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부터 코가 간질거리더니 연신 재채기를 한다. 오늘 좀 재채기가 잦아드나 했더니 눈이 뻑뻑하고 간지럽다. 출산 후 체질이 변한다고 하던데 그런건가. 알레르기면 어떡하지? 벌써 알레르기인건 아니고? 하, 머리카락이 숭숭 빠지고 잇몸이 가라앉고 관절마다 기름칠을 덜 한 것처럼 뻑뻑한데다 알레르기까지. 아기를 낳으면 이렇게 된다는 걸 알았어도 아기를 가질 결심을 할 수 있었을까.

 

 

  아마도. 아기를 낳지 않았다면 저녁 숲처럼 고요하게 잠든 아기가 엄마보다 일찍 깨서 눈을 마주치며 방긋방긋 웃는걸 볼 수 없었을 테니까. 아기가 깨어나면 아무리 피곤해도 일어나진다. 우리는 기저귀를 갈고 우유를 먹으며 하루를 시작한다. 아기의 모든 요구와 반응에 일일이 신경쓰는 건 아니지만 그럭저럭 아기 리듬에 맞춰서 생활하고 있다. 우유를 먹일 때와 갑자기 처리해야할 일이 있을 때 갓 5개월인 아기가 우유통을 안 떨어트리고 밥을 다 먹는 정도?

 

 

 오늘 아기는 예방접종을 맞았다. 처음엔 안 울더니 분위기가 이상했는지 조금 지나서 앙하고 운다. 예방접종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아예 안 맞히는 것보다 부작용이 덜하고 꼭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것만 선택해서 맞추고 있다. 의학적인 지식이 있는 게 아니라 선택한다는 말이 맞진 않다. (내가 만난) 의사들은 예방접종은 무조건 맞춰야 한다는 주의고 접종하지 말라는 측은 이런저런 부작용과 80년대 이후로 더는 발생하지 않는 병 때문에 예방접종을 맞는 건 아니라고 얘기한다. 의사들은 예방접종의 위험성이나 최신 정보에 어둡고 반대측은 과학적이고 설득력 있는 자료가 부족하다.

 

 

 며칠 동안은 아기가 없나 싶을 정도로 먹으면 자고, 혼자서도 잘 놀더니 어제부터는 소리지르고 우는 경우가 많아졌다. 아기들은 몇 번이나 변한다고 하더니 과연. 아기를 낳아서 아기 얘기만 하는 엄마가 되고 싶지 않은데 깨어있는 시간 동안 거의 아기랑 있다 보니 아기 얘기만 한다.

 

 

 10대 때는 내가 뭐가 될지 궁금해서, 20대는 뭐든 할 수 있으니 덤벼란 식이어서 의욕이 활활 타올랐다. 서른을 넘기고 보니 욕을 알고(?) 고스톱으로 돈 좀 따면서(?) 인생의 쓴맛을 알게 된 건 아니고 내가 원하는 곳에서 한적하게 살다보니 나른해진달까. 그나마 일을 할 때는 일을 배우고 조금씩 나아지는 게 있었는데 지금은 아기가 자라는걸 지켜보는 것 말고 기대할만한게 없어선지 그날이 그날인 채로 그냥 산다. 요즘 나는 늙고 힘 없어져 축 처진 절인 배추 같다.

 

 

 얼마 전 시니컬한 성격 검사에서 나는 ‘칙칙한 타입’이란 결과가 나왔다. 욕망이 크지 않고 현실에 순응하며 그럭저럭 사는 타입. 어쩌면 지금보다 어렸을 때 치기어린 짓을 많이 한 건 누구보다 날 잘 알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재미없고 지루한 성향이란걸 미리 간파해 이것저것 저질러 봤다. 끝까지는 못가고 방황 중간 어디쯤에서 어중간하게 걸쳐있었다. 20대엔 늘 나를 설명할 말을 찾아다녔다. 언젠가 처음부터 나답게 정착해서 살았으면 어땠을까란 후회를 한 적이 있다. 그래도 여전한 결론은 결국 종착지는 ‘나다운 지금’이지만 그때처럼 막 살지 않았다면 지금 더 후회했을 것이란 것. 그리고 지금처럼 아기를 맘껏 사랑하고 아껴주지 못했을 것이다. 내 그릇만큼 좌충우돌한 경험으로 지금 좀 더 자유롭다. 처진 배추로 김장도 할 수 있고 말이다. 물론 군내 나는 묵은지가 될 수도 있지만. 아니지! 묵은지 김치찌개가 얼마나 맛있는데. 나 왜 이럼? 코 막히고 눈이 잘 안보이니 살짝 헤롱해진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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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천한 인터넷 사용에 옆집 와이파이를 빌려쓰는 처지라

아니 사실은 아기 보느라 밥 먹고 잠자는 시간 외에 손바닥만큼 인터넷을 할 수 있어서

지금에야 소식을 올린다.

 

20대 후반과 그 이후부터 생사고락을 함께 한 서재.

이렇게 말하면 좀 거창하지만 일하느라, 연애하느라 서재에 글을 못쓸 때가 많았다고 적지만

거즘 글이 잘 안 써져서 쓸 말이 없을 때가 더 많았다.

서재를 통해 만났던 사람들과 독서모임을 하고 같이 여행을 갔던 기억이 지금도 가장 뭉클하다.

 

무슨 얘기가 떠오르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서재였는데

이제는 페북하느라, 메신저로 사람들이랑 얘기하느라, 재미있는 드라마 보느라 서재에 글을 쓰는게 소원해지고 말았다.

그 시절, 서재에서 정돈되고 차분하게 생각을 풀 수 있는 게 내게는 참 중요했는데.

 

아, 넋두리를 하려고 했던게 아닌데.

 

아기가 태어났다. 100일이 좀 넘었고 지금은 볼살이 통통하게 올랐다. 옥찌들이랑 같이 지냈던게 엊그제 같은데 내가 아기를 낳고 같이 사는 게 잘 믿겨지지 않을 때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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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해한모리군 2016-03-14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너무 축하드려요.
엄청 예쁘네요. 백일된 애기가 이목구비가 너무 뚜렷한 것이 ♡.♡

다락방 2016-03-14 10: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아치.

아가야, 안녕?

hnine 2016-03-14 11: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축하드립니다.
아기가 두손을 모으고 있네요 ^^
눈썹 라인이 눈에 들어와요. 복숭아 같은 얼굴도.
옥찌 민이와의 예습 (!) 경험이 있으니 아마 아치님 아기도 잘 키우실거라 믿습니다.

머큐리 2016-03-14 14: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려요~~
이렇게 이쁜 아이라니... 놀랄뿐입니다...^^

붉은돼지 2016-03-14 15: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드립니다.^^
정말 신기한 일이죠~
제 딸은 이제 9살이지만 아직도 보면 신기합니다. ㅎㅎㅎㅎㅎ

2016-03-15 03:16   URL
비밀 댓글입니다.

Arch 2016-03-17 1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축하 감사드려요. 축하 받는게 여전히 쑥쓰럽지만 서재에는 알리고 싶었어요. 감사합니다. ^^
 

 아이를 갖은 후 전에 없던 기호와 갈망이 생겼다. 


 넘어지거나 골반을 압박한다고 자전거를 탈 수 없다. 무거운걸 들거나 뛸 수 없으니 행동에 제약이 온다. 탄산이나 커피믹스가 자꾸 땡기고 시원한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고 싶다. 정말 숨도 안 쉬고 들이마시고 싶다. 엎드려서 뭘 하면 허리가 아파서 좋아하는 자세가 아닌데도 그냥 허리 아플 때까지 엎드려서 책을 보고 무엇이든 끄적거리고 싶다. 두 발을 지면 위로 띄우는(점프 점프) 춤을 추고 싶고 날씬해보이는 옷을 입고 싶다. 찐득거리는 섹스를 오랫동안 하고 싶고 평소에는 귀찮아서 엄두도 내지 않은 과감한 체위를 시도해보고 싶다.


 배가 불러오고 아이와 엄마에게 안 좋다는 게 많으니까 결핍감은 한없이 커진다. 대개의 경우 적정한 선에서 타협을 한다. 동냥하듯 맥주 한모금을 마신다거나 며칠에 한번씩 먹는다는 의식을 안 하려 노력하면서 커피 한잔쯤은 가볍게 먹는다. 자전거 타는 것보다 걸어다니면서 저녁 무렵 노을을 더 자세히 볼 수 있다며 자기 합리화를 하기도 한다. 섹스는 상대의 입장도 이해해야하고 어쩐다고 하지만 그렇게 큰 갈망이 생기지 않아 욕망과 별개로 전혀 시도하지 않는 영역으로 남았있다.


 자질구레하고 적절하게 실현할 수 있는 것이 있다는 건 그나마 나은 편이다. 가장 큰 곤란함은 내 정체성이 아이 엄마로 고정되고 그에 걸맞는 역할을 해야하며 그 과정에서 본의 아니게 의욕이 많이 꺾인 것을 들 수 있다. 호르몬 영향인지 일을 마무리해야하는 시점이라 그런건지 모든 사안에 흥미를 잃었다. 끈기는 부족해도 새로운 일과 사람에 눈을 반짝이던 나는 온데간데 없고 심드렁한 나만 덩그러니 남아버렸다.


 왠만한건 귀찮고 귀찮지 않더라도 흥미를 잃어버려서 대개 처음부터 포기를 해버린다. 하려고 했던 작업도 줄이고 줄여서 최소한의 명분만 살리는 식으로 하다보니 초심은 커녕 중간쯤의 마음도 유지하기 어렵다. 억울하다. 아무도 시키지 않았고 내 몸과 맘이 이렇게 변할거라고 생각도 못했는데 변해버려서 아차 싶은 마음. 몸이 무겁다거나 호르몬 영향이란 핑계가 단골메뉴가 된지는 오래됐다. 점점 불러오는 배가 신기하고 무섭다.


 신트림이 계속 넘어오고 앉아있기가 불편해 닭들을 보러 갔다. 퇴근 전에 문 닫는걸 잊어버릴까 닭장에 넣으려고 했는데 완강히 저항한다. 철망 뒤로 넘어가더니 아무리 나오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는다. 수탉은 닭장 근처에서 꼬꼬거리며 암탉들에게 위험 신호를 준다. 작은 병아리들은 짹짹거리며 엄마 뒤를 쫓아다닌다. 암탉들은 저물기 전에는 절대 집으로 들어가지 않겠다는 식이다. 안 들어가면 뭐할건데. 파헤칠 흙도 이제 없잖아.


 술을 진탕 먹고 취해서 원숭이처럼 까불고 싶다고 했다. 몸 상태와 상관없이 맘대로 잠을 자고 무리해서 일하고 싶기도 하다. 술을 안 먹어서 술자리에서 살짝 소외감을 느끼고 금세 피곤하거나 잠이 잘 와서 사람들과 오랫동안 어울릴 수 없는 건 있다. 하지만 그 덕에 환절기에도 아직 감기 걸리지 않고 잘 지내고 있다. 말수가 살짝 줄어든 덕분에 남들이 대화하는 사이의 행간을 읽는 재미도 있다.


 저물기 전에는 집에 들어가기 싫은 닭들처럼, 날이 어둑해야 횃대에 오르는 닭처럼 나도 살짝 철망 너머로 갔다 오고 싶은건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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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a가 워크숍을 가서 어젯밤은 혼자 잤다. 따로 자기 때문에 워크숍을 안 갔어도 혼자 자지만 저녁 시간을 혼자 보내는 건 오랜만이다. 시골에 버라이어티한 오락거리가 있는 건 아니니 혼자 있으나 둘이 있으나 매한가지다. 고요하고 평온한 밤이었다. 자기 전까지 6시간을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인지 자꾸 입이 말랐다. 


 같이 있을 때도 a는 뉴스검색하느라 거실에 있고 나는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느라 방에 있는다. '육룡이 나르샤'와 재미있는 영화를 볼 때나 함께 침대에서 자세를 바꿔가며 뒹굴댄다. 어젯밤은 허전함이 크지 않고 혼자 있다는 것을 의식하며 꿋꿋하게 저녁을 보내지 않아 좋았다. a가 채워준 소소한 생활의 편리도 아쉽지 않았고 뚝배기에 김치 사발면을 끓여먹으며 연신 감탄하는 것도 이채로웠다.


 나 혼자 잤다. 거실에서 자는데도 들리는 코고는 소리와 새벽녁에 한번씩 서로 번갈아가며 잠 안 온다며 칭얼대지 않고 나 혼자 푹 잘 잤다. 아침에 보니 a는 새벽에 잠이 안 온다며 문자를 보냈다. 짧고 귀여운 문자로 미루어선 술을 많이 먹은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사과를 깎고 추석 때 만든 부침개로 찌개를 만들었다. 찌개 맛이 너무 좋아서 a가 없는 게 살짝 아쉬웠다. 크하 거리면서 먹었을텐데.


 며칠 전 근처 산에 갔다가 절에서 향을 피워놓고 가만히 앉아 있은 적이 있다. 옆문으로 햇살이 쏟아졌다. 다른 종류의 풀벌레들이 리듬을 맞추며 소리를 내고 멀리서 불경소리가 들렸다. 옆문 앞에 앉아 가을 볕을 쬐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무릎팍이 따뜻해지고 불경소리가 은은하게 맘 속에 가라앉았다. a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다 햇살과 나를 찍더니 자기쪽을 보지 말라고 했다. a의 핸드폰 속 나는 골똘하게 생각에 잠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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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10-15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풍경이 그려지면서 참 좋다,좋다 하게 만드는 글이네요, 아치님. 좋아요. 좋네요.

Arch 2015-10-16 09:41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절에서 햇살 맞으며 가만히있었던 건 요근래 가장 기분좋은 경험이라 꼭 기록해두고 싶었어요!

 

자주 들어가지 않는 계정에 쌓인 일다 메일을 하나씩 읽고 있다.

성매매 여성들이 직접 말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성매매 여성인지, 성노동자인지로 구분하는 논의가 얼마나 추상적인지를 느꼈다. 상황과 개인의 성향에 따라 성매매 양상과 감정, 제도적 요구사항이 다른데 단선적으로만 바라봤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정책 입안자도 아니고 적극적으로 어떤 입장이있는건 아니지만 20대 때 알바를 하며 성과 관련된 이런저런 고민을 했고

지금 역시 현재진행형 고민이기 때문에 더 관심이 가는지도. 한때는 성역할이 고정된거나 가부장제가 굳건한 이유를 접대문화에서 찾기도 했다. 나 스스로도 여성의 범주를 이쪽 아니면 저쪽으로 나누었고 명확하게 이쪽이 아닐 때, 경계에 선 나에 대해 고민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아마 상대방이 내 정체를 궁금해할 때 더 여러가지 생각을 했던 것 같다.


 한창 데이트 폭력 이야기가 나오고 난 후 그 이야기를 엮은 책이 나왔다. 
















 물리적인 폭력뿐 아니라 정신적으로 의존하고 길들여지는 것도 폭력. 의식하지 못한채 나를 갉아먹는 고차원적인 폭력. 20대의 많은 날들을 '낭만적인 사랑'의 신화에 빠져서 나를 제재하고 압박하는 것조차 애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믿었었다. 혹은 이상한 거부감을 갖고 통념에 저항했지만 의식적으로는 낭만적인 사랑에 콕 박혀 이도저도 못하고 사랑중독자처럼 굴었다. 지금은 상대를 바꾸려는 내 속에 있는 폭력을 자꾸 인식하고 그렇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다. 데이트 폭력과 관련된 글을 읽다보면 요새 내가 하는 짓거리가 꼭 그런 것만 같아서 자꾸 경계하게 된다.















 데이트 폭력에 대해 자전적으로 회고한 '7층'을 보면 나는 저렇게까지 극적으로 사로잡히진 않았다는 생각보다 나 역시 비슷한 형태로 길들여지고 길들이길 바랐던 건 아니었을까란 생각이 든다. 사랑받지 못하는 여자,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여자. 뭐 이런 통념에 대단한 각오로 저항을 했지만 의식할수록 더 옭죄는 관습적인 사고 같은 게 있다. 나 역시 자유롭지 않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a가 조금만 소홀해도 신경질적인 감정을 쏟아내고 당당한 개인 어쩌고 하면서도 관계에서 오는 필연적인 불안감을 상대에게 여과없이 분출하고 만다.


 성폭력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성기삽입 성폭력을 당한적은 없지만 성희록, 성추행 등은 흔하게 보고 듣고 겪어왔다. 그럴 때마다 피해자인 내가 느끼는 감정의 결이 다르고 어떻게 대응해야할지 매번 달랐다. 서사적인 인간처럼 나이가 들수록 대응도 잘할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할 때도 있고 여전히 성희롱 비슷한 맥락의 얘기를 들을 때면 우왕좌왕하게 된다. 이걸 센스있게 받아쳐야할지, 인상을 써야할지, 한방 먹여줘야할지.

http://www.ildaro.com/sub_read.html?uid=7074%C2%A7ion=sc1















 이 책을 읽고 상대가 원하지 않는 몸, 관계에 대해 힌트를 얻었다. 성적인 얘기를 하면 으례 수줍어하거나 눈을 딴데로 돌리거나 화제를 바꾸는 방식을 취하곤 했다. 그런데 이건 너무 뻔한 시나리오인 것이다. 상대가 원하는 반응대로 행동하면 그 사람은 그게 당연한걸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거고 난 그 당연함에 일조하는 것 아닌가. 아니아니, 이렇게 다단계로 복잡하게 생각하진 않았다. 그냥 한방 먹여주고 싶었다.


 술자리에서 평상시 여자들을 좀 떠보는 남자가 그 자리에 있던 언니가 자리를 뜨자마자 옆 사람에게 '쟤 가슴 진짜 크다, 몇일까.'이러는거였다. 공격은 훅하고 들어왔는데 그 대화에 낄 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짧은 순간 초집중해서 한방을 생각해야 했다.

- 아치야, 그런데 너는 몇이냐. 그 왜 있잖아. 무슨 컵

- ...... (한방아 생각나라) 나는 부랄 컵이다. 그런데 네 길이는 얼마나 하냐.

하, 빵 터지고 말았다. 남자들끼리 동양 남자 사이즈를 찾더니 포경수술을 해서 우리나라는 후진국이네 어쩌네하며 슬그머니 화제를 돌렸다. 좀 더 짖궂게 사이즈 운운하려다 꾹 참았다. 보기 드문 인내력을 발휘한 것.


 성희롱은 성별을 불문하고 일종의 권력에서 발생한다고 느낀 일도 있었다.


 나이 많은 여자란게 권력은 아니지만 좀 더 거침없는 면은 있을 것이다. 그 상대가 어리고 말수 적은 남자일 경우라면 더더욱. 한번은 어린 남자 사람이랑 얘기를 하는데 바지라인 끝에 팬티가 보이는거였다. 왠지 알려줘야할 것 같아 작게 말했는데 그걸 다른 분이 크게 전달했다. 하, 남자가 조금 당황한다. 나도 당황해서 이거 성희롱한거 같다며 나도 내 팬티 보여줄까란 얘기를 하고 말았다. 주위에 있던 분들이 그건 2차 피해다, 어쩐다 하면서 웃고 넘어갔지만 그 반응 자체가 성희롱이었겠구나 싶었다. 아포가토 사주면서 잘 지내자 어쩌고 했는데 정말 묘한 기분이었다. 마지막 대응도 좀 이상한데.


 얼마 전 예전에 스크랩해둔 자료들을 읽다가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기 전 생물학적인 여성 대통령을 밀어주자란 최보은의 주장에 대해 김규항이 '나른한 페미니즘'류의 글을 쓴걸 봤다. 김규항의 글은 나른했고 일다와 최보은의 글은 절절해서 맘이 아팠다. 메갈리안 언니들의 화끈한 미러링을 틈틈이 지켜보고 정희진의 책을 계속 읽으며 이런저런 생각을 한다. 고종석의 맨스플레인과 꼭 그렇게 맨스플레인이라고 단정지어야겠나란 싶기도 하고 페미니즘이 여성에 국한된 게 아니라 다양한 지점까지 아우르는거라면 그 정의는 무엇일까란 생각도 해본다. 


 나는 페미니스트란 해시태그가 한창 유행일 때는 SNS를 하지 않았고 지금은 하지만 굳이 나를 페미니스트라고 정의내리고 싶지 않다. 어렸을 때는 꼴통 페미니스트 소리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고 지금은 나를 어떤 지향으로 정의하는게 가당키나 싶은 맘이어서, 페미니즘은 지향의 운동이지 정의내리는 주의는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해시태그는 페미니스트라는걸 드러내는 것만큼 여성의 목소리, 힘을 보여주자는 운동 성격이었던 것도 모르는바는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페미니즘 관련 문제들에 관심을 갖고 이런저런 생각과 정리를 하고 나의 대응을 점검하는 건 즐겁다. 헷갈리고 혼란스러울 때가 더 많지만 페미니즘과 그 저변의 생각들을 읽다보면 나를 다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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