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류독감 - 전염병의 사회적 생산
마이크 데이비스 지음, 정병선 옮김 / 돌베개 / 2008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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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봄마다 우리나라를 찾아오는 불청객은 황사만이 아닙니다. 조류독감 또한 매년 우리나라에 찾아와 많은 피해를 줍니다. 2008년엔 그 위세가 매우 강해 가금류 1000만 마리를 살처분했고 6300억원의 경제적 손실을 입었습니다. 하지만 조류독감이 무서운 것은 단순히 경제적 이유만은 아닙니다. 조류독감은 사람을 죽이는 질병입니다. 뉴스를 보면 매년 전세계에서 조류독감으로 사망자가 발생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조류독감을 발생시키는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갈수록 진화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인플루엔자가 지구에서 가장 두려운 생물학적 위험 가운데 하나가 되었으며, 아이러니하게도 인플루엔자를 이렇게 강하게 만든 것이 우리 인류라고 지적합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의 역사는 굉장히 오래되었습니다. 하지만 그 막강한 영향력의 기록은 1918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H1N1의 대유행은 전세계적으로 4000만명에서 최대 1억명까지 사망자를 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후 1957년의 H2N2가 유행했고, 1968년엔 H3N2가 유행했습니다. 그리고 현재 흔히 조류독감이라 불리우는 H5N1은 1997년에 홍콩에서 발병했습니다. 2003년엔 H7N7이 네덜란드에서 발병했고, 2004년엔 캐나다에서 H7N3이 발병했습니다. 이런 기록에서 알 수 있는것은 인플루엔자가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과학자들은 연구를 통해 HA 15종과 NA 9종을 확인했습니다. 때문에 이론적으로 인플루엔자는 총 135개의 아형이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우려해야 할 점은 인플루엔자가 미세한 변화로도 사람에게 감염될 수 있도록 변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미 H5N1에서 조류와 사람 간의 종 도약에 성공했고, 훗날 등장할 변종은 사람과 사람 간의 감염체계를 가진 바이러스가 될 수도 있습니다.

인플루엔자 바이러스가 사람간의 감염이 가능해진다면, 에이즈보다 위력적인 대유행병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인플루엔자 바이러스는 우리나라에 특히나 위협적인데, 매년 3~4월과 10~11월에 조류독감을 지닌 철새가 우리나라를 지나는 데다 조류독감의 주요 진원지가 바로 우리 옆에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태국은 가금류를 대규모 기업식으로 생산하는 축산업 혁명을 일으키면서 전세계에 가금류를 공급하는 생산지가 됬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조류독감이 발병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질병생태학자들은 집약적인 산업적 공장 주위로 소규모 생산자들이 고도로 밀집해 있는 현실이 매우 위험한 상황을 야기한다고 말합니다. 야외에서 사육되는 닭들은 도화선이며, 공장형 시설에 밀집해 있는 닭들은 충전된 폭약이라는 것입니다.

인플루엔자가 대규모로 유행할 수 있는 환경적 조건은 비단 가금류가 밀집된 지역에서 대규모로 키워지는 것 뿐만이 아닙니다. 우리 인간 또한 가금류 못지않게 밀집된 지역에서 살아갑니다. 바로 도시 지역에 사는 가난한 사람들, 3세계 국가의 도시화와 대규모 슬럼의 성장입니다. 양쯔강 어귀의 지역은 최대 2700만명을, 인도의 봄베이는 3300만명을 수용할 계획입니다. 브라질의 리우데자네이루와 상파울루 광역 메트로폴리스는 3700만명에 이르고, 멕시코시티는 5000만명이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이런 슬럼의 환경은 대단히 열악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개미굴 같은 빽빽한 슬럼에 몰아넣고 부자들이 정원과 공터를 마음껏 이용하는 것은 수많은 도시의 공통된 특징입니다. 슬럼은 수많은 자연재해와 비위생적인 환경, 공해 등에 시달립니다. 바이러스의 입장에선 이보다 좋은 환경이 없습니다. 이런 현상은 슬럼인구수로 따지면 국가순위 12위인 우리나라 또한 남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문제는 이러한 생물학적 위험이 증가하고 있지만, 그에 대항하는 백신 체계는 후퇴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무엇보다 제약 산업계가 민간화되면서 이윤을 우선시해야 하므로 돈이 되지 않는 백신 개발을 기피하고, 충분한 항바이러스제 비축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백신은 전염병이 유행하기 적어도 한 달 전에 대량 생산되어야 하지만, 시장 수요는 전염병이 한창일 때 발생합니다. 전염병이 절정일 때 백신을 대량 생산하기 시작하면 전염병이 지나가 대규모 재고가 쌓이게 됩니다. 때문에 기업 입장에선 백신을 언제나 적게 생산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인플루엔자의 진화 속도 때문에 백신을 만든다고 해도 짧은 기간에만 효과를 볼 수밖에 없어서 경제적으로 큰 이윤을 남기기 힘듭니다. 가난한 나라는 물론 일부 부국마저도 보건 의료체계가 제 구실을 못하거나 와해되면서 새롭게 출현하는 질병에 점차 취약해지고 있습니다.

인플루엔자 전문가들은 1957년과 1968년의 경험에서 다른 교훈을 이끌어냈다. 그들은 이윤에 의해 추동되는 백신 시장의 무능과 불필요한 인명 손실에 경악했다. 제약회사들은 백신을 너무 적게 생산했고, 그 백신도 대부분 노년층과 임산부, 천식 환자들처럼 인플루엔자에 매우 취약한 집단에 제공되지 못했다. 백신이 필요했던 인구집단의 20%에도 미치지 못했다. 백신의 상당수는 독감으로 인한 겨울철 손실을 줄이기 위해 젊고 건강한 직원들에게 독감 백신을 대량으로 투여한 기업들에 의해 소비되었다. - p.50 

결국 조류독감은 지구적 규모의 농업 자본주의가 만들어낸 생태적 조건에 적응하면서 점차 강해졌고, 빈부격차가 만들어낸 슬럼의 가난한 사람들을 양식으로 전세계적인 규모의 대유행병의 가능성을 지닌 위험입니다. 인플루엔자는 가난한 국가에서 질병이 퍼지면 그 여파는 전 세계 모든 국가로 퍼지며, 가난한 사람들에게서 질병이 퍼지면 국가의 모든 사람들이 질병의 영향권에 들어옵니다. 지금까지의 인플루엔자의 해법은 감염체의 격리와 살처분이였습니다. 하지만 이 해법은 인플루엔자가 사람에게 감염되기 시작하면 사용할 수 없습니다. 때문에 저자는 백신 생산을 사기업 부문에서 공적 영역으로 이전하고, 기업형 축산업의 구조를 개선하며, 전세계적인 빈곤과 빈부격차를 개선해 대규모 슬럼과 같은 환경을 없애야 한다고 말합니다. 이는 어찌보면 물질에 대한 우리 인간의 욕심과 싸워야 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 인플루엔자와 사람의 욕심 중 어느것이 더 무서운 것인지는 미래에 인플루엔자가 역사에 어떻게 기록될지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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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의 충격 - 책은 어떻게 붕괴하고 어떻게 부활할 것인가?
사사키 도시나오 지음, 한석주 옮김 / 커뮤니케이션북스 / 201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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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처음으로 전자로 된 텍스트를 본 것은 PC 통신 서비스 시절에 하이텔에서 이영도의《드래곤 라자》를 통해서였으니, 예상외로 꽤 오래 전부터 전자책의 가능성이 대두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당시 환경은 전자책이라는 것을 만들기엔 매력적이지 못했습니다. 종이책에서 얻을 수 있었던 콘텐츠를 전자기기를 통해 얻는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금전적으로도, 시간적으로도 손해였습니다. 결국 이영도의《드래곤 라자》를 끝까지 읽었던 것은 종이책을 통해서였습니다. 하지만 종이책이 모든 면에서 우위에 있었던 시절은 지났습니다. 저자는 전자책 시스템이 소비자들이 원하는 책을 종이책보다 싸고 편하고 빠르게 읽을 수 있게 해줄 수 있는 시기가 왔다고 말합니다.

전자책의 등장을 말함에 앞서, 전자책보다 한발 앞서 변화한 콘텐츠가 있습니다. 바로 음악입니다. 과거의 음악은 LD로, 카세트 테이프로, CD로 듣는 것이였습니다. 하지만 인터넷이 보급되면서 데뷔하지 않은 아마추어 밴드들의 곡들을 인터넷에서 제공했고, 더 나아가 냅스터로 대표되는 불법 다운로드 방식이 등장했습니다. 이에 대항해 대형 음반사들은 자신들이 중심이 되어 음악전송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결과부터 말하면 음반사들의 합법적인 다운로드 서비스는 대실패였습니다. 소비자들이 단순히 공짜를 좋아해서 그런 것은 아니였습니다. 음반사끼리 호환이 되지 않았고, 다운로드한 곡은 30일이 지나면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후 등장한 애플의 아이튠스 뮤직스토어는 음악 시장을 바꿔버렸습니다.

애플은 무료 파일 공유서비스들이 여전히 존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유료 음악전송 비즈니스를 성공적으로 도입했습니다. 애플의 성공은 제 가지로 요약될 수 있는데, 다양한 콘텐츠를 싸고 풍부하게 갖추고 있을 것, 사용자에게 편리할 것, 앰비언트 환경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애플은 한곡당 99센트라는 저렴한 가격과, 구입한 즉시 유저의 기기에 들어가는 간편한 시스템, 한번 구입한 곡은 특별한 제한 없이 다른 기기로 옮기거나 시디로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함으로서 인터넷 음악의 맹주가 되었습니다. 애플의 사례는 플랫폼을 장악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그리고 이런 음악의 변화과정은 전자책에서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전자책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한 필수조건은 플랫폼을 장악하는 것입니다.

전자책 시장에서 플랫폼을 장악하기 위한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과거 출판사들도 다양한 형태로 전자책 플랫폼을 만들려고 노력했지만, 전부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실패 원인은 음반사들과 동일했습니다. 소비자들에게 어필할만한 환경을 만들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하드웨어적으로도 시기상조였습니다. 전자책에서 가장 먼저 두각을 나타낸 건 아마존이였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온라인 서점인 아마존은 이미 다양한 콘텐츠를 풍부하게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낮은 가격과 앰비언트 환경을 갖춰야 했습니다. 아마존은 초기에 25달러의 책을 10달러에 파는 등 손해를 감수하면서까지 낮은 가격을 유지했고 킨들이라는 전자책 리더를 통해 훌륭한 환경을 제공했기 때문에 전자책 시장의 대부분을 점유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마존에 대항해 애플이 전자책 시장에 진출했고, 구글도 플랫폼 경쟁에 뛰어들었습니다.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의 변화는 단순히 인쇄에서 전자로의 변환, 혹은 기존 출판사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플랫폼 회사들의 영향력이 커지는 것 이상의 변화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20세기 후반의 대량생산과 대량소비, 베스트셀러로 대표되는 기호소비의 시대가 지났음을 의미하며, 이러한 환경을 지탱해주던 유통망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또한 새로운 출판문화인 자가출판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폰이 수많은 종류의 어플리케이션과 상부상조하면서 성장한 것처럼, 전자책 또한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도 누구나 자신의 책을 내고 판매할 수 있게 함으로써 서로의 콘텐츠를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 저자는 결과적으로 전자책은 책의 의미를 변화시킬 것이라고 말합니다. 전자책은 커다란 공간의 일부로서 기능할 것이며, 기존의 독서라는 개념을 넘어선 새로운 구조로 바뀔 것이라는 것입니다.

전자책이라는 새로운 생태계는 결국 독자와 능력 있는 필자를 위한 가장 좋은 독서공간을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하지만 전자책의 갈길은 아직도 멉니다.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는 더욱 그렇습니다. 현재 우리나라의 전자책을 살펴보면 다양한 콘텐츠도 없고, 가격도 종이책과 크게 차이가 없으며, 플랫폼이 너무 다양해서 호환성이 떨어집니다. 하드웨어적인 불편함도, 소프트웨어적인 불편함도 존재합니다. 하지만 전자책이 더 나은 생태계를 소비자들에게 보여준다면,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전자책으로 향할 것입니다. 과거에 메일은 순수한 첫사랑을 고백하거나 가족간에 안부를 묻는 종이로 된 편지를 의미했습니다. 이메일이 등장했을때만 해도 사람들은 메일과 이메일을 구분지어 생각하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메일 하면 대부분 이메일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언젠가는 책이라고 말하면, 종이책보다 전자책을 먼저 떠올리게 될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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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 여행, 당신의 휴가는 정의로운가 아주 특별한 상식 NN 15
패멀라 노위카 지음, 양진비 옮김 / 이후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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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이란 단어는 언제나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합니다. 매일 치열하게 일해야 하는 삶 속에서 얻을 수 있는 아주 작은 순간의 휴가 그리고 여행은, 노동이 가져다주는 최후의 안식처로 인식되기도 합니다. 때론 여행은 청소년들이 성인이 되는 과정에서 좀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는 아주 좋은 방법으로 권고되기도 합니다. 결혼식을 하면 으레 딸려오는 신혼여행은, 천국같은 휴양지에서 느긋하게 쉴 수 있는 인생 최고의 순간입니다. 세계적으로 관광산업의 성장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2004년엔 전세계 GDP의 10퍼센트에 달하는 금액을 관광에 사용했습니다. 저자는 여행객들이 무심코 지나치기 쉬운 사실, 혹은 은연중에 인식하고 있으면서도 애써 외면하는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행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18세기 계몽주의 사상가들의 영향으로 부유한 계층이 여행과 관광을 유익한 것으로 인식했습니다. 산업혁명이 시작되면서 특정 지역이 휴양지라는 개념이 정착되었고, 탐험가들의 이야기는 중산계급에게 여행에 관심을 가지게 했습니다. 그후 토머스 쿡이 철도를 통한 최초의 패키지여행을 도입하면서 여행이 대중화되기 시작합니다. 즉 여행은 서양의 생활양식으로서 소비주의가 부상한 것이 한몫을 했습니다. 개인의 만족감을 채우는 것이 바람직한 생활 방식으로 여겨지는 풍조 또한 대중 관광에 기여했습니다. 현대에 들어서 여행은 여행 그 이상의 이미지를 가지게 됬습니다. 여행은 지속 가능한 개발이며, 세계 평화에 기여하며, 전세계에 만연한 빈곤을 완화하는데 도움을 주는 방법이라는 이미지를 얻었습니다. 관광산업이 말하는 바에 따르면, 단지 휴가를 가는 것만으로 평화의 사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해외여행의 대부분은 지속 가능한 개발에 기여하지도, 평화에 기여하지도, 빈곤을 완하시키는데에도 전혀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자외선 차단제를 바르고 일광욕 의자에 누운 관광객은 자신도 모르게 신자유주의 세계화의 보병이 됩니다. 많은 휴가객들은 농사를 짓거나 공장에서 일하는 것보다는 관광산업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더 부유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여행객들이 관광지에서 쓰고 가는 돈이 많기 때문에, 쓴 만큼 관광지의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관광에서 사용되는 돈은 대부분 관광지에 남아있지 않습니다. 관광지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돈을 벌기는 커녕 대부분 관광지로 개발되기 전과 다름없는 삶을 살아갑니다. 여행업자들이 수익을 남기며 상품을 팔 수 있는 것은, 가난하고 취약한 남반구 사람들을 착취하는 노동 관행 덕분이기도 합니다.

관광지가 얻는 수입은 세금, 이자, 그리고 임금이 지역 바깥으로 지불되고 수입품 구매에 돈을 쓴 뒤에도 남아 있는 관광 경비의 일부일 뿐이다. 이렇게 제해진 금액을 '누출'이라고 부른다. 모든 것을 포함하는 대부분의 패키지 여행에서 여행 경비의 대부분은 국제 기업에 돌아가지, 지역의 사업체나 노동자들에게 가지 않는다. 선진국의 관광객이 휴가 중 여행에서 쓴 100달러 중 약 5달러만이 실제로 관광지인 해당 개발도상국 경제에 머문다. - 유엔환경계획 

관광산업은 대표적인 일자리 창출법의 하나로 제시되곤 합니다. 하지만 관광지로 개발되는 것이 현지인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것과는 거리가 멉니다. 관광지 개발은 새로운 고용 기회가 열리게 하지만, 그 혜택은 대부분 지역민보다는 비지역민이 가져갑니다. 또한 천연자원에 영향을 미쳐 지역민들의 생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며, 기존 지역 경제와 고립시킵니다. 관광지로 개발되면 기존의 일자리와 생활은 사라지고, 모든 것이 관광객을 기준으로 만들어집니다. 생존의 기회는 오직 관광객에게 달린 것입니다. 하지만 관광지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관광지가 노쇠되면 가격 경쟁력을 잃고 버려지게 됩니다. 과거 신혼여행지로 각광받던 장소가 계속 변화하는 것만 보더라도 이러한 사실을 잘 알수 있습니다.

관광은 문화를 진기하고 독특한 지역성을 지닌 박물관 유물처럼 보이도록 만드는 경향이 있다. 역설적이게도, 관광은 진정한 현지 문화를 추구하지만, 관광산업은 진정성의 환영을 만들어 냄으로써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가상의 경험을 강화한다. 바로 관광 자체가 진짜 문화를 경험할 기회를 잃게 만드는 것이다. - p.129 

현재의 여행구조의 대부분은 우리가 여행이라는 이미지에 가진, 여행하며 쓴 돈이 여행지에도 이익을 가져다 주고 그들의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이라는 희망과 정 반대의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부유한 나라의 노동자들의 꿈을 먹고 개발 도상국들의 관광지 현지인들을 착취해 가며 배를 불리는 것이 대부분 여행 산업의 현실인 것입니다. 하지만 여행, 관광산업이 수익보다 지역공동체와 진정한 환경적 책임을 우선시하면서 적절하게 관리된다면 가난한 국가에 사는 일부 사람들의 삶을 개선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것 또한 분명합니다. 여행객들은 문제의 일부가 될 수도, 해결책의 일부가 될 수도 있습니다. 지역민을 동등한 사람으로 대하고, 신비로운 자연과 독창적인 문화를 발견하는 것이 진정한 여행일 것입니다. 그러한 진정한 여행자가 되는 것은 공정한 여행자, 착한 여행자가 되는 길과도 닿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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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러운 전쟁 - 안나 폴릿콥스카야, 희망이 살해된 땅 체첸에 서다
안나 폴릿콥스카야 지음, 주형일 옮김 / 이후 / 201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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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르트는 우리 중 누구라도 히틀러가 될 수 있음을, 파시즘에 물들 수 있음을 경고한 바 있습니다. 그의 지적대로 세계 곳곳에서 파시즘의 불길은 여전히 타오르고 있습니다. 그 중 한곳이 바로 체첸입니다. 난민 수용소 위로 러시아군의 미사일이 날아다니고, 부모가 보는 앞에서 자식이 살해당합니다. 강간과 방화, 죽음이 삶의 바로 곁에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의 희생자였던 유대인들은 팔레스타인에서 아랍인을 학살하는 가해자가 되었고, 나치 독일의 파시즘과 맞서 싸웠던 러시아군은 스스로 파시즘의 공모자가 되어 체첸인들에게 증오를 받고 있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입니다. 우리는 세계대전이란 대학살을 겪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것도 배우지 못한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곁엔 언제나 용감한 언론인들의 목소리가 있습니다. 안나 폴릿콥스카야는 체첸의 생지옥을 독자들에게 여실히 전달해 줌으로서, 평화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상기시킵니다.

체첸은 소련 붕괴를 기회로 14개 연방 공화국들이 분리될 때, 독립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러시아는 체첸의 사실상 독립을 결코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전쟁이 일어났고, 체첸에서 민간인 70만명이 희생됬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1차 전쟁에서 러시아군은 패배했고, 하사뷰르트 협정을 맺게 됩니다. 이 협정으로 러시아군은 체첸영토에서 퇴각하고 체첸의 아슬란 사령관이 민주적인 방법으로 대통령이 됩니다. 하지만 1999년 2차 체첸 전쟁이 발발합니다. 이 전쟁으로 푸틴은 일약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르며 훗날 대통령이 되는데 결정적 발판을 마련하게 됩니다. 푸틴이 주도한 체첸진공작전 덕분에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는 전부 불바다가 되었으며, 수없이 많은 민간인들이 살해당했고, 수십만 명이 난민이 되었습니다.

그는 연방안전국(FSB)이 캅카스에서 군인들의 사기를 진작시키기 위해 매일 밤 비디오를 보여 줬다고 말한다. "그 비디오에서는 무엇이 나왔나요?" "죽이는 법과 강간하는 법이요." - p.100 

체첸전쟁은 장기화되서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습니다. 난민들은 아직 고향에 돌아가지 못했으며, 러시아 전 지역에서 체첸 출신이거나 체첸인과 관련이 있는 사람들은 강제로 추방당합니다. 체첸은 러시아에 속해 있지만, 체첸인은 러시아에 속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체첸인들은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영토에 숨어 살았던 유대인들처럼, 러시아 경찰의 눈을 피해 살아갑니다. 체첸인이라는 것만으로 범죄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범죄 국가라는 개념은 과거 나치 독일에서 유대인들과 집시들이 받았던 취급과 동일합니다. 나치 독일이 유대인들과 집시들에게 학살 수용소를 제공해 주었듯이, 러시아도 마찬가지로 체첸인들을 위해 러시아군이 방화와 강간, 살인을 일삼는 체첸 땅을 제공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우리 아이들과 손자들 앞에서 우리가 이 파시즘의 공모자였고 파시즘을 막기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시인해야 할 것이다. - p.22 

저자 안나 폴릿콥스카야는 분쟁지역을 돌아다니며 체첸인들의 삶을 기록했고, 러시아 신문『노바야 가제타』에 푸틴의 안보 정책과 체첸 분쟁에 관한 비판적 기사를 썼습니다. 안나는 글을 통해 체첸분쟁이 민간인을 얼마나 잔인하게 학살하고 고통을 줬는지를 낱낱이 밝히고 있습니다. 안나의 이런 행보에 러시아 당국이 가만히 있었을리 없습니다. 안나는 군에 억류되기도 하고, 폭행과 강간을 당할뻔 했으며, 독극물 테러를 받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안나의 집필 의지는 꺾이지 않았고, 결국 2006년에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네발의 총을 맞고 살해됬습니다. 안나의 죽음은 그녀가 체첸 민중의 목소리였으며, 평화의 수호자였고, 필립 짐바르도가 말하는 '평범한 영웅'이였음을 말해 줍니다. 4개의 총알은 그녀를 결국 침묵시키는데 성공했지만, 그녀의 메시지는 먼 미래까지 계속 이어질 교훈으로 남을 것입니다. 평화란 너무나 소중하고 간절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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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장사 - 대한민국 의료 상업화 보고서
김기태 지음 / 씨네21북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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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흑인이 노골적으로 차별받던 시절에, 한권의 책이 발간됩니다. 존 하워드 그리핀이 쓴《블랙 라이크 미》는 대중들에게 가장 간단하면서도 명확하게 흑인차별의 실체를 보여 줬습니다. 백인이였던 그리핀은 '가짜 흑인'으로 분장함으로써 흑인차별이 인종차별주의자들의 주장처럼 흑인이란 종이 열등해서 생겨난 것이 아님을 말해 줬습니다. 상업화되어가는 대한민국 의료계의 문제점을 지적하는《병원장사》도《블랙 라이크 미》와 같은 접근방식을 사용합니다. 저자 김기태 스스로 '가짜 환자'가 되어 의사들의 반응을 살펴본 것입니다. 동일한 증상에 대한 의사들의 판단에 차이가 있을까? 그런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무엇인가? 결과는 명확합니다. 의료계는 이미 많이 상업화되어 있었습니다.

가짜 환자가 먼저 찾아간 곳은 척추병원이였습니다. 환자의 증상에 민간병원과 공공병원은 과연 같은 판단을 내렸을까요? 결과는 달랐습니다. 민간병원이 공공병원에 비해 MRI와 같은 고가의 치료방식을 환자에게 더 적극적으로 권고했고, 수술로 해결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MRI비용도 민간병원이 공공병원보다 더 비쌌으며, 민간병원은 아직 입증되지 않은 불법 시술을 권고하기도 했습니다. 의대생들이 보는 책인《필수정형외과학》에 디스크로 알려진 추간판탈출증 치료법이 소개되는데, 이 증상은 2주에서 4주 내에 90%는 자연치유된다고 나옵니다. 의사들이 학생시절에 배우는 지식을 기반으로 하면, 많은 사람들이 민간병원이 권고하는 것처럼 MRI를 찍어보고 수술을 할 만한 증상은 아니였던 것입니다. 이는 명백히 과잉진료를 하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가짜 환자 실험은 항문외과, 치과에서도 실시되었습니다. 결과는 모두 척추병원과 같았습니다.

상식적으로 보면, 시장에서 공급자 사이에 경쟁이 치열하면 가격은 내려가고 서비스는 나아진다. 그런데 의료 시장에서는 그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대학생들이 보는《보건경제학》을 펼치면, 이런 내용을 설명하는 대목이 있다. 의료는 전문적이기 때문에, 소비자인 환자가 의료의 양을 결정하기 힘들다. 의사가 의료 서비스 공급량을 주도적으로 결정하는 이유다. 따라서 보건의료 부문에서는 공급이 수요를 창출한다는 말이 더 맞다. 보건의료는 도덕적 해이가 수요자뿐 아니라 공급자에 의해서도 발생하는 특이한 분야다. - p.127 

민간병원의 의사들이 환자들에게 더 비싼 치료법을 권고하는 것은 단순한 경제적 원리가 숨어 있습니다. 돈이 되기 때문입니다. 효과가 검증된 표준 방식의 치료를 하면 수익이 적을 뿐더러, 때론 적자가 나기도 합니다. 이러한 경제적 인센티브는 의사들에게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지를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의학분야에서도 소위 잘나가는 분야와 기피하는 분야를 만들어냈습니다. 잘 나가는 분야의 기준은 돈을 잘 벌수 있느냐입니다. 암센터는 돈이 되기 때문에 병원마다 서로 투자하고 있지만, 중증외상센터는 돈이 되지 않기 때문에 버려지고 있습니다. 중증외상센터에서 치료할 수 있는 증상은 한국인의 사망원인 중 3위에 해당하는 증상입니다. 죽지 않을 수 있었지만 중증외상센터가 부족해서 죽은 한국인은 매년 만명 정도로 추산됩니다. 아덴만 여명 작전 당시 총상을 당한 석해균 선장도 소위 빅5라 자랑하는 병원이 아닌, 아주대병원의 중증외상센터에서 치료했습니다.

기획재정부는 예비타당성 조사 결과 외상센터사업은 비용에 견줘 효과적이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비용편익 비율이 0.31~0.45에 불과하다는 설명이 따라붙었다. 쉽게 말해, 돈이 안 되니 중증외상센터를 짓지 말라는 뜻이었다. 기획재정부의 자료를 보면, 우리 국민 한 사람이 생존했을 때 사회가 얻는 이득을 1억 5511만 원으로 계산했다. - p.198 

현재 의료영리법인이 추진중에 있습니다. 의료영리법인이 허용되면, 병원은 투자와 배당이 가능한 사업모델이 됩니다. 현재도 병원경영지원회사(MSO)를 통해 자본의 병원 소유가 가능합니다. 병원이 사업모델이 되면, 시장논리에 따라 장사를 하는 것을 비난할 수 없습니다. 이 새로운 시장에 소위 빅5라 불리우는 병원들의 의료계 군비 경쟁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삼성그룹과 현대그룹의 재벌병원이 규모 경쟁에 가장 적극적입니다. 외국의 경우 보험, 의대, 병원, 의료기기, 바이오제약, 헬스케어 등의 사업을 벌이는 의산복합체가 등장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삼성이 독보적입니다. 경제법칙은 의료계도 예외는 아니여서, 병원들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일어납니다. 큰 병원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동네의 작은 병원은 사라지고 있습니다. 인구 7만이 넘는 강원도 삼척시엔 소아과 병상이 없습니다.

상업화는 의료의 사각지대를 만들고, 넓힙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산부인과, 응급의학과, 외상외과는 돈이 안되기 때문에, 근무할 의사도, 병원이 투자할 이유도 없습니다. 산부인과는 2011년 한해에 50곳이 문을 닫았습니다. 전국 230여 곳의 기초 시,군,구 가운데 분만실을 갖춘 산부인과가 없는 곳은 54곳입니다. 공공의료가 이런 부족한 분야를 지탱하는것도 한계에 달했습니다. 의사나 간호사가 적으니 일이 고되고, 일이 고되니 의사나 간호사들이 더 오지 않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수익도 나지 않다 보니 의회에서도 천덕꾸러기 취급입니다. 공공의료에서도 환자의 건강보단, 돈이 되는 치료법에 대한 유혹이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건강검진 열풍입니다. 건강검진보다 생활 습관 치료가 환자에게 더 부담이 적고 효과적이지만, 건강검진이 더 돈이 됩니다. 당연히 의사들이 과도한 건강검진을 권고하게 합니다.

의료의 상업화는 특정 분야로의 편중, 특정 지역의 밀집, 특정 계층 선호라는 단점을 지니고 있지만, 그럼에도 영리병원 도입을 찬성하는 목소리도 있습니다. 정부와 일부 경제연구소는 영리병원이 더 나은 서비스와 향상된 질을 가져다 줄 것이며, 나라경제가 살고 일자리도 늘어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미국 텍사스대학의 로스나오 교수는 영리병원과 비영리병원의 성과를 비교 분석한 결과 서비스의 질, 비용 대비 편익, 접근성 등 모든 부분에서 비영리병원이 우위에 있다고 지적합니다. 또한 타일러 코언과 커틀러 교수는 영리병원의 도입으로 국민의 건강이 좋아진다는 보장이 없으며, 업자들의 배만 불릴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우리나라의 대형병원을 평가한 자료에서도 환자들의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진 대형 병원과 일반 병원은 별 차이가 없었습니다. 이는 비싼 진료비가 꼭 좋은 의료 서비스와 일치하는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2005년 세브란스 병원에서 처음 도입한 이래, 로봇 수술은 마법의 시술인 양 주목받았다. 새 기계가 없는 병원은 구식 취급을 받았다. 고가의 기기는 짭짤한 벌이도 보장해 줬다. 일반 수술의 6~10배 가격이었다. 병원에서는 기계의 원가를 회수하기 위해서라도 환자들을 로봇 수술로 유인했다. 부글거리던 거품은 2010년 12월에 터졌다. 양승철 연세대 교수가 나섰다. 논란이 뜨거워지자 2011년 6월 한국보건의료연구원은 로봇 수술에 대한 분석 보고서를 내놓았다. 연구원은 국내외 연구를 분석한 결과, 다빈치 로봇 수술이 장기생존율이나 재발률, 합병증 발생률 등에서 일반 개복 수술에 비해 효과가 뛰어나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 pp.129~130 

의료 시장은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는 정보 비대칭 영역이기 때문에, 돈독이 오른 병원과 의사 탓으로만 돌리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상업화를 추구하는 의사들의 행보를 비난할 수만은 없습니다. 다수의 양심적인 의사들이 윤리적인 의료행위를 하기 어려운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를 포함해 이러한 의료 체계를 개선하기 위한 권고안은 여럿 있었습니다. OECD의 한국 의료 보고서에서도 환자의 건강이 중심이 되는 의료체계를 위해선 지역 중심의 1차 의료기관의 강화, 포괄수가제 도입, 병원과 의사들의 성과 및 과실 자료 공개, 응급서비스 강화, 민간의료보험보단 국민건강보험 중심의 재정정책 등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가짜 환자 실험으로 시작해서 우리나라의 의료의 자화상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출산을 앞둔 산모가 병원을 찾아 떠돌아다니고, 신생아가 치료실이 없어서 죽어가는 현실이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변화는 지금부터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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