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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뱅이 언덕 - 권정생 산문집
권정생 지음 / 창비 / 2012년 5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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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몸을 좀먹는 암세포는 외부에서 침투한 병균이 아니다. 원래 우리 몸에 있던 세포 중에서 마땅히 늙어 죽어야 할 세포가 죽지 않으려고 기를 쓰며 주위 세포들의 섭생과 생존을 방해할 때 암세포로 변질된다. 결국 우리 몸을 유지하는 세포들은 다 죽고 욕심 많고 불필요한 암세포만 살아남는 게 우리를 죽이는 암이라는 병이다. 그런데 전 지구적 관점에서 보자면, 인간이야말로 암세포와 같은 존재라고 한다. 은유가 아니라 실제적 의미에서 그렇다. 인간이 더 배불리 먹고, 더 편리하게 살며, 더 오래 연명하기 위해 주변의 각종 동식물을 잡아먹고 생태계를 파괴시킨 결과, 지구상에 필요 이상의 인구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가는 작금의 형국이 암이라는 질병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최근에 들었던 가장 인상적인 말이다. 그런데 같은 요지의 말이 이 책에서도 수없이 반복된다. 그리고 1990년대에 들어와 하루에 100종 이상의 생물이 멸종되고 있다는 통계까지 덧붙는다.

 

작가가 중시하는 것은 무엇보다 공생인 듯하다. 자연과 인간의 공생, 인간과 인간의 공생 등. 공생의 균형이 깨어지면 생태계는 파멸에 이른다.

 

인간의 생존 경쟁은 세상의 재물을 많이 차지한 부자들 때문에 일어난다. 부자가 없으면 가난한 자도 있을 수 없다. 강대국 때문에 약소국이 생기고 잡아먹기 때문에 잡혀 먹히는 것이다.” (240)

 

그렇기 때문에 모두가 원래의 위치로 돌아가 가난을 지켜야 한다고 작가는 강변한다. 가난만이 평화와 행복을 기약하고, 결국 함께 사는 하늘의 뜻이라고도 말한다. 가난은 부끄러운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지구상의 생명체로서 지켜야 할 본분인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이 본분에 어긋나는 모든 탐욕과 허세,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하는 사회의 온갖 무지와 허영에 대해 경종을 울린다.

 

전반적으로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극도로 가난하고 신산했던 작가의 개인사와 뒤얽혀 대단히 진솔하고 무게감있게 다가온다. 진심으로 현재와 같은 삶은 문제가 많다는 생각이 들고, 나 하나 살자고 사방에 끼치는 민폐를 가급적 최소화해야겠다는 결심이 수없이 든다. 그게 그나마 올바른 삶에 근접하는 자세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반성을 거듭하며 읽던 중 학원비가 한 달에 만원이나 된다는 작가의 탄식을 접하고는 화들짝 놀랐다. 대체 언제적 글이길래 싶어 집필년도를 확인해보니 1986년이다. 그제서야 작가의 선구적 혜안에 뒤늦게 감탄하고 만다. 지금 읽어도 전혀 낡지 않은 문제의식이다. 오히려 당시보다 문제가 훨씬 심각해져 글의 울림도 그만큼 커졌다고 봐야 할까. 한국을 대표하는 아동문학가라는 작가의 실천가적, 사상가적 면모가 돋보이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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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제동이 어깨동무 합니다 - 더불어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며
김제동 지음 / 위즈덤경향 / 2012년 4월
절판


역사에선 죽음을 이렇게 정리해요. 죽은 자를 위한 장례가 있고 산자를 위한 장례가 있죠. 천수를 누리고 죽은 사람을 위한 장례가 전자라면, 4•19나 5•18, 장자연 사건 등은 산 자를 위한 장레죠. 전태일의 장례를 쌍용에서 다시 치르는 것처럼. (한홍구/서해성)-13쪽

...노래도 그렇고 말도 그렇고 입에서 나가는 순간 우리를 떠난 거야. 판단은 그걸 듣는 분들의 몫인 것이고,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활시위를 당기는 데 온 힘을 기울이는 것뿐이야. 시위를 떠난 화살이 과녁에 명중되는 건 운명인 거지. (윤도현)-128쪽

- 혹, 겁은 안 나세요?
청와대건 국정원이건 피해를 끼칠 수 있다는 건 알아. 가능성이 있다는 건 아는데 세상에 공짜는 없잖아. 내가 뭔가를 하면서 그로 인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거나 그 일을 못하는 거야. 뭘 하는 데 대가를 지불할 의사가 있다면 그것을 감수하는 거야. (김어준)-169쪽

- …형 이야기를 듣다 보면 성불한 사람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 있어.
그건 내가 덕 볼 생각이 없기 때문이야. 내가 가진 가장 큰 무기야. 그래서 내 맘대로 할 수 있어.

- 당당, 교만은 한 끗 차이야. 겸손과 비굴도 한 끗 차이지. 당당과 겸손, 교만과 비굴은 각각 세트잖아. 그런데 형은 당당한데 겸손하진 않아.
나에겐 청소부나 대통령이나 똑같아. 그가 가진 권력으로 덕 볼 생각이 없어. 내가 누리는 것이 마땅하지 않으면 언제나 남세스러워. 그 정도 균형감각이나 염치는 있어. 난 염치를 중요하게 생각해. 그게 세상의 균형을 만드는 거거든.

- 힘 있는 자가 염치를 안다는 것, 중요한 능력이지.
굉장히, 우리 가카께는 전무한 능력이지. (김어준)-171쪽

"연예인이 되면 어떤가요?" … 작두 위에 서있는 무당 같다… 천민으로 대우받지만 신과 접신하는 그 순간은 모든 양반이 그 앞에 고개를 조아린다. 누구도 범접하지 못하는 그 시간을 온전히 지배하지만 대신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 자칫 삐끗해서 발이라도 베이는 순간은 완전히 내쳐지고 만다. 그 순간, 피가 난 발을 부여잡고 있을 때 수건으로 내 발을 감아줄 사람 하나만 있다면 연예인으로서 잘 살아온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많다. (손예진)-19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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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Interpreter (Paperback)
수키 김 지음 / Picador / 200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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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이 제구실을 한다고 느낀 적은 단 한 번, 장례식장에서 보았을 때뿐이었다. 그레이스가 꽃까지 준비했다니 깜짝 놀랄 만큼 의외였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셨을 때 형제자매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아무도 짐작할 수 없는 법이다.-50쪽

수지는 지방 검사보의 이야기를 들으며 중요한 단어를 수첩에 적는다. 통역을 할 때는 아무리 문장이 길더라도 모든 단어를 정확히 옮겨야 한다. 통역사는 수학자하고 비슷하다. 그녀는 방정식을 푸는 것처럼 언어를 대한다. 단어 하나하나마다 동의어와 맞추어야 한다. 한 치의 오차도 없어야 정답을 얻을 수 있다.-143쪽

이민자 자식들이라고 해서 다들 통역을 잘하는 것은 아니다. 수지는 동시에 두 가지를 할 수 있는 남다른 능력이 있다. 그녀는 단어를 들으면 사전적인 의미와 함축적인 의미를 분리한다. 직역은 오역이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언어는 논리적인 존재가 아니다. 따라서 통역사는 단어를 그대로 옮기면서도 이쪽 언어와 저쪽 언어 사이의 간격을 교묘히 메울 줄 알아야 한다. 통역을 할 때 그녀의 한쪽 머리는 단어를 자동 전환하고 다른 쪽 머리는 자동전환에 따른 빈틈을 체크한다. 통역은 정확하면서도 독창적인 자세가 필요한 기술이다. 2에 2를 더하면 단순히 4가 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의미가 될 수 있음을 아는 사람이 진정한 해결사다.-144쪽

새로 사귄 친구들은 과거에 대해 아는 것이 없는 게 특징이다. 물론 그 친구들을 만나기 직전까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요약해 줄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설명이 그들의 마음 속에 새겨질 수는 없다. 당연한 일이다. 나의 과거가 그들에게는 이야깃거리에 불과하다. -170쪽

수지가 몇 달 동안의 통역사 생활을 통해 깨달은 게 있다면 변호사는 의뢰인을 닮아 간다는 점이다. 두 사람은 어느새 똑 같은 표정을 짓게 된다. 희망찬 표정이건 실망한 표정이건. 그녀는 변호사의 얼굴만 봐도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오늘은 어떤 사건인지 모르겠지만 승산이 없어 보인다.-430쪽

한 사람을 알려면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하지만 한 사람이 그렇게 많은 비밀을 감출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 조금은 안심이 된다.-463쪽

"...빈센트는 그 어떤 것과도 선을 긋지 않았어. 가족과 자기 자신하고도. 심지어는 해바라기처럼 평범한 대상하고도. 자연을 그린 작품들을 봐! 그가 그린 꽃이 독특할 수 있는 이유는 화가와의 거리감이 전혀 없기 때문이야. 자화상이건 마을의 집배원이건 해바라기건 빈센트의 눈에는 다 똑같거든. 느긋하게 앉아서 분석하는 우리야 즐겁지만, 빈센트는 지옥 같았을 거야. 세상하고 어느 정도 간격을 유지하지 못하면 미칠 수밖에 없지."-46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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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에 걸려온 전화 스스키노 탐정 시리즈 2
아즈마 나오미 지음, 현정수 옮김 / 포레 / 2012년 1월
절판


어쨌든 인생은 힘들다. 살아 있다는 것은 어쩐지 건강에 좋지 않다는 기분이 든다.-16쪽

비폭력이나 무저항은 폭력을 휘두르는 자에게 양식이나 품위가 있는 경우에 한해서 유효하지만, 폭력을 휘두르는 인간은 양식이나 품위를 가지고 있지 않은 법이다.-76쪽

아무리 변변찮은 인간이라도 진심은 있다. 인간의 진심은 그 인간에게 가장 어울리는 형태로 외부에 표출되는 법이다.-237쪽

인생을 맛보기 위해서는, 나름대로 명석한 두뇌와 나름대로 성실한 인격과 나름대로 풍부한 교양이 필요하다.-238쪽

우리는 환경도 나라도 시대도 몸도 자기 머릿속조차도 마음대로 선택하지 못한 채 태어난다. 갑자기 태어나 자기 인생의 책임을 강요받는다. 책임을 즐겁게 처리할 수 있는 인간은 그래도 괜찮지만, 그럴 수 없는 인간은 어쩌면 좋단 말인가.-239쪽

"만취한 다음날 아침의 흥이 깨지는 회한은 병들어 혀를 늘어뜨린 개와 같아서 혼의 가장 아픈 부분을 깨물어 온다. 간밤에 있었던 부끄러운 일, 추태 부린 일, 경멸스러운 일, 야비와 우열의 무엇도 아닌 기억의 재현은 독 같은 강렬함으로 골수까지 자색으로 변하게 한다…."
하기와라 사쿠타로의 시 <숙취의 아침>-267쪽

"…그런 일을 했다가는 평생 나 자신을 좋아할 수 없게 되어버릴 겁니다."
너무나 멋진 대사여서 나는 황홀해졌다.-30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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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를 산책시키는 남자 - 2012년 제8회 세계문학상 수상작
전민식 지음 / 은행나무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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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는 늘 같은 시각에 나와 운동을 했다. 규칙적인 삶을 산다는 건 재미없게 산다는 이야기인지도 모른다.-9쪽

현재는 과거에 대한 결과다. 과거에 대한 업을 씻기 전에는 운명을 바꿀 수 없다… 모든 일에는 반드시 원인이 있으며 그 원인에 의해 운명이 결정된다…-78쪽

내가 나설 일이 아니었다. 나의 고통에 상관없이 무심하게 굴러 가는 세상처럼 무관심해도 될 일상이었다. 이제는 세상에 진 빚 없고 세상 역시 내게 진 빚 없었다. 내버려두면 그냥 흘러갈 일이었다.-79쪽

나는 내 인생을 진주에게 너무도 헐값에 팔아 넘겼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인생은 그늘에 있지 않고 양지에 있었다. 잠시 길을 잘못 들어섰을 뿐이었다. 그래, 내 인생은 양지에 어울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 내가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일 뿐이다. 낯설다는 건 언제나 좋은 것이다.-20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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