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정보도 없이 읽기 시작했다. 역사도 이념도 염두에 두지 않고, 그러나 설마 황석영이 멜로를 썼으리란 생각도 없었다. 그냥 소설이 내 몸에 부족한 영양소 같은 때였기에 집어들었던 것 같다. 거기서 사랑만 읽었다면 나의 촉수는 늘 그것만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일까? 난 이 세상에 순일하고 완전한 사랑은 없다고 생각한다. 사랑할 사람, 사랑하고픈 사람들 너무나 많고 하나가 전부인 그런 사랑도 없으며 사랑의 맹세는 다 거짓이라고 생각한다. 노력하고 애쓰고 약속을 지키려고 애쓰는 것이 동물인 사람을 극복하고 영혼을 가진 존재로서의 고결한 사랑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책 속의 윤희처럼 온전히 한 남자를 바라고 사는 삶을 나는 예찬할 수 없다. 그러나 그녀는 지고지순해서 그리한 것 같지는 않다. 난 차라리 그녀가 베를린에 가서 '이선생'과 사랑할 때 이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했다.. 땅에는 왜 이리 고독한 영혼들이 많은가. 시대를 묻는가, 이 소설은, 나는 황석영의 이야기꾼으로서의 능력에 찬탄하지만 시대의 그림자보다 윤희의 영혼은 무슨 색깔일까 그녀는 말하지 않은 것들 뒤에서 얼마나 고독했을까를 자꾸 헤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