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포스터를 보고 딱 떠오르는 영화가 있지 않은가? 그렇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스티븐 스필버그 작) 이다. 전쟁 영화를 말할때 빠지지 않는 것이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이고 스토리나 영화의 완성도 보다는 사실적인 전쟁 장면으로 유명한 영화이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포스터만 봐도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상당히 흡사하다. 그러나 이는 포스터에만 한정된 얘기는 아닌듯 하다. 벌써부터 관람객들 사이에서 원빈 일병 구하기라는 애칭으로 불리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진태(장동건)와 진석(원빈)은 형제이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가 열병으로 벙어리가 되자 진태는 어려서 부터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구두닦이가 된다. 예전의 가난한 집안이 그렇듯 희생자가 있으면 온 가족의 희망이 걸려 있는 인물도 존재하기 마련인데 진태네 역시 동생 진석이 그러한 존재이다. 시장에서 국수를 마는 벙어리 어머니와 구두닦이를 하는 형의 힘으로 공부를 하는 진석. 대학 진학을 목전에 두고 있다. 그리고 진태에게는 어려서부터 한 동네에 자라서 올 가을에 결혼하자고 약속한 영신이가 있다.(영신은 부모가 없이 동생 3명을 길러냈고 진태네 어머니와 같이 국수 장사를 한다.) 그러다 전쟁이 터진다. 1950년 한국 전쟁 일명 6.25가 터진 것이다. 피난을 가던 진태네. 그러나 진태가 잠시 자릴 비운동안 진석은 학도병으로 끌려가게 되고 동생을 구하기 위해 진태는 함께 징집열차에 올라탄다. 총 쏘는 훈련한번 제대로 못하고 최전방에 배치된 형제들은 그 날부터 평온했던 지난날과는 완전히 다른 삶을 살게 된다. 진태는 집안의 희망인 진석을 빼내기 위해 훈장을 타려고 하고(훈장을 타면 동생을 보내준다고 말함) 진석은 점점 변해가는 형을 견디지 못한다. 처음에는 단지 동생을 구하는 것에만 신경이 팔려있던 진태는 차차 전쟁에 맛을 들이게 된다. 둘의 골은 진태의 변한 모습으로 인해 깊어가고 어느덧 진석은 형을 미워하게 된다. 그러다 예전에 형과 함께 구두닦이를 하던 아이가 빨갱이라는 이유로 형 앞에서 죽고 영신이마저 빨갱이로 몰려 죽게 되자 진석은 형 진태를 진심으로 미워하게 된다. 한편 진석이 죽었다고 믿게 되어버린 진태는 진석을 죽인것이 남한군이라 생각하고 반쯤 미친 상태에서 북한장교가 되어 남한군과 전쟁을 한다. 그 전쟁통에서 진석을 만나지만 진태는 알아보지 못한다. 우여곡절끝에 진태는 진석을 알아보고 진석을 살리려다 진태는 죽게 된다. 여기까지가 영화의 대략적인 줄거리 이다. (스포일러가 있긴 하지만 이정도의 스토리를 안다고 해서 재미가 반감 될 정도는 아니다.)
이 영화는 전쟁 영화도 아니고 사상이나 이념에 관한 영화도 아니다. 아마 우리나라가 찍은 전쟁 영화 중에서 최초로 반공적인 성격을 띄지 않은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미국의 진주만 공격 당시를 그린 일본의 애니메이션 반딧불의 묘가 전쟁을 그린 영화가 아니듯 태극기 휘날리고도 마찬가지이다. 사실 전쟁을 일으킬 수 있는 사람들은 극소수이다. 그 외에 그저 평범한 시민들은 전쟁 앞에서 무조건 피해가 될 수 밖에 없다. 전쟁을 일으킨쪽 이건 앉아서 당하게 된 쪽이건 결국 사지에 나서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사실 나는 반공교육을 받고 자란 세대이다. 무찌르자 공산당 같은 말도 들어봤고 초전박살이라는 반공초소도 집 근처에 있었었다. 물론 아주 어릴때 일이긴 하지만 말이다. 북한 괴뢰들이 빨간 눈을 가졌다더라 정도는 아니지만 빨간색에 대한 거부감 정도는 들만큼 교육을 받았다. 그런 나로서 JSA라는 영화는 아주 생소했다. 북한 사람이 우리와 똑 같다니가 아니고 영화에서 북한 사람을 멀쩡하게 그렸다는 것이 이상했다. 그리고 이제는 한국 전쟁이 북괴의 침략으로 인한 전쟁이 아닌 한 형제의 비극이라는 개인적인 소재로 등장하게 되었다.
사실 강제규 감독이 머리를 잘 쓴 것이다. 안그래도 선거철이 곧 다가 오고 (JSA가 아주 비슷한 상황에서 흥행에 성공했었다. 언론뿐 아니라 간접 흥보가 이만 저만이 아니었다.) 이미 실미도가 한껏 분위기를 업 시켜 놓은 상황에서 이 영화의 성공은 미리 예견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한국에서 만들어진 대작. 일명 한국형 블랙버스터가 만들어지는 족족 일부러 짠것 처럼 줄줄이 망한 판국이라서 이 영화 역시 약간의 불안감이 있긴 했다. 허나 현재의 흥행 스코어를 봐서는 관객 1,000만도 바라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가 내 예상대로 성공한다면 그건 완성도 높은 전쟁 장면과 장동건 원빈이라는 두 배우의 힘일 것이다. 장동건은 이미 김기덕 감독의 해안선에서 그 가능성을 충분하게 보여줬었고 원빈이라는 배우는 참 의외였다. 그간 나는 원빈을 기무라 타쿠야를 벤치 마킹한 인형처럼 봤기 때문이다. (사실이기도 하고) 그래서 그가 하는 것이라고는 꽃미남이라는 타이틀을 쥐고 드라마나 찍어 악악거리는 여성팬이나 확보하고 그 여새를 몰아 CF찍어 돈 버는게 전부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영화에서 원빈이라는 배우는 꾀 진지하다. 마냥 돌봐줘야 하고 약한 존재인 동생에서 형의 변화에 괴로워 하고 마침내는 스스로 살아남아야 하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별 무리 없이 소화해 낸다. 장동건에 비해서 뭍혀지지도 가려지지도 않은 것만으로도 원빈은 연기력에 있어 일단 절반의 성공은 거둔 것이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가장 화두가 될 전쟁 장면. 사실 이 영화가 전쟁영화가 아니라고는 하지만 영화 내내 전쟁 장면이 등장한다. 한국 전쟁이 터질때 본격적인 스토리가 시작되고 38선을 고지에 두고 마지막 전투를 벌일때가 영화의 스토리가 마감되는 시기이니 영화의 80%는 전쟁 장면이다. 사실 이 영화가 전쟁 장면을 잘 찍어내지 못했다면 라이언 일병과 비교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내츄럴 시티를 블레이드 러너에 비교하지 않듯이 말이다.) 태극기 휘날리며는 여태 내가 본 한국 영화 중에서는 가장 잘 찍어낸 전쟁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디테일함과 하이퍼리얼리즘에서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 못 미치지만 전체적인 이미지는 거의 비슷하게 따라잡고 있다. 특히 폭탄이 터질때 마다 함께 카메라가 약간 흔들리는 쉐이킹 기법의 적절한 사용은 과거 양가위로 조성된 핸드헬드의 그것처럼 마구잡이로 쓰이지 않았다.
극중 형인 장동건의 감정이 너무 빨리 바뀐다는 지적이 나오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마치 전쟁을 즐기는듯 보이는 진태의 심정을 나는 알 것 같다. 진태가 있는 곳은 평범한 세상이 아니다. 그곳은 전쟁터이다. 죽이지 않으면 죽게 생겼고 아침밥을 같이 먹고 전쟁하러 나섰던 동료의 팔. 다리가 터져 나가 죽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교육도 제대로 못 받았고 오직 훈장타서 동생을 고향에 보내야 한다는 생각 뿐인 진태로서는 당연한 변화인지도 모른다. 진석이 인간미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천성이 착해서라기 보다 자신은 돌봐야 할 동생도 없고 또 교육도 받은 지식인이기에 뭐가 옳고 그른지 판단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사실 배운 인간이야 대부분 전쟁에 나선 사람들이 사상과 무관하게 시키면 시킨대로 죽지 않기 위해 전쟁을 한다고 알지만(그래서 북한군이나 남한군이나 똑같은 처지라는 것을 알지만) 무지한 백성들이야 빨갱이 그러면 악마 바로 아랫급으로 알 수 밖에 없다. 오히려 나는 형을 용서하지 않고 있다가 편지 한장에 형을 용서하고 적진으로 형을 찾아 뛰어드는 진석의 감정선에 무리가 있었다고 본다.
누군가가 이 영화를 볼까? 하고 묻는다면 나는 그래 라고 대답하겠다. 실미도는 아직 안봐서 잘 모르겠지만(정말 안땡기는 영화다.) 이 영화는 극장에 가서 내 돈 주고 표를 사서 봐도 그다지 아깝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것 같다. (내 생각에는 한 만원을 한다고 해도 볼 가치가 있을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