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일기
이승우 지음 / 창비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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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8년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 르 클레지오가 한국 문학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는다. 또 그가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작가 중의 한 사람이 이승우 작가라는 것 역시 그렇다. 르 클레지오 작가가 우리나라에 관해 상당히 호의적인 말들을 많이 했지만, 그 중 내가 가장 반갑고 설렜던 말은 우리나라에서도 노벨 문학상을 수상 할 작가가 곧 나올 것이라고 말해준 것이었다. 그의 말대로 우리나라에서도 머잖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는 작가가 나오기를 염원하며 이 책을 펼쳤다고 해도 과장은 아닐 것 같다.

 이 책 오래된 일기는 이승우 작가가 몇 년간 문학지에 발표한 단편소설들을 하나로 엮어놓은 책이다. 따로따로 있었을 때에도 그 나름의 매력이 있었겠지만, 이렇게 하나로 묶어 놓아도 각 작품들이 어딘 가 모르게 연결 된 부분들이 있어, 번잡하거나 어색하거나 하는 것이 없다. 잘 엮어진 그물처럼 촘촘하고 꼼꼼하게 각 작품들이 얽어져 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그 잘 짜인 그물에 걸린 작은 물고기 쯤 되었을까.

 물고기가 된 나는 그가 쳐 놓은 그물에서, 한없이 캄캄하고 어두운 그 어떤 것들을 만나게 되었다. 밝은 빛을 찾으려 팔딱 거려 보아도 어디에도 나를 비추는 빛은 찾아 볼 수가 없었다. 그의 다른 작품들도 그러하다고 평가되고 있듯이, 이 작품 역시 그리 밝지 않다. 비상금 숨겨두듯 꼭꼭 숨겨두고만 싶은 어릴 적 트라우마나, 그것의 크기가 크든 작든 누구나 언젠가는 느꼈던 죄의식들을 굳이 잡아 끌어내기 때문일 것이다. 이 작품의 표제작 오래된 일기에서 그는 누구나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세상에, 자신의 분신 일 주인공의 정직한 일기장을 공개함으로써, 우리들이 불편해 할 내밀한 진실을 밝힌다. 인간이기에 누구나 저질렀을 죄, 그것이 자신이 원한 것이든 그렇지 않은 것이든 어쩌면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가야 할 죄(무슨 일이든, 아무 일도, 풍장-정남진행2), 가슴엔 담아도 차마 고백은 하기 힘든 빚진 마음(실종 사례) 이런 것들을 모두 불러 모은다. 이런 것들을 불러 모은 자리가 편할 리는 만무하다. 하지만 난 이 자리에 있을 필요가 없어요, 라며 슬그머니 이 자리를 빠져 나오려는 것은 더욱 편치 못할 일이다. 그래요, 나도 살면서 어쨌든 죄 짓고 살았어요. 그래서 어쩔 건데요? 하고 대들어 볼까도 했지만 그는 나를 혼내려는 생각도 없어 보인다. 어쩌면 자신도 그렇다 하며, 내가 실수로 컵을 깨트릴 때, 자신은 비싼 도자기를 깨 보임으로써 그걸 입증해 보이고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의 작품 속에 나타나 있는 이런 것들은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따 먹은 죄 때문에 모든 인간이 날 때부터 가지고 있다는 그 원죄 의식과도 맞닿아 있을지 모른다. 그가 굳이 비싼 도자기를 깨면서 보여주고 싶었던 건 그런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가 분신을 통해 적은 일기장처럼 훗날 내 일기장에는 정직하게 나의 죄를 고백할 수 있을까. 불편하지만 언젠가는 마주쳐야 할 진실들을 정면으로 보게 된 나는 이제 더 이상 도망치지 않게 될까. 이 책을 덮고 난 밤 나는 꼬리를 물고 또 꼬리를 무는 생각들에 쉽사리 잠을 이루지 못했다. 책으로가 아닌 실제로 작가를 만나 무슨 이야기를 들은 듯 한 느낌이 지워지지가 않아서였다.

 여담이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또 하나 느꼈던 사실은 작가들은 참 생각이 젊다는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이 작가의 생각을 젊게 하는 것인지, 생각이 젊은 사람들이 작가를 하는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작가의 신체 나이가 몇 살이든 관계 없이 여러 연령층의 독자와 소통을 할 수 있는 것이 작가들의 생각이 젊다는 것을 뒷받침 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내가 작가와 소통을 했다고 하면 외람된 말일 지도 모르지만, 그의 다른 작품들에도 호기심이 생긴 것을,앞으로 자신과의 소통을 허락한다는 이승우 작가의 무언동의 쯤으로 여기고 싶다.

 글을 마치기 전에, 꼭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이 있었는데, 책 마지막 페이지에 있는 작가의 말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나의 훌륭한, 이타적인 독자들에게 인사한다. 또 넘어가주고 넘어간 척해주고, 또 빈말해 달라. 그러면 나는 또 엄살 부리고 스스로를 달랠 힘을 얻겠다.

어쩌면 그가 말한 것처럼 나도 그에게 넘어가 준 건지도 모른다. 나는 그가 쳐 놓은 그물에 일부러 뛰어들은 물고기였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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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이야 2009-06-14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잘 읽었습니다.

어느멋진날 2009-06-14 23:32   좋아요 0 | URL
많이 길고 지루한 글이었을 텐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ㅡ^

노이에자이트 2009-06-14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르 클레지오가 화순 운주사를 방문했을 때 인상이 깊었다고 말하더군요.
이승우의 작품을 높이 평가했군요.한승원,이청준과 고향이 같아요.전남 장흥.

어느멋진날 2009-06-14 23:40   좋아요 0 | URL
노이에자이트님은 모르시는게 없는 것 같아요.정체가,,,?? ㅎㅎ
그래도 하나는 알았어요^^ 광주에 사시는거 ㅎㅎ

노이에자이트 2009-06-15 00:11   좋아요 0 | URL
제가 아는 게 많지요? 모르는 것 빼고 다 알아요.

어느멋진날 2009-06-15 00:27   좋아요 0 | URL
깜짝 깜짝 놀라요,, 노이에자이트님 때문에,,ㅎㅎ 두루두루 박식하신 것이 부럽네요. 연륜이 쌓이고 내공이 쌓이면 저도 언젠가 그 모습 닮아가겠죠? 하하,,

노이에자이트 2009-06-15 01:17   좋아요 0 | URL
연륜이라뇨...저 아직 청춘이에요.청춘남녀끼리 다 아시면서...

어느멋진날 2009-06-17 12:53   좋아요 0 | URL
헤헤~알다마다요^^ 노이에자이트님 청춘!

[해이] 2009-06-15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재밌게 읽었어요. 처음 들어보는 작가인데, 주목해야 겠어요^^

어느멋진날 2009-06-15 00:26   좋아요 0 | URL
네^^저두 주목해 보려고 하는 작가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노벨 문학상이 꼭 나왔으면 좋겠어요.

어느멋진날 2009-06-19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6월 3주 이주의 다음 블로거뉴스 특종으로 선정해 주셔서 감사합니다.^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