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콜릿 코스모스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북폴리오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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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 터놓고 말해서, 나는 '연극'이라는 문화생활에 뭔가 말을 보탤만큼 아는 편이 아니다. 워낙 집에 붙어 있는 걸 좋아 하기도 하지만, 연극이든 영화든 충동적으로 보러가는 스타일이라 반대로 첫눈에 끌리지 않으면 생각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도, 연극에 관한 이야기를 읽는 것은 재미있다. 만화책 <유리가면>이 그랬고 이 책, <초콜릿 코스모스>가 그렇다. 생생한 무대를 보는 것이 생각할 틈도 없이 끌려들어가는 블랙홀이라면 책을 읽는 것은 작은 소용돌이에 빨려들어가는 듯한 매력이 있다. 뒷장을 넘기지 않을 수 없으면서 한 편으로는 책의 내용을 평가하고 있는 내가 있다. 거기다 연극과는 달리 돈을 더 추가하지 않고 다시 볼 수 있다는 게 나는 너무 마음에 든다.

<초콜릿 코스모스>는 읽는 내내 <유리가면>을 떠올리게 하는 책이었다. 무엇보다 소재가 연극이다보니 배우의 성장이라는 점에서 피해 갈 수 없다. 다만 유리가면과 다른 점은, 스토리 상으로는 연애감정이 나오질 않는다는 점과 여자 주인공 두 명의 사이가 좀 더 온건하다는 느낌-일 것이다. 여자 주인공 중 한 명인 아스카의 연극부 선배, 다쓰미가 아스카에게 가지는 감정을 넓게 보면야 연애감정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내가 보기엔 그 감정은 흐릿하게 연애감정으로 피어나 저 멀리 있는 것에 대한 동경, 부러움, 초조함으로 자라난 듯 싶다.

연출상으로 다른 점이야, 책의 종류가 소설책과 만화책이니 당연히 다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그 다른 카테고리 상에서도 '연극 장면을 묘사한다'는 일은 모든 연출상의 차이점을 끌어안는다. 말하자면, <유리 가면>이나 <초콜릿 코스모스>나 주인공(들)을 다른 사람이 바라보는 시점이 있어서 주인공의 재능에 저도 모르게 감탄하고 오싹해 지기도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난 그 순간이 너무 좋다. 재능이 빛나는 순간을 누군가가 빼놓지 않고 지켜보고 있다는 생각을 하면 가슴이 설렌다. 심리학에 대해서는 연극보다 더 모르지만, 아무래도 난 누가 내 (있을지 모르는) 재능을 봐주길 바라는 것 같다. 감정이입하는 주인공들을 통해서 대리만족을 얻는달까.

고백하자면, 난 <유리가면>을 정기적으로 읽는 편이다. 딱히 정해둔 건 아니지만 아주 문득 연극 장면들이 생각나서 안절부절 못하게 된다. 물론 다른 책들도 그런 경우가 있지만... <유리 가면>같은 경우에는, 내가 좋아하는 연극 리허설 부분, 오디션 부분만 골라 읽곤 한다. 그리곤 만족해서 책을 덮고 일상으로 돌아간다.

여주인공이 두 명이나 나오는데 두 명 모두 이성에 관해서는 관심이 전혀 없다는 게 이 책의 문제라면 문제일까. 자신을 이끄는 연극에 푹 빠져 헤어날 줄을 모르니 옆의 사람에게 그런 감정을 느낄 새가 없어 보인다. 사실, 내가 부러움을 느낀 건 그 점이었다. 잠깐 길을 잃고 헤매도, 원하는 걸 찾아내는 그 열정과 재능. "바보라니까, 그런 인간들은. 남 가진 것만 탐내느라 결국 아무것도 손에 못 넣어. 같은 걸 손에 넣어봤자 그 무게에 짓눌려 버티지도 못할 거면서."라는 말은 결국 내게 향한 말이었다. 어쩌면 나는 이렇게도 어린 아이 같을까, 싶을 정도로 찔렸다. 원하기만 하고 노력하지는 않는. <초콜릿 코스모스>의 강점은 그 열정인 듯 싶다. 모두 연극에 '미친' 사람들이라, 읽는 나도 덩달아 가슴이 들뜨고 열중하게 되는 매력이, 이 책에는 있다. 다음 날 쪽지시험 공부 중에 연거푸 2번이나 읽어내리게 한 저력이랄까. 거기다 어지간하면 묵혀두는 리뷰를 단숨에 써내려가게 하는 힘.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돌진하는 아스카의 모습에 나도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교코 역시 본받아야 할 점이 잔뜩이다. 아니, 오히려 아스카보다 교코가 인간적으로 성숙하다. 재능면에 있어서는 아스카의 본능적인 '흉내내기', 혹은 '연극 연출'을 따를 수 없겠지만, 교코는 자신의 일이, 연기가 자신에게 있어서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하고 답을 내리려고 노력한다. 자신의 일에 자신도 있고 재미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자신에게 열정이 있는지 자문하는 교코. 냉정하게 분석하면서도 자신다움을 잃지않는 교코. 난 아직 어리숙하고 길을 헤매는 중이라 그런 교코를 볼 때마다 가슴이 따끔거렸다.

그래도, 내가 제일 공감한 인물을 말하라고 하면, 다쓰미를 빼놓을 수 없다. 글을 쓰고 연극을 할 추진력은 없지만, 주인공인 아스카와 교코보다는 감정적으로 더 가깝게 느껴졌다. 따지고 보면, 단 한 번도 열정을 가지고 무언가를 해 본일이 없는 내가 본능적으로 돌진하는 아스카나, 자신의 일에 나름의 관점을 지닌 교코와 공감하기는 애초에 무리였다. 아마 먼 훗날 내가 인생의 목표를 찾았을 때나 가능하려나. 그 때까지, 나는 <초콜릿 코스모스>를 읽으련다.

-어렸을 때 쓰기 연습을 하며 같은 숙어를 몇 번씩 반복해서 쓰다 보면, 나중에는 글자가 도무지 읽히지 않고 머릿속이 뒤죽박죽되어 글씨가 써지지 않던 기억이 난다. (6)

-로터리라는 연못에서 소금쟁이처럼 쉴 새 없이 움직이는 사람들을 보고 있으면, 쓰기 연습 때와 마찬가지로 점점 사람이라는 존재가 조각조각 흩어져 의미를 알 수 없게 된다. 이 무질서한 운동. 그 하나하나가 뇌와 의사와 감정을 갖고 있다는 게 어쩐지 섬뜩하게 느껴진다. 이 많은 사람들이 모두 무슨 생각인가를 하고 있다니 무서운 일 아닌가. (11)

-자신이 지금 가슴을 두근거리고 있다는 사실이 가미야에게는 뜻밖이었고 기쁘기도 했다. (22)

-텅 빈 극장과 마찬가지로 언제나 예감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뭔가 가슴 설레는 일이 여기서 시작되리라는 예감. 이 문 저편에 이 세상 것이 아닌 멋진 세계가 펼쳐 있으리라는 예감. 지금은 아무도 없지만,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의 숨소리와 웅성거림이 들리는 것 같다. (35)

-미지의 영역. 그런 말이 생각났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내가 아는 것은 아무것도. 이 눈이 보는 것은 더 멀고, 더 크고, 더 무거운 것이 틀림없다. (57)

-그냥 생각나는 대로 몸을 움직이고 있을 것이다. 포즈 자체는 유치하고, 어린아이처럼 앳되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자유롭고, 비슷한 또래인 다쓰미가 보기에도 천진난만한 젊음이 넘쳐흘렀다. 줄곧 보고 있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 어린 시절, 날 저물 때까지 아무 생각 없이 뛰어놀 때 나던 해님 냄새가 코끝에 되살아난다. (64)

-재능을 타고난 사람은 정말 힘들 거야. 뭐든지 다 할 수 있고, 할 수 있는 게 당연하거든. 그게 당연한 상태니까 하는 수 없지. 주위의 무능한 인간들한테는 시샘이나 사고. 바보라니까, 그런 인간들은. 남 가진 것만 탐내느라 결국 아무것도 손에 못 넣어. 같은 걸 손에 넣어봤자 그 무게에 짓눌려 버티지도 못할 거면서. (76)

-아주 가끔 이런 순간이 찾아들 때가 있다. 몸속 깊은 곳, 평소에는 의식하지 않는 어두운 곳에서 거센 충동이 뭉게뭉게 치솟는 순간. 뭔가가 그녀를 뒤흔들어 다른 사람으로 바꿔놓는 순간. (107)

-멋진 아이디어다, 재미있는 설정이다, 하고 흥분해서 쓰기 시작하는데, 세계가 확장되지 않고 등장인물도 움직여주지 않는다. 그 이유는 자신도 알고 있었다. 이야기의 구성이나 내용은 둘째 치고, 인물에서 벽에 부닥쳤다. ~ 자신은 아직 진짜 등장인물을 창조해 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137)

-주어진 조건 안에서 최선을 다하는 게 프로가 할 일인 것은 사실이지만, 스스로 어떤 것을 한정시키고 틀에 끼워넣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었다. 만일 그 틀을 치워버리고 쓰고 싶은 것을 쓰라고 한다면, 그런 재료가 자기 안에 있을까. (155)

-세상 사람 누구나 상대에 따라 각기 다른 얼굴을 연기하고 있으니 어떤 의미에서는 모두가 배우다. 그러나 사람마다 다 다른 특징이 있고 그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그 사람이라는 사실 자체가 아스카는 어쩐지 신기했다. (229)

-스타라는 존재는 무섭다. 보는 것만으로 만족하게 된다. 그 오라가 모든 것을 압도한다. 있기만 해도 된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다. 게다가 재능과 실력까지 있으면 그야말로 범에 날개 달린 격이다. (402)

-세계가 속도를 높이며 부쩍부쩍 넓어진다. 그녀뿐 아니라 그녀가 사는 세계까지 집어삼키려는 듯이. 그와 동시에 뭔가가 급속히 몸속에서 자라나는 것이 느껴졌다. 부쩍부쩍, 거대한, 억누를 수 없는 뭔가. 아스카 자신도 제어할 수 없는, 흉포하고 눈부신 에너지를 지닌 뭔가가. (444)

-무대는 어디까지나 소우주. 그곳에는 영구한 시간이 흐르고, 귀족의 성도, 망망대해도 나타날 수 있다. 과거도 미래도 마음먹은 대로. 무대에는 늘 우리의 전부가 있다. (504)

-여자들은 뭐든 다 될 수 있다. 어머니도, 딸도, 연인도, 아내도, 성녀도, 창녀도, 무녀도, 마녀도. (5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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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나 홍신 엘리트 북스 64
에밀 졸라 지음 / 홍신문화사 / 199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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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기는 내 오랜 취미다. 자랑할 정도는 아니지만 스스로 만족할 만큼은 읽고 있다. 하지만 내가 읽어온 책들 중에서 '인생을 바꾼 책'을 꼽는 일은, 아마 내게는 무리인 듯 싶다. 분명 내 삶은 내가 읽은 것들에서도 영향을 받았을테지만 인생이 바뀌었다, 라고 말할 수 있을만한 책은 아직 없는 듯 하다. 하지만, '인생을 바꾼 책'이라는 주제를 받았을 때 순간적으로 떠오른 책이 있었다. 에밀졸라의 <나나>.

내가 <나나>를 읽은 건, 아직 내가 어렸던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책 읽는 걸 좋아해 졸업 전에 학교 도서관은 정복하자, 는 순진한 야망을 가지고 부지런히 책을 빌려다 읽었던 그 시절, <나나>라는 제목은 보자마자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아직 난 어렸던 소녀였고 책을 고르거나 분류하는 기준이라고는 홈즈와 뤼팽이 나오던 추리소설과 그 외의 것이 다였다. 분명 명작 코너에 있으니 읽어도 괜찮은 책일거라고 생각했다. 아니, 학교 도서관이었으니 모든 책이 재미있고 즐거우며 아름다울 거라고 믿고 있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그게 꽤나 순진한 생각이며, <나나>는 어찌되었든 명작이라는 걸 알지만, 그 때는 그 <나나>가 읽고 싶어 마냥 들떴다. 어쩐지 이국적인 이름, 보송보송한 병아리가 생각나는 이름, <나나>.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나나>를 그 어렸던 시절을 제외하고는 다시 펼친 적이 없다. 더이상 <나나>라는 제목에 가슴이 설레지도 않거니와, 어린시절의 감상을 다시 되살리고픈 마음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뜻밖이었다. 십여년을 잊고 살았던 책이 문득 생각났다는 게.

나나의 줄거리는, 간단히 말하자면 물욕이란 얼마나 허망한가를 보여주는 이야기이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 짚어보면, 나나는 굉장히 아름다운 여자지만 자신의 아름다움을 이용해 외적인 것만을 추구하는 여인이다. 세상의 도덕적 잣대는 스스로의 아름다움 앞에서 무용지물이 된다고 생각하는 오만한 팜므파탈. 하지만 결국 그녀는 그녀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채 쓸슬히 세상을 뜬다. 이렇게 줄이고 보니 그저 그런 소설같지만, 아마 지금, 이렇게 다 커서도 <나나>를 읽으면 여전히 혼란스러울 것 같다.

책을 대출해 집에 돌아와 펼쳐들었다. 그리고 난 끝내 그 책을 놓지 못하고 어둠 속에서 책장을 넘겼다. 내가 자야할 시간은 이미 넘은 시각이었다. 내가 누워있던 침대에서 고개를 들면 흰 나무문이 보였다. 그리고 옆에는 동생이 잠에 빠져 뒤척이고 있었다. 문 너머의 안방에서 엄마가 TV를 보시는지 소리가 흘러들어왔다. 나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눈가가 시큰하고 숨이 막혔지만 내가 과연 울고 싶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결국 숨을 토해내며 눈물이 흘렀다. 평소에 우는 걸 굉장히 싫어하던 나였지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면 비명을 질렀을지도 모르니까. 굳이 말하자면 내가 느낀 것은 답답함이었다. 아름다운 나나. 사랑스러운 나나. 파멸의 나나. 그리고 결국 죽어버린 나나. 내가 나나에게 동정심을 느꼈는지는 아직까지도 모르겠다. 명치가 콱 막히는 감정이 그저 동정심이었을까. 물론 어린 나이에 나나의 '비도덕적'인 일상은 충격적이었다.

아마 <나나>는 내가 최초로 접한 순수문학이 아니었을가 싶다. 그 전 내 취향은 추리소설이었으니까. 잘못을 한 사람이 결국에는 벌을 받는, 정직한 이야기. 그리고 모두가 행복해지는 사랑스러운 동화들까지. 그런 내가 <나나>를 읽은 건 어린 아이가 순식간에 어른이 되어버린 것과 같을지도 모르겠다. 중요한 것은 <나나>는 날 밤새 잠도 못자며 생각하게 한 최초의 책이라는 것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나는 오히려 어린아이와 같은 성격이었던 것 같다. 동그란 눈을 굴리며 어른들을 올려다보는 영약하지만 천진한 어린아이랄까. 나나에게 '도덕'은 의미가 없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중요할 뿐. 모든 걸 자신을 중심으로 생각하기에 다른 이들도 나나에겐 중요치 않다. 이기적이고 잔인한 어린아이. 그리고 그런 나나에게 남자들은 끝없이 매료된다. 사랑이란 이름아래 나나를 부르짖지만 과연 그게 사랑일까. 결국 그 사람들도 가지고 싶은 걸 위해서 모든 걸 던지는 어린아이일 뿐이다. 달착지근한 말과 사랑스런 외모 속에 숨어있는 어린아이들. 내가 이 책의 누군가에게 동정심을 느꼈다면, 그 아이들이었을 것이다. 욕심 속에서 허우적대는 사람들. 이렇게 <나나>를 떠올려 보아도, 다시 읽어볼 마음은 들지 않는다. 아마 나는, 내 어린 시절과 같이 <나나>를, 그 겁없는 아이들을 추억으로만 남겨두고픈 모양이다. 어쩌면 그 편이 더 나을지 모르겠다고 조금 커버린 내가,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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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 비룡소 걸작선 13
미하엘 엔데 지음, 한미희 옮김 / 비룡소 / 199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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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는 철부지, 모모는 무지개...로 시작하는 <모모>라는 노래가 있다. 내 나이 또래가 알기에는 철지난 노래지만, 난 어쩐지 책 <모모>를 볼 때마다 머리 한구석에서 이 노래가 울리곤 한다. 사실 노래 제목이 같을 뿐 <자기 앞의 생>이라는 다른 소설에 기반을 두고 있는 노래지만, 어렸을 적 내가 처음 책 <모모>를 읽었을 때 엄마가 불러주신 노래였기에 내게는 모모의 주제가와도 같다.

어렸을 적 외할머니 댁의 책장은 보물 상자 같았다. 책을 좋아하셨던 엄마가 학창시절 용돈을 모아 사셨다던 누런 종이의 책들이 하얗게 먼지를 뒤집어쓴 채 구석구석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다. 숨을 들이쉬면 낡아가는 종이의 냄새가 피어올랐고 나는 무작정 책을 꺼내 읽고는 했다.

<모모>는 그런 책들 중 하나였다. 얇은 문고판 책 사이에서 유난히 두꺼운 책이 있어 뽑았던 책은 누군가가 정성스레 표지를 싸놓아서 제목을 알 수 없었지만 내용만큼은 따뜻하고 꿈을 꾸는 것 같이 재미있었다.

남의 말을 귀 기울여 들을 줄 아는 꼬마 친구 모모는 어느 날부터인가 다정했던 친구들이 하나둘씩 예전의 여유와 정을 잃어가고 있다는 걸 깨닫고 친구들을 일일이 방문한다. 이런 모모의 행동은 사람들 사이에 몰래 숨어들어 시간을 훔치고 있던 회색 신사들에게는 큰 위협이었다. 모모 때문에 사람들이 다시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모모를 처리하기로 하지만 이것을 미리 알아챈 시간 관리자, 호라 박사는 정확히 반시간 앞의 미래를 볼 수 있는 거북이, 카시오페아를 보내 모모를 돕는다. 호라 박사의 도움과 모모의 용기로 결국 회색 신사들은 사라지고 모두에겐 훔친 시간이 돌아와 그 어느 때보다 여유로운 나날을 맞는다.

<모모>는 재미있는 책이다. 내가 어린 아이였을 때에는 시간 꽃의 아름다움과 신비한 거북이 카시오페아가 너무 좋아서 몇 번을 다시 읽었고, 지금은 이미 회색 신사들에게 넘어가버린 듯 바쁜 하루 속에서 모모에게 위안을 받고 있다. 예쁜 꼬마, 모모. 표지 속의 모모는 그녀의 누더기 옷을 걸치고 있어 통통해 보이지만, 내 상상 속의 모모는 까만 동그란 눈이 반짝거리고 부스스한 검은 고수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은 작고 사랑스런 아이다. 그녀와 이야기를 하고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그 작은 아이가 열심히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선물을 받은 느낌이 들테니.

내가 모모를 동경해서 사랑했다면, 회색신사들은 미워서 가여운 존재였다. 남의 시간을 훔쳐야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들. 인간들의 권태와 죽은 시간이 어우러진 그들은 마지막까지 어리석었다. 하지만 역시 <모모>에서 최고로 어리석은 존재는 회색신사들에게 넘어간 어른들이 아닐까. 깔끔한 계산에 넋이 나가 고개를 끄덕이고 무엇을 위한 것인지도 모르는 채 자신의 시간을 누군가에게 넘겨주는 그 모습은 안쓰럽기도 했고 소름이 끼치기도 했다. 불행히도 나 역시 그런 어리석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만약 내 앞에 회색신사가 나타나 이것저것 시간에 대해 떠든다며 고개를 끄덕이며 이제부터 시간낭비를 하지 않겠노라 맹세할지도 모른다. 바로 그게 늘 날 괴롭히던 고민이었으니까.

문득 놀다가도 내가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고 있어도 괜찮은 걸까, 하고 한기가 들 때가 있다. 다른 사람들은 모두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나 혼자 뒤쳐진 느낌이 들어서. 바로 이럴 때 모모가 나타나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너는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게 아니야, 네 시간을 꽃을 아름답게 지키고 있는 거지, 라고 말해준다면 나는 안도감에 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다시 난 잘하고 있다고 믿으며 나 자신만의 하루를 만들어 가겠지. 현실세계에 모모가 실재하지 않는다 해도 괜찮다. 책만 펴면 모모를 만날 수 있으니까. 꼬마 모모를 만나 다시 한 번 마음에 여유를 찾는다면 바쁜 하루에 책 읽는 시간이 대수일까. 그래서 나는 오늘도 <모모>를 펴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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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자비한 윌러비 가족 생각하는 책이 좋아 2
로이스 로리 지음, 김영선 옮김 / 주니어RHK(주니어랜덤) / 200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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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웃고 시작해보자. ㅋㅋㅋ
리뷰할 때는 웬만해서는 인터넷 언어를 사용하지 않지만, 이 동화책에 관해서는 어쩔 수가 없다. 읽으면서 딱 저렇게 웃었으니까. 또다시 대학 도서관에서 대출한 책 중의 한 권인 '무자비한 윌러비 가족'은... 놀랍게도 동화였다. 불행히도 전공책 두권은 너무 무거웠고 레포트를 위해 산 A4뭉치는 검은 비닐봉투 안에서 무겁게 흔들거렸기 때문에, 난 어쨌거나 읽을 책을 랜덤하게 골라 들었다. 솔직하게 말하자면...'무자비한 윌러비 가족'은 순전히 얇아서 골라든 책이었다. 겉표지가 어쩐지 귀엽다고는 생각했지만(아기자기하게 귀엽다기 보다는... 동화책스러운 귀여움이었다) 설마 진짜 동화일 줄이야.
윌러비 가족은 옛날 이야기의 요소를 하나씩 모아 교묘하게 조합해 놓은 이야기이다. 네 형제, 버려진 아기, 슬픔에 빠진 부자 아저씨, 요리를 잘하는 보모 등등. 식상하다 못해 요새는 잘 쓰이지 않는 설정이지만, 이 유쾌한 이야기는 고르고 고른 식상한 소재로 새롭고 사랑스런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윌러비 집안의 아이들과 부모님은 서로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부모님은 아이들의 이름도 기억하지 못하고 아이들은 부모님께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게다가 서로를 없애려는 계획을 세운다. -여기서 우리는 제목을 이해할 수 있다... 솔직히 부모가 아이에게 관심이 없다는 부분에서는 마틸다가 떠올랐지만... 마틸다는 부모를 없앨 계획은 세우지 않았어! 이러나 저러나 굉장한 집안이다. 하지만 그런 무자비한 부모에 아이들인데도 전혀 밉지 않은 게 이 책의 재미있는 점인 듯 싶다. 부모님들은 너무 무심해서 오히려 유쾌하고, 아이들은 창의적이라 웃음이 나온다.

이 책의 또다른 묘미는 이야기 안에서 언급되는 명작들이다. 친절하게도 책의 뒷쪽에 언급된 작품을 모아서 간추린 내용과 함게 소개하고 있다. 무자비한 윌러비 집안의 아이들은 그런 작품들을 자주 읽었는지 줄줄 꿰고 있다. 아이들이 무자비한 계획을 짠 것과는 무관하게 독서를 좋아하는 착한 아이들인 게 분명하다. (고백하자면 그 중 몇 권은 나도 아직 안 읽어봤다.)

마지막이 동화답고 흐뭇한 해피엔딩이기는 하지만 여전히 윌러비 아이들은 좀 '무자비'했다. (그런 점도 밉지 않지만) 아, 이제 윌러비 형제들도 수많은 고아 명작의 하나가 되는 걸까. 괜히 흐뭇해지는 걸.

우리는 무자비한(영어로 하면 ruthless인데, 이 단어의 의미는 'ruth(슬픔)+less(없다)'로 쪼갤 수 있으며, 소리만 따지면 '슬픔이 없는'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윌러비 가족이니까. (20)

쇠약해져서 죽게 돼. 난 슬픔 때문에 죽은 사람을 적어도 열두 명은 알아. 정말 끔찍한 일이지. (113)

오랜 세월을 통해 저는 알게 되었답니다. 애처롭게 흐느껴 우는 소리를 듣고 무슨 일인지 알아보는 것은 좋은 생각이 아니지만, 깔갈 웃는 소리를 듣고 어찌 된 영문인지 알아보는 것은 늘 좋은 일이라는 것을요. (113)

사실 그게 억만장자들이 사는 법이란다. 내 입으로 말하기는 슬프지만 말이다. '매입자 위험부담'이라는 말이 있잖니.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통해 우리는 돈을 벌지. (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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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 - 라울 따뷔랭
장 자끄 상뻬 지음, 최영선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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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사실 프랑스 문학에는 문외한이다. 내가 프랑스 문화를 접한 건, 고작 꼬마 니꼴라와 장 자끄 상뻬의 책들, 사랑해 파리 라는 영화 뿐이다. 결코 자랑스러운 건 아니지만...아직 기회는 많으니 부끄러워 할 일도 아니겠지. 더군다나 내가 접한 프랑스 문화는 어쨌거나 최고니까.

장 자끄 상뻬를 처음 '만난' 건, 꼬마 니꼴라의 삽화를 통해서였다. 내가 아주 어렸을 무렵, 주말에 놀러간 외할머니댁의 오래된 책장을 뒤적였을 때 나온 먼지쌓인 붉은 책이, '꼬마 니꼴라'였다. 코가 얼굴만한, 그리고 얼굴은 몸만한 쬐그마한 아이들이 어찌나 귀엽던지. 굴러다니는 듯(실제로 그런 적도 많고) 통통 뛰노는 아이들의 이야기도 귀여웠지만 삽화! 그 귀여운 아이들! 그 아이들을 그린 게, 장 자끄 상뻬 라는 다소 길고 발음이 웃긴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삽화'만'이 아니라 책도 썼다는 걸 알게 된 건 내가 더이상 어린아이가 아니게 된 때였다. 저번에 (네이버에) 리뷰한 얼굴 빨개지는 아이에 이어,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까지. 다음번엔 '뉴욕'을 읽고 싶은데 과연 여건이 될까 모르겠다.

장 자끄 상뻬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대충 그은 듯한 펜 선이 친근한 삽화에 눈이 가는, 귀여운 이야기였다. 다른 무엇보다, 상뻬 책의 장점은 삽화이다. 옆은 색감이 선과 어우러진 삽화 덕분에 짧은 분량에도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지금은 손을 놓은지 한참 되었지만 예전 끄적거리던 나로선 시원한 듯 섬세한 그의 펜선이 옛날에도 지금도 마냥 부럽다. 손으로 그려 구불거리는 선은 마치 어린아이의 그림 같기도 해서 아기자기한 이야기에 꼭 맞는다.

이야기 역시 한없이 귀엽다.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 라는 직접적인 제목처럼 자전거 균형을 잡지 못하는 아이(그리고 어른이 되어서까지)의 이야기인데... 뭐랄까, 한 페이지의 대부분을 이룬 삽화에 몇줄 되지 않는 글에 피식피식 웃음을 짓게 된다.

(이제 고작 2권 읽었지만)상뻬의 책에서는 친구관계가 유난히 자주 부각되는 것 같다. '사랑'도 중요하지만 '친구'라는 관계가 그에겐 큰 의미였던 모양이다. 얼굴 빨개지는 아이도 그랬고 이 작품, 자전거를 못 타는 아이 역시 '친구'관계가 나온다. 조금 불완전하지만, 모든 관계가 완벽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평생의 비밀을 감추다 못해 다른 모든 사람들의 '진실'되어버린 것이 지긋지긋하고 불안해진 따뷔랭씨는 그걸 털어놓을 사람을 찾지 못한다. 좋아했던 여자는 농담이라 생각해 화를 냈고 상냥한 아내 역시 남편의 사정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다. 친구라 여긴 사람에게 털어놓으려 했지만 타이밍이 나빠 결국은 그 앞에서 자전거를 탈 일이 생기고 만다. 그리고, 일생일대의 술주정. 하지만 어쨌든 그의 나머지 인생은 평온할 것이다. 상뻬의 마지막 삽화 안의 그가 친구와 마주보며 웃고 있었으니까.

"라울 따뷔랭 자신은 원심력과 만유 인력, 그리고 중력의 법칙과 같은 신비로운 힘들을 다루는 데 지독한 어려움을 겪었다." 25

"왜냐하면, 따뷔랭은 자신의 실패의 비밀을 밝혀 내보려는 희망을 가지고 자전거의 모든 부분(안장에서부터 베어링에 이르기까지)들을 방법론적으로, 줄기차게 연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사람들은 그에게 수리를 맡기기 시작했다."34

"사람들이 웃기는 사람들을 정말 피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호젓한 어스레함이 주는 무게를 갑자기 깨버릴까 두려워하기라도 하듯 사람들은 이 웃기는 사람들로부터 약간의 거리를 둔다. 자신에게도 가슴이 있으며 이 가슴에는 영혼이 살아 있다는 것, 그리고 이 영혼은 때로는 남과 함께 나누고픈 비밀들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내놓고 말하고 싶어지는, 낭만이 과하게 들린 사람들이 자주 당하는 유혹을 따뷔랭도 느끼곤 했다." 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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