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드무비 : 새드무비가 아니라 새드뮤비겠지.
새드무비를 얼마나 기다렸는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겠다. 그래서 이 영화를 기다리다 못해, 이것과 거의 엇비슷해 보이는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을 봤고, 그 영화가 예상외로 괜찮아서 새드무비에 대한 기대치가 더더욱 높아져서는 그야말로 개봉 일주일 전부터 안달복달을 했다는 얘기는 정말이지 하고 싶지도 않다.
2003년. 우리는 영국에서 매우 신선한 로맨틱 코메디 영화 한편을 받아보게 되었다. 러브 액츄얼리는 극장가에서는 여름다음으로 성수기인 크리스마스 시즌을 거의 석권하다 시피 했었다. 뚜렷한 스타 배우가 나오는 것도 아닌, 그렇다고 관객들에게 익숙한것도 아닌 옴니버스식의 이 영화가 성공하자 충무로는 ‘저거도 하는데 우리라고 몬하겠나?’ 라는 캐치프레이즈 아래 비스무리한 각종 영화들을 기획하기 시작했다. 그 중 몇편의 영화가 엎어졌고, 그 과정에서 몇 명의 감독과 시나리오 작가들과 제작자들이 머리를 쥐어 뜯었는지에 대해서는 아는바 없지만 아무튼 그때의 기획으로 인해 그로부터 2년뒤인 2005년 가을. 우리는 한국판 러브 액츄얼리를 표방한 ‘내 생에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과 본 영화 ‘새드무비’를 만나게 되었다.
내 생에가 조금 더 일찍 관객들을 만났고, 그 영화는 다소 복잡한 에피소드들의 연결에도 불구하고 전혀 난잡하거나 혼란스럽지 않게 스토리를 잘 풀고 나가서 관객과 평단으로부터 높은 점수를 받았다. 사정이 이렇고 나니 이후 개봉할 새드무비에 대한 기대는 더더욱 높아만 갔다. 거기다 어찌나 마케팅을 잘도 했는지 이 영화는 사전 조사에서 올 하반기 가장 기대되는 영화 1순위로 등극됨은 물론. 개봉 첫날에는 무척 높은 예매율까지 보였더랬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 본 결과 이 영화는 내 생에의 발뒷꿈치도 되지 않았다. 비슷한 영화로 고무되어 비슷한 기획을 하고 또 비슷비슷하게 배우들을 잔뜩 쓴다고 해서 꼭 비슷한 영화가 나오지는 않음을 새드무비는 극명하게 보여준 것이다.
사실 이 영화에 출연하는 모든 배우들은 다 싸이더스 HQ 소속사 배우들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싸이더스 HQ의 정훈탁 대표와 그 계열사인 I필름이 만든 영화이다. 거대 소속사들이 이미 드라마에 스타급 배우를 캐스팅에 응하는 조건으로 안나가는 소속사 배우를 끼워판다는 정도의 횡포야 이미 횡포 축에도 들어가지 않지만, 이 영화처럼 자사 배우들을 잔뜩 출연시켜서 말아먹는 것은 어떻게 해석을 해야 할까? 그저 영화계에도 가요계의 SM 이수만 대표같은 거대 공룡 한명이 탄생했다 정도로 보아야 하는 것일까?
싸이더스는 이미 스타 전지현을 데리고 ‘내 여자 친구를 소개합니다’ 라는 정말 입도 다시 떼기 싫은 영화를 만든적이 있었다. 그 영화를 국내뿐 아니라 해외 동시 개봉을 한다고 했을때, 비록 영화계 종사자는 아니지만 심히 쪽팔리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가 없었다. 아무리 해외 영화제에가서 상을 타고 인정을 받으면 뭣하겠는가? 저 영화 한편으로 한국 영화계 수준은 형편없이 떨어질텐데라는 생각을 했던 것도 사실이다.
새드무비에 출연한 배우들은 사실 연기력 면에서 그렇게까지 엉망인 배우들은 아니다. 물론 검증되지 않은 연기력을 오로지 외모로 들이미려는 배우가 영 없는 것은 아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결론적으로 너무 택도아닌 시나리오와 연출력 덕분에 완전히 죽을 쒔다. 에피소드 여러 가지가 모여서 한 영화가 되는 것은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이건 우리가 어릴때 받던 과자상자가 아니다. 잘 나가는 과자 보다는 못나가는 과자들을 잔뜩 넣은, 그렇지만 오로지 그 사이즈와 내용물의 양만으로도 용서가 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 여러 배우가 나오고, 그들의 연기력이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는 것만으로 그럭저럭 괜찮은 영화였다는 평을 내릴 얼빠진 관객들은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정말로 노력을 안해도 너무 안한다. 오죽하면 내가 저 위에다가 뮤비(뮤직 비디오)라고 썼겠는가. 정말이지 새드무비에 나오는 각종 에피소드들은 딱 뮤직비디오 수준이다. 도무지 왜 그런지에 대한 관객의 이해는 안중에도 없고, 그러니까 그런줄 아시라는 내용들만 잔뜩 등장한다. 에피소드들에서 정말 중요한 부분들에 대해서는 대충 넘어간다. 그렇다고 해서 비주얼이 괜찮냐면 또 그것도 아니다. 여기서 나는 촬영감독과 조명 감독이 뭘 한지를 모르겠다. 씬마다 다른 배우들의 피부 및 얼굴 생김은 그들이 피곤한 촬영 스케줄에 시달려 영화 한편을 찍는동안 상태가 좋아졌다 나빠졌다로는 설명이 되질 않는다. 어떤때는 조명을 끝내주게 때려서 마치 밀랍인형 같던 그들이 또 어떤 장면에서는 나라면 저 클로즈업씬을 빼 달라고 시위라도 벌였겠다 싶을만큼 엉망인 모습을 번갈아 보여준다.
말만 새드무비였지 새드무비에는 슬픔도 영화도 존재하지 않는다. 뮤직비디오식의 가벼우면서도 억지스러운 사랑과 눈물과 이별이 존재한다. 그나마 신민아와 이기우의 에피소드에서는 믿을수 없을만큼 소품이 큰 활약상을 펼쳐서 겨우겨우 본전을 뽑고 있을 뿐이다. 도대체 염정아와 임수정과 신민아와 정우성과 이기우와 차태현을 데리고 뭘 한지를 모르겠다. (여기서 빠진 여배우 한명은 제발 연기를 관뒀으면 하는 소망이 있다. 그녀는 심지어 뮤직비디오 에서도 연기를 너무너무 못한다.) 정말이지 이런 식이라면 싸이더스 HQ라는 거대 공룡은 단지 괴물일 뿐이다. 그것도 한국 영화의 질을 심각하게 위협하는 괴물 말이다.
에피소드와 에피소드 사이에는 억지스런 연결 내지는, 괜히 전 에피소드 인물이 현재 에피소드의 배우들 뒤에 떡하니 서 있다. 거기다 에피소드들 자체 역시 어떤 무게감도 힘도 가지고 있지 않다. 배우들이 모두들 눈물을 흘리는 포스터와 티저 예고편은 꽤나 감동적이지만 막상 뚜껑을 열어본 이 영화에 눈물을 흘리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자기네 배우들과 자기네 영화사를 가지고 자기네 영화를 만든다고 해서 이렇게까지 제멋대로여도 된다고 대체 누가 정훈탁 대표에게 가르친 것일까? (스스로 터득했다면 더 무서운 일이다.) 이럴꺼면 자기네들끼리 홈비디오로 만들어서 돌려보고 말 것이지 관객들에게 거의 사기에 가까운 마케팅의 힘으로 시간과 돈을 빼앗는 것은 도저히 용서받지 못할 일이다.
앞으로 싸이더스 HQ가 얼마나 더 이런짓을 할른지는 모르겠지만 부탁이니 지금이라도 정신차리고 여친소 내지는 새드무비에 이은 또 하나의 거대 졸작을 만들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다. 그나마 여친소는 전지현이라 용서를 했지만(전지현이 너무너무 이뻐서라기 보다는 그녀에게 연기 자체를 기대하지 않았다.) 이 영화는 그런 용서조차도 불가능하니까 말이다.
마지막으로 이 영화의 해드카피를 빌려 한마디 하자면 나는 이 영화가 만들어진게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