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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와 악마 - Angels & Demons
영화
평점 :
상영종료
군대 간 동생이 작대기 하나를 더 달고 휴가를 나왔다. 작대기 하나를 더 달아서 인지, 짬이 생겨 머리를 조금 더 길러서 나와서 인지 같이 영화를 보러 나가자 했다. 일반인으로서 군인의 작은 소원 들어주는 것은 북한이 도발하고 있는 이 시점에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같이 여겨졌다. 하지만 곧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또 다른 일을 발견해 냈다. 그것은 군인동생이 지금 보고 싶은 영화가 무어냐고 물어보는 일이었다. 군인동생은 바로 천사와 악마라고 했다. 이것이 오늘 내가 이 영화를 보러 가게 된 전말이다. 동생이 보고 싶다는 영화를 갑작스레 보러 가게 되는 바람에 난 이 영화에 대한 일말의 정보도 얻지 못한 채 영화관에 들어가게 되었다. 물론 달콤한 팝콘은 잊지 않았다.
영화의 제목만 알고 극장에 들어가게 된 나는 동생에게 무슨 내용이야, 물으려다 행여 스포일러가 있을까봐 그만둔 대신, 제목만 가지고 내용을 살짝 유추해 보려 노력해 보았다. 천사와 악마라,, 제목 한번 유치하다. 결국 내가 떠올린 건 날개 달린 하얀 천사와 창을 번쩍 들고 있는 악마의 모습이 다였다.
결국 영화에 대한 코빼기의 정보도 없던 나는 영화 시작과 함께, 영문도 모른 채 바티칸으로 초대되었다. 화려한 로마 성당 안을 둘러싼 알 수 없는 음모의 그림자가 긴장감을 갖게 함과 동시에 흡인력을 발휘하였다. 영화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이 영화가 가볍지 않을 것임을 눈치 챘다. 종교라는 배경이 가볍고 쉽게 다뤄졌던 것을 내가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교황을 선두로 한 종교와, 법칙과 원리로 무장한 과학과의 싸움이 어디 가벼워보이는가.(반전이 있긴 하지만.)
처음에 내가 유치하다며 떠올렸던 하얀 천사와 검은 악마의 모습은 없었다. 누가 천사고 누가 악마인가. 어느 쪽이 천사고 어느 쪽이 악마인가. 영화가 끝나고 출연진의 이름이 올라갈 때까지 나는 결국 답을 내리지 못했다. 천사와 악마는 혼재해 있다는 것이 마지막 내 결론이었다. 천사라고 뿔이 날 때가 없겠는가. 악마라고 동정심이 발동 할 때가 단 한순간도 없겠는가 말이다. 지금 내가 한 말을 누군가가 듣는다면 혹자는 천사에 대한 모독이다, 악마의 편을 든다 하며 나에게 힐난을 가할지 모르겠으나, 여기서 내가 말한 천사는 하느님의 심부름을 하는 날개 달린 천사가 아니다. 마찬가지로 여기서 내가 말한 악마는 사탄이라 지칭되는 그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인간이다. 바로 우리 자신들이다. 결국 신을 섬기는 신자들도 사람이고, 각종 법칙을 발견해 내는 과학자들도 사람이다. 우리 인간들에겐 참으로 다양한 모습이 내재되어 있다. 천사의 탈을 쓴 악마이든, 악마의 탈을 쓴 천사이든 한가지만의 모습은 분명 아니다. 왜 천사는 하얗고 악마는 검다고 하는가. 어쩌면 흑백논리의 시초는 천사와 악마가 아니었을까. 그들은 흑과 백이 아니다. 앞서 말했듯 혼재되어 있는 것이다. 공생의 관계이며, 상생해야 할 관계인 것이다. 이렇게 공생하여야 할 것이 공생하지 못하고 서로를 배척한다면 그것은 결국 파멸이다. 필요불가분의 관계에 있는 어떤 것들이 한쪽을 파괴하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우리는 지난 역사를 통해 경험해 왔다. 나는 어느 쪽이 천사이고 악마인지는 알 수 없으나, 천사와 악마의 공생을 간절하게 꿈꾼다.
이 영화를 보면서 다른 어떤 것과 자꾸 겹쳐지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빈치코드였다. 종교적 내용을 다룬 것도 그렇고, 기호학자가 사건을 풀어가려고 하는 것도 그렇고 자꾸 영화를 보는 내내 다빈치코드가 생각이 났었다. 집에 돌아오고 난 후 알게 된 사실인데, 천사와 악마는 이미 소설책으로 먼저 나와 많은 사람들한테 읽힌 전력이 있었고, 이 책을 쓴 작가는 다빈치코드를 쓴 작가와 동일한 댄 브라운이었다. 나는, 그래서 그랬구나, 어쩐지! 하며 다빈치코드를 생각해낸 내가 당연한 거였어! 했는데 동생이 다빈치코드도 영화로 만들어졌잖아, 그 감독이 이 영화 만든 거야, 하고 알려주었다. 결국 다빈치코드랑 작가와 감독이 같다는 얘기인데, 미리 알고 봤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다빈치코드는 책으로도 읽고, 책을 재미있게 읽어서 영화로도 봤는데 사실 기대에 미치지는 못했었다. 영화로 다빈치코드와 천사와 악마를 비교하자면 뒤에 만들어진 천사와 악마가 일보 진전 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지루하지 않게 끝까지 나를 잡아 끈 것을 본다면 말이다.
급하게 진행되는 많은 사건들과 반전, 그래서 결국 쉬지 못하고 계속 뛰어야 했던 영화 천사와 악마 로 볼 때 원작 소설 천사와 악마 또한 읽을거리가 굉장히 많을 것 같다. 늦은 감이 있지만 책으로도 한번 읽어봤으면 하는 작은 바람이 생겼다.
오늘 난 비싼 돈 내지 않고 바티칸으로 초대되어 좋았다. 화려한 로마의 성당을 들여다 볼 수 있는 기회였고, 그곳의 많은 조각품들 또한 감상할 수 있었던 것이 빠질 수 없는 이 영화의 매력 포인트 같다. 이 영화가 다룬 소재자체가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어서 유쾌하게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지만, 영화를 보고 나가는 관객들에게 짧게나마 생각을 하게 만드는 영화가 아니었나 싶다. 아, 오늘 처음으로 캐러멜 팝콘을 먹었는데 이 녀석 맛이 아주 괜찮았다. 앞으론 그냥 팝콘은 못먹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며 천사와 악마 영화 리뷰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