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게 나가시는 아빠 옷춤을 잡으며 어디 가시냐고 물었다. 아재랑 근방에 있는 장에 가신단다. 왜 나는 빼놓냐니까 너는 너무 많이 먹고, 굼뜨고, 잔소리가 심하단 소리는 쏙 빼고 안 갈줄 알고 말 안 하셨단다. 나도 갈테니 데려가달라고 했다. 환갑 지난 노인과 이제 막 나이 좀 먹었네 싶은 딸년이 집을 나섰다.

 차 타고 가는 길에 꾸벅꾸벅 졸았다. 눈을 뜨니 장터여서 좀 더 자겠다고 했더니 노인은 그럼 그냥 자라고 했다. 그냥 잘 수야 없지. 눈이 왔는데도 사람들이 많다. 집 근처 시장보다 규모도 적고 사람들도 별로 없었지만 장이라니까 뭔가 달라보였다. 모퉁이만 돌면 왠지 각설이 타령이라도 하는 사람이 나타나 흥을 돋굴것만 같았다. 그러고보니 장사하시는 분들의 낯도 시장에서 보던 분들과는 많이 다르다. 농사꾼, 어부, 영락없는 장사꾼의 얼굴. 얼굴 곳곳에 드러나는 주름,들. 그분들 얼굴을 바라보니 다시금 얼굴에 살아온 이력을 드리우고 살 자신이 있는지 내게 묻게 되었다. 그건 정말 알 수 없는 일이다.

 아재랑 아주머니랑 노인과 노인의 딸년은 휘적휘적 장터를 돌아다녔다. 읍내에 마실 나오신 분들이 왁자지껄 한담을 나누고 장사하시는 분들은 늦은 점심을 후다닥 해치우고 있었다. 고소한 냄새가 나서 둘러봤더니 분식집! 검은콩 도너츠가 맛있겠다며 딸년은 노인에게 다가가 천원만 주라고 했다. 노인은 딸년이 용돈은 못줄망정 돈을 갈취한다는 소리를 입밖으로 내뱉으려고 했다. 아재가 둘이 뭐하나 어깨너머로 보지 않았다면 말이다. 노인은 호기롭게 천원짜리 두장에 동전 한푼을 줬다. 딸년은 헤죽하게 웃으며 잰걸음으로 분식집으로 뛰어갔다. (점점 풍류, 우리 가락 분위기가 되고 있다.) 딸년은 오뎅국을 먹다 일행이 멀어지는걸 보고 오뎅을 입 속에 우겨넣으며 뛰었고 그 바람에 며칠 동안 입안이 헐어 고생했다.

 매생이와 굴, 달래를 샀고, 패션 피플의 핫 아이템인 목도리, 헤어밴드, 모자를 겸용할 수 있는 놀라운 천 쪼가리 하나를 챙겼다. 딸년은 그래도 뭐가 모자랐는지 대구탕을 먹고 싶다는 둥, 장에 와서 왜 먹을걸 더 안 사냐는 둥 뻐대기 시작했지만 노인은 으례 그렇듯 가볍게 무시했다. 노인과 아재의 맘 속엔 오직 궁극의 막걸리집만이 머릿 속에서 반짝이고 있었으니 딸년의 말이 들어올리 없었을지도.

 다 부서지게 생긴 가게였다. 문을 열자 훈김을 얼굴에 끼얹듯 따뜻한 느낌이 들었다. 테이블은 꽉 차 있었고, 아저씨들은 저마다의 생각을 아주 아주 큰 소리고 털어놓고 있었다. 자리가 없어 돌아서 나갈줄 알았는데 노인과 아재는 술잔 놓을 자리만 있으면 어디서라도 드실 기세였다. 셋은 주인의 양해를 받아 음식 준비하는 테이블에 찬과 술을 놓고 급하게 들이켰다. 근방에 있는 대학교에서 만든 막걸리다. 시금털털하고, 시원하다. 해파리 초무침은 산뜻했고, 우거지 선지국은 무척 맛있었다. 작은 동그라미가 여러개 박혀 있는 노랑 연두색 막걸리 잔과 공평하게 채워지는 막걸리. 막걸리 한병을 따르면 세잔을 마실 수 있다. 두분이선 두병, 세명이니까 세병. 똑 떨어지는 계산이다.
 
 노인과 아재는 아무리 집에서 막걸리 사다가 더 좋은 안주로 먹어도 이 맛이 안 난다는 얘기를 한다. 딸년은 불콰한 얼굴로 그 말이 정말 맞다며 고개가 떨어져나갈 정도로 격하게 동의했다. 동네 모임이라도 하는지 한 다리 건너 서로를 아는 아저씨들 틈에서 맛있는 냄새를 맡은 딸년. 그녀는 냉큼 이거 혹시 오뎅 속에 김말이가 들어있는거냐고 물었다. 아저씨가 그렇다고 하자, 그녀는 다시 쪼르르 노인에게 다가가 천원만 달라고 했다. 노인은 딸년에게 전 재산이라며 천원을 건넨다. 천원만, 백원만, 졸라대며 그 돈 받아 홀랑 야무진 불량식품 사먹었던 어렸을 때로 돌아간 느낌이 들었다. 시금털털 막걸리 탓이다.

 나무 젓가락에 길다란 오뎅을 꽂아서 돌아와 다시 막걸리를 먹고, 옛날 막걸리 맛은 어땠는지, 여기 우거지국엔 뭘 넣어서 이렇게 기똥차게 맛있는지, 아니 아니, 이렇게 푸짐하고 맛나게 먹었는데 술가격은 왜 이렇게 싼지 등등에 대해 말했다. 노인이 갈길을 재촉했지만 딸년은 아직 사지 못한게 있다. 노인이 방심한 틈을 타서 딸년은 학원 간 조카들까지 들먹이며 옛날 과자의 맛과 푸짐함에 대해 떠들었고, 노인은 담배 살 돈까지 가져가냐며 타박하면서 딸년에게 다시 몇천원을 줬다.

 세상의 온갖 과자와 온갖 카피 과자가 판을 치는 옛날 과자집. 주인 아저씨는 딸년이 뭘 집을 때마다 맛을 안다는 둥, 제대로 본다는 둥 흰소리를 했지만 어떤게 더 맛있을지 점치느라 그녀는 그의 말의 반은 귓등으로 흘렸다. 과자점엔 바삭한 강정에 쵸코를 입힌 과자, 보들거리는 약과, 딱딱하지만 고소한 고구마 과자, 설탕 시럽을 입힌 식빵 과자, 쫀드기, 와플, 강정, 고추장 맛 과자, 라면 맛, 딱딱하고, 바삭하고 식감을 자극하는 맛들이 펼쳐져 있었다. 정신없이 고르다보니 킬로로 몇백원 하던게 3000원이 넘어섰다. 딸년은 과자를 가까스로 오천원에 맞추고, 아직 고르지 못한 과자와 맛보지 못한 과자를 애석하게 바라봤다. 아저씨는 흔쾌히 몇번이고 덤을 줬고, 딸년 입은 다물어지지가 않았다.

 집으로 오는 길에 딸은 말했다.

 '아빠, 아저씨가 나 예쁘다고 자꾸 덤을 주잖아. 민망해서 혼났다니까.'
' 훔쳐온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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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0-01-08 12: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페이퍼를 내 생애 최고의 '아치 페이퍼'로 임명합니다.

Arch 2010-01-08 12:39   좋아요 0 | URL
상장 주는거야? 아, 오랫동안 만진 보람이 있군요! 뽀님 와락~

다락방 2010-01-08 13: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이고, 이쁘기도 하지!!

활자유랑자 2010-01-08 14: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정말 최고세요

무스탕 2010-01-08 14: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좋군요.

뷰리풀말미잘 2010-01-08 19: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가 독하게 마음먹고 페이퍼를 쓰나봐요. 위기의식을 느낍니다.

Arch 2010-01-08 2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게 다 뽀님 때문입니다. 추천도 댓글도 다 감사해요.

미잘만 하려고!

순오기 2010-01-10 14: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우~ 다 큰 딸년이 천원만 천원만 하면서 담배 살 돈까지 앗아 갔으면 열배로 갚으면 되겠군요.
사랑스런 아치님, 어쩌면 아버지도 그런 딸년이 밉지 않아 담배값까지 털어 주셨겠죠.^^
아, 추억이 스멀거리지만 기꺼이 주머니 돈을 갈취당해 줄 아버지가 내게는 안 계신 걸... ㅠㅜ

Arch 2010-01-10 22:09   좋아요 0 | URL
열배, 까짓 문제없습니다. ^^
아빠랑은 다툴 때가 더 많아요. 가끔 둘 다 술이 취해야 서로에게 너그러워지죠.
어떨땐 같이 살아서 좋은지, 아닌지 잘 모르겠어요.
 

 용산 참사 때문에 서재 분위기가 한창 가라앉았을 때였다. 무슨 내용인지는 기억 안 나지만 페이퍼를 올릴려다 침울한 서재 분위기에 몇번이나 글을 보류한적이 있었다. 안 되겠다 싶어, 조악한 내가 맘 편하게 글 올릴려고 생각한건 '이제 그만 슬퍼하자'였다.
 그만 슬퍼하자고 말한건 당신들이 너무 아파해서, 나도 자꾸 목이 매어서, 아빠가 보고 싶다는 편지가 잊혀지질 않아서, 너무 억울한데 아무것도 변한게 없어서, 역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어서가 아니었다. 나 좋아하는거 못하니까 답답해서였다. 기억할런지 모르겠지만 서재인들은 영민한 사람들이라 내가 어줍잖게 구는걸 다 알았다. 아탁 활동가처럼 하긴 뭘해. 난 여전히 천둥 벌거숭이처럼 아무것도 모르는걸.

  가지 말라고 붙잡고, 당신들이 떠나면 어떡하냐고 으름장을 놓고 싶다. 언젠가 만날 수 있겠지만 그땐 또 다른 모습으로, 아무렇지 않게 인사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아니라고 억지를 부리고 싶다.

 애인이 있으면 있는대로, 없으면 없는대로 서재는 아니 서재 사람들은 내게 애인 이상의 존재였다. 내가 꼼수를 부리면 무반응을 보여 바닥 뻔한 날 제대로 들키게 만들고, 사실 이런 얘기를 들어줄지 모르겠다고 주저하고 있으면 가만히 어깨를 토닥여주던 사람들이었다. 어느 한 사람이 아니었다. 각자의 말들과 몸짓이 새삼 정겨워지고, 중독 비슷한 것도 보이고, 안 보이면 심심하고, 너무 오래 붙어있는건 아닐까 싶어 미안해지게 만들던 사람들, 내 애인보다 더 많은 것들을 주고 받았던 사람들이다.

 내가 억지를 부리고 가지 말라고 말하고 싶은건 그만큼 그 사람들이 있어서 내가 정말 행복했고, 좋아서였다. 결국 나 좋으려고 가지 말하고 한거다. 그래서 더 이상은 가지 말라고, 같이 있자고 말할 수 없게 됐다. 
 언젠가 만난다면 반갑다고 말하지 않겠다. 배배꼬인 얼굴로, 이제 와서 응? 어디 갔다 이제 왔냐고 정말이지 배배꼬인 말투로 인사를 건넬거다. 
 

 자주 볼 수 없겠지만, 쑥쓰러운 농담도 건네지 못하겠지만, 어디에 있든 건강해요.
아프지 말고, 속상해하지도 말고. 그랬음 좋겠어요.

 

그리고 언제든 서재 사람들 보고 싶으면 당장 달려와요.
맨발로 달려가서 맞아줄테니까.
아까 배배꼬이게 말한다는거 다 거짓말이예요.  
난 여기서 남은 사람들이랑 정말 재미있게 놀거예요. 
언젠가, 당신이 서재에 슬쩍 들렀다가 가던 길에서 멈춰서고 싶을 정도로 정말 재미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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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10-01-05 0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왕창 썼다가 쓱 지우고 갑니다.

오지랖 아치님.

좋은 꿈 꾸세요.

Arch 2010-01-06 23:42   좋아요 0 | URL
새해 계획은 오지랖 좀 집어넣기, 이런걸로 해야겠어요.

다락방 2010-01-05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물론 그분들 역시 쉽게 결정을 내리신건 아니겠지만, 그 결정 뒤에는 고민과 서운함과 상처들이 있었겠지만, 그래도 다들 가버리시는 건 너무해요. 남아서 불매하는 사람들이 서운하고 힘들고 속상하고 아플거 아녜요. 남은 사람들은 어쩌라고....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어야 할텐데....그렇게들 가버리시면 어쩌라고......어휴......

기운내요!(토닥토닥)

저 역시 가지 말라고 말하고 싶지만...그래도 되는지를 잘 모르겠어요. 끙.

Arch 2010-01-06 23:43   좋아요 0 | URL
으음... 나 가요 하지 말고, 그냥 잠시 비워뒀다가 오셨음 좋겠어요.

난 달레랑스가 아주 미워져도 서재 헐거나 그러지 않을래요. 미잘이라면 좀 모르겠다. ^^

머큐리 2010-01-07 08: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치님...이 여기에 계속 있다는 것만 해도 위안이 되는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요..
힘내요...

Arch 2010-01-08 10:55   좋아요 0 | URL
음.. 머규리님 고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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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0-01-04 12: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하얀이빨이라는 소설을 서점에서 쓱 하고 넘겨보는데 1장이 제목이 아치더라구요.
또 군인은 축음기~를에서 드리나강 다리 아치에 대한 이야기도 나왔어요.
그래서 아치님 생각이 났다고..

Arch 2010-01-04 12:55   좋아요 0 | URL
ㅋㅋ 휘모리님이 나 잊어버릴까봐 내가 여기저기에 쓱쓱 써놓고 다닌거예요, 몰랐구나.
오늘은 무척 기분이 좋아서 오두방정 모드예요. 에휴..

2010-01-04 13: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04 19:37   URL
비밀 댓글입니다.

Arch 2010-01-04 19:38   좋아요 0 | URL
임석재님 책은 머릿말만 읽었는데도 좋던데요. 읽을만하겠어요.

2010-01-04 22:08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04 22:4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04 20: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04 21:56   URL
비밀 댓글입니다.
 


사실 악취라는 걸 알지만 난 내 똥 냄새가 좋아.

헤어스타일을 자주 바꾸는 이유는 나를 바꿀 수 없단 사실을 만회하기 위해서예요.

정원 잔디를 깎을 때마다 반지 모양으로 비료를 줬더니 잔디가 반지 모양으로 자랐다. 부모님은 지금도 외계인이 그런 줄 아신다.

가끔 해가 지면 친구랑 브라와 팬티만 입고 공원을 뛰어다니고, 그네를 타면서 맘껏 자유로움을 느껴요. 그리고 그 모습을 그려요. 우린 그걸 해방이라고 부르죠.

친구에게 이메일을 받으면 항상 며칠 후에 답장을 해요. 그것 말곤 할 일 없는 사람처럼 보이기 싫으니까요.

나는 꿈꾼다. 내가 절정을 느끼는 척하는 것을 알아줄 연인이 있을거라고...

 기분이 좋아지려고 자위를 하고 날 필요로 한다는 느낌을 받기 위해 섹스를 하지. 이런 내 자신이 싫어. 

* 비밀이 생각나지 않아. 나는 비밀을 가질 만큼 재미있는 사람이 아니란 것만 빼고.
* 웨딩 드레스가 입고 싶어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했어요.
* 재활용 따윈 신경 안 써요. (하지만 신경 쓰는 척 하면서 살죠)
* 십대 때 나는 옆집 아이를 돌보는 베이비시터를 했다. 아이가 잠들면 침실로 들어가 침대 옆 서랍장을 샅샅이 뒤졌다. 그리고 콘돔 한 다발을 찾아낸 다음, 하나하나 가운데를 핀으로 찔렀다. 덕분에 그 후로도 5년 더 베이비시터 일을 할 수 있었다.
* 7살 때 부모님 침대 밑에 숨었죠. 샤워 후의 아빠 성기가 어찌 생겼는지 보기 위해서요.
* 7살 때 동네 불량배가 자전거에 탄 날 멈춰 세웠다. 그리고 내 엉덩이를 만지게 하지 않으면 5살 난 여동생을 때릴 거라 말했다. 난 겁이 나서 그렇게 하도록 했다. 다음날 학교 음수대 옆에 있었는데, 그 자신이 한 무리의 남자애들과 다가오더니 내게 한 짓을 그 애들한테 얘기했다. 부끄러워진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는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물을 마시며 걔네들이 떠날 때까지 고개를 들지 않는 것이었다. 지금도 나는 부끄러울 때면 목이 마르다.
* 큰 성기를 갖기 위해서라면 이 차를 기쁘게 팔 거야.
* (콘돔이 서랍에 든 사진) 이것들을 사용하는 영광을 누린 적이 없다네.
* 남자 친구에게 맞지 않으려고 정신을 잃은척 연기를 한적이 있어.
* 내가 진단도 안 되는 정신병을 가졌을까 봐 두려워.  
* 나는 동물들이 조련사를 공격하는 걸 좋아해. 그래도 싸다고 생각해.
* 직장동료들이 내가 애인이 있다고 생각하게끔 밸런타인데이에 나한테 꽃을 보냈어요.
* 나는 남부 침례고 목사 부인이예요. 아무도 내가 하나님을 안 믿는 걸 몰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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뷰리풀말미잘 2010-01-03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일 어색한 문장을 고르면 되겠군요. 저는 찾았습니다. ^^ 익명성이 보장된다면 저도 한 두개쯤 써 넣고 싶은게 있는데 말이죠. ㅎㅎ 엄청 충격적일거 같은데.

Arch 2010-01-03 23:56   좋아요 0 | URL
아, 진짜! 왜왜! 왜죠?
번역된거라 어색하게 느껴지는거라고 쓰면서 내가 쓴게 어색한지 확인하는 중.
그럼, 오픈할까요? 어떻게 하지... 익명 댓글? 그럼 악플이 달릴게 분명한데 ㅋㅋ

hanalei 2010-01-04 00: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부 아치님 비밀이죠?

hanalei 2010-01-04 00:08   좋아요 0 | URL
참 추천도 했는데, 포스가 떨어져서 한개만 올라갔어요.

Arch 2010-01-04 11:40   좋아요 0 | URL
ㅋㅋ 포스가 얼른 회복되길 바랍니다.
더럽거나 섹스한건(유먼데 역시 안 웃겨요) 제거예요.

무해한모리군 2010-01-04 0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직장동료들이 내가 애인이 있다고 생각하게끔 밸런타인데이에 나한테 꽃을 보냈어요.

진작 그랬어야 하는건데요 --;;

Arch 2010-01-04 11:41   좋아요 0 | URL
전 그랬던 사람을 알고 있어요. ㅋㅋ 이건 내 비밀이 아니라 그 사람 비밀이지만.

다락방 2010-01-04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얼마전에 제가 생각하던 문장이 위에 있네요.

나는 남부 침례고 목사 부인이예요. 아무도 내가 하나님을 안 믿는 걸 몰라요.

저는 정말로 목사랑 결혼해서 무교인채로 살고 싶다고 생각했었어요. 그렇다면 모든 교회 신도들이 날 욕하겠죠? 그걸 즐기고 싶었어요. 어, 내 남편 목사인데 난 무교야. 그게 왜? 하고 막 소리 지르고 싶어요.

다락방 2010-01-04 09: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데는 '나는 알라디너중에 좋아하는 이성이 있어요.' 이런거 넣어줘야 신나는건데. 가쉽도 생기고 ㅋㅋ

Arch 2010-01-04 11:43   좋아요 0 | URL
그게 왜? 아, 남부 침례교 목사 부인이 안 돼도 할 수 있는건 뭐가 있을까. 서재인인데 한달 동안 책을 안 읽었다, 그게 왜? 혹은 삼겹살 좋아한다더니 한달 동안 삼겹살 냄새도 안 맡았다, 그게 왜? 활용예? 이런거 맞아요?

음, 이성이라... 성별 구분없이 제가 좋아하는 분들이 누군지 알고 있잖아요, 달레랑스!

네꼬 2010-01-04 12: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락님 의견에 한 표! 그런 가십 좋아요. (그런 가십 들으면 혹시 날까 하고 혼자 두근대는 게 저의 비밀. -_- 비루하다.)

Arch 2010-01-04 12:04   좋아요 0 | URL
네꼬님 안녕하세요~
그런 의미에서 고백이라도 해야할까요. 아, 너무 덥석 문다. ^^

다락방 2010-01-04 12:07   좋아요 0 | URL
앗 나도 두근거릴래요. 혹시 날까.... 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갑자기 막 신나고있음. 아무도 아무말도 안했는데 ㅎㅎ)

Arch 2010-01-04 12:08   좋아요 0 | URL
미치겠다. 그럼 계속 두근거리라고 말 안 하고 있어야지. ㅋㅋ
 


 눈이 많이 왔다. 옥찌들이랑 도서관에 갔다. 오는 길에 눈싸움을 했다. 옥찌들이랑 난 눈을 단단하게 뭉치거나 바닥에 덩어리진 눈을 들어서 던지고 도망쳤다. 작은 손들이 기껏해야 내 엉덩이 부근에 눈을 던질 뿐이니 나로선 그다지 스릴 넘치진 않았다. 아이들이 추울까봐 옷에 맞도록 하기 때문에 차가워 어쩔줄 몰라하는 표정도 못보니 흥도 나지 않았다. 하지만 잔뜩 신이나 이리 뛰고 저리 뛰고 눈을 가지고 해볼 수 있는 모든걸 해보려는 듯이 의욕 충만한 녀석들을 보니까, 신나는건 전염되는지 나도 어쩔줄 몰라하고 있었다.


 집에 거의 도착할 즈음, 옷에 묻은 눈을 털어내면서 옥찌들에게 이제 눈싸움은 그만 하자고 말했다. 민은 차렷 자세로 충성을 맹세했고, 옥찌는 시큰둥하게 내 뒤를 따랐다. '이제 그만'엔 별다른 의미가 없었다. 옷을 털었고, 이제 곧 집에 들어가야하니까, 놀이는 이제 그만해도 되겠단 의미 정도였다. 하지만 옥찌가 내 뒤를 따라오다 눈을 갖고 장난치는걸 보자 '이제 그만'의 의미가 부풀려졌다.


 A는 충동적이다. 그 아이의 충동적인 성향이 대체 뭐 때문인지를 생각해본적이 있다. 어렸을 때 A가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욕구불만이었던 상태가 있었을까, 아니면 일관성없는 부모의 태도 때문일까. 뭔가를 당장 못사면, 당장 술을 못 마시면, 뭔가를 뭔가를 앞에서 A의 충동은 갑작스러웠고, 그 아이 스스로도 자신을 통제하지 못했다. 옥찌들이 설마 A를 닮는건 아닐까. 나 자신도 어느 때의 게으름과 늘어지고 싶음, 몸을 함부로 훼손하고 싶은 느낌에 어쩔줄 몰라하면서 늘 A의 정도는 심각하고 일탈적으로 느껴졌다. 결국 집에서 어떤 위치와 발언권을 갖고 있느냐의 문제인지도 모르는데. 나는 옥찌에게서 A의 일면을 본 것 같았다. 내가 보기엔 이제 놀만큼 놀았으니까 그만해도 되겠다 싶었고 민도 괜찮아 보였는데 옥찌만 다시 눈을 만지자 커서 A처럼 되지 않을까란 생각까지 해버린거다. 그냥 눈을 더 가지고 놀고 싶은 아이일 뿐인데.

 
 집에 와서 옥찌에게 왜 다시 눈을 가지고 놀았냐고 물었다. (이런 멍청한 질문을 하다니)
- 눈을 나 혼자 맞고 싶어서.
 흩날리는 눈을 자기한테만 뿌려주고 싶었다는 옥찌. 옥찌가 이상한 이모 만나서 고생이 많다.

 며칠 전 송년회를 하려고 집 근방 술집에서 사람들을 만났다. 가까워서 자전거를 끌고 갔다. 쥐포 튀긴걸 사정없이 먹고, 얼음물이며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노래방 커밍아웃한 사람도 아닌데 요샌 술 먹으면 무조건 노래방이라며 고집을 피워 사람들을 모두 끌어들였고, 목이 아플 정도로 노래를 불렀다. 다들 고민 많은 연말이라 그런지 놀기보다는 나가서 고민 얘기를 했지만 나와 말쑥한 청년 하나는 노래가 너무 좋아 노래방에 살지요 포스로 부지런히 노래를 불렀다. 왔다갔다 하던 사람들도 끊기자 흥도 안 나고 '어디 너네가 얼마나 부르는지 한번 보자'란 식의 주인 아저씨의 서비스 정신으로 거의 2시간 넘게 노래를 불러 더 이상 소리가 나오지 않아 아쉽지만 밖으로 나왔다.

 눈이 내리고 있었다. 얼마나 내렸는지 바닥은 온통 빙판이었다. 난 썰매 탄다고 사람들한테 손 잡아달라고 조르고, 눈맛 좀 보라며 사람들한테 눈을 던지고 다녔다. 연말이래도 이런 아치 꼬라지는 그만 보겠다며 사람들이 슬슬 집에 가고, 나도 아쉽지만 집으로 가려고 자전거를 갖고 왔다.
 노래방의 말쑥한 청년은 자전거를 보더니 '누나 한번 타보면 안 되냐'고 물었다. 누나란 말이 달콤해 눈이 와서 위험하긴 했지만 그러라며 자전거를 내줬다.

 호기롭게 페달을 굴리는 말쑥한 청년. 반코트 사이로 얼핏 보이는 늘씬한 다리와 가냘프지만 든든한 뒤태의 청년. 자전거를 제법 잘 끌고 가는 청년. 맞바람에 뒤뚱거리며 조금은 힘겨워 보이던 청년. 차를 피해 페달을 굴리다 어어 하는 사이에 콰당 미끄러진 청년, 아퍼 죽겠는 표정인데 정신없이 자전거를 들고 막 뛰는 청년. 청년의 뒤에서 한 무리의 아주머니들의 깔깔 웃음 소리와 그 정도 소리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엄청 크게 웃어제끼는 아치의 웃음 소리. 


나도 '사랑스러운 뽀'처럼 눈 오는 날이면 생각나는 까마득하게 아름다운 추억 하나쯤 갖고 싶다.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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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rgettable. 2010-01-03 15: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까마득하게 아름다운 추억 하나쯤-은 형편 없는 기억력으로 인해 왜곡되고 미화된 것이라 실상을 알고보면 '늘씬한 다리와 갸날프지만 든든한 뒤태의 자전거를 탄 청년'보다 못한 것일 수도 ㅋㅋㅋ
아치님 다홍색 줄은 제 질투심 잠재우기용 급조된거 티나는데요 ㅋㅋ 나도 아직 카드 안부쳤으니 할말은 없음. 그러나 쿨한 아치라고 했으므로 자꾸 내가 까먹는 것 같음 ㅋㅋ

내일부턴 출근이네요. 젠장
난 너무 놀아서인지 오늘에서야 지독한 감기에 걸려버리고 말았던게죠. 지금 난 황정남 흉내내면서 놀 정도로 섹쉬한 보이쉬 보이스를 갖고 있어요. 으하하;;

Arch 2010-01-03 20:10   좋아요 0 | URL
그런 것 같기도. ㅋㅋ 다홍색 혹은 주황색은 뽀님 색이라 쓴거거든요~ 질투심은 뭐! 칫. 대체 카드는 왜 안 부치는거에요. 어디 들어나 봅시다. ㅋㅋ

감기 때문에 왜인지 독촉도 못하고, 병아리 냉가슴만 앓는 중. 그래도 감기는 얼른 나아요. 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