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열에 관한 검은책
에마뉘엘 피에라 외 지음, 권지현 옮김, 김기태 감수 / 알마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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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검열은 매우 오래전부터 존재했고, 표현의 자유가 헌법에 명시된 지금도 어디에나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조선시대에 왕권모독죄와 풍기문란죄에 해당하는 내용이 담긴《설공찬전》이 금서로 지정되는가 하면, 최근에는 국방부 불온서적 리스트와 같은 형태의 검열이 등장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쉽게 인식할 수 있는 검열이 있는가 하면, 인식하기 힘든 부류의 검열도 있습니다.《검열에 관한 검은책》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는 모든 조치의 검열을 짚어봄으로서, 점점 더 많은 제약을 받고 있는 현대사회를 들여다보고자 하고 있습니다.

고대국가 시절부터 검열은 존재해 왔습니다. 고대 로마나 중국 등 어느 국가를 막론하고 미풍양속을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검열이 존재했습니다. 가장 전통적인 검열방식 중 하나인 종교를 통한 검열 또한 매우 효과적이였는데, 교황은 인덱스 리브로룸 프로이비토룸, 금서목록이라 부르는 방식을 통해 교인들의 생각을 검열하고자 했습니다. 종교와 국가의 검열은 르네상스 이전까지 당연하게 받아들여졌으며, 당시엔 '소설'이란 장르 자체가 금기시되기도 했습니다. 토머스 페인의《상식》이 많은 사람들에게 상식으로 받아들여질때 쯤에 와서야 사전검열 등과 같은 형태의 노골적인 검열은 사라졌지만, 검열의 명맥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현대의 검열에서 가장 인상적이고 찾기 쉬운 부류는 외설물과의 투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예술가들과 정부가 벌이는 예술과 음란의 경계에 대한 논쟁은 검열의 역사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에로티시즘 문학의 전설 중 하나인《O 이야기》나《롤리타》와 같은 작품이나, 사드 후작의《소돔 120일》등은 그 사회의 미풍양속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작품들의 일화는 시민들의 의식 변화가 법률 체계의 변화와 맥을 같이한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성에 대한 합의주의적인 접근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금서목록은 점차 해방되고 있습니다.
 

출판에 대한 억압적 검열은 아무 관계도 없는 청소년 보호를 내세워 가해질 때 더욱 눈에 잘 보인다. - 로베르 네츠,《검열의 역사》 

그러나 이런 부류의 검열은 여전히 많은 지지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외설물은 오랜 세월동안 금지되어 왔으며, 그러한 전통을 수호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종교의 이름 하에, 혹은 청소년 보호의 이름 하에 검열을 지지하며 외설물과의 투쟁에 나섭니다. 옹호자들은 사람들이 외설물이나 폭력물을 볼 경우 그것을 모방할 것이라 생각하며, 사회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많은 법학자나 역사학자, 철학자들은 이러한 주장을 비판합니다. 에밀 뒤르켐은 폭력적이거나 음란한 메시지를 미성년자들이 보지 못하게 막는다고 해서 폭력이나 비행, 강간 사건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며, 이런 범죄들은 사회적 변수에 의해 결정될 뿐 검열된 메시지는 이런 사회적 변수에 대해 어떠한 영향력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후쿠시마 아키라 또한 경찰통계 등을 참고하여 거시적으로 관찰하면 오히려 그 반대의 효과, 즉 카타르시스 효과가 더 크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성 정보나 표현으로부터 청소년들을 격리시키는 것이 그들의 건전한 성장에 유익하다고 주장하는 일부 사람들의 신념은 통계로 볼 때 근거가 희박하다는 것입니다.
 

검열 옹호자들의 논리는 부수적 현상을 주요 현상으로 잘못 간주하는 발상에 그 기반을 두고 있다. 그들의 논리는 사회적 현상의 진정한 객관적 원인들을 가려버린다. 텔레비전, 영화, 비디오게임의 음란성과 폭력성에 대해 말하는 것은 사람들의 관심을 부수적인 현상으로 돌리는 행위이며, 개인의 행동에 영향을 미치는 진정한 사회적 변수들인 실업, 가난, 계급의 폭력성, 퇴학, 차별, 복지의 위기 등의 역할을 가려버리는 것이다. - p.240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많은 사람들은 검열의 역사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터넷은 분명 기존의 검열관계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고, 표현의 자유에 있어서 발전을 가져온 것은 사실이지만, 인터넷 또한 기존의 검열체계를 완전히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인터넷이 가상세계인 것은 틀림이 없지만, 인터넷을 제공하는 업체는 분명 현실에 존재하며 이로 인해 많은 검열을 받습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중국의 인터넷검열로, 민주, 인권, 독재, 천안문사건, 달라이라마, 홍지 등의 단어는 90퍼센트 이상 접속이 차단됩니다. 이러한 단어에 비해 포르노, 섹스 등과 같은 단어는 3퍼센트에서 7퍼센트만 접속이 차단되는데, 이 차이를 보면 중국정부가 어떠한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검열은 결국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검열의 최고봉, 자기검열의 형태로 나아갑니다. 자기검열 현상은 수많은 제약과 법체계가 만들어낸 인식하기 어려우면서도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현대인이 많은 권리를 얻게 되면서 그것을 지키기 위해 또다시 수많은 제약을 만들어냈는데, 이를 수호하기 위한 법체계가 현대인의 권리를 억압하는 아이러니한 현상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가장 강력한 제약은 법적 고소라 할수 있는데, 고소는 설령 자신이 100% 잘못이 없더라도 당하면 굉장히 힘든 것이기 때문에 이를 악용할 수 있습니다. 설령 어떤 개인도 정부나 기업에게 쉽사리 덤벼들지 못하게 합니다. 처벌될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언론은 스스로 목소리를 낮추고, 예술가는 침묵합니다. 자기검열 현상은 인터넷에서도 나타나는데, 네티즌들은 쉽게 식당의 음식을 비판하지 못하며, 영화를 평가하기 힘듭니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자기검열은 사법검열과 폭력적 보복을 앞섭니다.
 

실험실 자체에서 행하는 자기검열 현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밝혀준 스캔들도 최근 몇 건 발생했다. 시판된 항우울제가 어린이와 청소년의 자살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한 연구 결과를 고의로 발표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2004년 밝혀진 것이다. - p.380 

검열은 결국 권력의 문제로 귀결됩니다. 권력은 자신의 권위를 공고히 하고 비판을 막기 위해 검열에 의지하거나 비밀로 자신을 감싸왔습니다. 어떠한 권력이 검열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서 검열의 역사는 달라집니다. 역사를 돌이켜보면 인류의 발전은 많은 것들을 검열에서, 금기에서 해방시켜 왔습니다. 왕을 모욕한 자는 더이상 처벌받지 않게 되었고, 무정부주의자의 주장은 삼족을 멸하는 주장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점차 쉽게 개선할 수 있는 검열, 눈에 보이는 검열은 사라진 반면 현대사회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검열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검열입니다. 슬라보예 지젝은 현대사회가 가지고 있는 다윈주의적 태도는 일견 모든 비판을 허용하고, 모든 자유를 발산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 자유엔 어떤 금지가 기입되어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이 검열에서 자유를 추구하고자 하는 과정은 멀고도 험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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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탄생 - 문자라는 기적
노마 히데키 지음, 김진아.김기연.박수진 옮김 / 돌베개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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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우리가 사용되고 있는 문자인 한글은 1446년에 반포된 훈민정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15세기에 갑자기 등장한 한글은 왠만한 테크놀로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충격적이였습니다. 한글은 모든 것이 한자와 한문으로 이해되던 당시의 세계를 근본적으로 뒤바꾼 지식의 혁명이었던 것입니다. 저자 노마 히데키는 문자학 및 언어학 이론을 바탕으로 지식으로서의 한글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한글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는 일은, 하나의 문자체계를 뛰어넘어 언어, 발음, 문자란 무엇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전세계엔 수천개의 언어가 있지만, 문자로 쓰여지고, 또 표기법과 정서법을 갖춘 문자체계가 구축되어 쓰여진 언어로서 실현되는 혜택을 받은 언어는 소수에 지나지 않습니다. 언어는 언어음에 따라 말해진 언어가 먼저 실현되고, 문자에 의해 쓰여진 언어는 나중에 생겨나게 됩니다. 언어(한국어)와 문자(한글)은 다른 평면에 존재합니다. 'apple'을 '애플'로 쓸 수 있는 것처럼, 문자인 한글로 다른 언어를 표현할 수 있습니다. 즉 문자인 한자로 한국어를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훈민정음이 반포되기 전의 한반도는 언어(한국어)와 문자(한자)이 사용되는 곳이었습니다.

문자는 언제나 새로운 표현을 만들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한자는 형태-발음-의미의 시스템을 가지고 있는데, 자기 증식 장치로서의 한자는 발음-의미 와 형태-의미 의 변용으로 증식한 반면, 형태-발음 은 변용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한국과 일본 등 다른 한자언어권에서 형태-발음 의 변화를 시도한 것이 한문훈독 시스템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변용해서 사용한들 그 기반이 한자에 있는 한 한계는 있었습니다. 훈민정음 창제자들은 천년에 걸쳐 사용해온 한자, 형태-발음-의미 시스템에 결별을 고하고자 했습니다. 전혀 새로운 방식으로 문자를 만들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이는 현대적으로 표현하자면 기존의 낡은 플랫폼을 버리고, 더 효율적인 플랫폼을 만드는 일입니다.

저자는 한글의 탄생을 유럽과 중동, 아시아에서 광범위하게 벌어진 문자의 변화과정의 틀에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방에 살던 북방 셈족에서 시작된 알파벳은 서쪽으론 그리스, 라틴문자에 영향을 주었고, 동쪽으론 아랍, 인도, 몽골, 만주문자 등에도 그 유전자가 담겨 있습니다. 문자는 서로 자극하며 동화됩니다. 아랍문자 등이 지닌 자음자모 구조의 유전자는 한글 속에도 숨어 있습니다. 그러나 아랍문자 등과 같은 단음문자들은 자음자모는 견고한 형태를 가지는 반면 모음은 형태가 불분명했습니다. 훈민정음은 천년 이상 변화해 온 알파벳 시스템에서 부족했던 모음자모를 선명한 형태로 충족시킴으로서 가장 진보된 문자가 된 것입니다.

정음학은 문자의 평면에서 각각의 요소에 형태를 준다. 음운론적인 개념은 경우에 따라서는 애매할 수도 있다. 그러나 형태는 그러한 애매함을 일절 용납하지 않는다. 초성+중성+종성, 즉 자음+모음+자음 각각에 뚜렷한 형태를 준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문자를 만든다'는 문자론의 관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15세기 정음학이 도달해 있었던 결정적인 높이이다. 이것은 사실상 현대 언어학의 수준이다. - p.154

지중해권의 문자들이 모음자모와 자음자모를 일직선상에 배열하는 시스템이었고, 아랍문자와 그 동쪽지역의 문자는 3차원적인 평면성을 획득하려 했으나 모음과 자음이 독립성과 단위성이 희박했던 반면, 훈민정음은 정음은 동적이고 입체적 배치 시스템을 지닌 전면적 단음문자 시스템으로 완성되었습니다. 발음적인 측면에서도 15세기의 훈민정음은 언어학이 20세기에 조우한 음소라는 개념에 도달해 있었습니다. 일본어 같은 음절문자는 음절의 경계는 볼 수 있지만, 음절의 내부 구조는 드러나지 않습니다. 또한 로마자처럼 단선적으로 직렬을 이루는 단음문자는, 단음과 그 배열은 알 수 있지만 음절의 경계나 내부 구조는 형태상으로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훈민정음은 음절의 안과 밖, 음절의 내부 구조와 외부 경계를 모두 보여줍니다. 정음은 음의 높낮이까지 형태화하고자 했습니다. 훈민정음을 제외한 다른 언어들은 문자와 발음의 관계가 자의적입니다. 저자는 눈에 보이지 않는 소리를 형상화한다는 사상으로 만들어져 실제로 이만큼의 규모로 널리 사용되고 있는 문자는, 역사상 훈민정음 뿐이라고 말합니다.

훈민정음은 음절을 초성, 중성, 종성 그리고 악센트라는 네 가지 요소로 해석하고 각각에 형태를 부여하는 사분법의 경지에까지 도달하게 된다. 15세기 정음학의 이러한 인식은 15세기 중국 음운학의 이분법을 훨씬 능가한 것은 물론이고 거의 20세기 언어학의 지평에 이른 것이었다. 세종을 비롯한 이들의 사상은 언어음이 의미와 관여되어 있는 한 그것을 극한까지 형태화하려고 한 것이었다. - p.199

한글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은 필연적으로 과거의 패러다임이었던 한자와 투쟁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동설이 등장했을 때처럼 기존의 지식인들에게 한글의 등장은 자신의 존재이유마저 위협하는 대격변이었습니다. 때문에 저자는 정음혁명에 반대하던 한자한문 원리주의자들의 심정을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런 지식 투쟁에서 한글의 구조는 빛을 발합니다. 한글의 형태는 한자와 동일한 크기를 차지함으로써 한자에서 한글로의 전환에 용이하게 되어 있습니다. 또한 정음의 모양은 붓글씨로 쓰여지기를 거부하면서 활자술을 활용하기 좋은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새로운 지식의 전파속도가 남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을 시사합니다. 또한 한자 패러다임에서 이어온 음양오행, 성리학 철학등을 문자에 담음으로써 사회가 새로운 문자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했습니다. 현대적 관점에서 말하면 한글은 변화의 과정에서 꼭 필요한 호환성이 우수했던 것입니다.

저자는 훈민정음의 등장은 산수화의 세계에 컴퓨터 그래픽이 출현한 것과 같은 충격적인 일이라고 말합니다. 결국 조선시대에 최만리 등과 같은 한자한문 원리주의자들이 우려했던 일은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더 쉽고 더 많은 것을 표현할 수 있는 한글 패러다임의 압도적인 위력 앞에 한자는 무릎을 꿇고 말았습니다. 현대에도 한자와 한글을 혼용하자는 논쟁이 계속 일어나고 있지만, 결국 현실적으로 한자는 사람들이 기피할 수밖에 없습니다. 훈민정음은 당시 한자한문을 사용하던 사람들의 세계를 바꿔놓았습니다. 한글은 컴퓨터 시대를 맞이하여 더 화려하고 풍요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유산을 가꾸고 더욱 변화시키는 것은 한글 사용자의 의무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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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크 아탈리, 등대 - 공자에서 아리스토텔레스까지 우리에게 빛이 된 23인
자크 아탈리 지음, 이효숙 옮김 / 청림출판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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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륭한 삶을 살다 간 다른 사람의 이야기들, 전기傳記는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인생을 잘 살아갈 수 있을지 성찰해줄 수 있기 때문에,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인기가 있습니다. 전기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는 때론 한없이 찬란하게 빛나며, 때론 누구보다 고된 상황에 처하고 몰락하기도 합니다. 그들의 삶 전체가 다른 사람들보다 역동적이였던 것은 아니지만, 중요한 순간에 그들은 누구보다 농축된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는 그런 극적인 이야기들을 보고, 듣고, 일부를 자신의 삶에 받아들여 배우고자 합니다. 전기를 통해 영감을 얻고자 하는 것은 유럽의 석학 자크 아탈리도 예외는 아니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저서를 통해 자신에게 깊은 감명을 전해준 사람 중에서 23인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서점에 가보면 많은 사람들의 전기가 출간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크 아탈리는 오늘날 스포츠 스타들이나 텔레비전 진행자, 혹은 성공한 기업인의 전기가 과다하게 출간되며 시시하고 환영적인 유명세에 접근하는 길을 말해주는 안타까운 현실이 이어지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아이돌 가수들이나 김연아, 이건희, 오프라 윈프리 등 유명인들을 다룬 책들은 피상적인 교훈들과 후광효과를 지녔을 뿐입니다. 물론 그들은 분명 빛나는 스타들이지만, 다른 사람들을 밝혀줄 등대가 될수 있느냐는 질문에는 부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크 아탈리는 수많은 사람들 중에서도 철학, 예술, 과학, 경제적 또는 정치적 행동 등을 통해 세계의 변화에 의미를 주면서 역사 속에서 지속적인 흔적을 남기는 사람들의 운명에 주목하고자 합니다.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 일부는 대중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입니다. 공자, 아리스토텔레스, 토머스 아퀴나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토머스 홉스, 찰스 다윈, 토머스 에디슨, 호치민은 자세한 일대기는 모르더라도 이름은 들어봤을 사람들입니다. 이 사람들의 일대기도 흥미롭지만, 더 흥미로운 것은 대중들이 이름을 들어보기 힘든 사람들의 일화들입니다. 아소카, 보이티우스, 힐데가르트, 이븐 루슈드, 마이모니데스, 조르다노 브루노, 카라바조, 스탈 부인, 시몬 볼리바르, 압델카데르, 월트 휘트먼, 슈리마드 라즈찬드라, 발터 라테나우, 마리나 츠베타예바, 함파테 바의 삶은 적어도 우리 주변에서 쉽게 조명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자크 아탈리는 모든 대륙, 모든 시대, 모든 문화의 인물들을 조명함으로써 좀더 보편타당한 가치를 찾고자 합니다.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 그리고 책을 읽는 독자들의 공통점은 살아가면서 자기 정체성에 대한 시련을 겪게 된다는 점입니다. 자기 주변, 혹은 세상 모든 것이 자신이 자신이 되지 못하게 할때, 어떻게 자기 자신이 될 것이냐에 대한 문제입니다. 예를들어 정말로 자신의 삶이 만화인 만화가에게 있어서 자신의 가족, 친구, 사회는 그 정체성을 위협하는 장벽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책의 인물들도 화려했던 순간보다는 이처럼 고난과 고뇌의 순간들이 더 많았습니다. 공자는 공자가 아니라 수많은 제자백가의 일부분이 될 유혹에 직면했고, 조르다노 브루노는 로마 가톨릭 교회를 반대하기 위해선 목숨을 걸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자신을 잊지 않았기에 빛나는 삶을 살수 있었습니다. 그것이 결국 스탈 부인이 고국에서 추방당하거나, 조르다노 브루노처럼 화형에 처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더라도 말입니다.

브루노는 속지 않았다. 그는 자기 시대보다 앞서 있고, 오늘날 인식론, 의미론, 상대성, 발생론, 우주론, 우주에 관한 지식에 직관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로 비싼 대가를 치르게 되리라는 것을 늘 알고 있었다. - p.269 

자크 아탈리는 인물들을 통해 비폭력을 이야기(아소카)하고, 예술을 이야기(카라바조)하고, 사람을 사랑(공자)하고, 배움에 대한 열정을 이야기(아리스토텔레스)하고, 독재정치를 증오(스탈 부인)하고, 식민통치를 비판(압델카데르)하며, 창의성과 민주주의를 예찬(월트 휘트먼)합니다. 그리고 그런 사회를 만들기위해 끊임없이 투쟁했던 그들의 삶을 이야기합니다. 추앙받는 인물상은 시대에 따라, 사회에 따라 변화합니다. 돈이 모든것에 우선하는 사회라면 돈을 잘버는 사람 순으로 존경받을테고, 거친 자연과 싸워야 하는 사회라면 강한 전사가 존경받을 것입니다. 자크 아탈리가 제시하는 인물상이 독자들에게 받아들여지기 위해선 우리가 그런 사람을 원하는 사회, 인정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어야 할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등대를 원하는가? 어떤 사회를 원하는가? 이에 대한 답변으로 아탈리는 23명이 꿈꿔온 가치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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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이란 이름의 편견 - 인간의 외모를 바라보는 방식을 리디자인하다
데버러 L. 로드 지음, 권기대 옮김 / 베가북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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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현대사회에 들어서면서 기회균등의 원칙, 개인의 존엄성 등의 가치가 부각되었고, 그것을 위해 인류는 차별과 싸워 왔습니다. 신분차별, 남녀차별, 빈부차별, 지역차별, 인종차별 등 많은 종류의 차별과 싸워 왔고 어떤 부분은 많은 성과를, 어떤 부분은 작게나마 성과를 올리고 있습니다. 적어도 차별을 크게 줄이진 못한 문제점도 그것이 개선해야 할 부분이라는 공동체적 인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투쟁은 민주주의의 발전에 큰 공헌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하지만 저자는 그러한 투쟁의 역사 속에서 외모차별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물론 외모로 인한 차별대우가 인간의 가장 심각한 편견인 것은 아니라는 것과 외모에 관련되는 노력의 긍정적인 측면, 즉 섹스 어필의 생물학적 역할, 미적인 고려에서 비롯되는 건강상의 혜택 등도 있음은 인정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모를 터무니없이 중요시하느라 치러야 하는 대가가 너무 큰 사회라는 것을 지적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명과 직결된 헬스케어를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가장 급성장하는 의료분야가 성형분야라는 것이 과연 옳은지 묻고 있습니다.

매력적인 외모는 사회적으로 많은 이익을 가져옵니다. 취업도 잘되고, 승진도 유리하고, 보수 또한 많이 받습니다. 심지어 갓난아이들조차도 매력적인 외모를 선호합니다. 매력적이지 못한 외모가 끼치는 영향 또한 막대합니다. 못생겼거나 뚱뚱한 아이들이 경험하는 것은 사춘기부터 정신적 질환으로 이어질 수 있고, 자존감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이러한 것은 성인이 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외모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그 외모를 개선하는 것이 개인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아니라는 것은 역설적입니다. 외모에 대한 투자는 다른 형태의 소비보다 만족을 주기 힘들며 계속적으로 다른 문제점이 도출되는, 쾌락의 쳇바퀴 현상을 보이게 됩니다. 더군다나 매력적인 외모라는 기준은 자연적이 아닌 사회적 특징에 불과하기 때문에 자연적이지 못한 기준을 만족시키기 위해 많은 희생이 뒤따르고 있습니다.

현대인이 외적인 매력에 집착하기 때문에 생긴 부작용의 하나로 경제적 불평등의 악화가 있다. 패션, 메이크업, 헬스클럽, 살빼기 제품, 성형시술은 거저 얻을 수 없다. -《생명의 윤리를 말하다

외모에 대한 기준은 여성에게 더 가혹합니다. 남자의 경우 나이를 먹더라도 숀 코네리의 경우처럼 60이 넘은 나이에도 섹시하다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는 반면, 여자의 경우 캐럴린 하일브런의 말처럼 남자들에겐 투명인간 같은 존재 취급을 받습니다. 남자들은 좋은 외모는 긍정적인 가치가 그대로 반영되는 반면에 여자의 경우 지나치게 매력적인 경우에도 좋지 않는 평가를 받습니다. 소위 블룹시 효과라는, 고위직 여성들의 지적 능력이 모자란다는 인상을 주는 경우도 있고 가슴이 커다라면 멍청하다는 속설까지 있습니다. 이러한 모순적인 부분이 아니더라도 외모와 관련된 시장에서 여성의 비율은 80~90%를 차지합니다. 이러한 외모에 대한 기준은 여성의 시간과 돈을 필요로 하며 건강상에도 큰 부작용을 낳습니다. 전통적으로 이러한 대가는 가끔 끔찍한 경우를 낳았는데, 중국의 전족, 여성 성기 훼손 관행인 할례, 서구사회의 코르셋, 치명적인 유독물질들이였던 메이크업 등이 있습니다. 현대사회에서도 무분별한 불법 성형시술, 비과학적인 화장품들, 스테로이드 등의 약품들, 여성들의 높은 하이힐 등이 대다수의 여성들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런 희생에 가까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가 제시하는 미적 기준을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일련의 실험으로 밝혀진 바에 따르면, 실제 인간들의 수많은 얼굴을 컴퓨터로 합성한 결과 보편적으로 아름답다고 할 수 있는 얼굴이 나왔다. 실제 얼굴 중에서 이 인공 얼굴과 같은 평가를 받은 얼굴은 하나도 없었다.이 연구는 다양한 인종을 대상으로 실시되었음에도 결과가 무척 비슷해서 하나의 보편적 원칙을 추정해볼 수 있었다. 즉 우리가 한 인간, 혹은 전체 인간의 아름다움을 평가할 때 평균에 초점을 맞추고, 평균적인 것을 이상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절대적 미는 결코 존재할 수 없다. -《미의 기원》p.332 

이런 외모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자는 주장에 대해 회의론자들과 반대론자들은 여러 주장들을 합니다. 체중이나 외모 지상주의는 사회적 불의라는 문제가 아니라는 주장, 미적인 구분은 주관적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컨트롤하기 힘들 것이라는 주장, 수많은 법적 소송이 생겨날 것이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손해가 많을 것이라는 주장 등입니다. 또한 기업의 경우 고용자가 외모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주장할 권리를 가진다면, 기업은 그런 권리를 가질수 없느냐는 주장을 제기하기도 했습니다. 비즈니스 위크의 칼럼은 이렇게 말합니다. "미녀들을 채용하고 싶다. 그게 뭐 잘못인가?" 하지만 그런 주장들을 살짝 바꿔보면 조금 다른 느낌으로 다가옴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백인만을 채용한다.' 고 하면 어떨까요? 외모에 대한 차별은 남녀차별, 인종차별, 연령차별, 종교차별, 민족차별 등과 같이 일어나는 포괄적 차별의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그 결과의 폐해를 이해하기 힘듭니다.

이러한 차별금지 법제화에 대해 이런 반론이 있습니다. "그 어떤 법정이라도 매력이라는 것처럼 예측 불허의 대상에 대해 기준을 만들 것으로 기대할 수는 없다. 외모로 인한 차별금지법은 소송 제기 폭발이라는 결과로 이어져 실로 엄청난 비용을 떠안기고 막상 정말로 부당한 차별의 금지법에 대한 지원을 잠식할지도 모른다." "또한 차별대우의 피해자가 법적인 구제책을 활용할 수 있을까? 내가 못생겼기 때문에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 라고 말하는 사람은 별로 많지 않을 것이다." 저자는 그런 우려들이 설득력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오늘날의 법적 독트린과 사회적 관습 안에서 외모로 인한 차별대우를 참고 넘기는 경향을 정당화 할 수도 없다고 말합니다. 플레시 대 퍼거슨 사건처럼 흑인과 백인은 별개지만 동등하다고 한 판결은 그 당시는 치욕스러운 판결로 받아들여졌지만 지금은 가장 훌륭했던 판결 중 하나로 꼽히는 것을 예로 듭니다.

도덕을 어떻게 법제화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에 장애인보호법 등과 같은 법이 실제론 효력이 크지 않을지언정 사회 구성원들의 태도에 막강하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쳤음을 보여줍니다. 성희롱 또한 오랜 세월 이어져온 폐단이였고 성희롱금지법이 시행될 시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이였지만 결과적으로 보면 성희롱에 대한 많은 인식이 변화했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 마음속에 굳어버렸다고 가정하는 편견조차도 사실은 법에 의해 얼마든지 영향을 받을 수 있으며, 그것은 외모로 인한 차별 또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실제로 미국의 몇개 주 혹은 도시에서 외모차별금지법이 시행중이지만 비판론자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전체주의적인 문제가 있지도 않고, 시민들의 반발이 심한것도 아니요, 수많은 소송에 휘말리지도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저자는 결론적으로 이러한 불의를 다 제거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지만, 틀림없이 조금 더 개선할 수는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개인들의 변화, 비즈니스와 미디어의 변화를 가져오기 위해 외모를 단순히 심미적인 이슈가 아닌 법적,정치적인 이슈로도 취급해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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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시가 바뀌면 인재가 보인다 - 21세기 대안입시를 찾아서
로버트 스턴버그 지음, 배성민 옮김 / 시그마북스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시험은 수능, 즉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한번 주민등록증에 빨간줄이 그어지면 평생 낙인이 되어 따라다니듯이, 수능의 결과 역시 평생을 따라다닙니다. 명문대냐 아니냐, 혹은 서울이냐 지방이냐의 구분은 그것이 지닌 비합리성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지능을 결정하고, 품격을 판단하고, 인생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수능은 학생들이 지닌 지능을 평가하고, 더 나아가 성공적인 사회인이 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할 수 있을까요? 저자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로버트 스턴버그는 현재의 표준화 시험은 학생들의 지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을 뿐더러 닫힌 사회를 만들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1900년대에 알프레드 비네는 아이들이 성공적으로 학업을 수행할 수 있는지를 예측하는 도구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에 지능지수, 즉 IQ 측정법을 만들게 됩니다. 사람들은 IQ검사가 실제적 또는 잠재적 지능을 측정할 수 있을것이라고 믿었지만 그것은 과장된 것이였습니다. IQ검사와 같은 측정방식은 보다 정교해져서 미국의 SAT나 GPA, 우리나라로 치면 수능과 내신과 같은 학업적성검사 형태로 발전하게 됩니다. 국가표준시험들은 사회에 뿌리내리면서 기억력이 좋은 사람들이 보상을 받게 됩니다. 교육은 모든 아동들이 같은 것을 같은 방식으로 배우는 형태로 변했습니다. 학생들은 그들이 배운 방식에 얼마나 길들여졌느냐에 따라 보상을 받거나 벌을 받는데, 이런 접근은 학술적으로 재능이 있는 학생들에게는 효과적이나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에게는 그렇게 효과적이지 못합니다.

코에이 사의「삼국지」같은 게임을 보면 인재들의 능력이 수치로 표시됩니다. 제갈량은 지력이 100이기 때문에 최우선 등용 대상이며, 유선은 지력이 10도 안되기 때문에 쓰레기중에 쓰레기 취급을 받습니다. 국어, 영어, 수학, 과탐, 사탐을 전부 1등급을 맞는 학생은 제갈량인 셈이고, 전부 9등급을 맞는 학생은 유선인 셈입니다. 이런 수치화 경향은 표준화 시험에서 잘 나타나며, 예측가능성과 통일성, 객관성이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수능을 통해 5과목의 시험점수가 높은 학생은 먼 미래까지 학업적으로 높이 성취할 수 있다고 믿으며, 훌륭한 시민이 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러나 로버트 스턴버그는 이러한 믿음에 제동을 겁니다. 리처드 헤른슈타인과 찰스 머리의 분석에 따르면 이런 전통적인 지능검사는 실제 변이의 약 10%를 설명한다고 말합니다. 수능이 예측하는 개개인의 지능지수가 그 사람의 삶의 10%정도를 예측한다는 것은 꽤 의미있는 수치지만, 또한 크게 중요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표준화 시험은 창의력과 동기부여, 배우려는 열망, 학업 성공에 중요한 다른 기술과 태도 등을 측정하지 않습니다. 하워드 가드너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지능을 8가지로 분류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교육제도는 기억력과 분석력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창의적, 실용적, 지혜기반의 기술을 무시합니다. 지능 개념은 여러개임에도 불구하고 지식과 기술 지능만 강조되고 다른 지능은 무시되면서 교육 체계는, 그에 기반한 사회 체계는 닫힌 환경을 만들어냅니다.

지식을 쌓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쌓인 지식을 가지고 세상을 좋게 바꾸는 법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 p.260 

현대사회에서 다양성은 중요한 가치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획일화되고 닫힌 국가표준시험은 다양성을 해치고 있습니다. 도시 사람과 시골 사람의 사고방식은 차이가 있고, 남성과 여성의 사고에도 차이가 있으며, 부자와 가난한 자의 사고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이런 차이에서 토론이 잘 발생하고, 지적 발전이 이뤄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적순대로 모여서 대학을 진학하며, 때론 원하지 않는 학과임에도 불구하고 대학 명성을 보고 진학합니다. 통계에 따르면 부모의 재산이 학생의 성적에 미치는 영향은 굉장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를 감안하면 대학교 내에서의 다양성은 더욱 낮아집니다. 다양성이 없다면 대학에서 누리는 지적 삶은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학생들은 시험준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만 삶의 교훈을 배우는 시간은 점점 줄이고 있습니다. 국영수사과라는, 교사의 혹은 사회의 지능관과 일치하는 지능관을 갖도록 사회화된 학생만이 교사에게 자주 보상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 심리학은 외적 보상이 내적 동기를 파괴할 수 있음을 밝혔습니다. 학교는 학생의 수행에 점수를 매기며, 그래서 학생들은 배우면서 느꼈을지 모를 기쁨 때문이 아니라 점수를 잘 받으려고 공부하게 됩니다. 지능의 수치화, 학교의 서열화 같은 환경은 필연적으로 성적의 인플레이션을 불러옵니다. 대학교에서 B는 더이상 괜찮은 성적이 아닙니다. 성적의 인플레이션은 결국 측정체계로서의 신뢰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자기파괴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개인 역량의 범위와 학교에서 배우는 것, 그리고 사회에서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 사이의 연속성이 부족하다. 이러한 불연속성이 두드러진 현재의 탈공업화 시대에 탈맥락적인 도구를 통해 지능을 확인하는 것은 더 이상 유용성이 없다. 이렇게 이어온 교육은 더 이상 개별 문화가 바람직하게 여기는 최종 상태를 보여주지 못한다. 구식의 체제로 교육 받고 선별되었던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지능의 확장된 개념을 반영한 대안적 평가 체제를 개발해야 한다. -《다중지능》p.254 

때문에 로버트 스턴버그는 현재의 입시제도가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학생이 가지고 있는 분석적, 창의적, 실용적, 지혜기반의 기술을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개인이 처한 환경의 복합성은 자극요소와 요구특성에 의해 정의됩니다. 다양한 자극에 노출될수록 결정해야 할 일이 많아지고, 결정을 내리기 위해 고려해야 할 사항도 많아집니다. 더욱 복잡한 환경에서 고도의 인지활동이 보상받게 되며, 인간의 지능은 발달하고, 하나의 환경에서 적용된 인지활동은 다른 상황에서도 활용되고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턴버그는 실제로 터프츠대학교에서 '컬라이더스코프 프로젝트'를 통해 이런 입시제도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컬라이더스코프는 신입생의 학업성공을 SAT와 고등학교 GPA보다 더 정확하게 예측했으며, 신입생의 교과외활동과 리더십, 적극적 시민의식도 예측하는데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수능과 같은 IQ검사를 기반으로 시작한 표준화 시험들은 그 이전의 시험들을 대체하는 효과적인 정책이였습니다. 집안의 재력과 혈연 등이 강조되었던 중세적인 시험들을 몰아내는데 성공했지만, 고안된지 100년이 넘은 지금은 변화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년 수능을 이리 저리 변화시켜보며 더 나은 체제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단순히 문제 난이도의 변화는 수박 겉핥기에 불과합니다. 문제는 수능 그 자체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표준화 시험 모형은 사회경제적 지위와 기억 기반의 분석력, 특정한 집단을 강조했지만, 이제는 창조적 기술과 실용적 기술, 지혜 기반의 기술, 윤리적 행위능력 등을 고려하는 학생평가 제도가 등장해야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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