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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인 조르바
니코스 카잔차키스 지음, 이윤기 옮김 / 열린책들 / 2000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참으로 오랫만에 소위 명작이란 것을 만났나보다.
카잔차키스는 그의 '묘비명'로 먼저 만났다. '아무 것도 두렵지 않으므로 자유'라고 선언할 수 있는 그 당당함에 매료되었지만, 도대체 어떤 인간이기에 이토록 오만한가 싶었다. 두려운 게 너무 많아 인생이 무거웠던 나는...
이 책은 참 재밌게 읽었지만 처음에는 도대체 글 속의 화자(카잔차키스라고 생각한다)가 조르바라는 인간에게 어찌하여 매료되었는가 의문이 생겼다. 부처의 행적을 더듬던 그처럼 정신적 에너지가 너무가 충만한 사람, 영혼의 풍요를 위해 전생을 거는 사람이 조르바처럼 '살아있는 사람' ,그야 말로 그의 삶 그 자체가 '몸'인 사람과 어찌도 그리 일치할 수 있는지...
그러나 삶의 형태가 아니라, 사람을 하나로 묶는 것은 영혼이 얼마나 닮아 있는가이다. 여성을 통해 삶과 존재를 확인하는 조르바나 부처를 좇고 있는 화자는 죽는 날까지 하염없이 자기 영혼의 진정한 소진, 진정한 삶을 갈구하는 이들이다. 그것을 알아볼 수 있었던 화자의 밝은 눈을 사랑한다. 어떤 여행객이 그리스를 여행하면서 '조르바' 같은 그리스인이라고 말할 때의 '조르바'(그 책을 읽을 때 아직 난 그리스인 조르바를 읽지 않았을 때였다) 삶의 에너지로 충만한 열정의 그리스인을 말하는 것 같이 보였으나 이 책 속의 화자, 즉, 카잔차키스가 언급하고팠던 '조르바'는 단지 그런 사람만이 아니었을 듯 싶다.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읽던 대학 시절, 작품 속의 '정하섭' 혹은 '김선우'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다. 그로부터 10여년 후 '토지'를 읽으며 '송..' 누구였던가 등장인물 중 한 사람에 매료되었던 기억이 난다. 그들은 모두 혁명성과 더불어 인간적 완성도를 갖춘 혹은 지향하는 이들이었던 것 같다. 게바라를 만나면서 사람도 완벽에 가까워질 수 있구나 감탄했던 일과도 맥이 닿는다.
그러나 조르바는 나의 이 조심스런 판단으로 완벽한 인간은 아니다. 내가 감탄하는 것은 오히려 조르바를 통해 영혼의 자유를 얻어갔던 화자, 카잔차키스의 모습이다. 대개 먹물들은 아무리 철학을 하네 혁명을 하네 해도 자신과 출신이 다르고 삶의 형태가 다른 이들을 못 받아들인다. 조금 이해를 할지는 몰라도...조르바를 좇았던 눈은 정확히 투명하게 영적 자유, 라는 자신 인생의 목표를 알고 있었던 사람의 눈이다.
마지막 장면을 읽으면서 눈물이 났던 이유는 잘 모르겠다. 조르바 이야기를 쓰지 않으면 안되겠다고 생각했으나 그것을 쓰고 나면 어디선가 먼 곳에서 그가 사라져 버릴 것만 같은 안타까움에 망설인다. 그러나 홀린 듯이 조르바 이야기를 쓴다. 그것이 완성된 그 며칠 후, 조르바의 죽음을 통고 받는다... 리고 이것은 카잔차키스의 자전적 소설이며 조르바는 실존인물이다...
소설을 흔히 허구라 하지만 이야기의 틀이 어찌 되었든 영혼이 진짜인 소설 만나기 쉽지 않다. 이 소설은 진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