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출처 : 水巖 > 앗 ! 동아일보에 니르바나님이 ! - 아인슈타인 이야기

앗! 아인슈타인이 살아있었네


Einstein, Albert
《올해는 천재 과학자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이 특수상대성이론 등 3가지 획기적 이론을 발표해 과학사에서 ‘기적의 해’라 불리는 1905년에서 꼭 100년 되는 해.

그래서 ‘세계 물리의 해’다.

전 세계적으로 빛 신호가 지구를 한 바퀴 도는 ‘빛의 축제’ 등 각종 행사가 열리고 7월부터 국립서울과학관에서도 아인슈타인 전시회가 마련된다.

아인슈타인이 죽은 지도 50년.


 

나를 비롯해 그의 이론을 잘 모르는 일반인들은 사실 별 관심도 없다.

물리학이야 천재들만의 학문이 아닌가.

그런 내가 상대성이론 발표 100주년을 기념하는 기사를 써야 한다니!

학교 다닐 때도 과학을 제일 싫어했는데….

집에 들어와 소파에 털썩 누웠다. 누구한테 뭘 물어봐야 되지…

아인슈타인에게 직접 물어볼 수도 없고.

아무래도 내일 가서 그냥 못 한다고 말해야 할까. 머리 아프다….》

○ ‘E=mc²’을 아느냐

갑자기 옆에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내 덕분에 전기 펑펑 쓰면서 사는군. 불이나 끄고 자지 그래?”

낯선 목소리에 벌떡 일어났다. “헉, 누구세요?”

백발이 성성한 외국인 할아버지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도둑은 아닌 것 같은데.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이다. 근데 한국말 잘하네.

“내가 필요한 것 같아 들렀지. 내가 죽은 줄 알았지? 사실 난 아직 곳곳에 살아있네.”

“호, 혹시 아인슈타인?”

“흠, 이제야 알았군. 어떤 멍청한 것들은 내 얼굴을 알베르트 슈바이처 박사와 혼동하곤 하지. 그래도 내가 좀 더 잘생겼지?”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특종이다! 아인슈타인이 살아있다니. 아인슈타인 독점 인터뷰, 한국 기자상, 아니 퓰리처상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제발! 침착해야 돼.

“저, 저, 저기 앉으세요. 뭐 마실 거라도?”

“자네 물리를 하나도 모른다고 했지. 혹시 ‘E=mc²’은 들어봤나?”

“그럼요, 엠씨스퀘어. 집중력 향상 도구 아니에요? 친구가 쓰는 것을 본 적이 있어요.”

“쯧쯧…심각한 수준이군. 그건 나의 특수상대성이론에서 나온 공식이야. M의 질량을 가진 물질이 핵융합 또는 핵분열을 하면서 질량이 m만큼 감소했다면 m에 빛의 속도의 제곱(c²)이 곱해진 만큼의 엄청난 에너지(E)가 발생하지. 이 공식을 이용해서 원자력 발전을 하는 거야. 만약 1g의 질량이 에너지로 바뀐다면 무려 2500만 kWh의 에너지가 발생해 7000가구가 1년 동안 쓸 수 있네. 이 나라 전기의 40%는 원자력 발전으로 얻어지지. 그것도 모르면서 매일 전깃불을 켜놓고 자나? …그리고 사실 이 공식으로 핵폭탄도 만드네.”

맞다. 그가 이를 이용해 핵폭탄을 만들자고 제2차 세계 대전 때 프랭클린 루스벨트 미국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다는 역사적 사실이 생각났다. 나중에 이를 후회하며 핵폭탄 반대 운동에 나섰다는 사실도.

○ 시간도 관측자에 따라 상대적

“참, 특수상대성이론 100주년이라는데 그게 도대체 뭐죠?” “일단 우주에서 가장 빠른 것은 빛이고 빛의 속도는 일정하다는 전제를 먼저 기억하게. 예를 들어 1초마다 전파를 보내는 시계를 우주선에 실어 보냈어. 지상에서 우주선의 시계에서 보내는 전파를 관측했더니 1분에 한 번씩 전파가 오는 거야. 하지만 우주선 안에서 보면 시계에선 정확히 1초마다 전파가 나오고 있네.”

“정말요? 어떻게 그럴 수 있죠?”

“그것은 매우 빠르게 운동하는 물체에서는 시간이 느려지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야. 우주선이 만약 빛의 속도로 달린다면 전파의 간격은 무한대가 되겠지. 빛의 속도로 달리는 우주선을 타고 한 달을 여행하고 돌아오면 지구에서는 수백, 수천 년이 지났을지도 몰라. 여기서 중요한 게 뭔지 아나?”

“글쎄요. 시간이 상대적이라는 것 아녜요?”

“그래 맞았어. 사람들은 공간이 상대적이라는 것은 알지만 시간은 누구에게나 같다고 생각했지. 그러나 똑같은 1시간이라도 미인과 함께 있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시간이 간다는 사실을 생각해봐. 관측자에 따라 시간도 상대적이라는 것을 내가 증명한 거야. 공간과 시간이 같이 달라지니 누구나 자신의 시공간에서 빛의 속도가 일정할 수 있는 거야.”

“그게 무슨 의미가 있어요? 일상생활에서는 빛의 속도에 가깝게 운동하는 게 없으니 그런 현상을 느낄 수 없잖아요.”

“우주에선 가능하지. 또 실험도 할 수 있어. 만약 하루살이를 1초에 27만km 움직이는 장치에 넣는다면 그 안의 시간이 2배로 느려지면서 우리가 보기에 하루살이는 이틀을 살 수 있을 거네. 다른 사람보다 조금이라도 젊어 보이려면 빨리 움직여야겠지? 하하.”

조금 이해가 간다. 그렇다면 더 어렵다는 일반상대성이론은 무엇일까.

“특수상대성이론은 물체가 등속운동을 한다는 가정하에 만든 것이지. 그러나 실생활에서 모든 물체는 중력의 영향을 받는 가속도 운동을 하네. 중력의 영향을 고려해 일반화하는 과정에서 나는 중력이 세면 주변 시공간이 휜다는 사실을 알았지. 예를 들어 태양같이 중력이 센 곳 주변에서는 별빛이 휘는 것처럼 보이네. 중력이 어마어마한 블랙홀 주변은 시공간이 너무 휘어서 물질뿐 아니라 빛까지 모두 빨려 들어간다네.”

“너무 어렵네요. 머리를 쓰니까 배가 고파지는데 저녁이나 먹으면서 하죠. 제가 살게요.”

그와 함께 차에 올랐다. 특별한 손님이니 한 번도 안 가본 고급 식당으로 가야겠다. 길을 몰라 내비게이션을 가동시켰다.

“바로 이거야! 인공위성이 보낸 전파를 이용해 자동차가 있는 지점을 운전자에게 알려주고 목표 지점까지 어떻게 가는지 안내하잖아. 그러려면 인공위성의 시계가 지구상의 시계와 일치해야 하지. 근데 인공위성은 너무 빨리 움직이니까 특수상대성이론에 따라 그 안의 시간은 느리게 가겠지. 또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라 중력이 지표면보다 작으니까 시간이 빨리 가기도 한다고. 그 차이를 보정해 지구상의 시계와 똑같이 가도록 해줘야 내비게이션이 작동하지. 휴대전화의 ‘친구찾기’ 기능도 인공위성자동위치측정시스템(GPS)을 이용하고 있네.”

○ 미술 속에도 아인슈타인 있다

그와 함께 식당으로 들어섰다. 좀 이상하다. 아인슈타인과 같이 왔는데 아무도 놀라지 않고 쳐다보지 않는다. 거 참, 아인슈타인도 몰라보다니.

“식사 중이니까 재밌는 얘기 해주세요. 어려운 거 말고요.”

“상대성이론이 미술에도 많은 영향을 줬다는 얘기들도 하더라고. 자네 콧수염 난 얼굴의 초현실주의 화가 살바도르 달리의 ‘기억의 지속’을 아나?”

“아, 해변에 죽은 시계가 막 늘어져서 널려있는 그림이죠?”

빛의 속도로 달리면 시간이 정지할 것이다. 달리의 그림은 시간 정지를 의미한다. 사람들은 물질이 변하지 않는 근원적인 것인줄 알았지만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물질은 에너지로 변할(E=mc²) 수도 있다. 또 물질보다 더욱 절대적인 것이었던 시간도 상대성이론에 따르면 ‘시계가 측정하는 하나의 물리량’일 뿐이다. 이런 생각들이 당시의 미술과 문학 등에 영향을 주었을 법하다.

“피카소 같은 입체파 화가들은 앞과 옆, 뒤 등 여러 면에서 본 물체를 한 화면에 담아냈잖아요. 그것도 상대성이론의 영향이 아닐까요?”

“가능성이 있지. 20세기 초에 나 말고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많았거든. 보는 관점에 따라 뭐든지 달라지니 ‘눈에 보이는 것만이 진실이 아니다’라는 인식이 생겼지.”

또 뭘 물어볼까 생각하며 이마를 긁적이고 있던 나를 유심히 쳐다보던 그가 묻는다.

“이마의 점은 좀 빼지 그러나. 요즘 레이저로 하면 깨끗하게 잘 빠지잖아.”

“이거 ‘복점’이에요. 근데 혹시 레이저도 만드셨어요? 그런 소리는 처음 듣는데.”

“레이저를 만든 건 아니고, 내가 제시한 원리가 레이저 개발의 기초가 됐어. 1917년에 발표한 논문에서 빛 입자가 높은 에너지를 가진 원자를 자극하면 원자는 똑같은 빛 입자를 하나 더 내놓는다는 이론을 발표했거든. 이런 식으로 똑같은 빛 입자가 모인 순수한 빛을 만들 수 있어. 이게 레이저야.”

“그럼 할아버지 없었으면 점 빼기나 라식수술도 못할 뻔했네요.”

“뭘, 흠흠. 참고로 CD나 DVD에 담긴 정보를 각각 음향과 영상으로 읽어내는 것, 슈퍼마켓에서 물건 사고 계산할 때 바코드를 읽는 것도 다 레이저가 하는 거라네.”

○ 디카 속의 광전효과 원리

아차, 사진을 찍어야 한다. 누가 아인슈타인을 만났다는 것을 믿겠는가. 급히 디지털 카메라를 꺼냈다.

“디지털 카메라군. 요새 이거 없으면 못 사는 사람들 많지? 그건 ‘광전효과’에 의한 것인데 내가 그 원리를 규명해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지. 광전효과란 빛 입자가 금속판을 때리면 전자가 튕겨 나가는 현상이야. 디지털 카메라에는 전자결합소자(CCD)라는 부품이 있어. 400만 화소 카메라에는 400만 개의 CCD 소자가 붙어 있지. CCD에 빛이 들어가면 광전효과에 따라 전자들이 튀어나와 전기가 흐르지. 이 전류를 이용해 사진 파일을 만드는 거라네.”

“그럼 캠코더도 같은 원리이겠군요.”

영화에서 비밀스러운 장소에 들어갈 때 신원확인용으로 사용되는 홍채인식장치나 지문인식장치에도 CCD가 사용된다. 햇빛이 태양전지판을 때리면 전자가 나와 전기가 흐르는 태양전지도 같은 원리라고 그는 말했다.

“우와, 광전효과 덕분에 ‘싸이질’도 가능한거군요. 저 내용 잊어버리기 전에 빨리 가서 할아버지 만난 거 기사 써야 돼요. 증거로 사진 같이 찍어요. 자. 하나, 둘, 셋, 찰칵!”

‘쿵!’

눈앞에서 빛이 번쩍했다.

깜짝 놀라며 눈을 뜨니 우리 집 소파 위. 오전 3시. 또 불을 환하게 켜 놓고 잠이 들었다.

뭐야, 꿈이었어? 그럼 아인슈타인은, 기념사진은, 내 기자상은?

허무하다. 근데 머릿속은 아인슈타인과 나눈 얘기들로 꽉 찬 것 같다. 꿈에서 그를 만나 혹시 나도 천재가 된 것은 아닐까.

다음날, 나만큼이나 과학에 무지한 친구를 만났다.

“너 ‘E=mc²’이 뭔지 아냐?”

“왜, 그거 사려고?”

그래, 넌 역시 나의 진정한 친구다.

“바보, 그건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에서 나온 건데… 어쩌고 저쩌고. 참, 그거 아냐? 불 켜 놓고 자면 아인슈타인 귀신이 나와서 ‘E=mc²’이 뭐냐고 묻는 거.”

(이 기사는 가상의 상황이며 동아사이언스 김상연 기자, 가톨릭대 교양교육원 이관수 교수, 전남대 물리교육과 박종원 교수가 아인슈타인 역할로 도움말을 주었습니다.)

글=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그래픽=이진선 기자 geranum@donga.com

▼많이 배우기 보다 많이 체험해야 창의력 ‘쑥쑥’▼

‘우리 아이도 혹시 아인슈타인?’

부모들은 누구나 자신의 아이가 천재가 아닐까 한번쯤 즐거운 착각을 해 본다.

과학사가들에 따르면 한 세기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천재인 아인슈타인이지만 어린 시절에 주위를 놀라게 할 만큼 똑똑한 학생은 아니었다.

서울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협동과정의 홍성욱 교수는 “아인슈타인의 뇌가 일반인들에 비해 특출했다는 것은 언론이 만들어 낸 신화일 뿐이고 크게 보면 보통 사람들의 뇌와 별 차이가 없었다”며 “창의적인 사람들이 대부분 IQ가 120 이상이라는 조사 결과는 있지만 120 이상에서 비례관계는 없다”고 말했다.

타고난 머리보다는 창의력을 길러주는 교육과 훈련이 관건이라는 얘기.

한국교육개발원 영재교육연구실 조석희 실장은 아이가 호기심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도록 집 한구석에 실험실을 마련해 주라고 조언했다. 실험실이라고 해서 거창한 것이 아니고 방해받지 않고 온갖 잡동사니를 모아둘 수 있는 곳. 실험도구를 갖춘다면 좋겠지만 부모가 세트로 사서 안기는 것보다는 아이가 스스로 나이에 적합한 도구들을 하나하나 사 모으는 것이 낫다.

아이의 말은 성실하게 들어줘야 한다. 조 실장은 “아이가 실험한 것을 자랑할 때 부모가 그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는 태도를 보여주면 아이는 신이 나서 더 큰 상상력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실험을 하다 보면 결과가 신통치 않을 때가 많다. 이때 “아무도 하려고 하지 않는 것을 너는 해보려고 했구나” 등의 칭찬을 해 주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만든다.

다양한 체험학습도 좋다. 방학 기간 중 각종 전시회나 박물관을 둘러보는 것은 물론 놀이터에서 노는 것도 공부가 된다.

경인교육대 과학교육과 김난주 교수는 “많이 배운 학생보다 많이 본 학생들이 더욱 풍부한 창의력과 사고력을 가진다”고 강조했다. 다만 부모가 계속 질문을 통해 아이에게 생각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시소를 타면서 힘의 평형에 대해 얘기하고 길을 걸으며 그림자가 해의 반대방향에 생긴다는 것들을 일깨우며 “왜 그럴까?” “만일 …라면?” 등의 질문을 던져본다. 부모가 과학적 지식이 있으면 더 좋지만 모른다고 해도 대화 자체가 아이의 상상력과 사고력을 키워준다.

아이디어도 지식이 있어야 나오기 때문에 독서는 기본이다. 과학교육 포털 사이트 ‘사이언스올(http://www.scienceall.com)’에는 학년별로 권장 과학도서 목록이 제시돼 있다. 조석희 실장은 “세계적인 수준의 과학자들은 어릴 때 1주일에 5권 이상의 책을 읽었다”고 말했다.

아인슈타인 관련 행사
행사 장소와 일시 내용
아인슈타인 전시회 서울 국립과학관, 7월부터 내년 1월까지 ‘빛과 파동, 입자관’ ‘우주관’ 등 주제에 따라 아인슈타인의 업적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전시회
‘빛의 제전- 물리학이 세계를 밝힌다’ 4월 18일 아인슈타인 사망일인 이 날, 미국 뉴저지 주 프린스턴에서 시작된 빛의 릴레이가 24시간 동안 전 세계를 돈다
합동학술회의 4월 21, 22, 23일 이화여대 한국물리학회와 재미한인물리학자들이 아인슈타인의 논문을 주제로 합동학술회의를 연다
대중과 함께하는 물리세상 수도권 4월, 경상지역 6월,전라 제주지역 8월, 충청지역 10월 일반강연, 과학대화마당, 과학자들의 연극공연 등의 프로그램을 지역별로 약 1 주일씩 순회 개최
‘상대성 이론 그 후 100년-대중강연회’ 포항공대, 2월 19일 아인슈타인에 대한 대중강연
아인슈타인 가족콘서트 포항시, 4월 9일 가족과 함께하는 게임, 공연, 과학유머와 퍼포먼스
대전시 물리축제 대전 엑스포 과학공원, 8월 말 예정 매년 여름 대전시와 엑스포과학공원이 개최하는 사이언스 페스티벌 기간 중 별도의 ‘물리관’을 설치
자세한 정보는 한국물리학회, 세계물리학회 조직위원회 참조.

채지영 기자 yourcat@donga.com

◇ 이 기사의 취재에는 본보 대학생 인턴기자 김진욱 씨(서강대 사학과 2년)가 참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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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르바나 2005-01-26 18:41   좋아요 0 | URL
수암선생님의 소개로 서재이미지를 흑백에서 천연색으로 바꾸었더니 큰 이미지는 괜찮은데 작은이미지는 눈동자가 가운데로 심하게 몰려 보기가 민망해서 그대로 두었습니다.

stella.K 2005-01-26 20:42   좋아요 0 | URL
니르바나님은 아이쉬타인 이미지 절대로 바꾸시면 안될 것 같습니다. 그러치 않아도 상당히 궁금합니다. 정말 니르바나님 아이쉬타인 같이 생기셨을까? 한번 뵙옵기를 청합니다.^^
 

 

'인생에는 한 길만이 아니고 여러 길이 있다.

좀 더 나가면 자기가 가는 길이 곧 길이 된다.'

 

高手,

인생에 있어서 고수란 과연 누구를 말하고 있는걸까?

인생을 사는 데 있어서 살고 싶은 대로 한 번 살아보는 사람으로 정의하고 싶다.

두 권으로 나누어 출간된 이 책에는 이런 분들 13명이 모여 있다.

 

방내지사란 제목에서 方을 책에서는 테두리나 경계, 고정관념, 조직사회를 나타내는 말로 설명하고 있다.

우리가 방위를 나타낼 때에 쓰는 사방 팔방은 좁은 의미의 지리적 구분이지만,

우주적 관점과 종교적 관점으로 발전할 수 있는 개념이기도 하다.

그리고 방을 내외로 구분하여 제목을 달아 놓아지만,

방내란 책에서 설명하는 것처럼 노래방, 찜질방, 공부방, 빨래방처럼

이름만 붙이면 설명이 가능한 구획되고 제한된 공간만일까,

그도저도 아니면 상업적 측면만 고려해서 작명 가능한 구역일까.

 

여기서 道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는 명제를 비추어 보면

길은 인간들이 이 땅위에 나서 다니면서 생기는 물리적 길이 될 수 있지만,

天路의 역정을 그린 종교적 구도길이 될 수도 있고,

마음속으로 들어가서 만드는 心路도 있다.

천국은 네 마음속에 있다고 갈파한 예수님의 말씀도 있다.

 

방내란  결코 위에서 언급한대로 속좁은 지리적, 심리적 공간만은 아닐 것이다.

책속 사진으로 볼 수 있는 대각심 스님의 손에 숨은 말처럼 인생을 주물러서 터진 물리와

호랑이처럼 이글거리는 성철스님의 눈을 가지고 방의 경계를 깨러 나설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우선 여기 方外之士들의 삶을 살필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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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5-01-26 13: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 몇일동안 뵙지 못해서 너무 궁금했어요!!님처럼 고수이신 분들이 알라딘을 지켜 주셔야 합니다. 그게 도(道)라고 생각해요. 앗, 저 점심 먹고 와서 양치질 하러 가야해요^^

니르바나 2005-01-26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매일 매일 알라딘 서재를 지키시고, 좋은 글로 서재인들을 감동시키는
파란여우님이야말로 알라딘의 고수이십니다.
點心드셨군요. 어느 마음에 점을 찍으셨나요. 파란여우님 ㅎㅎ

2005-01-26 14:3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부리 2005-01-26 15:4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은 도를 아시는 것 같습니다...글에서 어떤 기가 느껴지는걸요^^

니르바나 2005-01-26 17: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마음에 흠결이 없으셔서 그러십니다.
사소한 일에도 성의를 기울이시는 님의 마음이 더 아름답습니다.

니르바나 2005-01-26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부리님의 글에서 저는 오히려 고수의 기운을 느낍니다.
따뜻하게 세사를 대하는 모습이 저희 서재인들에게 귀감이 되니까요.
저리 열심히 렛츠 고우! 댄스하고 있는 부리보세요. 뭘 해도 저 정도는 해야 됩니다.

비로그인 2005-01-26 1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그 "기" 가 어디서 유래하는 것인지 압니다. 헷헷.
저 혼자 생각입니다만 :)

니르바나 2005-01-26 20: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알 것 같아요. 체셔님 ㅎㅎ

비연 2005-01-26 23: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 넘 오랜만인 것 같습니다. 계속 어디 가셨나 찾고 있었지요^^
여전한 모습으로의 복귀. 반갑습니다^^

하얀마녀 2005-01-26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高手란 니르바나님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생각합니다만... ^^

니르바나 2005-01-26 2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비연님, 제가 게으른 자의 표본입니다.
비연님처럼 부지런하게 서재활동을 해야하건만 잘 안되네요.
맨날 서재인들의 글만 읽는것도 죄송해서 조금 자제하고 있습니다.
비연님, 저도 다시 뵙게되서 반갑습니다.

니르바나 2005-01-26 23: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하얀마녀님이야말로 진정한 고수이십니다.
이렇게 말씀 안드려도 알라디너들이 그리 모시고 있습니다.
 

온전히 알라딘 이웃들의 수고를 힘입어 어제 오늘 보관함에 고히 모신 책들입니다.

새로운 인연의 길이 생긴 셈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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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22 00:0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드무비 2005-01-22 11: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너무 뛰어난 선택이세요.^^

플레져 2005-01-22 14: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말씀에 동감 합니다! ^^

2005-01-23 17:47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니르바나 2005-08-05 17: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모두 로드무비님, 플레져님 덕분입니다.
왜인고 하니 님의 서재에서 만난 분들이 소개해주셨으니까요.
 
 전출처 : 로드무비 > 'Red Hunt' 조성봉 감독의 우중지리행


우중지리행 雨中智異行 - (11월14일-15일)







<지리산비가悲歌>



순천동부지역사회연구소에서 만든 비매품음반에 수록된 곡이다.

반가웠다. 하지만 좀 실망스럽다.

원곡의 처연하지만 가슴을 찌르는 송곳 같은 그 무엇이 빠져있다. 편곡도..



지리산 남부군 문화유격대 문화부장 최순희씨가 만들고 부른 노래로 알려져 있다.

여든이 넘은 그녀가 피아노를 치며 이 노래를 부른다. 울면서 부른다.

나에겐 노래라기 보단 절규로 들렸다.



그녀는 일제강점기때 일본에서 음악을 전공했다.

평양에서 카르멘공연을 할 때 카르멘역을 맡았다. 전쟁 후 지리산빨치산이 되었다.

-이태의 <남부군>엔 최문희로 기록되어 있다.







11월 14일 07:25



노고단 가는 전망대에서 화엄사골짜기를 바라본다.



피아골대피소 산장대장 함태식선생이 쓴 책

“그곳에 가면 따뜻한 사람이 있다”에 이런 글이 있다.



<1986년 10월.. 새벽녘이 되어 섬진강의 물줄기가 보이기 시작하자

최순희씨는 눈물을 펑펑 쏟기 시작했다. 화엄사 집선대를 오를 때까지도 울었다.

그리고 노고단에 올라와서는 꼭 혼이 나간 사람처럼 온 산에 대고 절을 했다.

나는 그들을 맞아 노고단 정산에서 위령제를 지냈다. 그녀는 축문을 읽으며

사시나무 떨듯 전율했다.



그녀는 노고단 정상에 뜨거운 커피를 뿌렸다.

빨치산들이 커피를 즐겨 마셨는데, 죽어가면서도 커피 한잔 마시면 소원이 없겠다고

했다는 것이다. 정말 혼이라도 있는지, 노고단의 붉은 땅에 뿌려진 커피가

금세 땅 밑으로 스며드는 듯 했다.>





07:26 화엄사골 차일봉 능선





07:26 화엄사골 월령봉 능선





07:28



추룩추룩 초겨울비가 내린다. 다행히 바람은 아직 자나부다.

나의 우중지리행 이렇게 시작되었다.

철학,미학을 강의하는 그녀,

다큐 제작하는 ‘빨간눈사람’의 빨간경순과 동거녀(완전 꼴통-나의 기준)과 카메라우먼 세영, 

명함에... 웃자! 뒤집자! 놀자! feminist journal IF 라 적혀 있는 ‘들개’ 그리고 얼빠진 정화.

사진을 거부하는 다큐팀 ‘오색곰팡이’의 원석.







09:27 노고단 고개



노고단 정상부는 휴식년제로 출입이 통제돼 있다. 광의, 산동, 곡성방향을 바라본다.

이성부시인의 지리산 연작시 한편...



      좋은 사람 때문에



초가을 비 맞으며 산에 오르는

사람은 그 까닭을 안다

몸이 젖어서 안으로 불붙는 외로움을 만드는

사람은 그 까닭을 안다

후두두둑 나무기둥 스쳐 빗물 쏟아지거나

고인 물웅덩이에 안개 깔린 하늘 비치거나

풀이파리들 더 꼿꼿하게 자라나거나

달아나기를 잊은 다람쥐 한 마리

나를 빼꼼이 쳐다보거나

하는 일이 모두

그 좋은 사람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이런 외로움이야말로 자유라는 것을

감기에 걸릴 뻔한 자유가

그 좋은 사람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비 맞으며 산에 오르는 사람은 안다






09:51



좌측으로 심원계곡과 만복대 세걸산 바래봉이 이어지는 서북능선이 보인다.

심원계곡은 달궁계곡을 거쳐 뱀사골물과 만나 이후 엄천강을 이룬다.

같은 계곡물이지만 심원은 전남이고 달궁은 전북이고 엄천강은 경남이다.







10:05



멀리 우리가 가려는 천왕봉이 보인다.





10:17



돼지령 부근..

섬진강 건너 백운산자락이 섬처럼 떠있다. 이제야 지리산의 운무가 눈에 보인다.





10:20



삽시간의 변화무쌍에 발걸음이 떼이질 않는다.





10:19



그다지 내키지 않는 산행이었다. 비 온다는 예보도 있었고 더군다나 지리산이 처음이란다.

더더군다나 종주를 하잰다.....!!!

그런데 내가 지리산자락에서 놀고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난 안내자가 되어야했다.



사실 82년 쯤 종주를 한번해보고 그 후론 경험이 없었다.

물론 중산리에서 천왕봉에 오르는 야간산행은 서른 번 넘게 해봤다.

하지만 오래전 일이다.



그땐 정말 비오면 비오는 데로 눈 오면 눈 오는 데로 미친 듯이 천왕봉엘 올랐다.    

한 때의 짝사랑처럼....그렇게.



행운이다. 이런 운무를 보여주다니...지리산 마고할미께 감사.





10:48



한 시간 남짓 걸은 길을 돌아본다. 구름 밑에 산이 있고 구름 위에 또 산이 있다.

구름에 비친 그림자겠지...





10:55





11:05



피아골짜기 사이로 나를 향해 곧장 운무가 밀려온다.

좌측이 불무장등 능선이고 우측이 왕시루봉 능선.





11:30



질매재를 넘어 질등 그리고 왕시루봉(1243m)




13:35



노루목 부근.. 섬진강 쪽은 여전히 운무로 장관이다.





13:36



되돌아 보니 멀리 노고단이 보인다.

그랬다. 남쪽 피아골, 화개골은 운무로 넘실거리고 북쪽 달궁, 뱀사골은

구름 한 점 없는 시퍼런 하늘이 주능선을 경계로 마주보고 있었다.





14:13



전라남북도와 경상남도가 만나는 삼도봉에서...

토끼봉, 명선봉이 보인다. 화개골을 올라온 운무가 뱀사골쪽으로 넘어가고 있다.





14:17



날라리봉 부근.. 요즘 나오는 지도책엔 삼도봉이라 적혀있다.

난 날라리봉이 훨 이쁜데.. 날라리는 좀 노는 애들을 일컫는 말이다.

북측에서는 놀새라고 한다.

언젠가 윤도현이 평양에서 공연할 때 자기를 남측 놀새라고 했던가?....

폼 잡고 앉아있는 남측 놀새들 - 빨간경순, 그녀, 들개 - 에게 귤을 미끼로 문제를 냈다.

뭐 아주 쉬운....



-지리산의 다른 이름이 여럿 있는데 아는 사람?....

이후 한참동안 새소리 바람소리만 들렸다. 결국 수준에 맞춰 객관식으로 갔다.

-다른 이름이 아닌 것은?

-1 두류산 2 방장산 3 불복산 4 봉래산

-두류산!

-왜?

-대구에 두류..뭐가 있잖아...두류산..두류공원..그러니깐..

-음...단순,무식,과격한 것들 ㅋㅋㅋ

-두류산은 백두산에서 흘러내려간 산이라는 의미로 지리산의 다른 이름임.

-답 모르는 사람 없겠죠?

이외에도 삼신산, 반역산, 적구산으로도 불렸다.-기록에 의하면.







잠시 샛길로 빠진다.



10월 31일, 11월 12일에 지리산을 왔었다.

날라리봉 오르막길을 오르기 전 묘가 하나 있다. 빨치산 무덤인가 하는 생각을 했지만

이 날 같이 간 빨치산에 의하면 1950년에 이미 이 묘가 있었단다.

묘 부근에서 묘향대쪽으로 가는 길이 있다.







사정상 자세한 위치는 말 할 수 없다. 반야봉 7부 능선쯤 될까?

한 골짜기로 빠져 계곡을 타고 내려갔다.







전 날 밤(11일) 여름비 같은 폭우가 쏟아졌다.

2주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2주 전 그날 찾지를 못해 다시 온 것이다.







칼로 바위를 자른 듯한 물길을 만들어내며 흘러내린다.











내려 갈수록 점점 물줄기는 커져갔다.

사람들이 다니지 않는 곳이라 우리가 딛는 걸음마다 곧 길이 된다.







때론 미끌어지고 때론 엉금엉금 기면서

계곡 여기저기를 뒤지며 내려갔다.











애처롭다. 이리저리 뜯겨진 잎.

쏟아져 내리는 물가 바위 틈새에 자리한 이놈이 누굴 닮아 보인다.

왠지 정이 간다. 한 시간 정도 내려 간 것 같다.







50여 년 전의 흔적을 발견했다.

전남빨치산 세 분과 전남도당 박영발위원장의 비트를 찾아 나섰던 길이었다.

박위원장은 토목노동자 출신으로 해방 후 전평 토건노조위원장을 지냈다.

남로당이 불법화 되면서 북으로 간다. 모스크바 유학을 하고

다시 내려와 전남도당위원장이 된다.



이태의 <남부군>에 보면 완고한 원칙주의자인 박위원장이

54년 1월 뱀사골비트에서 자결한 것으로 나온다.

이들의 증언에 의하면 그 기록과는 차이가 있다.



이런저런 증언들이 지금 만들고 있는 <진달래산천>이라는 다큐멘터리에 기록될 것이다.







수북한 낙엽 밑으로 넓고 평평한 돌들이 쭉 깔려있다. 그 밑으론 빈공간이다.

말하자면 온돌이다. 이 온돌 주위로 방어를 위한 돌담을 쌓고

나무를 이용해 기둥을 세워 은신처로 사용했다.







이 이름 모를 계곡물은 흐르고 흘러 뱀사골 골짜기와 만나고 엄천강으로 이어진다.







수 십 개의 작은 폭포들을 비켜 내려온 것 같다.

물줄기 하나, 바위 하나, 떨어진 낙엽 하나하나가 새로이 보인다.

애틋한 마음이 생긴다. 이런 마음을 애정이라고 하나?



이태의 <시인은 어디로 갔는가 1997년>에 김영이라는 빨치산시인에 관한 글이 있다.

김영은 연희대학(현 연세대) 국문과 출신으로 52년 지리산에서 체포되어

20년 형을 받고 복역 64년 가석방되었다.



1995년 가을 어느 날, 김영은 여러 가지 병이 겹쳐 65세를 일기로

한 많은 세상을 마감하였다. 그는 죽기 전 그의 쓰라린 젊은 날의 삶과

운명을 피를 토하듯 이렇게 썼다.



“눈을 밟고 간다.

젊은 날의 쓰라린 꽃잎들

바래고 표백되어 하얀 눈꽃인 양 깔려있는

슬픈 역사의 길.

눈이 오는 광막한 벌판을 밟고 뭉개고

앙상한 내 수난의 이력서를 찢고 짓이기며

아득한 망각 속의 여인의 얼굴들

.....

이제는 식어버린 단어들을 밟으며

나는 눈 속을 간다.“



그리고 그의 시신은 화장되어 지리산 세석평전에 뿌려졌다.

이제 다시 14일의 주능선으로 올라간다.





16:26



명선봉에서 (1586m)

멀리 촛대봉 부근의 세석평전이 보일 듯 말듯.....





16:27



이제 한 시간만 지나면 어두워진다. 무거워진 발걸음을 재촉해봤지만

이미 날은 저물어버렸다. 사정없이 춥고 배고프고 몸은 천근만근이다.



연하천대피소에서 멈췄다. 예상했지만 산장지기가 나무란다.

사람이라곤 우리들 밖에 없다. 15일부터 한 달간 입산통제기간이라

오늘부터 잘 수가 없단다.



우린 인터넷으로 분명히 14일 대피소 예약을 하고 왔는데....

예약을 받아서는 안 되는 걸 국립공원관리사무소에서 잘못한 거란다.

그래서 우짤것이여?

결국 약간의 특혜(비밀로 해야겠죠..)까지 받으면서 대피소에서 잤다.

그러나 밤새 추위에 떨면서..





15일 09:00



연하천을 엄습한 안개 때문이 한치 앞도 보이질 않는다.

대피소를 지키는 두 장승이 오늘은 영 기분이 좋지 않은 것 같다.

늘 붙어 있어도 추운 걸까?





09:22



대피소 옆에 비 없는 묘가 있다.

대피소지기(노호연)에 의하면 빨치산들의 무덤이란다.

5-6년전 대피소 공사를 할 때 지금의 화장실부근에서

다량의 유골이 발견되어 이곳으로 모셨단다.



몇일 후에 우연히 나행선이란 지리산을 잘 아는 사람을

만났더니 시기가 맞질 않는다고 한다.

그 무덤은 더 오래전부터 있었단다. 그래서 빨치산 묘가 아니란다.

노호연씨에 의하면

대피소대장이 직접 묘을 만들었다고 하니 그를 만나보면 더 잘 알 수 있을 것 같다.

다음 과제로 남겨둔다.  



출발하는 우리에게 또다시 강조한다. 

통제기간에 걸리면 무조건 벌금이 오십만원이란다.

삼각고지에서 음정으로 가는 가장 빠른 길을 일러주며

“반드시 가장 빠른 길로 하산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힘주어 말한다.

벽소령으로 하산하겠다고 하니 무조건 안 된단다...





10:33



날은 거짓말처럼 맑게 개였다.

경고한 삼각고지를 과감히? 지나치니 하늘을 향한 고사목이 눈에 들어온다. 



고사목

                     이성부



내 그리움 야윌 대로 야위어서

뼈로 남은 나무가

밤마다 조금씩 자라고 있음을

나는 보았다

밤마다 조금씩 손짓하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한 오십년 또는 오백년

노래로 살이 쪄 잘 살다가

어느날 하루아침

불벼락 맞았는지

저절로 키가 커 무너지고 말았는지

먼 데 산들 데불고 흥청망청

저를 다 써버리고 말았는지

앙상하구나

그래도 사랑은 살아남아

하늘을 찔러

뼈다귀는 뼈다귀대로 사이 좋게 늘어서서

내 간절함 이토록 벌거벗어 빛남이여









11:07  형제봉(1433m)





11:10



형제봉 바위 아래 햇살 따사로운 곳에 병아리새끼 마냥 모여 앉아 잠시 쉰다.

정화에게 물었다.



-너 애인 있어?

엷은 미소도 아닌 것이 묘한 표정을 지으며 날 쳐다본다.

-애인이 있냐구우?

난 맘속으로....

-늘 축 쳐져있는 니가..말도 행동도 느린 니가...좀 맹해 보이는 니가...

열정이라곤 도무지 없어 보이는 니가.....-하며 대답을 기다렸다.

....

-네..

-뭐라!

-누군데? 내가 아는 사람이냐?

-정화의 손가락이 한 곳을 향했고 난 손가락의 끝을 향해 눈을 옮겼다. 세영이였다.

-하하하하!

한참을 웃었다. 원석이가 왜 웃냐고 묻는다. 대답 없이 난 웃기 만 했다.

-진짜냐?

-네!



어쨎튼 둘은 한 집에 같이 산다고 했다.

해석은 내가 알아서 하기로 하고 벽소령을 향해 놀란 발걸음을 옮겼다.





13:04



  가진 게 시간하고 돈밖에 없는 난데 천왕봉까지 가버려?

하지만 지리산을 사랑하는 내가 그럴 순 없질 않나...

연하천산장지기의 말처럼 음정으로 내려 갈 까? 생각도 해봤지만 

지리산 마고할미한테 허락을 받아 벽소령-화개 방향으로 떨어지기로 했다.

집이 화개에 있는데 정반대인 음정으로 내려가긴...그렇죠?





14:38



사랑이라....거참.



그러고 보면 김지회 방준표 홍순석 이영회 등 빨치산 주요 간부 대부분이

산에서 연인이 있었다. 그러나 동성 간의 사랑 얘기는 어떤 기록에도 없다.



중대장급 간부인 한월수와 문정자 두 사람의 이야기가 기록에 있다.

두 사람의 관계가 문제가 되자 한월수가 이현상을 찾아가 말한다.

“이 일로 투쟁을 소홀히 하지는 않겠으니 서로 떼어 놓지 말아 주십시오,

우리는 혁명을 위해 산에서 죽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전부 애인과 함께 자결하거나

군경에 의해 최후를 함께 맞이하게 된다.



남부군사령관 이현상에게도 애인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죽기 몇 달 전에 그녀를 내려 보냈다.

그녀는 투항하여 감옥에서 2년을 살았다.

옥중에서 이현상의 아들을 낳아 부산에서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여성을 찾는 일도 과제로 남겨둔다.





14:40



벽소령 길에 사람의 기척이라곤 없다.

길마저 낙엽으로 뒤덮여 몇 번이나 미끄러져야 했다.





14:45



겨우 버티고 있는 마지막 잎새들 사이로

따사로운 햇살만이 나른한 오후를 지키고 있었다.





15:09



우와! ...순간 모두 한 목소리가 되어 터져 나왔다.



저 고개 넘어 삼정마을이 있고 그 밑 계곡이 빗점골이다.

빗점골 계곡을 타고 40분 쯤 올라가면

이현상사령관이 최후을 마친 너덜지대가 나온다.



토끼봉 능선으로 해가 걸려 있었다.

지는 햇살에 반짝이는 하이얀 억새,  골을 타고 흐르는 햇살의 여운,

휘어져 오르는 저 고갯길....어떤 신비로움이 날 감싸 안는다.

역시 아직 난 사진으론 느낌을 전 할 수가 없다.

내 옆에서 똑같이 찍은 ‘들개’의 사진을 봐야겠다.

막걸리가 마시고 싶었다. 무척이나....





15:31



        벽소령 내음



이 넓은 고개에서는 저절로 퍼질러 앉아

막걸리 한 사발 부침개 한 장 사 먹고

남쪽 아래 골짜기 내려다본다

그 사람 내음이 뭉클 올라온다

가슴 뜨거운 젊음을 이끌었던

그 사람의 내음

쫓기며 부대끼며 외로웠던 사람이

이 등성이를 넘나들어 빗점골

죽음과 맞닥뜨려 쓰러져서

그가 입맞추던 그 풀내음이 올라온다

덕평봉 형제봉 세석고원

벽소령 고개까지

온통 그 사람의 내음 철쭉으로 벙글어

견디고 이울다가

내 이토록 숨막힘 사랑 땅에 떨어짐이여

사람은 누구나 다 사라지지만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나씩 떨어지지만

무엇을 그리워하며 쓰러지는 일 아름답구나!

그 사람 가던 길 내음 맡으며

나 또한 가는 길 힘이 붙는다





16:35



삼정마을 지나 의신, 화개로 내려간다.

뉘 집 굴뚝에선가 저녁 연기가 피어오르고 난 늘 배도 영혼도 고프다.



                 원 근 법

천천히 걸어도 빠르게 닿아버리는 목적지는 싫다

허기진 밤길 오래 걸어



행복도 열정도 제 몫의 것만 제 품 속에 거두며

허공에 온 몸을 담그고 서 있는 나무들



산이 높으면 골이 깊고

깊은 물은 조용히 흐르는 법이다



이미 많은 걸 깨달아 단순해진

숲에



비 내리고 까맣게 바람 분다

새들은 길을 잃지 않는다





17:32



지리!

눈 내리는 날 널 다시 찾겠다. 반기지 않겠지만.....

미안하다. 사랑한다!





너를 사랑한다는 것은

너를 바라만보고 있겠다는 뜻은 아니다.

온몸으로 너를 받아들이고 싶다는 뜻이다.



                             - 이정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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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1-21 21:50   URL
비밀 댓글입니다.

니르바나 2005-01-22 02:33   좋아요 0 | URL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무식하면 손발이 고생하지요.ㅎㅎㅎ
알라딘의 모든 장점을 감안해도 정이 안가는 부분은 베스트 셀러가 아닌 이상 출간된 지 조금 오래되었다면 어김없이 책때를 너무 타서 책을 만나는 기분을 베려놉니다.
제가 이와 관련된 페이퍼도 쓴 적이 있지만 출간된 지 6개월이 넘은 책들은 가격에 엄청난 메리트가 없는 한 리브로를 이용합니다. 이점에 관한 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고 봅니다. 교보도 괜찮은 편이지만, 리브로는 책 보관에 있어서 특별한 노하우가 있는 듯 싶더군요.
이점에 있어선 알라딘은 통 관심이 없는 듯 하구요. 알라딘서재로 다 용서(?)가 된다고 봐야겠지요. ^^)

kleinsusun 2005-01-22 18:28   좋아요 0 | URL
좋은 사진과 글.... 너무 훌륭해서 꽁짜로 봐도 되는지 모르겠네요.ㅋㅋ

니르바나 2005-01-26 13:30   좋아요 0 | URL
수선님, 참 좋은 사진과 글이지요.
수선님 좋아하시는 로드무비님의 탁월한 선택에 힘입어 제 샘터로 퍼 왔습니다.
 

 

 

 

 

가끔 이 사람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그 정체가 궁금해지는 사람이 있다.

'안동림'

남들은 한가지 일도 제대로 못하고 사는 데 음악을 전문적으로 해설해주는가 하면,

'장자'나 '벽암록'등 중국의 사상을 우리말로 옮겨서 같은 책의 많은 번역서중에서 잘된 번역으로

추천을 받고 있는 것을 보면 이 분야도 전문가의 모습이다.

저자소개에는 '안동림(安東林) 청주대 영문학 교수' 라고 간단하게 나오는데 

정작 영문학 전공과 관련된 저서는 보지 못하고 있는 셈이다.

전작을 미루어 보건대 틀림없이 전공이신 영문학교수로서도 훌륭하셨을 것이다.

 

내가 난데없이 클래식 관련서적을 꺼내 놓은 것은 오래 전 좋은 오디오 세트를 마련할 때

덤으로 얻은 헤드폰이 아무리 좋은 것이었어도 장시간 음악을 듣다보면

귀에 흐르는 땀이랑, 안경테를 내려 누르는 고통에 언제나 음반 한 장을

겨우 듣는 선에서 끝내다보니 헤드폰을 끼고 듣는 일이 보통 고역이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나는 매니아 자격이 있는 음악 감상자는 아닌 모양이다.

 

최근에 가벼운 헤드폰을 하나 장만하고 본전을 빼려 집에 있는 클래식 음반을 찾아 듣고 있는데

옛사랑처럼 오래 전의 정열이 스물스물 되살아나고 해서 새로 책도 하나 장만하고,

도서관에서 빌릴 책도 검색해 놓았다.

요즘에는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고 귀만 달래고 사는 꼴이다.

끈기없는 내가 앞으로 몇 장의 음반을 더 듣고 벌렁 나자빠질지 모르지만 이왕지사 책도 들쳐 보았으니

이번에는 충실한 감상자의 자리까지 이르고 싶다.

새로 산 책의 저자는 클래식 전문 매장 풍월당의 대표이자, 음악 칼럼니스트. 오페라 해설가,

의대의 정신과 외래교수이며 최근에는 다시 병원을 개원한다는 소식을 들은 것도 같다.

이런 분들을 보면 과연 하느님은 공평무사 하시다고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내 머리속에서 내내 떠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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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K 2005-01-21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니르바나님은 너무 겸손하신 것 같아요. 언급하신 분들이 가진 재능은 아니어도 니르바나님께도 뭔가의 특별함이 있으신 것 같은데 왜 하느님이 공평하지 않으신 것 같다고 하십니까?
첫번째 언급하신 책 꽤 두껍고 비싸네요. 그리고 박종호님 결국 풍월당 안되서 병원 개원하는 거 아닙니까?
그러고보니 니르바나님은 안경을 쓰셨군요. 음악을 들으실 때 꼭 헤드폰을 쓰시구요. 쿠쿠. 꼭 헤드폰을 쓰시는 이유라도 있으십니까?^^

파란여우 2005-01-21 22: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정말 불공평한 세상입니다. 저처럼 게으르고 노력도 안하는 무식한 사람은 결국 어떻게 되는 건가요? 흑...

니르바나 2005-01-21 22:3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하나 하나 벗겨지는 모습이 재미있지 않나요.
생각해보니 저한테도 들을 귀을 주셨으니 하느님의 은혜로군요.
하기는 제 친구들 중에 클래식을 듣는 친구는 눈을 씻구 봐도 없구만요.
헤드폰을 끼고 듣는 이유는 제 오디오의 출력이 너무 커서 최소한인 1로 놓고 들어도 아파트 이웃들에게 소음으로 들릴까 싶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듣게 되지요. 그래서 음반을 한 장 이상은 무슨 일이 있어도 스피커를 통해 듣지 않지요. 소심증은 여기에도 걸립니다. 좋은 음악 들으려다 스트레스가 쌓여서 헤드폰을 같이 사용합니다. 하기는 고전음악 좋아하는 저에게나 음악이지 싫어하면 소음이지요.

니르바나 2005-01-21 22: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파란여우님, 불공평한 세상인 것은 분명합니다.
제 서재 보세요.
리뷰 하나 없지 않습니까.
리뷰 부자이신 님은 아마 제 심정을 다 모르실겝니다.
저야말로, 흑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