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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 - Old Partner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어느 날 신문을 읽던 아빠께서 영화 워낭소리 이야기를 꺼냈다. 워낭소리가 뭔 줄 아느냐고, 나는 처음 들어 본 말이라 시인하였고, 아빠한테서 소에게 달아 놓은 방울 소리라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나는 소 방울 소리? 그게 워낭소리라,, 이름 참 예쁘게 잘 지었네, 하며 그러냐고 했더니 아빠는 이 영화 꼭 한 번 보고오라고 당부를 하셨다. 그리고 얼마 후에 워낭소리가 100만 관객을 돌파했네, 영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그 영화에 출연한 할아버지, 할머니를 각종 매스컴에서 찾아서 힘들게 하네, 하는 이런저런 소리가 시끄럽게 들려왔다. 아빠의 당부가 있었지만, 나는 결국 그때 이 영화를 영화관에서 보지 않았다. 끝까지 안 볼 생각을 한건 아니었다. 기회가 되면 언젠가 보게 되겠지 하는 생각이었다.
그 기회가 오늘 찾아왔다. 워낭소리가 개봉하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고, 그 시간동안 워낭소리는 독립영화 사상 최고 기록을 경신하며, 약 290만 관객을 동원하였다고 한다. 이 영화에 전혀 관심이 없었던 것도 아니고, 많은 사람을 울린 그 소가 보고 싶기도 해서, 좀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오늘 워낭소리를 듣게 되었다.
팔순이 다 되어가는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마흔 살 된 소가 꾸려가는 이야기다. 소가 마흔 살이나 먹었다니. 원래 소의 수명은 15~20살쯤이라고 한다. 하지만 할아버지와 함께 농사일도 하여야 하고, 할아버지 병원에 갈 때나 어디든 갈 때 교통수단이 되어 주어야 하는 소는 자신의 할 일이 아직 많다고 생각해서 인지 마흔 살이나 먹을 때까지 제 나이를 모르고 산 것 같다. 아니 어쩌면 제 나이를 알면서도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정성스레 여물을 끓여주고, 귀가 잘 들리지 않으면서도 자신이 내는 워낭소리는 귀신같이 들어주는 할아버지를 두고 쉽게 갈 수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팔순 다 된 할아버지와 마흔 먹은 소는 참 많이도 닮아 있다. 세월의 흔적들을 고스란히 몸에 담고 있어, 잘 걷지도 듣지도 못하는 할아버지와, 비틀비틀 힘겹게 한걸음 한걸음을 내딛는 소의 모습이 아프게 닮아있다. 나이가 들어도 자신의 일을 멈추지 않는 것도 닮았다. 마치 자신의 숙명이라 여기는 듯, 비가와도 할아버지는 비옷을 입고, 소는 비닐을 덮고 어김없이 할 일을 해나간다.
그렇게 소를 부려 일을 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농약과 기계로 비교적 쉽게 농사일을 하는 다른 사람들의 모습과 비교가 된다. 우리도 농약을 하자고 하는 할머니의 말에 농약 치면 풀을 소 못 먹인다고 안 된다고 해버린다. 고추가 중해요 소가 중해요? 하는 물음에도 망설임도 없이 소가 중하다고 하는 정도면, 소가 사람보다 낫다고 하는 할아버지의 말이 빈말이 아님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그런 할아버지의 마음을 소는 알고 있는 듯하다. 그 증거를 대보라고 하면 딱히 할 말은 많지는 않지만, 소의 그 커다란 눈이, 할아버지가 가자고 하면 어디든 가는 소의 그 모습이 그게 아니고 뭐란 말인가.
할아버지에게 소는 친구고, 자동차고, 자랑거리다. 친구들과 회포를 푸는 자리에서도, 자신이 소를 타고 가다가 깜박 졸았는데 눈 떠보니 집에 와있더라고 하며 초롱초롱 눈을 빛내며 자랑한다. 또 차가 오면 알아서 지가 비킨다는 말도 빼놓지 않는다.
나는 중학교 때 지금 살고 있는 시골마을로 이사를 왔다. 지금은 이사 온 지 10년 정도가 지났는데, 내가 처음 이곳으로 이사 올 때 나보다도 먼저 터 잡고 이 동네에 살고 있는 소가 있다. 소 주인인 동네 할아버지는 늘 소를 타고 다니시는데, 어느 날 우리 집으로 놀러 온, 서울이 고향인 친구가 그 모습을 보더니 신기하다며 사진까지 찍고 했다. 나는 이곳으로 이사 온 후 소를 자주 보아 별로 신기하지 않았는데, 서울이 고향인 그 친구의 눈엔 마냥 신기했나 보다. 소의 모습에 무뎌진 나에게도 정말 신기해 할 일이 한 2년 전에 일어났다. 어느 날 차를 타고 동네로 들어온 나는 멀찌감치 묶여서 풀을 뜯어 먹고 있는 소 때문에 잠시 고민했다. 소가 차가 지나가야 할 길에 묶여 있었기 때문에 그 주인인 할아버지를 찾아서 말씀드려야 하겠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그 소가 나를 보더니 딱 비켜서 길을 내주는 것이 아닌가. 자기가 다칠까봐서 비킨 건지 그냥 나 갈길 가라고 비켜 준건지는 확실치 않으나 정말 신기한 일인 것임은 확실했다. 이제 2년이 지난 일인데도 나는 아직도 생각이 나면 가족들한테도, 친구들한테도 몇 번이고 그 일을 이야기 하고 다닌다. 워낭소리의 할아버지의 차가 오면 지가 알아서 비켜 하는 그 말씀은 거짓이 아니란 건 내 경험으로 알고 있었다. 정말 그런 소가 있다는 것이다.
서당 개 삼년이면 풍월을 읊는다고 하지 않던가. 사람과 함께 세월을 보낸, 같이 농사일을 하는 소는 이미 반쯤 사람이 된 것 같다. 할머니와 자식들의 성화에 못 이겨, 결국 소를 팔기로 하고 마지막 인사를 건넬 때는 밥도 먹지 않고 눈물을 흘리는 그 소가, 그 눈이 반쯤 사람 된 소라는 것을 증명해 보였다. 강산도 4번이나 변했을 40년 세월을 함께 한 소를 우시장에 데려가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을 것이다. 소를 얼마면 팔겠냐는 사람들의 물음에 500만원! 그 이하론 안 팔어! 하고 답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에선 어쩌면 처음부터 소를 팔 생각이 없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500만원? 마흔 먹은 소를 누가 그 돈 주고 사~ 거저 줘도 안 가져가~ 하는 사람들의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그걸 뒷받침 해 줬다. 이미 반 사람이 된 소고, 이미 할아버지의 일부가 된 소가 아니던가. 너무도 닮은 그들을 어떻게 떼어놓을 수 있을까. 밥 한 그릇과 막걸리 한잔을 뚝딱 해치우는 이 소는 농사짓는 할아버지의 모습과 다름없다.
딸랑 딸랑~ 하며 울려 퍼지는 그 워낭소리를 그리고 나는 잘 알아듣지 못하지만 소는 귀신같이 알아듣는 소를 모는 할아버지의 그 소리를 오래도록 듣고 싶다. 우직하게 농촌을 지키고 농사를 짓는 얼마 남지 않은, 할아버지 표현대로 부리는 소들이, 사람과 함께하는 그 소들이 이 땅에 오래도록 남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무래도 내 귀에는 오래도록 워낭소리가 울릴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