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가 워크숍을 가서 어젯밤은 혼자 잤다. 따로 자기 때문에 워크숍을 안 갔어도 혼자 자지만 저녁 시간을 혼자 보내는 건 오랜만이다. 시골에 버라이어티한 오락거리가 있는 건 아니니 혼자 있으나 둘이 있으나 매한가지다. 고요하고 평온한 밤이었다. 자기 전까지 6시간을 아무 말도 하지 않아서인지 자꾸 입이 말랐다. 


 같이 있을 때도 a는 뉴스검색하느라 거실에 있고 나는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느라 방에 있는다. '육룡이 나르샤'와 재미있는 영화를 볼 때나 함께 침대에서 자세를 바꿔가며 뒹굴댄다. 어젯밤은 허전함이 크지 않고 혼자 있다는 것을 의식하며 꿋꿋하게 저녁을 보내지 않아 좋았다. a가 채워준 소소한 생활의 편리도 아쉽지 않았고 뚝배기에 김치 사발면을 끓여먹으며 연신 감탄하는 것도 이채로웠다.


 나 혼자 잤다. 거실에서 자는데도 들리는 코고는 소리와 새벽녁에 한번씩 서로 번갈아가며 잠 안 온다며 칭얼대지 않고 나 혼자 푹 잘 잤다. 아침에 보니 a는 새벽에 잠이 안 온다며 문자를 보냈다. 짧고 귀여운 문자로 미루어선 술을 많이 먹은 것 같다. 아침에 일어나 사과를 깎고 추석 때 만든 부침개로 찌개를 만들었다. 찌개 맛이 너무 좋아서 a가 없는 게 살짝 아쉬웠다. 크하 거리면서 먹었을텐데.


 며칠 전 근처 산에 갔다가 절에서 향을 피워놓고 가만히 앉아 있은 적이 있다. 옆문으로 햇살이 쏟아졌다. 다른 종류의 풀벌레들이 리듬을 맞추며 소리를 내고 멀리서 불경소리가 들렸다. 옆문 앞에 앉아 가을 볕을 쬐며 가만히 눈을 감았다. 무릎팍이 따뜻해지고 불경소리가 은은하게 맘 속에 가라앉았다. a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다 햇살과 나를 찍더니 자기쪽을 보지 말라고 했다. a의 핸드폰 속 나는 골똘하게 생각에 잠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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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5-10-15 13: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풍경이 그려지면서 참 좋다,좋다 하게 만드는 글이네요, 아치님. 좋아요. 좋네요.

Arch 2015-10-16 09:41   좋아요 0 | URL
고맙습니다. 절에서 햇살 맞으며 가만히있었던 건 요근래 가장 기분좋은 경험이라 꼭 기록해두고 싶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