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의 사생활 창비시선 270
이병률 지음 / 창비 / 2006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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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들이 주는 배신감이랄지...

아무 데나 펼쳐, 단 한 귀절이라도 마음을 건드리면 시집을 산다. 그렇게 모은 기백 권의 시들은 저마다 사연을 나의 사연을, 안고 있고 접혀 있고 뭔가가 적혀 있기도 하다.  그러나 요즘, 시들이 날 배신한다. 아무리 오랜 시간 서점에 서 있어도 사고픈 시가 없다. 사고 싶은 시가 없는 정도가 아니라 이런 시를 팔아먹겠다고 모아놓았단 말인가 싶은 괘씸한 생각이 드는 책들이 왜 이리 많은지.

젊은 시인들이 그런 시집을 내놓으면 그 건방짐이 한심하다. 그런데 이미 명망을 얻었고 내 마음에도 들어와 있는 시인이 또 그런 시집을 내놓으면, 뭐랄까 이름이 알려졌기에 그저 일기장에 끄적거린 글들도 모아서 시집이랍시고 내놓으면 팔릴줄 아는가 싶어 또 한심하다.  시정신이란 것이 있지 않은가. 가장 순열해야 할 것 같은 그 무엇. 돈 되기 위해 재미나게 쓰는 시 따위를 이야기하는 건 아니다. 그래도 괜찮다고 하는 시인들조차 그러해서 읽을 시가 없는 세상이 되었는가 싶어 번번이 돌아나오곤 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오랫만에 어, 괜찮은 걸 싶은 사람을 보았다. 나이가 많다 할 사람도 아닌 듯한데.. 마음은 맑고 표현은 정갈하고, 건방지지도 않고 위악을 떨지도 않는다. 외로우면서도 세상일에 초연한 척하지도 않는다. 시를 잘썼다, 아니다, 진실되다 아니다를 평할 능력은 내게 없다.  세상 시들의 진심을 읽을 능력이 내게 있다는 오만은 부리고 싶지 않다. 그저 나는 내 마음을 건드리는 시를 '좋아한다.' '좋은''잘 쓴' 시인지는 난 모른다.

이병률의 쓸쓸하고 조금 겸손한 어깨가  좋았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검색하여 다른 시와 여행기도 한꺼번에 샀다. 가끔 누군가가 좋아지면 그 사람한테 감정도 정성도 몰아준다. 그렇게 몰아서 나는 그의 책들은 한 동안 만났다. 김선우, 세상 시들이 오만해졌다고 느낄 때도 김선우가 있다, 위안이 되듯이. 그런 위안의 이름에 이병률을 넣어볼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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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2007-01-21 00: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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