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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의 빛나는 1%를 믿어준 사람 - Stories of Teachers Making a Difference
제인 블루스틴 지음, 도솔 옮김 / 푸른숲 / 2003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이 좋아서라기보다, 난 이런 주제로 할 말이 많다, 지금.
1.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변함없이 교사가 되고 싶었다. 조금도 한눈을 팔지 않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변함없이'라고 말하는 데 부끄러움이 없을 만큼 그 꿈은 지속적이었고 실천도 지속적이었다.
고등학교 다닐 때, '시골학교 국어선생님'이라고 좀더 범위를 좁혀 꿈을 선언하였을 때 많은 아이들이 '참 네게 어울리누나' 이야기해준 것이 무슨 주문이 된 듯, 서울에서 나고 자라다시피 한 내가 아무 연고도 없는 강원도의 인구 4만이 사는 작은 도시에 짐가방 달랑 들고 부임했을 때 동창들이 '너 정말 꿈을 이루었구나' 하고 부러워했다.
2. 중학교 한문 시간이던가, 공자가 三樂을 말할 때 '영재를 가르치는 일' 최고로 삼았다는 대목에서 희비가 교차했던 기억이 난다. 가르치는 일을 최고의 기쁨으로 삼을 만큼 가치있는 일이라는 것은 참으로 마음에 들었다 하더라도 영재라니...
나 자신 단 한번도 스스로 영재라 생각하지 않았고(영재가 아니어서 아마 무지 아쉬웠던 것 같긴 하다) 그 어린 날부터 교사란 둔재라 할지라도 잘 보듬어 사람답게 살게 길러주는 이가 진정한 참교사라 믿었기에 영재를 가르치는 일 운운하는 공자에 대해 그 명성을 몹시 의심하며, 공자님도 별수없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3. 지금은 아마 서른 하나쯤 되었을 제자가 있다. 그 아이가 고등학생 때인가 대학생 때인가 어느 날 전화를 해서 그런 말을 했다. "선생님은, 제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더라도 새로 무언가를 하더라도 '그래 넌 잘 할거야'라고 믿어주실 분이세요." 나는 내가 그런 믿음을 주었다는 게 기뻤다. 그리고 결심했다. 앞으로 이 아이 다음의 제자들에게도 이런 사람이 되어야겠다. 선생님은 언제나 제 편이시고 제가 잘 해내고 열심히 할 거라는 걸 믿어요. 선생님이 믿어주실 것을 생각하면 힘이 나요..... 그런 선생님이 되어야겠다....
4. 아이들 학력이 떨어졌다 하여 올해 우리 학교는 수준별 수업을 하느라 난리법석을 했다. 중학교 아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학력' 이전에 인간으로서 기본을 갖추는 것이라 생각한다. 인사할 줄 알고 사람 귀한 줄 알고 약속 지킬 줄 알고 사랑할 줄 아는 인간, 거기에 내가 국어선생이니까 시를 사랑하고 자신의 따뜻한 마음을 글로 담을 줄도 알고 삶의 지혜를 주는 글들을 가까이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을 나의 최대 임무로 여기는 나에게, 아이들의 학력 운운 하며 다섯 등급, 10개 반으로 아이들을 쪼개는 일이 너무나 잔인하게 느껴졌다. 부자 부모를 만나지도, 좋은 머리를 타고 나지도, 고급한 가정교육을 받지도 못한 대부분의 나처럼 평범한 '범재'들, 혹은 찢어지게 가난한 부모 밑에서, 꼬이고 얽힌 운명으로 아이들을 돌볼 수도 없는 비참한 인생을 살아야 하는 부모 밑에 버림받다시피 살아가야 하는, 두뇌고 가정교육이고 최소한의 사랑과 돌봄의 혜택도 못받고 그저 학교 오는 것만으로도 기특한 '둔재'들을 대다수 '제자' 둔 나는 과연 인생 최고의 기쁨을 맛볼 수 없다는 것인가..
4. 이 책, 제목이 너무 좋았다. 세상 아무도 몰라주는 키작은 들꽃처럼 살지라도 순정한 마음 하나 아이들과 나누는 깊은 마음 하나로 세상 기꺼이 살다가겠다는 그 마음을, 사랑하는 동료들과 이 책 제목을 줄여 서로서로 '내안빛' '당신은 내안빛', '선생님은 아이들을 알아주는 내안빛이셔요' 이렇게 불렀다.
5. 그러나 읽고 실망한 것. 이 책 속에 나오는 이들은 다만 발굴되지 않았던 원석들이었나보다. 빛나는데 사람들이 몰라볼 뿐이던. 그것을 혜안을 가진 어떤 선생님이 알아보시고 사랑하시었다는 것인지, 이 책 속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똑똑하였으나 불우하였고 가능성이 있었으나 그 이전 선생님들이 몰라볼 뿐이었던가 싶다.
내가 원하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은 아무도 몰라보는 원석의 가치를 알아보는 선생님이 아니다. 돌멩이일지라도, 이 땅을 살아가야 한다면 뜨거운 가슴으로 사랑하는 일, 돌멩이라고 돌멩이가 불려도 부끄럽지 않게 사랑하는 일, 돌멩이임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을 수 있게 하는 일, 왜냐하면 사랑받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