 고개를 숙이고, 그의 시를 받아들인다. 나는 좀 감성적인 편이고 그의 시는, 때로 격정적일 망정  감성적이라기보다 지성적이다. 그런 메마름은 받아들일 수는 있어도 좋아하진 않는다.

평전을 사면서 설Ž던 것은, 제대로 총괄적으로 읽어보지 못했던 그의 시를 모두 만나보리라는 야심과, 대개의  평전들을 통해서 만날 수 있는 인간 냄새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동료 중에 김수영 시인의 인척이 있다. 나는 그의 친근한 반응을 기대하며 내가 김수영 평전을 샀으며 이제 막 읽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렸는데 그는 의외의 소릴 한다. 그 평전은 말이 많았단다. 고소를 할까도 생각했다 한다. 다시 말하면 평전의 내용에 대해 그 가족들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단다.

아주 느린 속도로 평전을 읽어나가며, 나는 차라리 시 전집만 읽고 말 것을 하고 후회했다. 평전 속의 김수영은 내가 이름으도 받아들이던 그 김수영이 아니었다.  가족에게 함부로 대하고 매우 고집이 세고 세상살이에 서툴고 때로는 비겁하고 소심한 남자일 뿐이다. 이런 사람에게서 그런 시가 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인간적 일상과 삶은 그렇다치고, 김수영 시에 대한 흥미진진한 비평을 기대했던 나자신도 우스워졌다. 평론은 없다. 거의 없다. 후기를 쓴 교수는 속상하지도 모르겠지만 시에 대한 비평은 없다시피 하다. 도대체 뭘 읽으란 말인가.

아니, 평전 때문은 아니지만 '오래된 정원' 영화를 보면서 가장 선명한 지적 세계를 가진 사람들의 엄청난 인력 낭비의 그 시대를 생각하면서, 그것이 단지 7,80년대만의 문제가 아님을 생각하면서,어쩌면 우리에게 김수영은(그가 위대한 시인이 아니라는 의미가 아니라) 시대가 낭비한 수많은 인재들, 그 속에 겨우 살아남은 얼마 안되는 인재들 중 그 하나가 아닐까 하는 가난한 마음을 가져 보았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돌아온 침대 머리맡의 김수영 평전은 더욱 그를 초라하게 만든다. 뭐랄까, 시인은 시만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일까

이런 마음 갖는 일은 쓰라리다. 차라리 시만 읽을 것을 왜 그의 인간적 향기를 맡아보려 했던가 하는 후회... 거기에 작가의 책임은 없는 것일까. 나는 내내, 김수영 시 하나하나에 대한 평가도 없이, 별로 남지도 않았을 기록들을 역추적하며 김수영의 행적을 시시콜콜 '재건'해 놓은 최하림이란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별로 친하지도 않았다는데, 김수영을 매우 흠모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데 그는 왜 이런 방대한 작업에 착수했을까 그를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일까?? 오죽했으면 평전을 다 읽고 최하림 이름을 검색해 보았을까. 그의 시집은 또 어떨까 궁금해졌을까? 시집을 사서 읽으며 글은 사람을 말해준다는데, 사람을 말해주는 글은 시인가 잡문인가, 어디까지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가슴 쓰린 독서였다. 김수영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평전은 읽지 말라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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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3-26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인은 시인으로만 .. 영화배우는 배우로만 그럴때가 편할때가 많아요 .. 글을 읽다가 .. 그냥 그런 느낌은 매일매일 너무 많은지라 .. 분노하고 화나는 건 때론 .. 따뜻한 감성을 기대하는 이들이 지불해야할 댓가일지도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람의 사생활 창비시선 270
이병률 지음 / 창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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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들이 주는 배신감이랄지...

아무 데나 펼쳐, 단 한 귀절이라도 마음을 건드리면 시집을 산다. 그렇게 모은 기백 권의 시들은 저마다 사연을 나의 사연을, 안고 있고 접혀 있고 뭔가가 적혀 있기도 하다.  그러나 요즘, 시들이 날 배신한다. 아무리 오랜 시간 서점에 서 있어도 사고픈 시가 없다. 사고 싶은 시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이런 시를 팔아먹겠다고 모아놓았단 말인가 싶은 괘씸한 생각이 드는 책들이 왜 이리 많은지.

젊은 시인들이 그런 시집을 내놓으면 그 건방짐이 한심하다. 그런데 이미 명망을 얻었고 내 마음에도 들어와 있는 시인이 또 그런 시집을 내놓으면, 뭐랄까 이름이 알려졌기에 그저 일기장에 끄적거린 글들도 모아서 시집이랍시고 내놓으면 팔릴줄 아는가 싶어 또 한심하다.  시정신이란 것이 있지 않은가. 가장 순열해야 할 것 같은 그 무엇. 돈 되기 위해 재미나게 쓰는 시 따위를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그래도 괜찮다고 하는 시인들조차 그러해서 읽을 시가 없는 세상이 되었는가 싶어 번번이 돌아나오곤 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오랫만에 어, 괜찮은 걸 싶은 사람을 보았다. 나이가 많다 할 사람도 아닌 듯한데.. 마음은 맑고 표현은 정갈하고, 건방지지도 않고 위악을 떨지도 않는다. 외로우면서도 세상일에 초연한 척하지도 않는다. 시를 잘썼다, 아니다, 진실되다 아니다를 평할 능력은 내게 없다.  세상 시들의 진심을 읽을 능력이 내게 있다는 오만은 부리고 싶지 않다. 그저 나는 내 마음을 건드리는 시를 '좋아한다.' '좋은''잘 쓴' 시인지는 난 모른다.

이병률의 쓸쓸하고 조금 겸손한 어깨가  좋았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검색하여 다른 시와 여행기도 한꺼번에 샀다. 가끔 누군가가 좋아지면 그 사람한테 감정도 정성도 몰아준다. 그렇게 몰아서 나는 그의 책들은 한 동안 만났다. 김선우, 세상 시들이 오만해졌다고 느낄 때도 김선우가 있다, 위안이 되듯이. 그런 위안의 이름에 이병률을 넣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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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7-01-21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보관함으로 옮깁니다.
 
처음처럼 - 신경림의 소리 내어 읽고 싶은 우리 시
신경림 엮음 / 다산책방 / 200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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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이렇게 예쁘게 만들다니... 시집이라면 이런 대접을 받아 마땅하다...

이전까지 나는 김용택 시인의 '시가 내게로 왔다'를 여러 권 사두었다가 제자들이 오면 선물하곤 했었다. 그 책으로 나와 교감하고, 인생의 한 호흡 쉼의 시간을 가졌다 하고 시를 사랑하게 되었다 하고 나의 사랑을 실감한다 하는 제자들이 기하더냐. 그런데 앞으로 나는 이, 신경림 선생이 엮은 이 시집으로 그걸 갈음하려 한다. '시가..'는 내가 좋아하는 시들이 많긴 하지만 사실 좀 어려운 시들도 많다. 어른스러운 정서라 할까... 시집이야 물론 두고두고 읽는 것이니까 처음에는 선생님이 접어주신 시만 읽어요, 하던 아이들도 대학생이 되고 하면서 다른 쪽을 펼쳐 읽는다고는 하지만 대개는 중학생이거나 고등학생인 나의 제자들에게 어려운 시도 많았다. 하지만 '처음처럼'은 대체로, 읽는 것만으로 해석이 필요치 않은 시들이 많다.

그런 시들이 좋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읽을 때에는, 어쩌면 신경림 선생의 취향이 그런 건지도 모르겠다. 그분 자신의 시들이 그렇지 않은가, 함축적이고 상징적이기보다 서사적인 시들이 많다. 선정된 시들도 그렇다. 아니더라도 이면의 또 다른 해석보다는 있는 그대로 읽을 수 있는 시들이다.

그리고 그림이 참 따스하다. 나는 석양을 그린 그림을 펼쳐 한참 들여다 보았다. 황량하고, 황량하지만 저 지평선을 넘으면 그래도 집들이 있을 것 같은 석양의 광장 혹은 공터.. 그림들이 다 어여쁘다.

선생은 뭐라 시에 대한 당신의 느낌 또는 해석을 달아 놓으셨다.  없어도 좋았으련만... 시인이 고른 안목만 얻어도 좋았다. 굳이 해석이 필요하랴. 해석조차 시와 꼭 같기도 하거늘... 김용택의 '덧붙임'이 그 자신의 경험과 시적 언어로 풀어진 것이었다면 신경림의 그것은 마치 추임새 같다. '맞어~', '그려, 그렇지...' 뭐 이런,,,,

몇 권을 사두련다. 재우를 위해서, 동섭이를 위해서, 앞으로도 내 품을 들렀다가 떠날 나의 소년들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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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7-01-05 16: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풀꽃선생님은 좋은 선생님입니다.^^
보관함에 담아갑니다.

인터라겐 2007-01-10 21: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풀꽃선생님 안녕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요즘들어 시집엔 손이 가지 안았는데...예쁜 책에 마음을 실어 봐야 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