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문장들 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지음 / 마음산책 / 2004년 4월
구판절판


그렇게 내가 사랑했던 이들이 국화꽃 떨어지듯 하나 둘 사라져갔다. 꽃이 떨어질 때마다 술을 마시자면 가을 내내 술을 마셔도 모자랄 일이겠지만, 뭇꽃이 무수히 피어나도 떨어진 그 꽃 하나에 비할 수 없다는 사실은 다음날 쓸쓸한 가운데 술에서 꺠어나면 알게 될 일이다.-43쪽

키친 테이블 노블이라는 게 있다면, 세상의 모든 키친 테이블 노블은 애잔하기 그지없다. 어떤 경우에도 그 소설은 전적으로 자신을 위해 씌어지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스탠드를 밝히고 노트를 꺼내 뭔가를 한없이 긁적여 나간다고 해서 변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직장에서 돌아와 뭔가를 한없이 긁적이는 것이다. 그리고 이상한 일이지만 긁적이는 동안, 자기 자신은 치유받는다. 그들의 작품에 열광한 수많은 독자들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키친 테이블 노블이 실제로 하는 일은 그 글을 쓰는 사람을 치유하는 일이다.-60쪽

나는 대체로 다른 사람들에게는 큰 관심이 없다. 내가 꼭 하지 않더라도 다른 사람들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에도 흥미가 없다. 내가 해야만 하는 일들만이 내 마음을 잡아끈다. 조금만 지루하거나 힘들어도 '왜 내개 이 일을 해야만 하는가?'는 의문이 솟구치는 일 따위에는 애당초 몰두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완전히 소진되고 나서도 조금 더 소진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내가 누구인지 증명해주는 일,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일, 견디면서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일, 그런 일을 하고 싶었다.-67쪽

'벽'이란 병이 될 정도로 어떤 대상에 빠져 사는 것, 그게 사람이 마땅히 할 일이라면 내가 문학을 하는 이유는 역시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다. 그러므로 글을 쓸 때, 나는 가장 잘산다. 힘들고 어렵고 지칠수록 마음은 점점 더 행복해진다. 새로운 소설을 시작할 때마다 '이번에는 과연 내가 어디까지 견딜 수 있을까?' 궁금해진다. 나는 세상을 살아가기에는 여러 모로 문제가 많은 인간이다...하지만 글을 쓸 때, 나는 한없이 견딜 수 있다. 매번 더이상 할 수 없다고 두 손을 들 때까지 글을 쓰고 난 뒤에도 한 번 더 고쳐본다. 나는 왜 문학을 하는가? 그때 내 존재는 가장 빛이 나기 때문이다.-68쪽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청춘은 그런 것이었다. 뜻하지 않게 찾아왔다가는 그 빛도 아직 사라지지 않았는데, 느닷없이 떠나버렸다.-141쪽

세월은 흐르고 흘러 서리 내린 연잎은 그 푸르렀던 빛을 따라 주름져갈 테다. 연잎이 주름지고 또 시든다고 하더라도 한때 그 푸르렀던 말들이 잊히지는 않을 것이다. 내게도 그처럼 푸르렀던 말이 있었다... 그런 말들이 있어 삶은 계속되는 듯하다.-196쪽

2005.01.15-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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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결혼 시키기
앤 패디먼 지음, 정영목 옮김 / 지호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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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구같은 간결성과 형식적 구조를 갖춘 소네트는 몸이 작다고 해서 곧 마음도 작은 것은 아니라고 선포하며 내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소네트는 자그마해 보이지만, 그럼에도 사랑,전쟁,죽음,그리고 O.J.심슨을 수용할 만큼 컸다. 잘만 밀어 넣으면 온 세상을 집어넣을 수도 있었다.
...수녀는 좁은 방에서도 비좁다고 느끼지 않는다. 아무리 작은 방이라도 하느님을 받아들일 만큼은 널찍하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시인도 소네트의 자그마한 영토에 의해 자신의 상상력이 해방된다고 느낄 수도 있다. "진정코 우리가 찾아서 들어가는 감옥은/감옥이 아니다. 그래서 나도/착잡한 기분일 때는 소네트의 비좁은 땅 안에/묶여 있는 것이 즐거움이었다."-58쪽

"전자제품에 비유하자면, 책갈피를 끼우고 책을 덮는 것은 '멈춤' 단추를 누르는 것이고, 책을 펼친 채로 엎어 놓는 것은 '일시중지' 단추를 누르는 것이지"-66쪽

나 자신이 받아본 최고의 헌사, 비록 그 스코틀랜드인의 헌사만큼 눈부시지는 않지만 그것하고 절대 바꾸지 않을 헌사는 조지 하우 콜트의 <자살의 수수께끼> 속표지에 적힌 것이다. 나는 그 책하고 같이 잔 적은 없지만, 그 저자하고는 여러 번 같이 잤다. 그 헌사는 이렇다(조지, 진정한 새 친구 관계 이후로 우리가 어디까지 발전했는지!). "내 사랑하는 아내에게...이것은 당신의 책이기도 해. 내 삶 역시 당신 것이듯이."-93쪽

나도 젊었을 때는 내 책들도 젊기 바랐다. 순결한 페이퍼백들은 자기 도취에 젖은 채 마음껏 낙서를 할 수 있는 텅빈 여백을 갖추고 있었는데, 글을 써 넣어도 최소한의 죄책감으로 끝날 수 있을 만큼 쌌고 또 나의 훼손을 불평없이 받아들일 만큼 순했다. 그 시절 나는 세월이 다른 사람들의 몸은 공격하지만 내 몸은 그대로 놓아둔다고 믿었듯이, 내 페이퍼백들도 영원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두 가지 점 모두에서 내가 틀렸다. -202쪽

나는 또 길에 사슬을 이루며 늘어선 책 소유자들 가운데 하나의 작은 고리를 이루는 느낌도 즐기게 되었다. 이제 나는 희귀본 수집가들이 애장하는 흠 하나 없는 초판에는 흥미를 느끼지 않는다. 나는 책의 여백을 모두가 함께 와서 먹을 수 있는 문학적 공동 식탁으로 여기게 되었다. 사람이 많을수록 즐거움도 커졌다.-203쪽

"나는 집이 없는 책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라고 느끼게 되었어... 역사가인 존 클라이브가 1990년에 돌아가신 뒤에 책을 우리가게로 옮기기 위해 그의 집에 가 보았을 때 그 점을 절실하게 깨닫게 되었지...그의 서가를 보았을 때에야 어떤 사람인지 알겠다는 느낌이 들었어...우리는 그 책들을 가게로 가져가 주제에 따라 분류했어. 그랬는데 갑자기 그 책들이 이제는 존 클라이브가 아니라는 느낌이 들더라고. 장서를 흩어놓은 것이 꼭 시신을 화장해 바람에 뿌리는 것과 같았다고나 할까. 무척 서글펐지. 그래서 나는 책이라는 것은 어떤 사람이 소유한 다른 책들과 공존할 때에만 가치를 얻게 된다는 것, 그 맥락을 잃어버리면 의미도 잃어버린다는 것을 깨달았지."-208쪽

밀턴 <나의 실명에 대해서>, 2004.06.3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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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문술의 아름다운 경영 - 벤처 대부의 거꾸로 인생론
정문술 지음 / 키와채 / 2004년 5월
품절


한 가지 일에 끈질기게 집중하면서 긴장을 유지하다가 모종의 조짐이 보이면 곧바로 낚아채어 온전한 내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게 나의 '우연 생산법'이다.
아무리 사소한 트렌드라 할지라도 반드시 전조가 있기 마련이다. 하다못해 조그만 암시라도 있기 마련이다. 그것을 제때 포착하기 위해서는 늘 긴장하고 깨어 있어야 할 뿐더러 무엇보다 '길목'을 제대로 지키고 서 있어야만 한다. 정확한 길목을 지키고 서서 눈을 부릅뜨고 있다 보면 분명 척후병이 포착된다. 척후병이란 곧 '조짐'이다.-126쪽

여기서 내가 이야기하는 '길목'은 특정한 매체나 물리적 공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에게 필요한 정보가 주로 흘러다닐 만한 '요충지'를 뜻한다. 내가 신문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것이 특정한 분야에서만이 아니라 사회 전 분야에 걸쳐 요긴한 정보들이 종합적으로 흐르는 길목이기 때문이다.-127쪽

나는 워낙에 신문을 많이 읽는다...물론 그 많은 매체를 처음부터 끝까지 정독할 수는 없다. 일단 모든 면을 가볍게 훑어본 후에 관심분야만 골라 집중적으로 읽는 식이다. 그러면서 어떤 사건이나 사물에 접하면 그것의 과거를 떠올리고, 그것이 장차 어떻게 발전할지, 또한 그에 어울리는 나의 대책은 무엇인지를 습관처럼 검토한다.-127쪽

'길목'을 지티고 있다가 '척후병'을 잡게 되면 그때가 바로 '결정'의 순간이다. 하지만 아무리 방대한 정보를 검토하고 심도깊은 고민 끝에 결정한 사안이라도, 잠시만 머뭇거리면 주변의 반대와 우려의 목소리들 때문에 마음이 흔들릴 수밖에 없게 된다. 그래서 추진력을 유지하기가 힘들어진다. 그래서 한번 결정한 사안에 대해서는 모종의 결론이 나기까지 귀를 틀어막아 버리는 것이 수다. 또한 '모종의 결론'이 부정적인 쪽으로 판명되면, 내가 언제 그랬나 싶을 정도로 즉시 폐기, 포기해 버리는게 또한 수다.-128쪽

2004.11.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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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순이 언니 - MBC 느낌표 선정도서
공지영 지음 / 푸른숲 / 200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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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벌 없이 글을 쓸 수 있을까? 나는 아니라고 말할 수 있다. 고통없이 지혜를 얻을 수 있을까? 마흔 살이 훌쩍 넘어 나는 이제 아니라도 대답한다. 형벌과 고통과 가끔씩 하늘을 보고 나를 울부짖게한, 뭐랄까, 불가항력이랄까 아니면 운명 같은 것이 이제는 꼭 나쁜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사후의 이야기일 뿐이니, 신이 내게 고통을 줄까 안이를 줄까, 물으면 나는 여전히 안이를, 깨닫지 못해도 좋고 멍청해도 좋으니 안이함을 주세요, 하고 겁도 없이 졸라댈 것 같다. 그래서 신은 우리 모두에게 물어보지 않고 불행을 내리나 보다. 실은, 불행처럼 포장되어 있는 보물 덩어리의 상자를.-0쪽

누구를 괴롭히기 위해 살아가는 것이 아니듯이, 누구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살아가지도 않으리라. 나 자신을 믿고 나 자신에게 의지하며 그러고도 남는 시간은 침묵하면서, 고이는 내 사랑들을 활자에 담으리라. 가슴이 아플까 봐 서둘러 외면했던 세상의 굶주림과 폭력들과 아이들을 이제는 오래 응시하면서.-0쪽

인간이 가진 무수하고 수많은 마음갈래 중에서 끝내 내게 적의만을 드러내려고 하는 인간들에 대해서 설마, 설마, 희망을 가지지 말아야 했다. 그가 그럴 것이라는 걸 처음부터 알고 있으면서도, 그래도 혹시나 하는 그 희망의 독, 아무리 규칙을 지켜도 끝내 파울 판정을 받을 수도 있다는 악착스러운 진리를 내가 깨달은 것은 그로부터 30년이나 지난 후였다. -0쪽

사람들은 누구나 진실을 알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것을, 막다른 골목에 몰릴 지경만 아니라면, 어쩌면 있는 그대로의 사실조차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이 그렇다고 이미 생각해온 것, 혹은 이랬으면 하는 것만을 원한다는 것을, 제가 그린 지도를 가지고 길을 떠났을 때, 길이 이미 다른 방향으로 나 있다면, 아마 길을 제 지도에 그려진 대로 바꾸고 싶어하면 했지, 실제로 난 길을 따라 지도를 바꾸는 사람은 참으로 귀하다는 것을.
돌이켜보니 내 어린 시절의 지도에 이미 내 인생이 그려져 있지나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자주하는 실수와 내가 자주 겪는 슬픔과 내가 머뭇거리다 돌이키지 못한 정황들이, 인생은 이미 그때 내게 나침반을 표시해준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상징적으로 압축된 상태도 아니었고 암호로 가득 찬 것도 아닌, 그러나 나는 결코 그 암호와 상징들을 돌아보려 하지 않았고, 그것이 다시금 비슷한 형태로 반복되리라는 생각도 하지 않았고, 세월은 한번 가면 그저 다시는 돌아오지 않는다고 막연히 믿었던, 그래서 돌이켜보면 나는 언제나 같은 삶을 같은 항아리 속에서 반복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지.-0쪽

그 승강이를 들으며 아마 산다는 게, 아마도 힘겹고 슬프고, 등불하나 없이, 춥고 깜깜한 진창길을 걸어가는 일 같다는 걸, 누구나 헨젤과 그레텔보다 험하고 처량하게 숲속을 헤매야 하는 것이 아닐까, 아마도 그것을 나는 봉순이 언니의 울음소리를 통해 듣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사람으로 태어난 자들, 그 인생의 춥고 낮은 배경음을.-0쪽

삶에서 사소한 일이 없는 이유는, 매순간 마주치게 되는 사소한 선택의 방향을 결정하는 것은 바로 그 사람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총체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기 때문에 결국 사소한 그 일 자체가 아니라 그 사소한 것의 방향을 트는 삶의 덩어리가 중요하다는 걸 내가 알아버렸기 때문이었다. -0쪽

나는 가끔 책을 읽다가 결국 책 속에서 내가 아는 것만 읽게되지 않는가라고 자문한다. 흔히 불가에서 경전을 읽을 때 그 경전의 살고 죽음은 읽는 이의 근기에 달려있다고 한다. 마치 같은 물을 마셔도 젖소는 우유를, 독사는 독을 만든다는 것과 같다. 나는 텍스트라는 젓소에서 우유를 짜내는 탁월한 감식안의 해석자들에게 늘 감탄한다. 그들은 텍스트 속에 감춰진 의미까지 드러내서 그 텍스트를 낳은 현실이 은폐하고 있는 진정한 삶의 의미를 정면으로 바라보게 한다. -0쪽

2005.10.2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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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초 편지 - MBC 느낌표 선정도서 야생초 편지 2
황대권 지음 / 도솔 / 200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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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慢), mana(남태평양 연안 원주민의 언어로 현상 뒤에 숨어있는 초자연적인 힘)의 한역, 영어로는 pride 또는 conceit로 번역된다. 아만, 자신이 남보다 훌륭하다고 망상하여 남에게 뽐내려 드는 방자한 마음, 주의할 점은 학식이나 용모, 혈통 등 자신이 갖고 있는 조건 때문에 우월감을 가지는 마음은 교인데 반해, 만은 무조건 자기 자신이 낫다고 느끼는 본능적 심성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교는 오히려 조복받기 쉽다고 하겠으나. 만은 그 뿌리가 깊고 미묘하므로, 인간의 해탈을 막는 열가지 족쇄 중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의 마지막 족쇄에 속하여 아라한과를 성취해야 비로소 완전히 소멸된다. 범어의 원래 뜻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생긴 자의식(self-conception)을 가리킴.-100쪽

겉으로 보란 듯이 잘난 체하는 것보다 이렇게 속으로 싸고도는 만이야말로 골치 아픈 거지. 한때는 그것이 한 인간이 지니고 있는 저력이 아닐까 하고 생각도 했었지만 결국은 만에 지나지 않음을 인정하게 되었다… 나는 일찍이 이 만을 다스리는 것이 내 인생의 성공 여부를 결정짓는 중요한 일임을 알고 여러 번 다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이 결코 다스리기가 만만치 않았던 것이다…아만에 사로잡혀 쓸데없는 말들을 허공에 마구 뱉어놓은 날의 잠자리는 왜 이리 뒤숭숭하고 불안한지. 마치 만이라는 독을 내 주변에 풀컥풀컥 풀어낸 것만 같아. 그럴 때 나는 빛과 소금이 아니라 독초가 된다.
만. 그것은 인간을 타락시키기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로 인한 고통을 통해서 스스로의 힘으로 완전함에 나아갈 수 있도록 하기 위한 배려가 아닐까 싶다. -101쪽

默內雷, 겉으론 침묵을 지키고 있지만 속으론 우뢰와 같다. 내부의 복잡한 감정을 겉으로 드러내기에 앞서 자신에게나 상대에게나 좀 더 편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 순화시키려 노력하는 사람.
평화란 절대적 평온, 정지, 무사, 고요의 상태가 아니라, 내부적으로 부단히 움직이고 사고하는 ‘동적평형’ 상태라는 것. 두 사람 사이가 평화롭다고 할 때 내부적으로 부단히 교류가 이루어지고 대화가 진행되어 신진대사가 잘 되고 있다는 뜻이 된다.-109쪽

나는 요즘 인간관계에 있어서 자연요법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다. 어떤 호흡이랄까 리듬이랄까 하는 것을 대화 중에 잡아내어 그 흐름 속에서 얘기도 하고 듣기도 하고 그런다. 그렇게 하니 나도 편하고 상대방도 편해 하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말하자면 자연류를 터득한다고나 할까? 해서 나이가 들면 저절로 자연과 가까워지고 싶어하는가 보다.-156쪽

야생의 풀 냄새를 제거하고 인간의 미각-작위로서의 문명의 변천에 따라 함께 변해온-에 맞추어 특정한 맛만을 선택하여 육종, 발전시킨 것이 오늘의 야채이다. 우리 인간은 자신의 얄팍한 입맛을 위하여 원래의 야채가 가지고 있던 여러가지 영양소와 맛을 제거해 버리고 특정의 맛과 영양소만을 취하게 된 것이다. 그래 놓고 요리할 땐 그 위에 갖은 양념을 다 뿌리고 또 영양을 보충한다고 각종 비타민제를 따로 먹고 있다. 우습지 않니? 이것이 문명이다. 요소를 분리해서 자기가 필요한 것만 골라 먹겠다는 것인데. 어떻게 보면 대단히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실은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는 격이다. 이 세상은 단순히 요소의 합이 아니거든, 각 요소들은 전체 속에 있을 때라야 비로소 제 가지를 온전히 지닐 수 있는 것이다. 전체와 분리된 요소는 제한적인 가치를 지닐 수밖에 없다. 채소는 채소를 둘러싼 생태계와 온전히 결합되어 있어야 하고 그 채소를 먹을 때에도 요소로 나누어서는 안된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식주의자들은 되도록 전체식을 권장하는 것이다. 머리부터 뿌리까지 전체를 통째로 먹어야 한다는 것이지.-177쪽

역시 중요한 것은 꽃에 대한 염원이란다. 즉 얼마나 정성스럽게 꽃에다 염파를 보내느냐이지. 매일 아침 일어나서 물을 주는데, 흙의 상태와 그날의 날씨에 따라 주는 양이 다르다. 그리고 물을 준 뒤엔 꼭 나팔꽃을 부드럽게 쓰다듬으면서 밝고 건강하게 자라라고 격려해준다. 어떻게 보면 나팔꽃은 나의 기를 먹고 자라는 것과도 같지.-213쪽

무위에 의한 학습, 돌이켜 보면 실제로는 그리지 않고 있었어도, 관념 속에서 또 손안에서 그림 그리기는 계속되고 있었던 거다. 실제로 괜찮게 그려진 그림을 보면 그것이 결코 나의 의지로만 그려진 것이 아님을 인정하게 된다. 우리네 삶은 일정부분 우리가 스스로 컨트롤 할 수 없는 어떤 ‘무의식’에 의해 지배받고 있음을 그림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흔히 일컫는 ‘명작’이란 무한한 가능성 속에서 우연히 일궈 낸 거품 같은 것이다. 명작은 작가가 그리고자 의도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니다. 증산 계통의 언어를 빌어 표현한다면 ‘천지도수’가 맞아 떨어져야 명작이 나오는 법이다. 때론, 그림은 별로인데 관람자가 만드는 명작이 있다. 명작의 기본 조건이 사람들로부터 인정받는 것이므로 그것 역시 명작이라 할 수 있다 ‘천지도수’란 작가가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그림의 유통과 소비 과정에도 모두 적용되는 것이거든.-223쪽

그림 그리는 사람의 가장 중요한 덕목 중의 하나는 관찰력이다. 관람자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는 그림일수록 화가의 관찰력이 뛰어남을 알 수 있다. 관찰력은 훈련에 의해 강화된다. 그런게 그저 대상을 오래 바라본다고 해서 관찰력이 강해지는 게 아니란다. 대상의 각 부분을 서로 비교 대비시켜 가면서 바라보아야 관찰력이 강해진다. 우리는 보통 어떤 대상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나서는 그것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는 버릇이 있다. 관찰하는데 있어 시간은 별로 중요한 변수가 못 된다. 관찰력이 탁월한 사람은 아무리 짧은 시간이 주어져도 단번에 대상의 특징과 디테일을 잡아낸다.
진리에 다다르는 방식으로 내가 즐겨 쓰는 비유인 숲 안팎 변증법(숲 밖, 숲 안, 숲 밖을 반복적으로 드나들면서 숲의 실체를 파악하는 방법)을 여기서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231쪽

세상일 또한 그렇다. 특히 사람 사이의 관계가 그래. 겉으로 보기에 소문이건 자신의 직접 관찰이건 간에 아무리 그럴 듯한 사람일지라고 구체적인 사안을 가지고 함께 뒹굴어 보지 않는 한 그 사람을 안다고 말할 수 없다. 설사 같이 산다고 하여도 십 년이 지난 뒤에야 상대방의 새로운 모습을 보는 경우도 허다하다. 만약에 화초를 십년 키운다면 이런 일은 결코 없을 것이다. 나는 이 차이가 양자의 창조적 능력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식물에게도 창조적 능력이 없는 건 아니겠으나 인간의 그것은 진정 하느님의 선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이 능력의 대부분이 관찰력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232쪽

남을 결코 비판하지 않고 자기 잣대로 남을 몰아세우지도 않는 이 사람들, 남의 행위를 있는 그대로 흡수해 버리는 이들, 이런 사람들 사이에 심각한 트러블이 있을래야 있을 수가 없을 거야
불평과 불만으로 많은 시간 자신을 괴롭히고, 못 본 척 살자니 속이 불편하고, 그러자니 자연히 사람들을 외면하고 혼자있고 싶은 생각이 드는 거야. 이에 대한 지금까지 나의 처방은 ‘힘들지만 부딪쳐서 정면 대응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라다크인들의 대응방식이 훨씬 차원이 높은 것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구나. ‘상대방의 행위에 뭐이 그리 안절부절인가? 바보처럼, 바다처럼 그렇게 받아주어라!’ -235쪽

<오래된 미래> <나무를 심은 사람> <침묵의 봄> <카스트로 전기> 2004.01.10-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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