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영화의 예고편을 보면 한석규가 이런 나레이션을 한다. '모든 유혹은 재미있다. 왜 피하겠는가' 하지만 모든 유혹이 다 재미있고 그로 인해 피할 이유가 없는것은 아니다. 누군가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유혹. 그리고 감추어야 하는 유혹은 결코 재밌게 끝나지 않는다.
영화 [주홍글씨]를 말 하기 이전에 다니엘 호손 원작의 주홍글씨를 살펴보면 대강 이런 내용이다. 17세기. 헤스터라는 여자가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게 된다. 이를 알게된 마을 사람들은 그녀에게 가슴에 평생 붉은 색 실로 수놓은 A (Adultery : 불륜) 를 달고 살게 한다. 사람들은 그녀에게 간통의 상대자가 누구냐고 추궁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입을 다물고 펄이라는 딸아이를 낳게 된다. 헤스더의 간통상대는 목사인 딤스데일. 이를 알게 된 헤스더의 남편은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딤스데일에게 접근하고 우연하게 헤스더의 간통상대임을 알아낸다. 딤스데일은 헤스더의 고통을 지켜보고 또 성직자로써 하지 못할 일을 저지른 동시에 비겁하게 진실을 밝히지 못하는 것에 괴로워하며 점점 쇠약해진다. 7년의 시간이 흐르고 새로 부임한 지사의 취임식날 딤스데일은 헤스더와 펄을 부르고 자신의 가슴의 가슴에 있는 A를 보여주며 모든 죄를 고백한다.
영화는 이 소설에서 아무것도 가져오지 않았다. 그 둘 사이에는 단지 불륜이라는 공통점만 존재한다. 강력계 형사 기훈(한석규) 은 첼리스트 아내인 수현(엄지원). 그리고 아내의 오랜 친구인 재즈싱어 가희(이은주)와 아내의 눈을 피해 몰래 바람을 피운다. 그러던 어느날 사진관에서 주인 남자가 죽는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기훈은 죽은 남자의 아내인 경희(성현아)를 살인범으로 의심을 한다.
처음에는 이 영화가 그저 멜랑꼴리한 남이 하면 불륜 내가하면 사랑 정도를 다루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하지만 영화의 중 후반부로 가면 굉장히 임펙트가 강한 사건이 터진다. 기훈이 미처 알지 못했던 비밀이 폭로되는 것 보다 기훈이 겪게 되는 일이 더욱 충격이다. 이미 상태가 엉망인 기훈은 그 비밀에 대해 별로 놀라지도 않는다. 그리고 기훈은 경희를 의심하지만 그건 뭐 눈에는 뭐만 보였기 때문에 가능한 의심이었다. 그에게 세상 여자들이란 그저 남자를 유혹하고 쾌락을 제공하다가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스스로를 파멸시킬수도 있는 위험한 짓을 저지를 수 있는 어리석은 장난감들일 뿐이다. 기훈은 모든것을 다 가졌다고 생각할 만큼 자신감이 넘치고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자기가 중심점이라고 착각을 한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김기덕 감독의 나쁜남자의 조제현보다 주홍글씨의 한석규야 말로 나쁜남자라는 말이 잘 어울린다고 말이다. 한석규는 조제현이 가졌던 미친 사랑의 감정마저도 없는 인간이다. 물론 그 미친 사랑이 자기 여자를 창녀로 만든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더이상 언급하고 싶지도 않다만 어찌 되었건 그것도 사랑이라고 우길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석규는 사랑조차도 하지 않았다. 단지 아내 이외에 자신의 정액을 뿌릴 여자가 필요했을 뿐이다. 그는 어느 누구에게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다. 자기가 배신을 한 아내 수현에게도 또 정상적인 만남을 가지지 못하는 가희에 대해서도. 단지 그는 이 모든게 재밌는 게임처럼 느껴지고 자신은 아주 능숙한 게이머라고 생각할 뿐이다.

이 영화는 개봉 전부터 많은 화재를 모았다.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작 인것도 그러했지만 배우 한석규가 다시 예전에 말아먹은 이중간첩 이전의 영향력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인가. 또 비교적 초창기 데뷔작인 송어와 오.수정을 제외하고는 배드신을 하지 않았던 이은주가 한석규와 꽤 수위높은 정사신을 찍었다는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아주 천박한 관심이긴 하지만 이미 누드를 찍은 성현아가 이번에는 얼마나 더 벗은몸을 보여 줄 것인가.
내가 생각하기에는 한석규는 이 영화로 인해 다시 예전의 위치를 어느 정도는 되찾을것 같다. 그가 연기를 잘 해서라기 보다는 이 작품이 흥행을 할것 같은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한석규는 실패작인 이중간첨 이후 아주 오랜만에 다시 시작했고 또 이전의 인기를 되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속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는지 초록물고기때와 같은 살아 움직이는 연기를 하지는 못했다. 물론 아주 디테일하고 노련하게 연기를 하기는 했지만 그게 한석규라는 배우의 베스트인가 라는 질문에는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된다. 그리고 이은주는 비록 영화가 아닌 드라마 불새로 인한 것이지만 한참 올라있는 그녀의 주가를 생각할때는 꽤 과감한 연기를 선보인다. (하지만 전혀 에로틱하지는 않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성현아. 그녀는 어쩌면 여기서 감독이 천박한 호기심을 가진 관객들과 한석규를 동일시 시킨 부분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녀는 우리의 예상 혹은 바램과 달리 차분하고 얌전한 여자로 나온다. 물론 교묘한 편집 때문에 예고편에서는 마치 그녀가 한석규를 유혹하는 것 처럼 나오지만 말이다. 예고편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주홍글씨의 예고편은 진정한 편집의 승리이다. 내가 본 예고편 중에서 주홍글씨 예고편은 드물게 수작이었다. 요즘 영화 예고편을 보면 어떻게서건 관객을 끌어들이기만 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이미 영화의 하이라이트 및 엑기스는 다 모아서 보여주는 바람에 관객이 영화표를 끊도록 할지는 모르겠지만. 막상 표를 끊은 관객들은 영화가 예고편 외에 더 볼게 없는 최악의 상황을 만든다. 그에 비해 주홍글씨의 예고편은 적당히 흥미를 유발하면서도 영화의 중요한 거의 대부분을 감춤으로 인해 관객들로 하여금 예고편을 보고 지례짐작 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영화를 보게되는 재미를 제공한다.
제일 처음 이 영화를 접했을때 나는 영화 누구나 비밀은 있다를 떠 올렸다. 한 남자와 세 여자라는 기본 구성도 그렇고 누구나에서 재즈 가수로 김효진이 나왔다면 주홍글씨에서는 이은주가 재즈가수로 나오는것. 거기다 유혹에 관한 얘기라는 것까지. 누구나가 유혹에 관한 청소년 버전이었다면 주홍글씨는 성인버전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 두 영화는 극히 일 부분마저 닮지 않은 영화였다. 내 예상중에 맞아 떨어진 것은 누구나가 청소년 클린 버전이라는것. 주홍글씨가 노컷 성인버전 이라는 것만 맞았다. (배드신의 수위에 따른 구분이 아닌 내용의 충격성과 엔딩을 어떻게 끌어내느냐에 관한 얘기이다.)
만약 불륜의 짜릿함. 그리고 그에따른 약간의 응징 정도를 생각하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를 보지 않기를 권한다. 생각보다 영화는 훨씬 충격적이다. 그리고 감독은 이 한편의 영화를 통해서 참으로 여러가지 얘기를 한다. 내가 느낀 그 얘기들을 하자면 스포일러가 너무 강해져 버리기 때문에 여기서는 할 수 없지만. 각자의 생각에 따라 이 영화는 여러가지의 해석이 나올 수 있다. 어쨎든 단순하게 불륜 나빠요. 혹은 불륜은 짜릿짜릿해요 식의 영화는 아니다. 끝으로 한마디 덧붙이자면 세상을 아름답게 보고 싶은 사람은 역시 영화를 보지 않기를 바란다. 영화를 본 당시보다 보고 난 후의 아우라가 너무 강하다. 그리고 영화의 반전이라면 반전이랄까 뭐 그런게 등장하긴 하는데 변혁 감독은 그 반전에 크게 기대지 않는다. 반전이 중요한게 아니라 반전을 알고 난 이후 극중 한 배우가 보이는 반응이 더욱 더 충격적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