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리버 보이
팀 보울러 지음, 정해영 옮김 / 놀(다산북스) / 2007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이별은 따라갈 수 없다. 극복할 수는 있겠지만.

적어도 내게 이별은 그런 존재다. 뭐, 사교성은 쥐똥만큼도 없는 내가 겪은 이별이라고 해봤자 손에 꼽을 정도지만, '죽음'이란 이별은 항상 따라갈 수 없었다. 어린 시절 길렀던 동그란 눈이 귀여웠던 강아지도, 노란 털이 보송보송했던 병아리도. 하지만, 따라갈 수 있는 이별도 있다는 걸 안다. 차근차근 사랑하는 사람의 발자취를 따라서 끝까지 곁에 있어줄 수 있는 그런 이별.

 

사실 내가 이 소설을 읽은 건 작년 겨울이었다. 교양시간 쉬는 시간에 도서간으로 달려가 빌려온 책들 중 하나였다. 공부는 안 했지만, 답답한 시험 분위기에서 집어든 책이라 제목이나 평가는 익히 알고 있음에도 책장을 넘기는 손이 무거웠다. '내가 왜 이러고 있지...' 하는 후회와 '그래도 읽고 싶다...'라는 마음 사이에서 우왕좌왕 하다 한 장씩 넘긴 책은, 생각보다 매끄럽게 술술 넘어갔다.

 

이 소설은 감성적이고, 반짝거리는 표지만큼 아름답다. 청소년 취향의 심플한 문체로 되어 있어서 읽기도 쉬운데다 잔잔하고 신비로운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판타지적인 요소(판타지의 뜻이 '현실이 아닌' 이라는 개념하에)가 있다고는 해도 청소년 판타지의 최고봉격인 해리포터와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나니 비교는 애초에 불가능하다. 해리포터가 현실이 판타지인 본격 판타지물이라면 이 소설은 현실에 판타지를 한 구석에 끌어들여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결말의 모호함 때문에 다른 사람들은 어떤가 싶어 지식인 검색을 해보았는데 역시나, 라고 할까...표면적인 스토리는 따라가도 그 속의 맥락을 놓친 분들이 꽤 된 듯 싶다. (아니 그 때 당시의 이야기지만서도.) 애초에 문체와 구성은 쉬운 반면에 담긴 이야기는 조금 철학적인 편이라 아직 어린 분들에게는 조금 어렵지 않을까 싶다. 아니, 혹시 여러번 읽으라는 작가의 의도인걸까...

 

내용은 사실 정말 간단하다. 수영을 굉장히 좋아하는 소녀 제스는, 수영없는 삶을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헤엄치는 걸 좋아한다. 그리고 제스의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조금 괴팍한 성격이지만 제스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분이셨다. 몸이 안 좋아지신 할아버지를 위해 가족들이 할아버지의 고향마을에 가서 지내는 동안, 제스는 신비로운 소년, '리버보이'를 만나 환상과 현실의 경계에서 혼란스러워 하지만 점점 멀어져가는 할아버지와 리버보이, 그리고 자신 사이에서 서서히 무언가를 깨닫는다.

 

죽음이라는, 영원한 이별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를 묵묵히 강물이 흐르듯이 깔아놓은 책 안에서 제스는 리버보이와 함께 헤엄쳤다. 천진하다고 해야할까, 제스의 수영에 대한 애정은 감탄이 나올 정도다. 내가 부모님이였다면 무척 걱정했을 테지만, 나는 인생에서 몰두할 무언가를 가지고 있다면 이미 반정도는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솔직히 말해 제스가 부러웠다. 어른이 되어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며 돌아가고 싶어하듯. 이미 지나온 시절을 돌이킬 수 없다는 걸 알아도, 나도 저렇게 하나하나 차근차근 배워나갔다면 지금쯤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부질없는 생각은 머리속을 떠나질 않는다. 분명 제스처럼 누군가의 죽음을 슬프게 배웅하고 앞으로 나아갈 방법을 알게 되었겠지.

 

열다섯살이라는 나이는 동양에서나 서양에서나 어린이와 어른의 경계선인 모양이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해변의 카프카>에서도 그랬고 <리버보이>에서도 그렇다. 어찌보면 제스는 할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어린시절에도 작별은 고한 것과 같다.

-전형적인 성장소설이지만, '리버보이'라는 존재가 그 전형을 벗어나게 해주었다. 신비로운 분위기의 리버보이는 할아버지의 분신과도 같은 존재였다. 한 때, 수영하기를 좋아했던, 헤엄쳐서 바다에 나가고 싶어했던 과묵한 소년이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돌아온 고향에서 어떻게 세상으로 돌아갔는지를 나타낼 수 있는 완벽한 존재.

할아버지는, 그리고 리버보이 또한, 제스에게 상냥하다. 자신이 사랑했고, 자신을 닮은, 그리고 더더욱 닮아갈 뒤에 남겨둘 사람이기 때문에.

 

글쎄, 비록 울지는 않았지만 충분히 감동적이고 환상적인 책이라고 본다. 일단, 할아버지와 제스의 관계가. 그리고 할아버지의 나름 만족스러웠던 삶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흑설공주 이야기 흑설공주
바바라 G. 워커 지음, 박혜란 옮김 / 뜨인돌 / 2002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오랜만에 엄마와 신촌에 나갔다왔다. 가게에 나가시는 엄마의 점심 시간에 맞춰서 옷을 입고, 귀걸이를 갈아끼우고 수선을 부리다보니 벌써 11시 반. 종종걸음으로 달려가 아르바이트 아줌마와 교대하고 있는 엄마에게 척하니 팔짱을 껴보았다. 오랜만의 모녀 나들이에 기분이 들떠서 룰루랄라 버스 정거장으로 향하다 버스를 두 대나 놓쳤지만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 추운게 대수랴 버스 놓친 게 대수랴. 추운 건 겨울이니 어쩔 수 없고 버스야 기다리면 되지. 추위로 상기된 발간 얼굴로 히히덕 나는 마냥 신이 났다.

실은 이번 토요일날 큰 이모 생신 선물을 사러 나가는 길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크리스마스 이브, 기독교인이 아니더라도 어쩐지 들뜨는 날이니까. 신촌에 내리니 역시나 사람들로 북적거려 파스타를 먹으러 가는 길도 어찌나 힘들던지. 겨우 2층 창가 자리에 자리를 잡아 피자와 파스타를 주문하고 나서야 창 밖을 내다볼 여유가 생겼다. 이 집 맛있어, 엄마. 엄마는 뭔가 매운 거 먹고 싶은데. 진짜 맛있어. 맛없음 내가 낼게. 히히 웃으며 장담하는 날 보고 엄마가 용돈도 없다며 라고 웃었다.

엄마와 수다를 떨면 재미있다. 워낙에 뭔가를 숨기지 못하는 체질에다 엄마한테 모조리 말해버리는 내 습관 때문에 한 마디만 꺼내도 금방 아, 그거? 하고 맞장구를 쳐주니 이때다 싶어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친구랑 있을 때는 느낄 수 없는 편안함이, 엄마와 나 사이에는 있다. 해물 스파게티를 돌돌 말며 이야기는 어린 시절 보았던 애니메이션으로 옮아갔다.

"엄마, 흙꼭두장군 기억해?"

얼마 전 어렵사리 인터넷에서 본 옛날의 애니메이션의 제목을 꺼냈다. 사실 엄마가 기억할 거라고는 생각도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엄마가 "그 어렸을 적 보여준 거 말이지?" 라고 대답했을 때에는 솔직히 놀랐다. 어렸던 나에게만 추억인 줄 알았더니 엄마에게도 그 제목이 추억의 한 조각이었던 모양이다. 신이 난 나는 얼마 전 인터넷에서 다시 봤는데, 라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되게 오랜만에 봐서 재미있긴 했는데 옛날에 보던거랑 느낌이 다르더라구."

"원래 그런 법이야. 영화도 처녀 때 봤던 거 지금 보면 영 다르다니까."

"그치? 나 저번에 인어공주 빌려봤는데... 다시 보니까 애가 어찌나 아빠 말을 안 듣던지."

투덜대며 인어공주의 흉을 보는 날 엄마가 으하하 웃으며 바라보고는 너도 이제 늙은거야, 라고 말했다.

"어렸을 적에는 비평없이 보니까, 무작정 재미있다고 느끼는거지."

파스타를 감아 올리며 엄마 앞에서 입을 내밀고 있는 딸이 귀엽다는 듯 엄마가 말한 말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어렸을 적에 비평이니 뭐니 할리가 있나. 그저 부드럽게 움직이는 화면에 눈을 빼앗겨 헤헤 거릴 뿐이지. 거기다 비평할 나이쯤 되면 동화는 손도 대지 않게 되니, 언제까지나 재미있었다고 기억하게 되는 거겠지.

 

내가 동화책을 접한 건, 엄마가 머리맡에서 읽어줬기 때문도, 집안에 동화책이 가지런히 꽂혀있었기 때문도 아니었다. 놀러간 친구 집 구석에 쳐박혀 있던 얇은 책들, 뭔가 하고 들여다 봤던 그 날이 내가 처음으로 동화책을 봤던 날이었다. 그리고 TV에서 해준 명작동화 애니메이션. 그래서 더 동화를 좋아하는지도 모르지만, 몇 년 전부터 꾸준히 동화의 재조명이 이루어져서 기쁘다. 새롭게 번역되어 나온 동화도 재미있고, 그림 동화의 본모습이라며 나온 잔혹동화도 나름 재미있고, 각색된 동화 역시 재미있다. 그리고 이 [흑설공주 이야기]처럼 어느 누군가를 겨냥해 나온 동화 역시 재미있다. 어쩐지 읽고 있으면 디즈니사에서 나온 영화, "마법에 걸린 사랑"이 생각난다. 원작을 재치있게 각색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둘 다 내 마음에 들었기 때문일지도 모르고.

어느 쪽이든간에 보고 있으면 어렸을 적 봤던 동화들처럼 그저 즐겁게 바라보고 있는 날 느낄 수 있다. 동화든 뭐든 이야기의 주된 임무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는 거, 라고 굳게 믿는 나에게 오랜만에 '동화'를 보면서도 비평없이 읽어내려갈 수 있는 책이 있어 하루가 즐거웠다. 비록 읽고난 뒤에 다시 보면 또 다시 나이먹은 내가 튀어나오겠지만. 잠시나마 어린아이처럼 웃었다는 거 자체가 중요한 거 아니겠어.

책 중에 내가 제일 재미있게 읽었던 건 '릴리와 로즈'였다. 애초에 원작 동화가 무엇인지 잘 모르겠거니와 마지막에 공주와 릴리가 깔깔깔 웃는다는 대목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당찬 여자아이들이 자기들만의 비밀이 즐거워 마주보며 크게 웃는 다는 이야기가 어찌나 훈훈하던지. 골치아픈 2세 이야기는 당당하게 해결하고 언제나 사이좋게 웃음지을 생각에 나 역시 흐뭇했다. 동화는 이런 거 아닐까. 어린아이들에게는 웃음을 주고, 어른들에게는 흐뭇함을 주는 거. 내 스스로를 어른으로 칭하기에는 아직 한참 어리고 미숙하지만, 그렇다고 어린아이처럼 순수하게 동화를 바라볼 수는 없는 나이니까. 확실히 이 책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기존의 동화와는 조금 다르다. 우선 세상의 모든 딸들을 위한 동화, 라는 부제가 무색치 않게 모든 이야기의 주인공이 소녀들이었고, 여느 동화가 바라보지 않는, 동화의 나라에도 현실적인 문제가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 물론 동화답게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허구의 이야기에 끊임없이 현실을 들이대는 건 재미없으니까.

 

책은 재미있었다. 그리고 이런 동화를 엄마에게서 듣고 싶었다. 어렸을 적에도 경험해 보지 못한, 머리맡에서 동화책 읽어주기, 같은 엄마의 사랑이 넘치는 이벤트가 문득 그리워졌다. 물론 구구단 테이프를 밤새 틀어주신 적은 있어도, 아플 때 밤 새 곁에 있어주시긴 했어도 낮에도 책은 읽어주시지 않았던 경험에 비추어 보았을 때, 다시 과거로 돌아가도 그런 일은 없을 듯 하지만. 왜 흔히들 외국 가족 영화를 보면 귀여운 무늬의 침대에 누운 금발 머리 아가들 옆에 엄마나 아빠가 누워서 "옛날 옛적에..."라며 이야기를 시작하지 않나. 졸음 가득한 어린 아이가 눈을 깜박이고 그러면 엄마 아빠는 아이의 이마에 굿나잇 키스를 해주고는 불을 끄고 문을 닫아주는, 그런 장면이 자꾸 눈에 밟히는 책이었다. 어른을 겨냥한 책이라 삽화가 많이 있는 편은 아니었는데 동심으로 돌아가 보는 김에 삽화도 좀 더 넣어 좋았으면 더 좋았을 뻔 했다.

 

헤헤 웃으며 엄마와 후식으로 나온 차를 마시고 먹느라 풀러두었던 목도리를 둘렀다. 먼저 계산하러 나가는 엄마 뒤를 졸졸 따라 나가니 직원분이 우리 둘을 보고 빙그레 웃는다. 왜요? 물으면 따님이 어머님을 정말 많이 닮아서요. 라고 다시 웃는다. 가파른 2층 계단을 내려오며 엄마도 나도 멋쩍게 웃었다. 둘 다 통통과니 닮았다는 게 좋은건지 나쁜건지. 잠시 헷갈리다가도 뭐 어떠랴 싶어 팔짱을 끼고 거리를 걸었다. 오늘 밤은 엄마와 함께 책을 읽자. 나중에 오늘이 추억이 되도록.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백설 공주는 공주가 아니다?! - 발도르프 선생님이 들려주는 진짜 독일 동화 이야기
이양호 지음, 박현태 그림 / 글숲산책 / 2008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백설공주는 공주가 아니다?!
-발도르프 선생님이 들려주는 진짜 독일 동화 이야기
이양호 지음 / 글숲산책

 

어렸을 적, 네 가족이 살기엔 복작복작 작았던 우리 집은 동화책 놓기에도 빠듯했다. 침대에서 내려오면 책상 의자가 맞닿는 그런 작은 방 어느 곳에서 자리할 곳 없었던 고운 색색 가득한 그런 동화책이 참 부러웠더랬다. 친구 집에 놀러가서 한 권 한 권 훔쳐 읽은 책들은 살결 고운 공주님들이 방실거리고 나와 어린 나를 설레게 했다. 신데렐라, 인어공주, 라푼젤, 백설공주. 훌쩍 커버린 지금도 떠오르는 그 삽화 속의 그녀들은 커다란 눈망울이 반짝반짝 빛나고 선이 고운 머리카락을 늘어트린, 언제까지나 아름다운 모습이다.

 

제법 많은 동화를 담고 있었던 그 전집은 디즈니의 만화가 나오기 전의 것이었던 걸까, 모습이 사뭇 달랐다. 특히나 기억에 남는 주인공은 바로 백설공주. 어딘가 동양적인 참한 분위기를 풍기는 백설공주를 기억하고 있던 내가 처음으로 디즈니의 백설공주를 봤을 때에 놀란 것도 무리가 아니다. 지금에서야 하는 말이지만 디즈니 백설공주의 머리 스타일은 아직까지도 탐탁치 않다.


하지만 시각적 영향력이란 얼마나 센 것인지. 모든 사람들이 디즈니 백설공주를 정석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했고 나 역시 노래 하나로 숲속 동물 친구들을 불러대는 그녀의 신비함에 홀딱 반해 버린지 오래였다. 대단하지 않은가. 지금 들으면 소름이 삐죽 솟을 정도로 옛날틱한 목소리지만 그 당시에는 남몰래 흥얼흥얼 시도해 보았더랬다.

근데, 그런 백설공주가 공주가 아니란다. 그럼 도대체 누구란 말이지. 처음 책 제목을 접했을 때는 처음 디즈니 백설공주를 보았을 때처럼 나름 충격적이었다. 이제는 다 커서 더이상 동화 속 그녀들을 떠올리며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일이 없지만, 내가 알고 있던 무언가가 사실이 아니라는 사실은 어린 시절에 알게 된 것일 수록 충격적이지 않은가.


그런 충격감과 기대감을 갖고 받아본 책은 표지부터 은은하게 펄이 들어가서 세련되어 보였다. 베이지색에 꽃이 핀 듯 붉게 퍼진 수채화 때문일까 그 위에 쓰여진 '새하얀 눈 아이와 일곱 난쟁이의 이야기를 통해 동화 읽기의 참뜻을 만나다.'란 문구 때문일까 가슴이 두근두근 설레여왔다. 성급하게 책을 펼치면, 어디까지나 원문에 충실하고자 하는 목적 때문인지 한글 번역판, 독일어 원판, 영문판이 함께 나와서 비교해 볼 수 있었다. 물론 독일어라면 눈뜬 장님인 내가 독일어를 읽을 수 있을리는 만무했지만, 그나마 익숙한 영어는 동화라 그런지 겹치는 표현도 많고 단어도 쉬워 색다르게 읽을 수 있는 매력이 있었다.

 

새하얀 눈 아이, 라는 지칭은 어쩐지 간질간질한 어감이라 백설공주라는 이름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하늘에서 막 내려온 눈송이의 보송보송함이 그대로 살아있다고나 할까. 개인적으로 백설공주라는 이름을 들을 때마다 어쩔 수 없이 백설기를 떠올리며 허기져해야 했던 내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면 새하얀 눈 아이라는 이름은 동화에 딱 어울린다. 백설공주가 가지는 반짝반짝 눈부시게 아름다운 이미지와는 조금 다른, 순수함을 간직한 느낌이 물씬 나니 말이다. 이름을 바꾼 것 만으로 전체 이야기의 분위기가 달라지니 참 신기한 일이다.

 

새로 번역된 버전은 어떻게 보면 기존의 백설공주와 별로 다를 바 없어 보인다. 호칭들이 바뀐 게 차이점이라면 차이점이랄까. 무심히 휙휙 책장을 넘기면, '어? 뭐가 다르다는 거야?' 하고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하지만, 번역본 뒤에 그야말로 친전한 말투로 하나하나 집어주며 해석하는 이양호 선생님 뒤를 하나하나 집어가며 곰곰히 생각해가면 동화는 더이상 동화가 아니다. 어쩌면 그렇게 의미 하나하나가 깊은 지 모르겠다.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 고 짧고 사랑스러웠던 동화 안에 세상이 담겨 있다니. 놀라고 또 놀랐다.

 

확실히 이야기는 그 이야기가 나온 곳의 문화를 한껏 빨아드린 꽃같다. 우리나라의 상식으로 생각하면 아리송 한 것이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예를 들자면 검은 흙. 우리 나라에서 흙, 이라 하면 황토, 짙어봐야 갈색을 떠올릴 거다. 검은 흙이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어도 분명 우리 나라의 상식 선에서 흙색은 황토색이니까 말이다. 다른 사람이 보면 별나다고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소소한 차이가 눈에 보일 수록 어쩐지 웃음이 났다. 그런 차이점이 늘어날 수록 정말 다른 나라 이야기구나 싶기도 했고, 그걸 또 새롭게 알아가는 것 자체도 재미있었다. 이런게 어른을 위한 동화의 맛인가 싶기도 했고.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가 싶어 조금 불안해 지기도 했지만 어린 아이들만 본다고 치부되는 동화를 이런 식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 자체가 즐거운 것 아닌가 싶다.

 

잘 돌아왔어, 새하얀 눈 아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 5 | 6 | 7 | 8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