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는 누구? - 황금 코안경을 낀 시체를 둘러싼 기묘한 수수께끼 귀족 탐정 피터 윔지 3
도로시 L. 세이어즈 지음, 박현주 옮김 / 시공사 / 2008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오랜만에 도서관에 갔더니 1층부터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도무지 있었는지 없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 엘리베이터 공사를 한다고 한다. 여느 때처럼 신문을 보는 사람들 옆에서 어정어정 엘리베이터가 있었는지에 대해 생각하며 걸어다녔다. 어느 장소건 빨리 집에 가려고 최단시간을 목표로 잡는 나지만 엘리베이터 공사를 한답시고 계단을 막아놔서 어디로 올라가야 하는지, 혹시 올라기는 길이 없어 책을 빌리지 못하는 건지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기 때문에 그냥 도서관 안을 구경하는 척(누가 도서관을 구경하고 다니는지는 제쳐두고) 어정어정. 구석의 계단을 발견하고서 기쁜 맘에 올라갔더니 이건 또... 어째 2층도 내 기억과는 조금 다르다. 음- 10년이 지나지 않아도 강산은 변하는군...

 

-하고 도서관에서 혼자 감상에 빠진 게 벌써 3주 전. 그 때 빌린 책들 중 3권은 연체하고(;;;) 2권은 아직 내 수중에 있는데 도통 손이 안 가서 힘들었다. 슬럼프인가 싶기도 하지만 단순한 취미에 슬럼프라 말하기도 뭐하고... 날씨가 우중충하니 그냥 멍하니 컴퓨터를 하거나 침대에서 꾸물거리게 된다. 방학이라 더 그런 거겠지만.

 

다른 책들을 제쳐두고 일단 그나마 손이 가는 책을 골라들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제목의 '누구?'에 TV에서 종종 등장하는 '뉴규'(정확한 발음이 뭐지?)가 떠올라 피시식 웃으며 골라들은 거였지만...

 

나는 추리소설을 꽤 좋아하고 드라마에서도 수사물이라면 우선 볼 정도로 좋아하는 편이지만 의외로 추리소설 작가에 대해서는 무지한 편이다. 읽은 작가라고는 코난 도일, 모리스 르블랑, 아가사 크리스티 뿐이니 좋아한다고 말하기도 부끄러울 정도다. (그 밖에도 다른 작가의 작품도 읽긴 했지만 딱히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었음) 애초에 고른 작가들이 다작하는 타입(?)이라 여태까지 파고들어도 무난히 지내올 수 있었던 것도 한 몫했지만 슬슬 아가사 크리스티의 전집도 다 모아가고 새로운 작가를 개척할 때가 아닐까...

 

뒷표지를 보아하니 '20세기 최고의 추리소설 작가로 손꼽히는' 이라고 적혀있길래 이번만큼은 겸허히 남들의 평가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조금 설레는 기분으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뭐랄까 20세기 초의 영국 귀족이라니 확실히 새로운 타입이다. 가장 새로웠던 건 이 '피터 윔지 경'이 너무 인간적이라는 거지만.

내가 여태껏 읽었던 탐정들(셜록 홈즈, 마플부인, 포와로, 뤼팽-은 탐정이 아니지만)은 각기 개성이 무척 강하고 활동 지역도 달랐지만, 단 하나 범죄를 파헤치고 추리해 범인을 밝혀내는 데에 있어서는 전혀 거리낌이 없는 '완벽한 탐정'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하지만 이 호기심 많은 귀족 탐정 아저씨는 탐정이라는 면에서는 현저히 약한 면을 보인다. 실력이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 추리해 나가면 자기가 스트레스 받는 너무나 인간적인 면이 피터 윔지 경의 매력이라면 매력인 셈이다. 물론, 그 끊임없고 정신없는 수다도. (...)

 

귀족 탐정 아저씨의 캐릭터도 신선했지만, 시체 역시 뭔가 남달랐다. 전라에 황금 코안경이라니...죽은 사람에겐 미안한 말이지만...시각적 상상력에는 탁월한 선택이었어요...

충격적인 시체 사건과 실종 사건이라는 겉으로 보기엔 전혀 관계없는 두 사건이 기묘하게 얽혀들어가는 내용에 매력있는 탐정을 새로이 알아가는 책이라 다소 예측 가능한 사건이라도 재미는 있다. 무엇보다 이게 피터 윔지 경의 데뷔작이라고 하니 작품 곳곳에 탐정을 소개하는데 주력한 듯한 흔적이 보여 사건보다는 탐정에 주목하게 되는 것도 새로운 재미라고 본다.

 

참고로, 하인과 귀족-이라는 새로운 탐정과 조수 콤비가 굉장히 흥미롭다. 심지어 번터(하인)는 가끔보면 피터 경보다 재치가 넘치니 주목할 필요가 있다! (그저 내가 번터를 좋아하는 것 뿐...)

 

-내게 이게 취미잖나. 사물의 밑바닥까지 파헤치다 보면 너무 재밌으니까 이 일을 하는 거지. 게다가 더 안 좋은 건 내가 이 일을 즐긴다는 거야. 어느 정도까지는. 이게 이론뿐이라면 속속들이 즐길 수 있겠지. 처음은 좋아. 여기 관련된 사람들을 모를 때는 그저 흥미롭고 재미있기만 하네. 하지만 정말로 살아 있는 사람까지 파고 들어가 그 사람을 교수대로 보내야 하거나 못해도 감옥에 보내야 한다면 내가 이런 일에 끼어들 핑계가 없어지거든. 이 일은 내 생업이 아니니까. 그리고 이런 일을 재미있어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드는 거지. 하지만 재미있는 걸 어쩌나. (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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