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시가 바뀌면 인재가 보인다 - 21세기 대안입시를 찾아서
로버트 스턴버그 지음, 배성민 옮김 / 시그마북스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시험은 수능, 즉 대학수학능력시험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닙니다. 한번 주민등록증에 빨간줄이 그어지면 평생 낙인이 되어 따라다니듯이, 수능의 결과 역시 평생을 따라다닙니다. 명문대냐 아니냐, 혹은 서울이냐 지방이냐의 구분은 그것이 지닌 비합리성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지능을 결정하고, 품격을 판단하고, 인생을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수능은 학생들이 지닌 지능을 평가하고, 더 나아가 성공적인 사회인이 될 수 있는 기준을 제시할 수 있을까요? 저자는 아니라고 말합니다. 로버트 스턴버그는 현재의 표준화 시험은 학생들의 지능을 제대로 평가할 수 없을 뿐더러 닫힌 사회를 만들고 있다고 지적합니다.

1900년대에 알프레드 비네는 아이들이 성공적으로 학업을 수행할 수 있는지를 예측하는 도구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에 지능지수, 즉 IQ 측정법을 만들게 됩니다. 사람들은 IQ검사가 실제적 또는 잠재적 지능을 측정할 수 있을것이라고 믿었지만 그것은 과장된 것이였습니다. IQ검사와 같은 측정방식은 보다 정교해져서 미국의 SAT나 GPA, 우리나라로 치면 수능과 내신과 같은 학업적성검사 형태로 발전하게 됩니다. 국가표준시험들은 사회에 뿌리내리면서 기억력이 좋은 사람들이 보상을 받게 됩니다. 교육은 모든 아동들이 같은 것을 같은 방식으로 배우는 형태로 변했습니다. 학생들은 그들이 배운 방식에 얼마나 길들여졌느냐에 따라 보상을 받거나 벌을 받는데, 이런 접근은 학술적으로 재능이 있는 학생들에게는 효과적이나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 학생들에게는 그렇게 효과적이지 못합니다.

코에이 사의「삼국지」같은 게임을 보면 인재들의 능력이 수치로 표시됩니다. 제갈량은 지력이 100이기 때문에 최우선 등용 대상이며, 유선은 지력이 10도 안되기 때문에 쓰레기중에 쓰레기 취급을 받습니다. 국어, 영어, 수학, 과탐, 사탐을 전부 1등급을 맞는 학생은 제갈량인 셈이고, 전부 9등급을 맞는 학생은 유선인 셈입니다. 이런 수치화 경향은 표준화 시험에서 잘 나타나며, 예측가능성과 통일성, 객관성이라는 장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수능을 통해 5과목의 시험점수가 높은 학생은 먼 미래까지 학업적으로 높이 성취할 수 있다고 믿으며, 훌륭한 시민이 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그러나 로버트 스턴버그는 이러한 믿음에 제동을 겁니다. 리처드 헤른슈타인과 찰스 머리의 분석에 따르면 이런 전통적인 지능검사는 실제 변이의 약 10%를 설명한다고 말합니다. 수능이 예측하는 개개인의 지능지수가 그 사람의 삶의 10%정도를 예측한다는 것은 꽤 의미있는 수치지만, 또한 크게 중요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말해줍니다. 표준화 시험은 창의력과 동기부여, 배우려는 열망, 학업 성공에 중요한 다른 기술과 태도 등을 측정하지 않습니다. 하워드 가드너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필요한 지능을 8가지로 분류합니다. 그러나 현재의 교육제도는 기억력과 분석력을 지나치게 강조한 나머지 창의적, 실용적, 지혜기반의 기술을 무시합니다. 지능 개념은 여러개임에도 불구하고 지식과 기술 지능만 강조되고 다른 지능은 무시되면서 교육 체계는, 그에 기반한 사회 체계는 닫힌 환경을 만들어냅니다.

지식을 쌓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쌓인 지식을 가지고 세상을 좋게 바꾸는 법을 배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 - p.260 

현대사회에서 다양성은 중요한 가치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획일화되고 닫힌 국가표준시험은 다양성을 해치고 있습니다. 도시 사람과 시골 사람의 사고방식은 차이가 있고, 남성과 여성의 사고에도 차이가 있으며, 부자와 가난한 자의 사고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이런 차이에서 토론이 잘 발생하고, 지적 발전이 이뤄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적순대로 모여서 대학을 진학하며, 때론 원하지 않는 학과임에도 불구하고 대학 명성을 보고 진학합니다. 통계에 따르면 부모의 재산이 학생의 성적에 미치는 영향은 굉장히 크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이를 감안하면 대학교 내에서의 다양성은 더욱 낮아집니다. 다양성이 없다면 대학에서 누리는 지적 삶은 좁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학생들은 시험준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만 삶의 교훈을 배우는 시간은 점점 줄이고 있습니다. 국영수사과라는, 교사의 혹은 사회의 지능관과 일치하는 지능관을 갖도록 사회화된 학생만이 교사에게 자주 보상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현대 심리학은 외적 보상이 내적 동기를 파괴할 수 있음을 밝혔습니다. 학교는 학생의 수행에 점수를 매기며, 그래서 학생들은 배우면서 느꼈을지 모를 기쁨 때문이 아니라 점수를 잘 받으려고 공부하게 됩니다. 지능의 수치화, 학교의 서열화 같은 환경은 필연적으로 성적의 인플레이션을 불러옵니다. 대학교에서 B는 더이상 괜찮은 성적이 아닙니다. 성적의 인플레이션은 결국 측정체계로서의 신뢰성을 잃어버리게 되는 자기파괴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개인 역량의 범위와 학교에서 배우는 것, 그리고 사회에서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 사이의 연속성이 부족하다. 이러한 불연속성이 두드러진 현재의 탈공업화 시대에 탈맥락적인 도구를 통해 지능을 확인하는 것은 더 이상 유용성이 없다. 이렇게 이어온 교육은 더 이상 개별 문화가 바람직하게 여기는 최종 상태를 보여주지 못한다. 구식의 체제로 교육 받고 선별되었던 많은 사람들이 더 이상 제 역할을 수행할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지능의 확장된 개념을 반영한 대안적 평가 체제를 개발해야 한다. -《다중지능》p.254 

때문에 로버트 스턴버그는 현재의 입시제도가 더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학생이 가지고 있는 분석적, 창의적, 실용적, 지혜기반의 기술을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개개인이 처한 환경의 복합성은 자극요소와 요구특성에 의해 정의됩니다. 다양한 자극에 노출될수록 결정해야 할 일이 많아지고, 결정을 내리기 위해 고려해야 할 사항도 많아집니다. 더욱 복잡한 환경에서 고도의 인지활동이 보상받게 되며, 인간의 지능은 발달하고, 하나의 환경에서 적용된 인지활동은 다른 상황에서도 활용되고 적용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스턴버그는 실제로 터프츠대학교에서 '컬라이더스코프 프로젝트'를 통해 이런 입시제도의 대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컬라이더스코프는 신입생의 학업성공을 SAT와 고등학교 GPA보다 더 정확하게 예측했으며, 신입생의 교과외활동과 리더십, 적극적 시민의식도 예측하는데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수능과 같은 IQ검사를 기반으로 시작한 표준화 시험들은 그 이전의 시험들을 대체하는 효과적인 정책이였습니다. 집안의 재력과 혈연 등이 강조되었던 중세적인 시험들을 몰아내는데 성공했지만, 고안된지 100년이 넘은 지금은 변화의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년 수능을 이리 저리 변화시켜보며 더 나은 체제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지만, 단순히 문제 난이도의 변화는 수박 겉핥기에 불과합니다. 문제는 수능 그 자체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표준화 시험 모형은 사회경제적 지위와 기억 기반의 분석력, 특정한 집단을 강조했지만, 이제는 창조적 기술과 실용적 기술, 지혜 기반의 기술, 윤리적 행위능력 등을 고려하는 학생평가 제도가 등장해야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