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프스튜 자살클럽
루이스 페르난두 베리시무 지음, 이은정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2월
평점 :
절판


이 책을 읽은지는 한참인데 이제야 리뷰를 쓰게 되서 좀 스스로 어색하다. 굳이 변명을 해보자면... 그당시 난 이게 과연 미스테리 소설에 넣어야 하는지 그냥 소설 카테고리에 넣어야 하는지 잠깐 생각해 봤지만 생각나는 건 뜬금없는 초콜릿 케이크였다. 자취하는 먹보는 늘상 배고픈 법이다. 결국 집에서 엄마가 해주시는 밥을 먹고서야 슬슬 이 책은 미스테리 소설 카테고리에 넣어야겠다, 고 결심했다.

 

내가 처음 이 책을 집어든 이유는 간단했다. 난 스트레스가 쌓이면 읽는 책의 종류가 99.9%의 확률로 '추리소설'에 편중된다. 이 책은 저번 학기의 불행한 기말고사 전, (공부도 안 하면서) 스트레스에 지친 내가 도서관에서 빌렸던 책이다. 제목에 떡하니 '자살클럽'이라는 자극적인 말이 쓰여 있길래 집었는데 표지의 남자들 얼굴이...저 나이대의 남자들이 옹기종기 캔 속에 모여있는 모습에 '화기애애'한 분위기 보다는 수염이 너무나 인상깊어 '비프스튜'라는 제목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식욕이 떨어져 버렸다.

 

하지만 책 구성 자체는 아기자기한 편이다. 소제목에 2페이지를 할애해서 각 사건의 구별을 뚜렷히 해 줄 뿐 아니라 한 두 문장을 집어넣어 좀 더 기대하게 만든다. 각 사건 뒤에는 요리수첩처럼 요리에 관한 짤막한 글이 백과사전 마냥 실려 있는데 꽤나 흥미롭다.

 

줄거리는 사실 아주 간단하다. 비프스튜 클럽이라고 불리는 남자들 10명의 모임은 한달에 한 번씩 돌아가며 식사를 대접한다. 장장 21년간 지켜져온 클럽은 클럽을 결성했던 라모스가 죽고 난 뒤 엉망진창으로 와해되기 시작하고... 화자인 (뚱뚱한) 다니엘은 그런 클럽이 안타까워 어떻게든 활기를 불어넣고 싶어한다. 우연히 만난 루시디오라는 이름의 엄청난 실력의 요리사가 다음 식사를 준비하게 한다는 아이디어는 기가 막혔다. 만찬의 다음 날 멤버 하나가 죽기 전 까지는. 처음 회원들은 그걸 모르고 다음 달마저 다른 회원 하나를 상납하고야 만다. 슬슬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는 회원들, 하지만 루시디오의 요리를, 그들은 거절 할 수가 없다...

 

끝까지 스토리를 말하자면 다른 분들에게 실례일까; 나름의 작은 반전이랄까, 반전이라는 말로 칭하기엔 너무 소소하지만, 수수께끼는 풀린다. '왜' 루시디오가, 라는 질문이. (아- 뭐랄까 다른 분들도 금방 아시게 될테니까...그래도 네타일까나;)

 

제목이 왜 비프스튜 '자살'클럽일까. 멤버 중 하나인 사무엘은 다니엘이 왜 루시디오가 멤버들을 죽일까, 라고 의문을 표하자 정정한다. 왜 우리가 '자살'하고 있는가, 라고.

 

첫번째 희생자와 두번째 희생자까지는 혹 모른다. 하지만 무언가 이상하다고 느낀 뒤부터 이어지는 죽음의 행렬은, 확실히 자살이라고 불릴만하다. 미식가들이란 다 그런것일까. 아니, 사실 그들은 특별히 '미식가'라기엔 문제가 있는 자들이었는데도 마지막 순간만큼은 둘도 없는 미식가였다. 죽음의 요리를 거부하지 못하는 슬픈 미식가. 독을 내민 것은 루시디오지만 그것을 받아들인 건 멤버들이다.


자살이라는 단어는 또한 그것이 단지 미각, 식욕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걸 뜻한다. 그들은 21년간 클럽을 운영해오면서 점점 시들어가고 있었다. 애당초 건실한 점은 없었던 그들은 세월이 지날수록 초라해지고 인생에 고뇌가 묻어난다. 철없는 듯 아직 서로 싸우고 미워하고 감싸주지만, 인생의 굴곡은 피할 수 없다. 이 사람들은 마지막을 '선택'해야 했다. 아무것도 없는 자신이 이번 차례라는 걸 알고 받아 들일 것인지, 피할 것인지. 이 바보같은 사람들은 '미식가'답게 마지막을 택했다.

 

글쎄, 이 책을 읽을 당시에는 이런 바보들...하고 조금은 안타까워하고 그저 음식 때문에 죽음을 택하는 나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심리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지금은 마음 한 편으로 이 사람들이 요리를 좋아하는 사람들 답게, 클럽 사람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게 되어서 다행이다, 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들이 죽음을 택해서 마음이 가벼워 졌다면 그걸로 됐다, 고.

 

나로서는 그게 과연 어떤 엔딩인지 판단할 수는 없지만, 어리석고 뚱뚱한, 아이같은 남자들이 안쓰럽게 느껴지는 그런 '맛난' 책이었다.

 

-대개 추리소설에서는 최후에 남는 사람이 범인이다. 만일 둘이 살아남으면 하나는 바람잡이고, 다른 한 명이 범인이다. (14)

 

-자기의 죄를 종이에 적어 세상에 알리는 사람은 미치광이 소설가뿐이다. (14)

 

-개성이 각기 다른 우리는 미각을 공유하는 떠들썩한 의식을 통해 친밀함과 특이함을 마음껏 과시했다. 우리는 인생의 쾌락을 음미했다. 우리의 식욕이, 언젠가 우리가 세상을 통해 배우게 될 온갖 쾌락을 대표한다고 믿으며 진정으로 하나가 되었다. 그렇게 세상을 원했지만 아, 결국은 자기 오물을 묻히고 돌아다니는 한낱 실패한 모임으로 끝나버렸다. (23)

 

-어떤 예술도 이처럼 진가를 인정받기 위해 파괴가 필요하고, 숭배와 소비가 동일한 행위라는 철학적 도전을 불러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감각의 인지라는 면에서 어떤 예술도 먹는 행위에 비할 수 없다, 한 가지 예외가 있다면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조각상 엉덩이를 실제 손으로 톡톡 건드려보는 것뿐이다, 라고 말햇다. (27)

 

-어느 순간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몇 초 사이에 화학반응을 일으키면서 복어의 풍미를 높이는 겁니다.(41)

 

-치명적인 생선을 맛보기 위해 목숨까지도 내걸 수 있는 사람이야말로 우리가 유대감을 복원하고, 라모스의 죽음이 몰고 온 비통함과 맞비난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는 데 꼭 필요한 사람이었다. (53)

 

-수년만에 처음으로 친구의 기쁨이 내 기쁨이라는 감정을 느꼈고 우리의 우정은 영원하다, 우리 클럽은 아직도 구원받을 수 있고 나도 구원받을 수 있다, 모든 것이 결국 파멸하는 것은 아니다, 라는 생각을 했다. (63)

 

-지난 몇 년간 어려움이 커지면서 우정도 녹슬었고 사울로는 번번이 믿을 수 없는 친구라는 사실을 확인시켜주었지만 그럼이도 나는 그들을 그리워한다. (101)

 

-게다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이 분명 음식에 대한 미감을 상승시켰다. 루시디오가 복어에 대해 말한 게 사실이라면 죽음에 대한 위협은 틀림없이 혀의 미각세포에 영향을 끼쳤다. 맛에 대한 감각이 예민해진 모두는 행복감에 도취된 상태에서 음식을 즐겼다. (109)

 

-우리가 사형수를 부러워 하는 것은 그가 자기 삶을 언제 어떻게 끝맺을지 알기 때문이야. 그가 우리보다 더 나은 독자이기 때문에 부러워하는 거지. (123)

 

-"왜 우린 스스로 독살당하려는 거지?"(152)

 

-죽음을 앞두면 누구라도 어처구니없는 생각을 하게 되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이든 의미를 갖게 되는 법이다. (174)

 

-자네들도 알다시피 처음부터 이것은 일종의 보복이었어. 루시디오는 처형자였고. 자네들은 모두 그 의식이 자신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했고, 보복이 자신을 겨냥한 거라고 믿었지. 스스로 죄인이라고 생각했어. 죽은 친구들 모두 스스로 죽어 마땅하다고 믿었지. (202)

 

-초콜릿마니아는 마르키즈를 게걸스럽게 먹어치웠다. 그의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205)

 

-내가 기록을 남겨야 하기 때문에 살아남은 거라면 그 괴로운 작업을 해야 하리라. 그것이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이다. (218)

 

-그것은 추리소설을 읽기 전에 마지막 책장을 미리 들춰보는 것과 비슷할 것이다. 그러면 여러분은 좀 더 효과적으로 책을 읽게 될 것이다. (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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