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영 평전
최하림 지음 / 실천문학사 / 2001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김수영 시가 내 감성과 잘 맞지는 않는다. 그러나 조금 준엄하게 고개를 숙이고, 그의 시를 받아들인다. 나는 좀 감성적인 편이고 그의 시는, 때로 격정적일 망정  감성적이라기보다 지성적이다. 그런 메마름은 받아들일 수는 있어도 좋아하진 않는다.

평전을 사면서 설Ž던 것은, 제대로 총괄적으로 읽어보지 못했던 그의 시를 모두 만나보리라는 야심과, 대개의  평전들을 통해서 만날 수 있는 인간 냄새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동료 중에 김수영 시인의 인척이 있다. 나는 그의 친근한 반응을 기대하며 내가 김수영 평전을 샀으며 이제 막 읽기 시작했다는 것을 알렸는데 그는 의외의 소릴 한다. 그 평전은 말이 많았단다. 고소를 할까도 생각했다 한다. 다시 말하면 평전의 내용에 대해 그 가족들은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단다.

아주 느린 속도로 평전을 읽어나가며, 나는 차라리 시 전집만 읽고 말 것을 하고 후회했다. 평전 속의 김수영은 내가 이름으도 받아들이던 그 김수영이 아니었다.  가족에게 함부로 대하고 매우 고집이 세고 세상살이에 서툴고 때로는 비겁하고 소심한 남자일 뿐이다. 이런 사람에게서 그런 시가 나왔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인간적 일상과 삶은 그렇다치고, 김수영 시에 대한 흥미진진한 비평을 기대했던 나자신도 우스워졌다. 평론은 없다. 거의 없다. 후기를 쓴 교수는 속상하지도 모르겠지만 시에 대한 비평은 없다시피 하다. 도대체 뭘 읽으란 말인가.

아니, 평전 때문은 아니지만 '오래된 정원' 영화를 보면서 가장 선명한 지적 세계를 가진 사람들의 엄청난 인력 낭비의 그 시대를 생각하면서, 그것이 단지 7,80년대만의 문제가 아님을 생각하면서,어쩌면 우리에게 김수영은(그가 위대한 시인이 아니라는 의미가 아니라) 시대가 낭비한 수많은 인재들, 그 속에 겨우 살아남은 얼마 안되는 인재들 중 그 하나가 아닐까 하는 가난한 마음을 가져 보았었다. 그런데 영화를 보고 돌아온 침대 머리맡의 김수영 평전은 더욱 그를 초라하게 만든다. 뭐랄까, 시인은 시만으로 바라보아야 하는 것일까

이런 마음 갖는 일은 쓰라리다. 차라리 시만 읽을 것을 왜 그의 인간적 향기를 맡아보려 했던가 하는 후회... 거기에 작가의 책임은 없는 것일까. 나는 내내, 김수영 시 하나하나에 대한 평가도 없이, 별로 남지도 않았을 기록들을 역추적하며 김수영의 행적을 시시콜콜 '재건'해 놓은 최하림이란 사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별로 친하지도 않았다는데, 김수영을 매우 흠모하는 것처럼 보이지도 않는데 그는 왜 이런 방대한 작업에 착수했을까 그를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일까?? 오죽했으면 평전을 다 읽고 최하림 이름을 검색해 보았을까. 그의 시집은 또 어떨까 궁금해졌을까? 시집을 사서 읽으며 글은 사람을 말해준다는데, 사람을 말해주는 글은 시인가 잡문인가, 어디까지인가를 고민하게 되었다. 가슴 쓰린 독서였다. 김수영 시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평전은 읽지 말라고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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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3-26 0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인은 시인으로만 .. 영화배우는 배우로만 그럴때가 편할때가 많아요 .. 글을 읽다가 .. 그냥 그런 느낌은 매일매일 너무 많은지라 .. 분노하고 화나는 건 때론 .. 따뜻한 감성을 기대하는 이들이 지불해야할 댓가일지도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