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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teen_포틴 ㅣ 작가정신 일본소설 시리즈 3
이시다 이라 지음, 양억관 옮김 / 작가정신 / 2004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4teen은 14살난 남자 아이 넷의 이야기이다. 14이면 우리나라로는 중학교 2학년이다. 초등학생처럼 완전히 아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고등학생처럼 어른에 가까운 청소년도 아닌 어중간한 시기의 나이. 내 경험을 떠올려 보자면 그때 나는 속으로는 이미 내가 다 컸다고 생각을 했었다. 그렇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을 해 보니 그때 내 생각만큼 내가 자랐던건 아닌것 같다. 어른의 눈으로 보기에는 아이지만 그들 스스로는 더이상 아이가 아니라고 생각하는 시기. 그런 시기가 14살이 아닌가 싶다.
비교적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 평범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극중 화자인 데츠로. 지상에서 100m도 더 높은 고층 아파트의 부잣집 아들이지만 조로증 (노화가 빨리 진행되는 병) 을 앓고 있는 나오토. 넷 중에서 가장 어른스럽고 성숙한 준. 가난한 집에 폭력적인 아버지를 둔 180cm의 거구 다이. 이렇게 네명은 같은반 친구이다. 그들은 자전거를 타고 놀러를 다니고 편의점에서 탄산음료를 사 먹고 이제 막 성에 눈을 떠서 포르노 잡지를 열심히 사 본다.
어른들이 아이들에 대해 가장 큰 착각을 하고 있는건 뭔가 모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문제가 일어나도 이건 어른들이 해결할 문제이니 너희들은 아무 걱정 말고 (혹은 쓸때없는 생각하지 말고) 그저 열심히 공부하고 씩씩하게 자라라고만 한다. 하지만 아이들이라고 해서 문제에 대해 완전하게 제외되어 그들 말처럼 아무 걱정이나 생각을 안 할수 있는건 아니다. 어른들이 겪는 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아이들 역시 겪어내고 있는데 단지 얼마 살지 않았다는 이유로 어른들은 언제나 아이들을 문제에서 열외시키려고 한다. 그들 역시도 나름대로 문제에 대해 고민도 하고 해결도 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
일면 평범해보이는 네명의 아이들은 제각각의 세상과 부딪쳐서 살아간다. 어른들의 눈에는 아직 꼬마로 보이는 그들이겠지만 그들은 자신의 문제뿐 아니라 타인 혹은 어른들의 문제에 대해서도 진지하게 고민하고 행동한다. 물론 아직은 나이가 많지 않고 세상 경험이 풍부하지 않아서 그들의 생각은 미성숙하고 행동은 충동적이다. 하지만 다들 그렇게 해서 나이가 든다. 처음부터 다 잘하는 사람은 없는것처럼 그들 역시도 하나씩 새로 느끼고 배워나간다.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를 말이다.
학교와 집만 왔다갔다 하면 되고 돈을 벌지 않아도 되고 누군가를 먹여살리지 않아도 된다고 해서 그들의 고민이 절대로 어른들보다 못한건 아니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치열하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다. 나의 14살을 떠 올려 보면 그때는 빗나가지 않으려고 입술을 피가나게 깨물었던 시절이었다. 어른들은 내가 아무 생각없이 학교만 다니고 공부만 하면 되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겠지만 나는 내 인생의 어떤 시기보다도 가장 치열하고 힘든 시간을 보냈었다.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는 것 보다 나는 훨씬 눈치가 빨랐으며 적어도 그들과 완전히 분리되어 독립적인 삶을 살지 않는한 그들의 말 처럼 그들의 일이 그저 '어른들이 알아서 할 어른들의 문제' 라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14살에게도 세상은 있다. 하지만 그게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 처럼 열네살만의 세상은 아니다. 물론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어른들이 침범하지 못하는 세상이 있겠지만 그 세상또한 어른들이 살아가는 세상의 부분집합이다. 네명의 아이들은 자기들의 세상과 어른들에게 속해있는 세상속을 매일 오가며 산다. 지나치게 진지하지도 않으며 그렇다고 해서 아무 생각없는 어린이는 아닌 그들은 나름의 문제를 가지고 있고 또 그 문제들의 답을 찾아간다. 정답은 아닐지 모르겠지만 최선의 해결책을 찾아가며 그 과정은 오히려 어른들보다 훨씬 훌륭하다.
이런 멋진 책을 읽고 겨우 이정도 감상문밖에 적지 못하는 나는 어쩌면 이미 그 시절이 너무 까마득해져버린 어른이라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이 책을 쓴 사람이 14살은 아니지만 (1960년 생이니 나보다 오히려 나이가 많다.) 그는 비교적 그 시절을 완벽하게 복원했다. 질풍노도도 오기 전의 그 복잡 다난한 시절을 말이다. 그의 다른 작품 LAST가 벼랑끝에 선 어른들의 암울한 얘기였다면 이 책은 암울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아직 벼랑끝에 서지는 않은, 앞으로 살아갈 날들이 훨씬 더 많고 어떤 모습으로 살아갈지 채 정해지지 않은 14살 소년들의 얘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